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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 생명 과학 (261/304)

강운 생명 과학

[신희태 부회장 밤샘 조사 후 구속영장 청구. 법원 이례적으로 빠르게 영장 승인.]

수안은 샤롯에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을 신문과 뉴스로 지켜보고 있었다. 물론 사전에 보고를 받았기에 더 자세하게 내용을 파악하고 있었다. 모든 일은 톱니바퀴가 돌아가듯 정확하게 진행되고 있었고, 현재까지 예상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 이제 샤롯은 SK 텔레콤과 같은 전철을 밟아야 할 것이다.

“배 부회장.”

“예. 회장님.”

“전략비서실에서 고생 많았으니까 잘 챙겨 줘.”

“다들 자기 일처럼 나섰습니다.”

“으이그. 돈 달라는 소리를 참신하게 하네.”

성과는 오직 돈으로 보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수안이다.

“팀원들에게 칭찬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그걸로 충분합니다.”

“…내가 그럴 사람인가?”

배영성은 수안을 잘 알고 있었기에 웃으며 대답했다.

“하하. 그럴 분이 아니시죠.”

“칭찬도 하고 돈도 줘야지. 부장급은 큰 걸로 한 장, 차장급부터는 배 부회장이 알아서 챙겨서 가져와. 내일 전략비서실 대기시키고.”

“감사합니다. 김현성 사장에게 받아 오겠습니다.”

* * *

다음 날 수안은 정 부장을 비롯한 전략비서실 직원들의 노고를 위로하며 두툼한 금일봉을 지급했다.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합니다!!””

수안은 부장의 선창에 복창하는 전략실 직원들을 보며 짧게 말했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닐 겁니다.”

다른 부서 직원들과 다른 대우를 해 준다는 소문이 나면 곤란하다. 이는 곧 부서의 위계와 관련이 있었기 때문이다.

“배영성 전무가 전략비서실을 잘 챙겨 달라고 신신당부를 해서 오늘만 기분 냈습니다.”

이들을 이끄는 배영성의 리더십에 힘을 얹어 주는 말이었다.

“여러분이 강운 그룹 중추 부서라는 사실은 이미 강운 그룹 내부에서도 익히 알고 있습니다. 내부에 고압적인 부서로 보이지 않도록 여러분이 노력하셔야 합니다. 잔소리는 여기까지.”

평소 배영성에게 잔소리를 줄이라는 말을 들어왔기에 오늘은 짧게 끝맺음했다.

“박수.”

배영성의 말에 직원들은 박수로 화답했다.

짝짝짝짝.

“그만. 그만. 다들 일 보세요.”

전략비서실을 돌려보내고 수안은 바로 빌딩을 나섰다.

오늘은 더블 스타로 가기로 했다. 김현성 사장과 볼 일이 있었다.

“가자.”

“예. 회장님.”

.

.

.

더블 스타에서 김현성 사장을 마주한 수안은 진행 중인 신사업 보고서를 받아 확인했다.

“현재 사스(SARS CoV) 백신 개발은 진척 속도가 더딥니다. 그래도 진단 시약과 키트는 개발이 완료되었습니다.”

전염병에 관련한 업무는 김현성 사장에게 맡겼다.

“당장 백신이 튀어나올 거라는 기대는 하지도 않았어. 그보다 지난해 창궐했던 조류 인플루엔자(AI: Avian Influenza)는 연구하고 있나?”

“조류 인플루엔자도 분석이 필요합니까? 동물 전염병은 누가 백신을 사 주지도 않습니다.”

“돈이 되진 않겠지만, 동물 전염병도 관리해야 해. 조류 인플루엔자를 연구하고 백신이든 뭐든 만들어 보라고 해. 새들이 주사를 맞을 수 없으니 상온 보관이 가능한 분말 백신이 필요하겠네. 상당히 오래 걸리겠는데?”

조류 인플루엔자뿐만 아니라 많은 질병이 동물에게 생긴다. 이 중엔 위험하기 짝이 없는 전염성 질환도 있었다. 이런 전염성 질환이 돌면 가축들은 살처분밖에 답이 없었다. 동물 전염병에 백신이 개발된다면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동물 전염병을 막아야 하는 이유는 또 있었다.

동물에게 발생한 전염병은 동물들 사이에서만 전파되어야 하지만, 동물에게만 전염되던 바이러스 일부가 변이를 거쳐 인간에게 전염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서야 대응하면 늦는다. 동물 전염 단계에서 잡아야 했다.

인간만 살아남는다고 인류의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다. 자연의 생태 피라미드는 동물들이 하나씩 멸종하며 이미 무너지고 있었고, 여기서 더 진행된다면 인류의 멸종도 머지않아 도래할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감염병 19도 중요하지만, 시야를 넓게 보면 인류의 존속에 영향을 주는 동물 전염병도 시급하다 할 수 있었다. 인류와 함께 살아가는 동물을 지켜야 인류도 살아남을 수 있다.

조류 인플루엔자 외에도 특히 문제가 되는 동물 전염병이 있었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에 대해서도 항원을 분석하고 백신을 개발하라고 해 줘.”

바로 아프리카 돼지 열병(ASF: African Swine Fever)이다.

아프리카 돼지 열병이 한국에 시작된 것은 팬데믹이 시작되기 전인 2019년이다. 북한 지역에 창궐했으니 전해진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이미 그 전에 돼지 열병이 전해졌다는 뜻이고 그 통로는 중국이었을 것이다. 국가를 이어 가며 전해지는 돼지 전염병이었다.

오래전부터 시작된 이 질병은 각국에서 전염을 막기 위해 애를 쓰고 있었다. 케냐에서 처음 보고된 후로 유럽 전역으로 확산했다. 유럽은 도살과 방역 작전을 통해 막아낸 바 있지만, 조만간 다시 시작될 것이다.

‘이거 못 막으면 돼지고기를 못 먹게 될지도 모르지.’

“…정말 돈은 안 될 것 같네요.”

“이 병에 걸린 돼지의 치사율이 100%라도?”

“네?”

“국내 양돈 농가만의 문제가 아니야. 미래에 돼지고기는 구경도 못 할 수도 있어.”

“잠시만…. 치사율이 100%라면 어떻게 전염이 되겠습니까? 바이러스가 숙주를 모조리 죽인다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긴 어렵습니다. 바이러스가 살아남아야 전염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바이오 사업을 맡겨 놨더니 그동안 공부 좀 했네?”

“흠흠. 제가 회장님보다 모르면 안 되지 않습니까.”

김현성이 뿌듯한 얼굴을 했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열심히 공부했으니 답부터 알려 줄게. 땡!”

“…허. 틀렸습니까.”

“돼지는 크게 야생 멧돼지와 길들인 종으로 나눌 수 있어. 그중에 멧돼지 일부는 열병에 걸려도 증상조차 없지만, 길들인 종에게는 치명적인 반응을 보여. 멧돼지는 계속 병원균을 옮기고 사람은 막으려고 노력하겠지. 살처분에 살처분을 이어 가면서 방역을 하겠지만, 진짜 막을 수 있을까? 1900년대 초부터 지금까지 질기게 이어온 전염병을?”

돼지 중에서도 야생 멧돼지를 포함한 몇몇 종은 아예 증상이 나타나지 않고 인간이 가축화한 종에서만 치명적인 발병을 보이는 병이었다. 보통은 축사에 드나드는 사람에 의해 퍼져 나가지만, 진드기를 통해 전파되기도 한다. 근방의 멧돼지가 발병한 돼지에게서 나온 진드기가 붙여 이동하면 얼마든지 주변으로 퍼트릴 수 있었다.

수안에게 연 진드기에 관한 내용까지 들은 김현성은 아찔한 기분이었다.

‘지구상에 돼지가 사라져?’

“다, 당장 연구를 시작해야 합니다!”

돼지고기가 사라진다는 건 시장을 볼 때 살 수 있는 한 종류의 고기가 사라지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돼지가 사라지면 육류 소비가 어디로 튈 것인가. 소고기나 닭고기로 튈 것이 분명했다. 그럼 소고기 생산량이 늘어날까, 아니면 닭고기 생산량이 늘어날까? 생산량은 평소와 같거나 조금 늘어나는 선에서 그칠 것이다.

‘전 세계 식량 자원에 구멍이 생기면….’

김현성 사장의 머리에선 항공모함이 바다를 가르고 전투기가 날아다니는 모습이 절로 그려졌다.

“…식량 전쟁이 벌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돼지고기가 빠진 자리를 둘이 채울 수가 없으니 일이 국가 단위로 커진다. 식량으로 인해 전쟁이 발발할 수도 있는 일이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지. 터지고 나서 발만 동동거리지 말고, 미리부터 준비하라는 거야. 지금도 어딘가에서 연구하고 있겠지만, 우리만큼 적극적으로 자금을 투입하며 진행할 곳은 없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지 않았으니 더욱 그럴 거야. 우리가 백신을 개발하면 최초가 되겠지.”

실제 수안은 자신이 돌아오기 직전까지 관련 백신이 만들어졌다고 들어 보지 못했다.

“우린 AI와 ASF를 포함한 기타 여러 동물 전염병에 관한 연구, 백신을 개발해. 그리고 SARS CoV 바이러스의 백신 개발도 박차를 가한다. 지금은 쓸모가 없을지 몰라. 하지만 나중에도 그럴까?”

인류의 생존을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결국엔 돈을 벌어다 줄 효자 상품이 될 백신이다.

“쓸모없지 않습니다. 회장님의 혜안은 언제나 저보다 우위에 있으셨죠. 그리고 회장님 말씀을 듣고 나서야 보이기 시작합니다. 대체 얼마나 위에서 세상을 보셨습니까? 너무 높아서 아찔합니다.”

“뭐래….”

수안은 그저 미래를 겪어 보고 돌아왔을 뿐이다. 김현성이 생각했던 전쟁 예측은 일어나지 않았던 미래였지만, 수안이 김현성의 머리를 들여다보질 못하니 알 수 없는 일이다.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백신 생산 공장용지나 잘 찾아놔. 개발된 진단 키트도 정식 사용 승인 절차 밟아.”

“예.”

“당장 쓸 곳이 없어도 좋아. 마스크도 계속 성능이 좋은 녀석으로 개발하라고 해. 디자인도 조금 더 신경 써서 얼굴에 딱 맞게. 그리고 진단 키트 만들었다고 끝이야? 한국인은 속도의 민족이잖아. 언제 며칠을 기다려? 1시간 이내로 줄이라고 해.”

“그건 당장 어려운….”

“못한대? 돈이 부족하다는 말이지? 여유 자금 다 가져다 써!”

“돈이 문제가 아니라 전문 인력이….”

“인력이 부족했으면 추가로 채용했어야지 이 사람아.”

“예, 예.”

“백신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백신 다음은 치료제잖아! 예방주사만 맞으면 알아서 병 걸린 사람이 나아? 병자는 치료제로 치료를 해야 나을 것 아냐? 또 나중에 더 강한 놈이 나오지 않겠어?”

“…….”

“기반이 뻔한 놈이면 기존 치료제도 절반 이상은 먹혀. 그러니까 치료제는 무조건 만들어야 해. 그리고 백신도 마찬가지야. 지금은 아직 개발 전이지만, 임상 거치면서 성능 업그레이드하라고 해. 독감 예방 주사처럼 겨우 50% 넘는 수준으로 만든 다음에 백신이라고 할 거면 때려치우고! 백신은 액상에서 알약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도 잊지 마.”

김현성은 수안의 질문에 땀을 삐질 흘리며 답변하고 있었다. 쏟아지는 수안의 반박과 추가 지시를 따라가기 버거울 지경이었다. 옆에서 보고 있던 배영성이 나섰다.

“회장님?”

“어. 부회장.”

“조금만 자제를….”

“아. 김 사장 쏘리.”

수안은 배영성의 말을 듣고서야 또 급발진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이번엔 배 부회장.”

“네, 네?”

화살은 배영성에게 돌아갔고, 잔소리가 이어졌다.

“강운 전자에서 원거리에서 체온 측정하는 장치는 개발 중인 거지? 장치 앞에 서면 1초 안에 체온이 정상인지 아닌지 판별해야 한다니까? 랜선으로 연결해서 데이터 저장까지 원스톱으로 진행되어야 해.”

“…전자 김 사장과 논의해 보겠습니다.”

“내가 전에 얘기 안 했던가? 아직 시간은 있으니까 조금 여유 부려도 되겠지. 어쨌든 샤롯이 정리 수순이니까 남은 건 바이오야. 내가 생각하는 미래 역점 사업이니까 다들 신경 좀 써 줘.”

“이번에 바이오 계열사를 묶어 강운 생명 과학으로 출범하시면 어떻겠습니까. 해외에 자잘하게 인수한 바이오 기업과 국내 백신 생산까지 진행하려면….”

김현성의 말에 수안이 무릎을 치며 말했다.

탁.

“그렇지! 그래야 일이 수월해지겠어. 배 부회장은 강운 그룹 소유 국내 제약사를 통합해서 강운 생명 과학으로 출범해. 그리고 이방효 사장에게 연락해서 미국에서 인수한 일부 제약사와 연구소도 강운 생명 과학으로 넘기라고 해. 몸집이 너무 큰 제약사라면 괜히 건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 거야. 미국 바이오 애보트에 합병시키거나 그대로 두라고 해. 그리고 김현성 사장은 강운 그룹으로 들어와서 부회장 맡아. 새로 그룹사를 만들면 새로운 선장이 필요하니까.”

“부, 부회장이요?”

“언제까지 더블 스타에만 묶여 있을 거야? 이제 강운 그룹 간판도 하나 달아야지. 김 사장 밑에서 박박 기는 부사장도 이제 사장 달고, 지금까지 수고한 임원들도 한 단계씩 올라와야 하고, 그 밑에서 일하는 부장들도 이사 후보가 있지 않나?”

“강운 그룹으로 적을 옮기는 일이야 어렵지 않습니다만, 부회장은 너무 과합니다. 배 부회장님도 그룹에선 아직 전무님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강운 그룹에 아직 부회장 직급이 없는 걸로 압니다. 기존 경영진과의 불화도 생각하셔야 합니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걷어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김현성의 장황한 말에 수안은 배영성에게 설명하라는 듯이 손짓하고 등을 소파에 기댔다.

“김 사장. 강운 그룹은 전면적으로 개편될 거야. 회장님은 김 사장에게 새로 신설되는 강운 생명 과학을 맡기겠다는 말씀이야.”

“……!!”

<『재벌가에 끼어들었다』 13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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