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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28)화 (28/91)

28화.

내가 의아하게 묻자 모든 이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았다.

“아, 대공비 전하께선 모르실 수도 있겠네요. 그간 사교계에 별로 관심이 없으셨으니.”

“공식적으로 발행되는 신문은 아니고, 사교계의 이슈만을 정리한 소식지가 있어요. 일주일에 하나씩 발행되는데, 마침 내일이 그 날이랍니다!”

‘이런 내용이 원작에 있었던가? 없었던 것 같은데.’

아니면 또 내가 다이아나와 관련된 일이 아니어서 잊었을지도.

내가 또 무지했을지도.

내가 흥미를 보이자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여자가 웃었다.

“요즘 수도의 이슈 중 하나예요. 이 제국에 아리아 소식지를 받아 보지 않는 귀족은 단 한 명도 없을 정도라니까요.”

“맞아요, 제보를 받는 것도 아닌데, 아리아 소식지는 사교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정말 귀신같이 캐치해서 기사로 싣거든요.”

호오….

그런 게 있었단 말이야?

사교계야 오늘 점심에 은밀하게 나눈 이야기가 내일 아침쯤 되면 수도 전역에 퍼져 있는 곳이라고는 하지만.

그걸 모아 발행하는 소식지가 있다는 건 제법 신선한 일이었다.

“게다가 누가 쓰는지, 발행처는 어디인지, 아무도 모르는 소식지라 더 말이 많아요.”

“저자를 모른다고?”

“네. 그런데 들리는 이야기는 있어요.”

처음 물어본 건 난데 어쩐지 설명을 하는 귀부인들이 더 신난 눈치였다.

듣는 사람도 없을 텐데 과장되게 목소리를 죽이며 그들 중 하나가 속삭였다.

“아무래도, 소식지를 만드는 사람이 꽤나 실력 있는 마법사일 거라는 소문이 돌고 있거든요.”

“마법사…?”

뜬금없이 마법사라니?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이자 그들이 고개가 떨어져라 끄덕였다.

“아, 대공비 전하는 모르시겠군요. 이 소식지, 그냥 소식지가 아니거든요. 조금 특이해요.”

큼, 헛기침을 한 귀부인이 마치 엄청난 사실을 공개하듯이 말했다.

“물론 사교계 곳곳에서 들리는 소문을 발 빠르게 소식지에 싣는 것도 엄청난 미스터리이긴 하지만요.”

“하지만?”

“무려 다른 구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거든요!”

“…그게 무슨 말인가?”

실시간…? 반응…?

내가 아방한 반응을 보이자 그녀는 더욱 신난 듯 작은 목소리로 호들갑을 떨어댔다.

“구독을 신청하면 소식지와 함께 작은 마법 스크롤이 하나 오는데요, 그걸로 원하는 글 아래에 의견을 써서 소식지에 실을 수 있어요.”

“네, 실시간으로 의견이 올라오는 란이 따로 있구요!”

“소식지도 소식지지만, 그 의견을 보는 게 제법 묘미랍니다.”

가만히 듣다 보니 묘한 기시감이 나를 감쌌다.

실린 글에 실시간으로 의견을 보내고, 다른 사람 의견까지 볼 수 있다고?

어라, 그거 완전….

‘댓글 아니야?’

내 눈이 크게 뜨였다.

이 세계에 그런 걸 고안해 낸 사람이 있다고?

‘이거… 그냥 듣고 넘길 게 아닌데?’

사교계의 소식을 한 번에 전해 주는 익명의 소식지와, 자유롭게 보낼 수 있는 의견란까지.

어쩌면 나와 아주 잘 맞는 방식을 찾은 것 같았다.

그들 사이에 끼어 있던 내가 눈을 빛냈다.

“괜찮다면 그 소식지를 받아 보는 법을 물어도 되겠는가?”

***

늦은 밤, 대공저의 집무실.

이안의 앞에 선 카일이 보고를 올리고 있었다.

“…대공비 전하께선 원활하게 시즌 파티를 즐기신 것 같습니다. 중간에 잠깐 이사벨라 하워드 후작 영애와 마찰이 있긴 했지만 잘 해결되었고요.”

카일이 어깨를 가볍게 으쓱였다.

“황녀님과 주최자인 브릴루즈 공작 부인이 대공비 전하께 호의적인 태도를 보여서인지 귀족들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그래.”

“아, 말씀하신 부분도 확인했는데. 특별히 대화를 길게 나눈 이성은 없었습니다. 대부분 또래의 부인들이나 영애들과 어울리신 것 같았습니다.”

“…….”

“더 할까요?”

“아니, 됐다.”

이안의 말에 보고를 마친 카일이 고개를 기울였다.

그의 붉은 눈이 웃음기를 머금었다.

“신경 안 쓴다고 하시더니, 역시 신경 쓰이시는 거죠?”

“헛소리.”

“아니, 들어보십쇼. 에스코트까지는 대공비 전하께서 요구하셨다 쳐도, 지금 그 이상으로 관심을 가지고 계시잖습니까. 오늘 유리 온실 앞에서 손등 키스까지 하셨죠?”

카일은 비죽비죽 새어 나오는 웃음을 감추려는 일말의 의지도 없이 제 주군을 훑어보았다.

“…대체 그런 건 어디서 다 주워듣는 거지?”

“에헤이, 이 수도의 모든 게 제 눈과 귀 아니겠습니까?”

그가 한술 더 뜨며 말했다.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혹시 진짜 죽을병에 걸리신 건 아니죠? 그런 거면 말해 주셔야 합니다. 저도 새 직장 찾게.”

책상 앞에 앉아 그를 마주하던 이안이 미간을 좁혔다.

“주군에 대한 충성은 개나 줬군.”

“그럴 리가요. 보기 좋아서 그럽니다.”

능청스러운 카일의 태도에 이안이 피곤하다는 듯 이마를 짚었다.

“되었으니 나가 봐라. 정신 사납다.”

“기껏 열심히 보고했더니 지금 저 쫓아내시는 겁니까?”

“나가.”

“진짜 매정하시네….”

이안의 살벌한 기세에 카일이 투덜거리며 마법진을 그리더니, 흔적도 없이 집무실에서 사라졌다.

완전히 기척이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이안이 안경을 벗었다.

행동에 묘하게 짜증이 서려 있었다.

‘새 사람을 운운하더니, 정작 파티에서 어울린 건 같은 여자들이라고….’

그가 왈칵 얼굴을 찡그렸다.

‘대관절 무슨 생각인 거지?’

대공 직위를 받기 전까지 이안은 평생 반쪽짜리 황자로 살아왔다.

가장 먼저 삭막한 황성에서 살아남는 법을 배웠고, 그리하여 타인이 어떤 의도로 어떤 행동을 하는지 속내를 가늠하는 건 이안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엘로이즈만큼은 예외였다.

일부러 이안을 자극하거나 약 올리려는 것도 아니면서 모든 행동에 의문을 남겼다.

이쯤 되니 이안의 신경을 건드리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의심이 될 정도였다.

사실,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살살 긁어대는 꼴을 보면 아주 가능성이 없는 얘기도 아니었다.

“…….”

그는 집무실에 앉은 뒤로 조금도 진전이 없는 서류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고작 시즌 파티에 참석한 엘로이즈를 신경 쓰느라 몇 시간을 허비했다.

‘쓸데없는 일에 여력을 쏟는 건 카일이 아니라 나였나.’

물끄러미 종이를 쳐다보던 이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향했다.

어느새 창가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한참 고요한 정원을 내려다보고 있을 때쯤 저 먼 곳에서 정문을 통해 들어오는 마차의 형상이 보였다.

엘로이즈였다.

‘연회도 아닌 가벼운 시즌 파티면서 해가 다 져서야 귀가하는 건가.’

본래 브릴루즈 공작가에서 열리는 시즌 파티는 대개 밤까지 이어지며 술을 곁들이긴 했다. 하지만 이안이 아는 엘로이즈라면 그 늦은 시간까지 파티에 함께할 사람이 아니었다.

고작해야 몇 시간 머물다 돌아올 것이라는 이안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간 것이다.

정말 카일의 말대로 답지 않게 파티를 즐기기라도 하는 것인지.

“…….”

표정 없이 본관으로 다가오는 마차의 형상을 지켜보던 이안이 옷걸이에 걸려 있던 재킷을 집어 들었다.

‘확인해 봐야겠군.’

대체 엘로이즈의 생각이 뭔지.

얼굴을 직접 보지 않고서는 해소될 종류의 의문이 아니었다.

이안이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다잡고 로비로 내려갔을 때, 엘로이즈는 때마침 본관 안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멀찍이서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던 이안의 눈이 가늘어졌다.

늘 꼿꼿하던 엘로이즈의 몸가짐이 미묘하게 흐트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술?’

이안의 표정에 황당함이 들어찼다가, 이내 헛웃음을 흘렸다.

귀가가 늦어지기에 설마 했는데, 정말 순수하게 이 시간까지 파티를 즐기고 온 모양이었다.

그 와중에도 내내 몸가짐을 신경 쓴 건지 약간의 비틀거림 이외엔 놀라울 정도로 단정한 모습이었다.

“어우, 어지러워…. 너무 주는 대로 받아먹었나.”

엘로이즈가 머리를 짚고 휘청거렸다.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관찰하던 이안이 쯧, 혀를 차며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붙잡아 세웠다.

“조심하시죠.”

“아, 감사… 대공?”

발그레 상기한 얼굴로 꾸벅 인사하던 엘로이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방금 전까지 미약하게 풀어져 있던 얼굴에 불만스러움이 서리는 것이 보였다.

그 표정 변화에 오히려 황당한 건 이안이었다.

지금 넘어질 뻔한 걸 잡아 주지 않았던가.

그러나 엘로이즈의 생각은 조금 다른 건지, 재빨리 이안의 품에서 꼿꼿하게 중심을 잡고 섰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안이 고개를 비스듬히 기울였다.

“시즌 파티가 아니라 술 파티를 다녀오신 모양이군요.”

“다들 차보다 술을 더 좋아하지 뭐예요. 얘기 나누면서 한두 잔씩 마시다 보니까 이렇게 됐네요.”

“…….”

“난 엘로이즈가 주량이 이렇게 약한 줄 몰랐지….”

엘로이즈가 발그레 상기한 얼굴로 불만스럽게 중얼거렸다.

이안이 눈을 가느스름하게 떴다.

‘삼인칭…?’

제정신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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