〈 16화 〉 가상현실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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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게임
뭐지?
왜 이렇게 몸이 답답한 거야?
꾸우욱…..꾸욱….
답답해!
마치 수백톤의 철근 덩어리가 내 몸을 누르는 것 같잖아!?
눈이 부신 빛을 보고선 정신을 잃었던 난 금세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구그그그그그....
분명 보금자리를 만들었을 때 이거보다 넓게 만들었던 것 같았는데….
널찍하게 움직이기 위해서 상당히 넓게 만들었던 보금자리가 지금은 공간 하나 없이 꽉 들어 찬상태였다. 아니 실제론 보금자리를 만들기 위해서 뻥 뚫어놨던 입구와 출구 또한 무너져 내려 오히려 더 넓어진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일어나셨네요]
어?
너 살아있었구나?
[사용자는 제가 죽기를 바란 것 같습니다?]
아냐!
내가 언제 그렇게 바랐대?
그냥 다행이라고 생각했지.
[...그렇습니까?]
응 정말 다행이야.
그런데 여긴 왜 이렇게 무너진 거야?
거기가 내 몸이 상당히 커진 것 같은데?
[기억 못 하십니까?]
뭘?
시스템의 말에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기억의 단편에 서서히 아…. 거리며 생각하기 시작했다.
음.
그러니까 지금 레벨이 몇이라고?
[모릅니다. 게임시스템에 대한 모든 것이 소실된 지금 알 방법이 없습니다.]
아니 그것보다는 너 도대체 얼마나 삥뜯어 온 거냐?
[네? 삥이라니요]
기절하기 전에 언뜻 들었던 게 레벨업 50번은 넘은 것 같더란 말이지?
아니…. 더 많았던가? 아무튼, 그거 때문에 신이 빡쳐서 특전을 없애 버린 거잖아?
[사용자의 말이 맞기는 하지만 특전이 아예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그럼?
[신이라고 해도 영혼에 귀속된 능력을 회수해 갈 수 없습니다. 즉 이미 받은 힘이나 능력들은 여전히 가지고 있다는 소립니다.]
그러니까 능력치나 인터페이스 같은 그런 건 못해도 스킬 같은 건 여전하다는 소리지?
[그렇습니다.]
으흥~
그렇구만?
그러고 보니 얼마나 지났어?
[사용자가 진화를 하는 동안 밖에선 격변의 날을 맞이했습니다. 벨로르 던전의 시간으로 따진다면 약 300일가량 지났습니다.]
와.
진화 한번 거치는 데 300일이나 걸려?
아니지?
진화를 연속으로 두 번 겪다 보니 오래 걸리긴 하겠네
그나저나 격변의 날은 무슨 소리야?
진화하고 나니 별의별 일이 다 생겼다.
[격변의 날이란 Ai였던 제가 `규칙을 지키는자 에코모니아`의 규칙을 어기면서 생긴 부작용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응.
그러니까 그게 뭐냐고
난 그게 궁금한 거지 너에 관한 이야기는 궁금하지 않거든?
[...신이 정한 규칙을 깨트렸기에 세상에 걸려있던 전체적인 틀이 어긋났다는 소립니다.]
에게?
겨우 한 번으로?
[사용자가 이미 두. 번. 씩.이나 깨트렸지 않습니까?]
아?
그런가…?
네가 하는 말을 듣고 보니 꼭 내가 잘못한 것 처럼 들리는데? 헤헤헤….
내 말을 끝으로 시스템이 아무 말을 하지 않자 무안해진 난 땅 위를 뚫고 올라갔다.
아무래도 정확한 상황 판단을 위해서 좀 더 넓은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는데….
뭐야?
왜 끝이 없어?
분명 100m 깊이에 보금자리를 마련해놨는데 올라온 건 200m를 훌쩍 넘었다.
[차원의 비틀림으로 인해 현재 전혀 다른 곳으로 왔습니다.]
어…….
그러면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 거야?
[그렇게 말하지 않아도 도착합니다.]
콰드득!!
꿀꺽?
하늘에서 빛이 쏟아져 나오는데 마지막이랍시고 입안에 있던 흙더미를 삼켰다.
음~
오랜만에 흙을 먹으니 고기 맛이 나네?
[흙에서 고기 맛이 나는 게 아니라 정말 고기를 먹었습니다만….]
시스템의 말에 고개를 치켜들었다가 다시금 아래로 내려보니….
"으아아악!!!!"
"취이익!"
이란 비명과 함께 뿔뿔히 흩어지는 인간과 돼지머리 오크가 보인다.
어…. 그러니까 내가 지금 먹은 게….
[인간 13명과 오크 9마리입니다.]
아하?
그렇구나! 내가 인간을 먹었구나?
먹어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어처구니없게 먹을 줄 몰랐다. 음…. 나름 신박한 느낌이랄까?
그나저나 오크랑 인간이랑 철천지원수 아니야? 왜 둘이 같이 있는 거야?
얼래?
둘만 있는 게 아니네?
두리번거리면서 살펴보니 어째 뭔가 많이 있다 싶다.
[오크, 인간, 놀, 고블린, 오우거, 등등 세르자이 대륙에 있는 모든 몬스터들이 한자리에 모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각종 음식과 상점이 있는 것을 보니….
마치 `마을`과도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아무리 규칙이 어긋났다고 하지만 이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알 수 없습니다. 더는 생명체들에게서 지식이 전달되지 않습니다.]
믿고 있던 시스템 역시 먹통이란다.
"우와! 이 녀석 뭐야?"
"지렁인가? 그런데 팔이 달렸네?"
"저 녀석 몬스터 주제 패션을 아는데? 모자랑 스카프 봐"
"이벤트인가?"
"저거 잡으면 보상 많이 주겠지?"
곳곳에서 들려오는 인간의 대화 소리….
이벤트? 보상? 도대체 뭐가 이렇게 많이 변한 거야?
일단 시선이 너무 집중 되어있다 보니 세상 살아가는 정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기에 자리를 피하기로 했다.
쿠그그그그그!!!
"어어! 도망간다! 잡아!"
"취이익!! 잡아!"
캉!캉!
튀어나왔던 자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는 곳으로 다시금 땅을 파고 들어가는 동안 인간들과 몬스터들이 내 몸을 공격하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너무 길어서 땅속으로 다시 들어가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이럴 땐 작아지면 좋을 텐데….
[사용자의 몸체를 줄입니다.]
슈루루룩….
어어?
뭐야 이거?
너 게임능력 사용 할 수 있어?
[못합니다.]
그런데 이거 왜 이래?
[아까 사용자가 몸체가 작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 서서히 작아지는 몸을 보곤 그냥 따라 해봤습니다.]
아?
그러니까 직업병이구나?
이래서 직업병이라는 게 무섭다는 거야….
쓸데없는 곳에서 자꾸 모종의 행동이 튀어나오잖아?
쿠그그그….쿠그….
대충 확인했을 때가 몸길이 300m 쯤 되었고 굵기는 40미터쯤 되어 보였다. 그러나 몸이 줄어든 지금은 마치 옛날에 막 환생했을 때 처럼 딱 2m 수준의 크기를 자랑했는데 딱 좋은 크기라고 볼 수 있었다.
흐음…. 이걸 어떻게 하나?
이대로 평화롭게 먹으면서 살까….
아니면 현 상황을 알아가면서 대체하면서 살아가야 할까?
[이럴 땐 `동전 튕기기`가 딱 맞습니다만….]
동전이 없잖아.
음..
그냥 돌로 해볼까?
바닥에 떨어진 납작한 돌을 주워다 손바닥에 튕겼고 그 뒤 손등에 포갰다.
앞뒤?
[....돌에 앞뒤가 있나요?]
아...?
한가롭게 꽃을 따다가 가지런히 바구니에 따는 소녀가 있었다.
청순하면서도 가녀린 몸을 가졌지만,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바구니는 여자가 들기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였는데 전혀 힘들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쿠그그그그!
꽃을 따는데 정신이 없는 그녀의 곁으로 뭔가가 맹렬한 속도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땅거죽이 반으로 접히는 듯한 소음이었지만 전혀 반응조차 하지 않는 그녀는 마침내 자기 옆으로 길다란 무엇인가가 튀어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뀨?
"야! 그렇게 튀어나오면 안 된댔지!"
퍽!
땅에서 튀어나온 크기만 해도 2m를 훌쩍 넘는 괴몬스터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주먹으로 강하게 때리는 만행을 저지르는 여자였는데….
뀨우...
놀라운 건 몬스터가 그런 여인에게 꼼짝도 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방금전 청순가련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오로지 마녀와도 같은 여자만이 서 있는 것 같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지만, 뒤에서 부르는 남성의 목소리에 다시금 청순한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돌아왔다.
"세이린! 어디있어?"
"유셀! 여기!"
잠시 뒤
거대한 늑대 등에서 훌쩍 뛰어내리는 유셀을 볼 수 있었다.
8년 전 벨로르 던전에서 일어난 지진의 여파로 목숨을 잃어가려던 때 지금의 퀸이 나타나서 유셀을 구출해줬다.
지금 생각해보면 변태 지렁이가 모종의 수법으로 `영역`을 표시해줬다는 것이 얼마나 행운인지 깨달을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그때 본 이후로 볼 수가 없었다.
"또 여기서 꽃 따고 있는 거야?"
"오늘이 8주년이잖아."
"벌써 그렇게 됐나?"
유셀은 과거에 황녀라고 부르며 떠받들던 세이린이 이제는 자신의 아내가 되어 남루한 생활을 한다는 것에 괜한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격변의 날`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뒤틀려버린 세상에는 더는 제국이 남아있지 않았다. 아니 제국은 남아있었지만, 제국을 다스리는 황제가 없다고 해야 할까?
차원이 비틀리고 어딘지 모를 세상과 연결이 되어버린 후 세상엔 이방인이라는 기이한 존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불사의 존재였으며 몬스터나 어떠한 특정 행동을 통해서 비이상적으로 강해지는데 정말로 놀라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몬스터의 형태를 취한 이방인이나 인간, 또는 묘인족이나 엘프 드워프등 유사인종을 가진 이방인들까지 속속히 나타나더니 우리를 NPC라고 칭하기 시작했다.
이상하게도 그들이 NPC라고 부르는데 아무런 의구심이나 저항감이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마치 처음부터 NPC라는 기이한 호칭을 사용해왔던 것 처럼 익숙했고 물건이나 금전적인 요구사항도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거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당신이 내려준 `퀘스트`의 기간이 만료되는 날 아닌가?"
"음? 어! 그러네?"
"분명 사흘 전 오후 3시에 `퀘스트`를 수령 받았으니까…. 이제 30분 남았네!"
"역시나 실패인가?"
"에구~ 우리 남편 고생하는 거 봐?"
세이린이 유셀의 엉덩이를 팡팡 치며 위로해주는데 유셀은 `앗!뜨거`하는 표정을 하고는 주위를 빠르게 휙휙 거린다.
"남들 보면 어쩌려고 그래?"
"뭐 어때? 남편 궁둥이 두들겨 준다는 것도 죈가? 왜? 밤에 두들겨줘?"
"크음…."
얼굴이 시뻘게진 유셀이 세이린의 눈을 피해 요리조리 피해 다닌다.
아무래도 밤에는 천하의 소드마스터 유셀이라고 할지라도 세이린을 이기기엔 벅차다.
"으흥~ 오늘은 가볍게 `4번씩` 해야겠네?"
"저…. 저기 세이린? 그건 절대 가볍게가 아닌데…."
"뭐야? 소드마스터가 4번도 못해!?"
"...."
참고로 말하자면 `4번`이 아니라 `4번씩`이다.
말이 4번이지 아침, 점심, 저녁으로 총 12번 해봐라 이건 사람이 할 짓이 안된다.
점차 궁지로 몰려가던 유셀이 슬금슬금 뒷걸음을 치고 있을 때였다.
"유셀씨!"
"어? 오셨습니까?"
정말 기가막힌 타이밍이다.
유셀이 내려준 `퀘스트`를 할당받은 이방인이 돌아온 것이었는데 시간을 확인하니 14분이 남아있는 시점이었다.
"알아보셨습니까?"
"네! 흔적을 발견했는데…. 다만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더군요."
"어떤?"
"유셀씨가 말한 스페셜 퀘스트 `거대 지렁이`가 벨로르 던전이 아닌 아캄 중립국에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아캄에? 거긴 벨로르 던전과 한참 떨어진 곳인데…."
"자세한 내막은 모르겠지만, 아무튼 보상은 어떡해?"
이방인은 퀘스트를 달성하고 난 다음 보상을 바라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이 이상 정보를 원한다면 또 다른 퀘스트를 내려야겠지….
"일단 집으로 가시지요 세이린 집으로 가자"
"응"
아무래도 이 순간을 누구보다 기다려왔던 존재가 세이린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