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화.
마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수도의 중심지이자 가장 큰 번화가인 ‘릴튼 거리’였다.
주말 오전답게 벌써 번화가 초입부터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대공저의 인장이 박힌 마차가 등장하자 걸음을 멈추고 술렁거리는 것이 창문 너머로도 보였다.
“남들 시선에 별로 신경 쓰는 편은 아니라고 하셨죠?”
“네.”
“잘됐네요.”
아무래도 오늘은 가는 곳마다 시선이 따라붙을 것 같으니까.
마차가 멈춰서고 먼저 아래로 내려간 이안이 내게 손을 뻗었다.
“내리시죠.”
“고마워요.”
한 번 에스코트를 해 봤다고 제법 능숙해진 모습이었다.
마차가 멈춰 선 곳은 릴튼 거리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광장이었다.
덕분에 이안과 내 등장에 단번에 이목이 쏠리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머, 진짜 대공과 대공비예요.”
“사용인들까지 대동하고 온 걸 보면 함께 쇼핑이라도 하려는 걸까요?”
“아리아 소식지 내용을 보고 설마 했는데….”
“저는 직접 봤다니까요, 저번 시즌 파티에서요!”
‘이게 말로만 듣던 셀럽의 삶인가.’
저번부터 반쯤 연예인이 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시선을 고스란히 맞으며 의식하는 나와 달리, 이안은 그들이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것처럼 태연하게 굴고 있었다.
그가 내게 물었다.
“어디로 갈지 생각해 두신 곳은 있습니까?”
“음….”
그런 거 없다.
오늘의 목적은 이안과 함께 번화가에 나타나 적당히 이목을 끌고, 바깥에서 조신하게 에스코트하는 법을 가르칠 예정이었으니까.
‘근데 요즘 태도를 보면 가르친 것보다 앞서가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리 개차반이라도 남주는 남주다 이건가?
눈을 굴리던 내가 으쓱였다.
“일단 돌아다녀 보죠. 오랜만에 번화가에 나왔더니 생경한 것들이 많네요.”
“그러시죠.”
이안이 선선히 끄덕였다.
몇 걸음 뒤에서 비비를 비롯한 사용인들이 우리를 조용히 따랐다.
“보통 데이트를 할 땐 대공께서 이끌어 주시는 게 맞지만, 오늘은 제가 리드할 테니 따라오기만 하세요.”
“데이트라.”
중얼거린 그가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았다.
“언제는 서로 마음 있는 사이는 아니라더니, 그런 말은 잘 쓰시는군요.”
“그럼 뭐, 효도 관광이라고 할까요?”
별꼴이야, 진짜.
어째 오늘 좀 잘나간다 싶었다.
효도 관광 발언에 잠깐 말문이 막힌 듯 날 쳐다보던 이안이 말했다.
“…그냥 데이트로 하죠.”
“엄밀히 말하면 데이트 연습이에요.”
데이트 같은 팔자 좋은 얘기는 이 인간을 깡깡 두드려 우리 다이아나한테 꽃길을 깔아 준 뒤에 생각해 볼 일이다.
픽 웃음을 터뜨리며 손사래 쳤다.
“근데 뭐, 신경 쓰지 마세요. 어차피 진짜 데이트는 대공께 요청드릴 것도 아닌걸요?”
그러자 그의 걸음이 느려졌다. 그의 표정에 의아함이 물들었다.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죠. 애초에 대공과 저는… 엇.”
무어라 대답하려던 내가 어느 한 곳을 보고 발을 멈췄다.
릴튼 거리의 중앙 광장,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4층짜리 대형 가구점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곳을 물끄러미 보던 내가 고개를 돌려 이안에게 물었다.
“저 가게, 되게 위치가 좋아 보이지 않아요? 건물도 근사하고.”
‘갑자기?’라는 표정으로 날 보던 이안이 내 손끝을 따라 시선을 던졌다.
그는 갑작스럽게 전환된 화제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이동 인구가 많은 곳이니까요.”
“그렇죠? 저기에 구둣가게 같은 게 들어오면 참 좋을 것 같아요.”
이번엔 또 무슨 실없는 소리냐며 눈빛으로 묻는 이안을 뒤로하고 건물을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저 건물이 바로 다이아나의 신발 가게가 될 거거든.’
레반트 제국으로 돌아온 다이아나는 귀국 초기, 마담 제드가 있던 골목 근처에서 구둣가게를 연다.
당연하게도 후미진 뒷골목을 찾는 사람은 몇 없었기 때문에 초반엔 많은 고생을 한다.
‘설상가상 이 망할 이안 놈은 도와주지도 않고….’
그러나 여주인공은 결국 행복해져야 하는 법.
산전수전을 다 겪고 성공한 다이아나는 최종적으로 릴튼 거리의 중앙 광장으로 향한다.
그리고 다이아나가 매입한 건물이 바로 저 가구점이었다.
다이아나가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리모델링을 감독하고, 마지막에 간판을 올리던 순간을 나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명장면이었지….’
유구한 이안의 악성 개인 팬인 작가가 거의 유일하게 다이아나의 능력을 조명해 준 부분이었으니까.
우리 애가 무려 건물주라고!
절로 밀려오는 뿌듯함에 광대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다.
그런 나를 물끄러미 보던 이안이 고개를 기울였다.
“혹 창업에 관심이 생기셨습니까?”
“음? 아뇨. 그럴 리가요. 그냥 해 본 말이었어요.”
가볍게 손사래를 치자 이안이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거뒀다.
“다행입니다. 부인께선 사업에 소질이 전혀 없으시니까요.”
한 치의 망설임 없는 단호함이었다.
‘아니 근데 이게 진짜….’
애당초 사업 같은 걸 해 볼 생각도 없었지만, 저 반응을 보니 은근히 속이 비틀렸다.
본인은 소드마스터에 레반트 제국의 주요 사업을 맡고 있을 정도로 사업의 대가라 이거지.
‘흥, 그래 봐야 귀족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성공 신화는 다이아나 거라고.’
곧 다이아나의 건물이 될 가구점을 빤히 쳐다보다가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저쪽으로 가 봐요.”
애당초 뭘 사기보단 이안과 내 모습을 보여 주려는 의도가 컸기 때문에, 나는 이안을 끌고 대형 상점을 돌아다니며 시간을 보냈다.
“전 책을 읽을 테니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보세요. 제가 보는 책을 같이 읽을 것처럼요. 다들 쳐다보고 있잖아요.”
“지금도 거리는 충분히 가깝습니다만.”
“멀거든요? 좀 이렇게. 손도 가볍게 허리에 올리시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겁니까?”
“아까 데이트 연습이라는 말은 뭘로 들었어요? 보통 연인들은 이렇게까지 한답니다.”
유달리 귀족들이 많은 서점에 가서 부러 다정한 포즈로 책을 고른다거나.
“여기, 이 짐 좀 들어 주세요. 별로 무겁진 않아요.”
“이런 건 사용인들을 시키시죠.”
“직접, 들어 달라고요.”
“하아.”
“제가 말했죠, 대세는 조신남이라고. 본인 짐을 들어 주는 남자를 싫어하는 여자는 없거든요?”
“…….”
“잔말 말고 드세요, 얼른.”
보란 듯이 방금 들린 상점의 종이백을 이안에게 떠넘긴다거나.
“자, 보세요. 이 중 어떤 양산이 저랑 제일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둘 다 비슷해 보입니다만.”
“다르거든요? 또 아무거나 고르지 마시고. 상대를 떠올리면서 선물을 한다 생각해 보세요.”
“부인께서 원하시는 게 있으면 직접 구매하시는 편이 더 효율적이지 않겠습니까?”
“혹시 선물의 뜻을 모르시나요?”
“…….”
“고르시죠.”
이안에게 상대방에게 어울리는 선물을 고르는 법을 가르친다거나.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덧 짐이 늘었다.
이안의 손에 들린 두 개의 종이백을 제외하고도, 비비와 사용인들의 양손 가득 상자와 종이백이 쌓여 있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분명 가볍게 보여 주기식 나들이만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돈 걱정 하지 않고 본격적으로 쇼핑을 하는 건 처음이라 나도 모르게 과소비를 하고 말았다.
‘돈 앞에서는 나도 어쩔 수 없군.’
하도 돌아다닌 탓에 구두를 신은 발뒤꿈치가 아려 올 정도였다.
“아이구, 발이야….”
슬쩍 치마를 들어보니 메리제인 슈즈 앞 장식이 반쯤 떨어져 있었다.
이건 또 언제 떨어졌대.
양손에 짐을 든 채 나를 비스듬히 내려다보던 이안이 무심한 말투로 툭 뱉었다.
“데이트 ‘연습’치고는 좀 많이 즐기신 것 같군요.”
나왔다, 공.주표 돌려 까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