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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신하게 가르쳤더니 왜 집착하세요 (6)화 (6/91)

6화.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이안은 자신이 지금 들은 게 착각이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얼굴이었다.

“고쳐… 쓴다고요?”

스스로 말하면서도 기가 찬 듯한 말투였다.

나는 눈을 빠르게 깜빡이며 끄덕였다.

“네. 제대로 들으셨어요. 제가 대공을 고쳐 쓴다고요.”

“대체 무슨 소릴.”

“보아하니 대공께선 글러 먹으셨어요. 고작 2년 만에 사교계의 꽃을 빈껍데기 대공가 유령으로 만드셨잖아요.”

“글러 먹….”

이젠 말문이 턱 막힌 얼굴이었다.

꼴랑 이걸로 기 막혀 하는 꼴을 보니 어이가 없었다.

네가 한 말들은 더하거든?

하긴, 꼴에 황자 출신 대공이라고 주변에선 바르고 고운 말만 해 주었을 테니.

나는 그의 눈길을 아주 가볍게 무시하고 상큼하게 웃었다.

“아, 물론 그렇다고 해서 대공께 많은 걸 바라는 건 아니에요. 전 그저, 대공비로서 품위를 잃지 않을 정도의 수준을 원할 뿐이랍니다.”

응, 걱정 마. 너랑 가까워지는 건 나도 사절이다.

때 빼고 광내서 갱생시켜 놓고 깔끔하게 빠져 주마, 다이아나를 위해서.

눈이 있으면 보라는 듯이 그의 앞에 내민 종이를 향해 턱짓했다.

“거기 적힌 내용을 읽으셨으니 아시겠지만, 저더러 껍데기라느니 유령이라느니. 심지어 대공가에 들어앉은 가구라고 말하는 이도 있더군요.”

내가 생각해도 가구는 좀 심했다.

“그동안은 황제 폐하와 제 아버지의 얼굴을 봐서 참아 왔지만, 이젠 안 되겠어요.”

나를 따라 시선을 내린 이안이 온갖 추문들이 적혀 있는 종이를 가만 바라보았다.

“…….”

“그리고 솔직히,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나의 평판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하긴 했지만, 대공비에 대한 평판은 곧 대공가의 평판이었다.

이 정도로 엘로이즈에 대한 이야기가 돌고 있다면 그 남편인 대공에게도 하등 좋을 것이 없었다.

물론 이안은 황족의 피를 이어받았고, 현 황제의 총애까지 받고 있는 몸이니 고작 부부관계에 대한 추문으로 명예가 실추되는 일은 없겠지만….

‘이대로 두면 득보다 실이 많은 건 확실하지.’

내 당당한 태도에 황당해진 건지, 혹은 생각이 많아진 건지 나를 한동안 말없이 바라보던 그가 말했다.

“…부인께서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쓰셨습니까?”

“수도가 오죽 시끄러워야죠. 눈과 귀를 닫고 살아도 들릴 정도던걸요.”

그에게 뼈 있는 비꼼을 던지고선 고개를 기울였다.

“뭐… 사실 저도 오래 귀찮게 할 생각은 없어요. 그러니까 기간은 딱 1년으로 하죠.”

내가 검지를 펼쳐 들었다.

“대공께서 노력해 주신다는 조건하에, 정확히 1년 후에도 제 평판에 변함이 없으면 그건 대공의 탓만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그땐 저도 깔끔하게 포기하고 정리할게요.”

“정리의 의미는요.”

“얌전히 쥐 죽은 듯 산다는 얘기죠. 물론 원하신다면 이혼도 해 드릴 수 있어요. 아니다. 대공한테나 저한테나 그게 더 편하겠네요.”

내 폭탄 발언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고 되물었다.

“이혼이요?”

“네, 어차피 대공께는 대공비라는 위치를 지킬 사람이 필요한 거잖아요?”

“…….”

“그 대단하신 대공 전하이시니 선택지는 충분히 많으실 터. 제게 질려서 구태여 결혼생활을 이어 가고 싶지 않으시다면 퇴장해 드릴 의사가 충분히 있습니다.”

나는 그의 인생에서 곱게 꺼져 준다는 말을 고상하게 돌려 말했다.

“저와의 결혼으로 입지와 위신은 챙기셨으니, 그 이후의 대공비는 제 일만 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상관없겠죠.”

“…….”

“아, 물론 이대로는 안 되겠지만요. 대공께서 사교계의 꽃인 저를 무려 대공가의 가구로 만드셨는데, 다른 사람이라고 다르겠어요?”

다시 한번 그의 만행을 콕, 짚어 주자 그가 멈칫했다.

“그러니 1년간 저와 함께 노력해 보시고, 그래도 제 평판이 달라지지 않으면 그만둘게요.”

“…….”

“어쩌면 저와 헤어진 이후에 대공께선 저보다 적합한 여인을 대공비로 맞게 되실지도 모르고.”

이건 전부 다이아나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나와 이안은 1년 뒤 이혼 절차를 밟고 다이아나가 새 대공비가 될 테니까.

“간단히 말해 제 귀찮은 요구는 딱 1년짜리라고요.”

한쪽 눈을 까딱이며 이안을 쳐다보았다.

‘이 정도 했으면 적당히 넘어와라.’

비록 선전포고하듯 말하긴 했지만, 이리 보고 저리 봐도 이안이 손해 볼 건 조금도 없는 제안이었다.

무료로 갱생도 시켜 줘, 때 봐서 적당히 꺼져 줘.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단 말인가?

“대공비이기 이전에 저는 인격을 가진 한 사람이에요. 이런 수치스러운 꼬리표를 달고 남은 생을 보내고 싶지는 않네요. 그러니 협조 좀 해 주시길 바라요.”

“협조….”

이안이 중얼거렸다.

잠깐 눈을 굴리던 그가 물었다.

“그래서, 그 1년간의 정확한 계획이라도 있으십니까?”

한번 들어나 보겠다는 어조였다.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계획은 지금부터 짜야겠지만, 우선적으로 제안하고 싶은 두 가지가 있어요. 첫 번째, 최소한 밖에선 남편다운 태도로 저를 대해 주실 것. 그리고….”

“…….”

“두 번째, 일주일에 정해진 횟수만큼 제게 정신 교… 아니, 저에게 시간을 투자하실 것.”

그가 고개를 기울였다.

“시간을 투자하라고요.”

“가만히 있으면 사람이 변하나요? 당연히 집중 교육을 해야죠. 말했잖아요, 지금 대공은 글러 먹으셨다니까요. 일종의 수업이라고 생각하세요.”

“…….”

“정말 최소한의 요구예요.”

나는 적어도 다이아나가 돌아오기 전까지 이 정신머리를 반드시 뜯어고쳐야 했다.

어설프게 태도를 고쳐 보겠다며 잔소리만 해 댔다간 나와 헤어진 이후에 또 다이아나 속이나 까맣게 태울 게 뻔했다.

그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나는 이놈 옆에 찰싹 달라붙어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가르쳐 놓을 생각이었다.

누가 그러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의 주입식 교육 방식만큼 효과적인 건 없다고.

이 인간이 자체적으로 갱생하기를 바랄 바에야 머릿속에 주인공이 마땅히 갖춰야 할 소양을 강제로 입력해 놓는 편이 더 효과적일지도 몰랐다.

로맨스 소설의 남자 주인공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낱낱이 알려 주지.

이래 봬도 내가 로맨스 소설 100권을 돌파한 헤비 독자라고.

잠깐 말을 잃었던 그가 입을 벌린 채 물었다.

“…진심이십니까?”

“제가 이 시간에 찾아와 농담 따먹기나 할 만큼 한가해 보이세요?”

새초롬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입을 꾹 다문 이안이 검지로 책상 위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

“…….”

아마 지금쯤 자신의 수고로움과 책임감을 두고 저울질을 하고 있겠지.

그리고 내가 아는 한, 이안 클라우드는 싸가지가 없긴 해도 경우가 없지는 않았다.

이 정도 입을 털어 뒀으면 돌아올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내 예상대로 답은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딱 1년입니다.”

“네, 더 할 생각은 없어요.”

“부인의 평판이 바뀌든, 바뀌지 않든 1년 후에는 지금처럼 제자리로 돌아가는 거고요.”

응, 아니야.

이혼할 거야.

내 속내를 알 리 없는 그가 탁상달력을 집어 들어 팔락팔락 넘겼다.

“시간은 주말 저녁 정도면 괜찮겠군요.”

지금 거래처 미팅 일정 잡니.

“주말 저녁은 좀 짧네요. 주말 전체로 하죠. 물론, 주말에 다른 일정이 있으실 땐 다른 날로 시간을 옮겨 볼 테니 최소 사흘 전에 말씀해 주셨으면 좋겠고요.”

그런데 사무적인 건 나도 마찬가지인가.

부부 사이가 이렇게까지 메마를 수 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었다.

내 요구에 이안의 반듯한 미간이 살짝 좁아졌다.

“그건 시간 낭비-”

“여태 제가 들었던 소문을 하나하나 읊어 드리는 게 좋을까요?”

“…그럼 주말 중 하루로 하죠.”

까불고 있어.

사실 처음부터 주말 전체를 다 독차지할 생각은 없었다.

내 목표는 원래 일주일 중 하루였으니까.

원하는 것의 딱 두 배를 부르고 상대가 알아서 조율하게 만든다.

‘알았냐? 이게 바로 협상의 기술이다.’

내가 승리의 미소를 머금었다.

“좋아요, 이번 주 주말부터 뵐게요.”

그대로 몸을 돌려 집무실을 나서려던 나는 걸음을 멈췄다.

“아, 맞다.”

그를 향해 상큼한 미소를 지어 주었다.

“그 종이는 대공께 선물로 드릴게요. 심심할 때마다 읽어 보시길.”

“…….”

“그럼 이만.”

살짝 치맛자락을 들어 인사하고선 그대로 집무실을 빠져나왔다.

마지막으로 스쳐 간 이안의 얼빠진 표정이 참 볼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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