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병영 문화 개선(feat. 유성우 쇼) (292/304)

병영 문화 개선(feat. 유성우 쇼)

“이제 이걸 한국으로 가져가야겠군요.”

그건 안 될 말이다.

“한국으로 가져가지 않습니다. 한국에는 절대로 반입하지 말라는 지시가 있었습니다. 미국 연구소로 가져가서 분석을 시작할 겁니다.”

“이게 뭔데 그렇게 난리인지….”

국정원 직원은 눈앞에 샘플을 가져가 살폈다. 여차하면 열어볼 태세였다.

“조심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그 안에든 바이러스는 아직 백신이 없으니까요. 지금까지 발표된 중국 측 자료만 봐도 에볼라바이러스보다 더 위험합니다. 제가 지금 얼굴을 감추려고 마스크를 썼다고 생각하십니까? 혹시나 바이러스가 대기 중에 퍼졌을까 봐 최소한의 방호 장비를 한 겁니다.”

“…….”

검지와 집게손가락으로 가볍게 샘플을 들고 있던 국정원 직원이 두 손으로 공손히 병을 내밀었다.

그런 국정원 직원을 앞에 두고 임수호는 두 손에 라텍스 장갑을 끼운 다음 튼튼해 보이는 은색 가방을 열어 조심스럽게 샘플을 집어넣었다. 내부는 검은 스펀지가 가득 차 있었다.

국정원 해외 파트 직원은 괜히 손이 찜찜해졌다.

“비누로 깨끗하게 씻으십시오. 바이러스는 알칼리에 취약합니다.”

“아, 알겠습니다.”

직원은 후다닥 호텔 화장실로 달려가 비누로 박박 손을 씻고 수건으로 물기를 닦았다.

그러던 중 밖에서 또 임수호의 말이 들려왔다.

“방금 열고 들어간 화장실 손잡이도 닦아 두세요. 다시 잡으면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아! 특히 수도 손잡이를 조심하십시오. 씻기 전에 만지고 다시 만지게 되니 말입니다.”

“…젠장.”

방금 물을 끌 때 만졌으니 다시 닦아야 했다.

“차라리 샤워할까?”

지우창 교수와 바꿔 신고 온 구두부터가 문제 아니던가. 거기에 뭐가 묻었을지 걱정됐다.

* * *

임수호는 미국으로 향하는 비행기 화물에 샘플이 든 가방을 섞어 실어 보내고 전화를 들었다.

바이러스를 확보했으니 김현성 회장에게 보고를 하는 것이다.

“회장님. 1차 샘플 확보했습니다.”

-어디로 보냈지?

“미국 제5 연구소로 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조심하라고 해.

“예. 회장님.”

-자네도 마찬가지야. 마스크와 손 세정제는 가지고 있는 거지?

“조심하겠습니다. 이미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그게 좋겠어. 자네가 관리하는 직원들도 그렇게 교육해 줘.

“예. 회장님.”

임수호는 항주 연구소 근처로 다시 이동했다. 거기서 연구소 주변을 감시하는 인물들을 통솔해야 했다. 지우창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직접 만날 수는 없었다.

‘대형. 조금만 더 수고해 주시오.’

1차 샘플은 제대로 전달받았지만, 확인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 * *

미국에 있는 강운 생명 과학 제5 연구소는 파레트 세 개에 가득 실려 들어온 은색 가방 무더기와 마주하고 있었다.

“이 중에 하나만 진짜다.”

“…….”

“그거 하나 숨기자고 이렇게 많이 보냅니까?”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야. 어차피 가방은 우리가 써도 되잖아.”

연구소 직원들은 가방을 하나씩 열어 안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어휴. 이제 겨우 이만큼 확인했네.”

아직 파레트 두 개가 더 남아 있었다.

* * *

분석은 시일이 필요했지만, 언젠가는 끝날 일이었다. 김현성은 미국 제5 연구소에서 분석한 결과 자료를 배영성에게 보냈고, 배영성은 자료를 확인하고 수안에게 보고했다. 본래 의학을 전공했기 때문인지 금방 반 전문가가 되어 버린 배영성이다.

“샘플 바이러스는 인위적으로 아미노산 조각(잔기: residues)을 교체했다고 합니다. 회장님 말씀하신 그 바이러스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감염력이 높아졌어? 치명력도 올라가고?”

“그렇습니다. 바이러스 스파이크에 변이가 생기며 기존의 바이러스와 차원이 다른 감염력과 치명성이 예상됩니다.”

“예상되는 전파력은?”

“…백신 연구소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사스의 10배 이상입니다.”

“…….”

수안은 보고서를 들어 그래픽으로 만들어 낸 바이러스의 모양을 살피고 탄식을 뱉어냈다.

“아…. 맞아. 이 녀석이야.”

전문 지식이 없어도 알아볼 수 있는 못생긴 예전 바이러스의 모양 그대로였다.

“다만 아직 인간에 전염되는 바이러스가 아니라고 합니다.”

“……!”

“인간에게 전염되지 않는다고?”

“예.”

수안은 다시 그래픽으로 그려진 바이러스의 사진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모양은 확실한데….’

동그란 모양에 징그러운 돌기가 우수수 돋아 있는 모양은 예전 기사에서 봤던 바이러스의 모양 그대로였다.

“…이번 샘플이 1차라고 했지?”

“예. 첫 샘플입니다.”

이번 녀석은 감염병 바이러스 버전 0.4쯤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염병이 실제 발병하면 감염병 바이러스 버전 1.0, 이후 변이된 바이러스가 1.1, 1.2, 1.3….’

많은 변종이 등장하는 감염병 바이러스다. 수안은 모양만 비슷한 이번 바이러스가 당시의 바이러스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했다.

“아무래도 시간이 더 필요하겠어. 진짜가 나타나려면 기다려야 할 것 같아.”

“…이 녀석보다 강하겠죠?”

“당연하지 않나? 수백만이 죽는다니까. 감염되어 고통받는 사람들은 억 단위야.”

“……!”

배영성은 아찔한 감정을 뒤로하고 일의 진행을 생각했다.

“우선 이번 샘플이라도 더 분석하라고 지시하겠습니다. 하지만 백신 개발의 첫걸음이라도 뗄 수 있을지….”

기존에 박쥐가 보유한 감염병 바이러스는 박쥐에게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실험실 외부로 유출되어도 인간에게 감염되지 않는 바이러스라면 백신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인간에게 적용할 백신 연구를 시작하려면 당연히 인간 감염이 가능한 바이러스가 필요했다.

“사스 백신을 기본으로 시작하면 실마리가 보일 거야. 사스 감염자의 항체로 인간 감염병 바이러스를 약화할 수 있다는 기사를 봤던 것 같거든.”

“아! 다행입니다. 다음 샘플이 들어오기 전까지 사스 백신 개발팀이 할 일이 많겠군요. 또한 연구소에서 바이러스를 배양하고 변이가 발생하는지 알아봐야겠습니다.”

“그래! 그것도 진행해야지. 자연적으로 변이가 진행되었을 수도 있으니까.”

감염병 바이러스 버전 0.4가 외부 동물들 사이에서 전파되다가 1.0으로 변화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같은 이유로 실험실에서 변이를 주도하면 1.0이 나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버전 0.4가 항주 연구소에서 나왔다는 사실이 변하진 않지.’

“특히 인간에게 전염되는 형태로 변이하는지 알아봐야 해.”

자연 변이로 버전 1.0까지 도달하지 않는다면, 무조건 항주 연구소가 팬데믹의 원흉이다.

“예. 회장님.”

* * *

수안은 다른 일을 부탁하기 위해 아버지께 전화했다.

-대통령 각하. 기침하셨습니까.

“각하는 언제 적 각하야? 이번엔 또 뭔데?”

부쩍 전화가 잦아진 맏아들은 전화 때마다 부탁을 입에 달고 산다. 안 그러던 녀석이기도 해서 들어줄 마음도 있었고, 국정 운영에 도움이 되는 일이 대부분이라 안 들어줄 수도 없었다.

‘그래도 귀찮단 말이지.’

정무에 치이는 자신에게 일이 가중되는 기분이라 귀찮음이 동반될 뿐이다.

-바다 위 선박의 안전 관리를 엄밀하게 진행하셔야 합니다. 특히 여객선의 경우 고물이나 다름없는 일본의 배를 들여와 마음대로 확장, 수선해서 현역으로 다시 돌리고 있습니다.

“선박 안전 관리를 세세하게 진행하려면 현역에서 일하는 이들이 매뉴얼부터 만들어야 해. 안전관리 지침을 새로 만드는 것도 문제지만, 업자들의 반발은 어쩔 생각이냐.”

-박재문 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전부 매뉴얼로 만들어 놨습니다. 이현창 전 대통령도 손대지 않았습니다. 다만, 제대로 지키지 않았죠. 위기관리 매뉴얼도 박 전 대통령의 자료를 그대로 쓰시면 됩니다. 다 새로 만들 생각하지 마시고 전임 대통령의 자료도 챙겨 보십시오.

“그건 또 어떻게 알았어?”

-아버지를 뒤에서 보조하려고 제가 음지에서 뛰고 있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업자들의 반발이 국민의 안전에 우선하지 않습니다. 반발은 들어줘야 할 때가 있고 찍어 눌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이번엔 확실하게 매를 들 때입니다.

“자꾸 일이나 물어 오지 마.”

-아. 그리고 여객선 안전 관리는 청해진 해운부터 시작해 주십시오. 여기서 운용 중인 배가 침몰하기 직전이라는 정보가 들어왔습니다. 이러다가 대형 사고 터집니다.

“어디? 다시 얘기해 봐.”

-청해진 해운 소속의 여객선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선박 이름이 세월호라고 들었던 것 같네요.

세월호는 출항하기도 전에 운항이 정지될 것이다. 잠수함과 충돌해 침몰했다는 설도 있고, 평형수를 제대로 맞추지 못해서 그랬다는 얘기도 있지만, 세월호가 불법으로 층고를 늘리는 방향으로 수선을 진행했다는 것은 팩트였다. 그리고 이번 안전 관리는 해상에서 발생할 많은 사고를 줄일 시작점이기도 했다.

“본보기부터 시작하면 좋겠지. 해운업자들도 뭔가가 터지면 함부로 움직이지 못할 것이고.”

-청해진 해운 회장이 정계에 끈이 좀 있는 인물이라고 들었습니다. 혹시 뒤로 청탁 들어오거든 그놈들까지 다 쳐 내십시오.

“하! 전직 강운 그룹 총수이자 현역 대통령 앞에서 정계에 끈? 그리고 배신자 찾아내 처단하는 건 내 전문이야. 국정원으로 탈탈 털면 먼지 안 나오는 놈이 없지.”

이현창의 국정원을 제대로 인계받은 아버지는 국정원에 염동철을 보내 장악한 상태였다. 정무수석은 당연히 최학주가 맡고 있었다.

“동철이가 한번 물면 어지간해서 빠져나가기 힘들어.”

-동철이 삼촌이면 믿을 수 있죠.

염동철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국정원에서 날뛰고 있었다. 국정원장이 될 수는 없었지만,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 국정원장과 염동철이 협의해 일을 처리해 나가는 중이다.

“자. 부탁은 끝이지?”

-마지막 하나만 더 들어주십시오.

“…여기서 끝내지? 나 회의 들어가야 해.”

-군과 관련된 일입니다.

“군?”

-징집되어 복무 중인 병사들의 복지를 위한 일입니다. 병사들의 휴대 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해 주십시오.

예전에도 결국 병사의 휴대 전화 사용을 허가했었다. 시기가 조금 이르긴 하지만, 빨리 실행할수록 좋은 일이었다.

“뭐어? 뭘 허용해?”

-장성들은 보안과 근무 태만, 군의 기강을 문제 삼겠지만, 실제 휴대 전화를 허용하면 문제를 발생시키기보다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겁니다. 절대 휴대 전화 제조사와 통신사를 위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스마트폰 보급률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대외적으로 봐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허.”

-부대 소원 수리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부의 문제를 내부에서 해결하려 해 봤자 아무 소용도 없지요. 이제 군에 입대하는 세대가 달라졌습니다. 이들은 불합리한 일을 참지 않습니다. 하지만 군대의 문화는 여전합니다. 그래서 자꾸만 내부에서 곪아 터지는 겁니다. 문제를 외부로 끌고 나와야 위기감을 가질 겁니다. 병사들이 자유 시간에 외부와 소통을 시작하면 군부대 자살, 탈영과 총기 난사 사건도 상당 부분 막을 수 있습니다. 완벽하진 않지만 낮추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입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