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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출 (260/304)

축출

재고 밀어내기 출고는 하루 이틀 일이 아니었다. 평소에도 비슷한 재고떨이가 수시로 발생했었다. 몇몇 소매점은 밀어내기로 인해 빚에 시달린다는 말도 들었다. 그동안엔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

당하는 소매점 입장에선 견디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샤롯 제과를 포함한 샤롯 그룹에 나쁜 소문이 돌아 판매도 쉽지 않은 시절이 아니던가.

“요번엔 좀 심했다고 들었어. 공장이 가동하는데, 소매점에서 줄여 달라고 하면 줄일 수 있겠냐?”

“쉽지 않긴 하지만…. 방법을 찾아야 하지 않나? 그래서 경영자가 있는 거잖아.”

밑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회사의 방침을 정할 수는 없는 일이다. 경영자가 괜히 경영자겠는가. 회사에 문제가 생기기 전에 미래를 예측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타개책을 내놓아야 경영자라고 할 수 있었다.

“에효. 그런데 매출 확장한다고 공장 가동 시간을 늘렸단다.”

“…물건이 안 팔리는데 오히려 공장 가동을 늘려? 그거 누구 머리에서 나온 생각이야?”

“너하고 내가 아니면 경영진밖에 더 있겠냐?”

“머리는 장식이야? 적당히 가동을 줄여야 소매점도 살고 우리도 살잖아?”

경영자가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어허. 말조심해. 그러다 너까지 싸잡아서 날아간다. 요즘 내부에서 말 많잖아. 누구든 “잡히기만 해 봐라.”하고 있어.”

“헙.”

남자는 입을 가리고 주변을 돌아봤다. 다행히 흡연 구역엔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말은 조심해야 했다. 이 주제가 아니라도 궁금한 일은 또 있었다.

“요즘 감사팀에서 왜 이렇게 들쑤셔? 아는 거라도 있어?”

“안 그래도 얘기하려던 참이야. 아무래도 소문이 이상해.”

관리팀에서 들려 주는 소문이라면 믿을만한 소문이다.

“뭔데?”

“…아무래도 이번 일이 내부에서 시작된 것 같다고 판단하는 것 같아.”

“내부 직원이 샤롯 망하라고 일부러 소문을 흘렸다고? 앙심을 품을 만한 놈이…. 한둘이 아닌데?”

평소 회사에 불만이 많은 직원을 추리기도 어려울 만큼 대다수 직원이 회사에 불만이 가득했다. 대기업에 속함에도 동종 수준의 기업 대비 낮은 수준의 연봉을 받고 있었고, 복지도 그리 대단치 않았다. 그러니 직원들의 이직률은 높았고, 인사팀은 항상 바빴다. 매번 신입을 채용해 그 자리를 메꾸기 때문이다.

“직원이면 잘리고 끝나겠지만, 더 윗선일 가능성이 크다더라.”

“윗선? 이사급? 그 사람들이 무슨 불만이야? 지문이 닳도록 손바닥만 비벼 대는 사람들인데.”

이사는 엄밀히 말해 계약직이다. 총수 일가의 눈에 들지 못하면 계약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날 수도 있는 존재였다. 그런 이사들이 회사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소문을 흘렸다고 생각하긴 무리였다.

“더 위.”

“……!!”

이사급이라고 했으니 월급 사장까지 포함이었다. 그런데 그 위란다.

남은 것은 총수 일가밖에 없었다.

“진짜야?”

“거기까지만 알아 둬라. 나도 확실한 건 몰라.”

“누가 싸지른 줄도 모르는 똥을 치우느라 직원들은 허리가 휘고 있었는데, 결국 그 똥을 저들이 쌌다는 말이잖아.”

“더럽게 자꾸 똥똥 거리지 말고.”

“둘 중에 누구냐?”

회장이 그랬을 리 없으니 그룹에 들어와 있는 회장의 두 아들 중 하나였다.

“…신희준 부회장님이 내부감사팀 지휘 중이다. 회장님 지시라고 들었어.”

“……!”

그럼 남은 사람이 신희태 부회장밖에 없었다.

“XX.”

욕밖에 나오지 않는다. 관리팀 직원은 이미 대충 눈치채고 있는 직원에게 일의 경위를 덧붙였다.

“신 부회장님이 일전에 샤롯 마트 말아먹고 카드사도 말아 드시는 중이잖아. 그래서 회장님 시선을 돌릴 요량으로 외부에 문제를 일으키려고 했다는데, 일이 생각보다 더 커졌지. 어떻게 손대는 일마다 망하는 양반이 이번엔 어쩜 그렇게 대박을 쳤는지….”

비꼬는 말이라 더 확실하게 각인된다.

정보 유출의 마지막은 당부로 끝났다.

“부탁인데 어디 가서 소문내지 마라. 내 입에서 나갔다는 거 알면 너도나도 잘린다.”

“휴. 알았어. 알았어.”

타부서 직원을 보낸 관리직 직원은 담배를 끄고 수첩에서 이름 하나를 지웠다.

“이놈은 입이 가벼워서 금방 소문내겠지?”

신희준 부회장 라인에 붙어 있는 관리 직원이라 일부러 정보를 흘린 것이다.

“사내에서 신희태를 징계하라는 목소리가 나오면 신희준 부회장님이 후계자가 될 수밖에 없지. 크흐흐.”

수첩에서 목록을 살피던 관리직 직원은 입이 가벼운 다른 직원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옳거니. 다음은 이 녀석이다.”

* * *

샤롯 그룹 내에서 소문이 퍼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리고 신희준 부회장의 감사팀도 유의미한 결과를 얻어 보고를 진행했다.

“…해서 신희태 부회장의 수족 중 일부가 이번 일에 관여된 것 같습니다. 처음엔 샤롯의 자금 흐름에 작은 의문을 만들고 국내 일본계 그룹으로 시선을 돌리려 했던 것 같지만, 일이 일파만파로 커져 현재까지 왔습니다. 모든 책임이 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일부의 책임은 분명히-”

쾅.

내부 감사 보고서에는 사내에서 퍼지는 소문과 일부 직원들의 자백이 덧붙여져 있었다. 이번 일의 책임 소재를 가리기에 충분한 보고서였다.

“그 새끼 데려와!”

“예. 회장님.”

.

.

.

아버지 호출에 끌려온 신희태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부르셨습니까. 회장님.”

“뭐? 부르셨습니까?”

평범한 인사부터 거슬리는 신 회장이다.

“사내에 도는 소문은 저와 무관합니다. 억울합니다.”

“하! 억울하단다.”

이미 마음이 떠나 버린 신 회장이다.

“오늘부로 넌 부회장직에서 해임이다. 나가!”

“아, 아버지!”

“너 이 새끼. 아버지라고 부르지 마! 당장 나가!”

“오해십니다! 정말 저는 관련이 없습니다!”

“…….”

돌아선 신 회장은 꼴도 보기 싫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형님. 우선 나가시죠.”

“너 이 새끼! 네놈 짓이지! 네가 다 꾸며냈잖아! 난 이번 일에 전혀 관련 없어! 회사 소문도 네가 낸 거지!!”

신희태의 고함에 신기호 회장도 고개를 돌렸다. 실제 둘이 후계자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분쟁 중이었고, 신 회장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신희준 부회장은 얼른 말을 덧붙였다. 이제 다른 일을 꺼낼 차례였다.

“…형님 휘하에 있던 직원이 내부 감사에서 모든 일을 자백했습니다.”

“뭐?! 자백이라니! 내가 지시한 일이 없는데, 무슨 자백이야?!”

“지금까지 형님이 저를 축출하기 위해 진행했던 일들과 회장님의 경영권을 탈취하려고 진행했던 일까지 전부 말입니다. 그러니….”

신 회장은 목이 부러질 듯이 희준에게 돌아갔다.

“뭐라고?!!”

“죄송합니다. 경영권 탈취 계획은 이번 일과 관련이 없어 보고에서 제외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아버지! 전부 날조된 겁니다!”

“넌 닥치고 있어!”

희태의 입을 막은 신기호 회장이 다시 희준에게 물었다.

“자세하게 말해 봐!!!”

“…외람되지만, 아버지 정신에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일본 이사진을 회유하려고 계획했다고 합니다. 일본과 한국 그룹사 전부를 한 번에 정리할 생각으로….”

“그, 그건!”

신희태는 갑자기 터진 비밀에 적잖이 당황한 표정이다. 신 회장은 맏아들 희태에게 고개를 돌리지 않고 오직 둘째 희준만 바라보고 있었다.

“사실이야?”

“…예. 일본계 이사진과도 따로 확인 절차를 거쳤습니다. 일부 이사들이 실제 연락을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아버지와 저를 경영자 자리에서 제외하는 안건의 메일을 제가 직접 확인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닙니다!”

신희태의 고함은 의미 없는 소음에 불과했다. 희준이 당장 드러날 거짓말을 하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이사진이라면 당장이라도 통화해서 확인할 수 있었다.

“희태를 이대로 내보낼 수 없겠구나.”

“아버지는 믿어 주실 줄 알았습니다! 다 희준이 저 녀석이 꾸민 일입니다!”

희태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더뎠다.

“희준이 너는 저 새끼 잡아서 가둬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게 해.”

“…예. 회장님.”

“아버지! 아닙니다! 저는 아직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정말입니다!”

신희태는 고함을 지르며 비서실 직원들에게 붙들려 집무실 밖으로 나갔다.

“…….”

고요한 집무실에서 눈을 감고 화를 가라앉히던 신 회장이 입을 열었다.

“…언제 거기까지 조사했어?”

“형님 휘하 직원이 악의적 소문을 낸 것에 더해서 경영권 탈취 계획까지 토설하는 바람에 정보를 입수하게 되었습니다. 심란하게 해 드려 죄송합니다.”

희태의 휘하에 심어 둔 직원을 통해 일을 일사천리로 처리한 희준이다.

“아니다. 수고 많았다.”

“원흉은 파악했지만, 그룹은 이제부터가 문제입니다. 워낙에 일이 크게 터져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아니면 샤롯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전부 희태가 책임지게 만들어. 아니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게 만들어 주겠다고 해.”

“아버지. 일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말리려는 듯이 아버지를 부르는 신희준 부회장이다. 당연히 신 회장은 확고한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네가 형을 위한 마음은 잘 알아. 하지만 그룹을 위한 길이다. 이대로 가다간 네 말대로 샤롯에 내일이 없다.”

“아…. 예. 회장님.”

“잘 해결하길 바란다. 네가 맡아야 할 그룹이다.”

“예. 회장님.”

‘끝났다. 드디어 끝이다.’

후계자 정리는 끝이지만, 진짜 일은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샤롯에 제기된 문제들은 아직 하나도 해결되지 않았다.

* * *

[샤롯 그룹 신희태 부회장. 굳은 얼굴로 검찰 출두.]

[신희태 부회장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다.” 기자들의 질문엔 묵묵부답.]

[검찰. 혐의 입증에 무리 없어.]

“첫째 신희태가 희생양으로 선택된 모양입니다. 총수 일가의 장남이라 검찰에서도 만족한 눈치입니다.”

“이 차장. 검찰에서 따로 연락이 왔었나?”

“예. 부장님.”

“우선 하나는 확실하게 정리할 수 있겠어.”

“샤롯 내부에서 전해진 정보에 따르면 신희태 부회장이 일본 이사진과 신 회장을 몰아내려고 계획했다가 탄로 났다고 합니다. 고령의 신 회장이 치매를 앓고 있다는 이유로 이사회를 소집할 계획이었다는데, 사실 이는 신희태가 아니라 신희준 부회장의 계획이었습니다. 관련 정보는 전무님이 일본에서 파악해 전해 주셨습니다.”

“제 놈이 하려던 일을 교묘하게 전가했나 보군.”

“예. 신희태 부회장 휘하의 직원을 통해 일을 시작하게 만들고 내부 감사를 통해 이를 밝혀내며 신희태를 축출했습니다. 일련의 작업 진행이 상당히 매끄러웠습니다.”

“크크. 머리 좀 굴렸어.”

“이 부분을 2차 공격 재료로 삼겠습니다.”

“너무 몰아세우면 외부 세력을 의심할 여지만 주겠지. 뉴스를 보던 사람들도 같은 충격이 오래 지속되면 피로해져. 쉬어 갈 시간이야. 잠시 고삐를 늦추고 안심하게 해 줘. 어차피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 정리하느라 정신없을 거야.”

“예. 부장님.”

“자식 농사도 제대로 못 지었으면서….”

신 회장의 자식들은 하나같이 그 모양이었다. 그런 주제에 강운 그룹에 엉겨 붙었다니 우습다 못해 기가 찰 노릇이다.

“강운 그룹과는 비교도 할 수 없습니다.”

“비교라니. 갖다 붙일 데가 따로 있지 어디 샤롯을 강운에 갖다 붙여?”

“죄송합니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가서 담당 검사에 국내 기업 눈치 보지 말고 최고형량으로 구형하라고 해.”

“예. 부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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