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를 기회로?
2005년 초부터 샤롯의 비밀스러운 지배구조와 국외로 빠져나가는 자금에 관한 내용이 인터넷상에 퍼지기 시작했다. 처음은 아주 미약한 수준이었다. 일본의 샤롯과 한국의 샤롯이 같은 기업이냐를 갖고 토론이 이어졌지만, 곧 다른 떡밥이 계속 흘러나왔다.
언론에 기사로 나오는 수준은 아니었고, 개인들이 파악한 정보를 취합한 수준이었다.
[샤롯의 기이한 자금 흐름. 샤롯의 자금은 어디로 갈까?]
샤롯 그룹 계열사에서 발생한 이익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대일 무역 적자의 원흉이 바로 샤롯이 아닐까 하는 거창한 의혹도 들어 있었다.
[국내에 숨어 있는 일본 기업들. 2차 세계 대전 전범 기업도 상당수.]
샤롯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듯이 한일 합작 기업과 일본계 지분이 높은 기업들까지 소환되었다. 흔히 사용하는 물건 중에 일본에서 만든 제품이 상당히 많았다.
[일본계 회사에서 진출해 국내에서 판매하는 제품 목록 첨부.]
당연히 이에 관한 리스트도 추가로 제작되었다. 국내 네티즌의 힘이 발휘되기 시작했다.
[샤롯 제과 일본과 한국 비교. 한국인은 봉이냐?]
샤롯 제과에서 판매하는 제품들을 비교하는 글도 있었다.
분명 포장지는 같은 제품인데, 내용물은 두 배 가까이 차이가 있었다. 또한 제조에 들어간 성분도 일본 제품은 더 좋은 원료를 사용했고, 한국 제품은 저렴한 원료를 사용했다는 내용이었다. 문제는 두 제품의 가격이 크게 차이가 없다는 데 있었다.
[국내에서 돈 벌어서 일본에 퍼 주나?]
제과뿐 아니라 음료에서도 문제점이 있었다. 생산하는 캔 제품 대부분에 로열티가 매겨져 있어 이익의 상당 부분을 일본 기업에 로열티로 지급하고 있었다.
[샤롯 총수 일가의 더러운 성질머리.]
감정적인 내용의 글도 있었고,
[급여도 짜디짠 대기업 샤롯.]
직원들 대우가 좋지 않다는 경험담도 올라왔다.
[독립 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 운동은 한다. 샤롯 월드, 샤롯리아 우연한 기회에도 못 갈듯.]
샤롯과 일본 제품 불매 운동으로 확산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언론에서도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정부 입장에선 별말이 없었지만, 언론은 누군가의 입을 빌어 대다수의 중론인 양 일부의 목소리를 기사화했다.
[한일 양국의 우호를 해치는 불매 운동. 누구를 위한 불매 운동인가.]
[샤롯 루머 확산. 일부 철없는 네티즌의 주장에 현혹되지 말아야.]
[과거에 얽매여 현재를 망치는 일은 없어야.]
일부 언론의 주장에 다른 언론사의 반격도 올라왔다.
[모 대기업 총수 일가 검찰 조사 진행 중.]
물론 강운 그룹 비서실의 작품이다. 그 외에도 현재까지 네티즌이 올린 글의 소스가 되는 자료 또한 대부분 강운 그룹 비서실이 그 시작이었다.
“고삐 늦추지 말고 계속해.”
“예. 부장님.”
[모 대기업 자산 유출과 불법 정치자금으로 수사 진행 중.]
[검찰 배임 혐의 입증에 주력할 것.]
* * *
“그룹 전체 매출이 급감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과 제품을 받아 가는 소매점에서 샤롯 제과 제품을 거부하고 있다고 합니다.”
“…밀어내. 무조건 팔라고 해.”
“예. 부회장님.”
신희태의 동생인 신희준 부회장이다. 신희태는 샤롯 카드를 비롯해 보험사를 맡으며 금융 그룹을 총괄하고 있어 부회장을 맡고 있었고, 신희준은 호텔과 제과를 중심으로 하는 계열사를 맡으며 역시 같은 부회장 직함을 갖고 있었다.
“어차피 오래 못 가. 검찰도 시간 지나면 무마할 수 있어.”
“검찰 쪽은 백방으로 힘쓰고 있습니다.”
“잠깐…. 검찰?”
검찰이라는 말에 번뜩이며 뭔가 떠올랐다.
“우리 일본에서 작업하려던 거 있지?”
“예.”
“그거 희태 쪽으로 조용히 넘겨.”
“네?! 그러다 저희가 갈려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 일 없어. 아버지 손으로 녀석을 내칠 기회야. 우린 아버지 손을 빌려서 희태를 치우고 그다음에 그룹의 문제를 해결하자. 그러자면 그룹의 문제가 조금 더 이어져야 해.”
그제야 신희준의 계략을 이해하고 다음에 해야 할 일을 깨달았다.
“제 휘하의 하나가 그쪽에 붙어서 기회를 보고 있었습니다. 녀석을 통해 희태를 쫓아낼 수 있겠습니다.”
“하하. 일이 잘 풀리는군. 좋아.”
“나중에 녀석을 꼭 불러 주십시오.”
“물론이지. 내가 회장이 되면 자네 바로 밑으로 넣어 주지.”
“감사합니다. 부회장님.”
* * *
언론의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특히 일본 샤롯 홀딩스가 국내 샤롯 그룹의 지주 회사라는 점이 문제였다.
[샤롯은 일본 기업인가 한국 기업인가.]
-본지 기자는 샤롯 제과의 지분을 가진 국내 샤롯 지주 회사의 지분을 소유한 회사가 어디인지 파악했다. …중략… 최종 지분은 베일에 싸여 있는 일본계 기업에 있었다. 이 회사는 일본에 위치한 기업으로 결국 샤롯 그룹 계열사 대부분을 일본계 회사가 소유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후략….
인터넷상에만 올라오던 글이 언론에도 등장했다.
샤롯 그룹이 한국 기업이라 철석같이 믿던 소비자에겐 바로 뒤돌아 설만큼 영향력을 발휘할 기사였다. 샤롯의 복잡하기 짝이 없는 순환출자 구조를 단순화해 도식화한 기사엔 모든 계열사의 정점에 일본 기업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었다.
쾅.
“어떤 새끼들이 우리 샤롯을 공격하는 거야?!!”
“…….”
“…….”
“너희는 뭐 하는 놈들인데 아직도 그러고 섰어! 당장 파악해 오라고 한 지가 언제야?! 엉?!”
신 회장의 노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샤롯 경영진은 입이 있어도 할 말이 없었다. 특정 기업이 샤롯을 공격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네티즌이 합심해 나온 결과라고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회장님. 지금 백방으로 찾아보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국내 네티즌이 시발점으로 파악됩니다.”
슈욱! 쨍그랑.
“헉!”
신 회장이 던진 재떨이가 일어서서 보고한 이사의 머리 옆으로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그걸 보고랍시고 하는 거야?! 무능력하다고 보고할 거면 나가!”
“…….”
“…….”
또 뭐가 날아올까 경영진이 잔뜩 긴장한 가운데 신희준이 나섰다.
“다들 나가 있으세요.”
신기호 회장의 차남 신희준 부회장이 나서자 경영진은 부리나케 회의실 밖으로 내뺐다.
“회장님. 고정하십시오.”
“희준이 너! 네가 책임지고 파악해. 그리고 그룹 원상 복귀시켜!”
“회장님…. 이번 일의 시발점은 내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뭐? 아는 거라도 있어?”
“희태 형님이 꾸민 일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희태가?”
신희준 부회장은 이번 일이 국내 네티즌의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뒤가 없다는 뜻이다.
‘다르게 생각하면 누구든 뒤가 될 수도 있다는 의미지.’
이번 일로 장남 신희태를 밀어내고 자신이 그룹의 단독 후계자가 될 수도 있음이다. 강운 그룹에서 촉발한 이번 사태가 샤롯의 후계자 전쟁으로 번지고 있었다.
“지난 샤롯 마트의 일로 형님의 입지가 위태로웠습니다. 야심 차게 준비한 샤롯 카드도 카드 대란으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으니, 그룹에 문제를 일으켜 자신의 실책을 묻으려고 할 수 있다고 짐작해 왔습니다. 최근 그 짐작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 조사가 되지 않았음에도 보고 드렸습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심각한 문제를 일으킬 줄은 짐작할 수가….”
“너 지금 네 형을 고발하는 거야? 증거도 없이 의심으로만?! 너희 둘이 그룹에서 경쟁하라고 부회장 달아 줬지. 싸우라고 달아 주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 싸울 정신이 있어?”
“회장님께서 지시하신다면 제가 관련 증거를 찾아보겠습니다. 지금까지 배후를 파악하지 못한 이유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형님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자들이 배후를 찾아왔으니 배후가 나오지 않을 수밖에요. 일부 의심 가는 인물이 있습니다.”
“…….”
“그룹 내에 소문이 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조용히 알아봐. 만약 사실이라면….”
아버지는 그룹의 등에 비수를 박은 형님을 그대로 두고 보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지금 기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다.
“결과는 나와 봐야 알 일입니다. 하지만 미리 용서를 구합니다. 형님이 벌인 일이라도 다시 한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누구든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이 말은 일부러 한 것이다. 아버지의 화를 일으키기 위함이었다.
“뭔 소릴 하는 거야! 그딴 놈에게 기회는 무슨 기회! 작은 증거라도 있다면 녀석을 내치겠다! 당장 증거 찾아와!”
“…예. 회장님.”
이제 듣고 싶은 말은 다 들었다. 나머지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천재일우의 기회야.’
* * *
[일본식 이름을 가진 샤롯 그룹 신 회장과 그 자손들.]
[도대체 몇 번의 결혼인가. 추악한 재벌가의 민낯.]
[신 회장의 첫 아내인 일본인 여성은 조선말 명성황후를 시해한 일본 정계 거물과 성이 같아. 신 회장의 일본 이름도 여기서 따와.]
[전범 정치인과 손잡은 샤롯?]
[샤롯 의혹 일파만파.]
샤롯 그룹 내에서 일을 조사하는 와중에도 의혹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크. 이건 정말 좋았다. 박 차장.”
“감사합니다. 부장님.”
신 회장의 일본식 이름에서 착안한 의혹 제기는 불매 운동에 휘발유를 끼얹었다. 명성황후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상관없는 일이다.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연루된 일본계 인물의 성이 신 회장의 첫 아내에게 전해진 것도 아니고 이름만 같았을 뿐이다. 그러니 실제 피로 이어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할 수 있었지만, 의혹을 일으키기엔 충분했다. 사실이 아니라도 감정적으로 움직이는 네티즌의 특성에 부합하는 의혹 제기였다.
“다음은 뭐야?”
“매출 하락으로 영업점에 밀어내기 출고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소매점은 울며 겨자 먹기로 제품을 받긴 했지만, 팔리지 않는 물건은 계속 쌓이고 있습니다. 30%가 넘는 할인 행사를 진행해도 판매가 신통치 않다고 합니다.”
“그럼 소매점 불만도 상당하겠네?”
“예. 샤롯 제과는 반품도 받지 않는다고 하니, 팔리지 않는 재고를 전부 소매점에서 떠안아야 합니다.”
“관련 의혹을 기자들에게 취재하라고 해.”
“예. 부장님.”
“샤롯 중심 소매점에 우리 강수 제과 상품도 넣을 수 있게 조치해 둬. 대금은 후불로 받겠다고 해. 직접적인 지원은 못 해 줘도 도매가 이하로 넘겨서 숨통은 틔워 줄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조치하면 취재에 적극적으로 응하도록 만들 수 있겠습니다.”
“박 차장은 한마디만 해도 다 알아들으니 편하군. 하하하.”
“바로 진행하겠습니다.”
[갑질 의혹 샤롯 제과. 불매운동의 여파를 전가하는 밀어내기 출고로 소매점의 시름 깊어져.]
[소매점 모 사장. 힘없는 소시민은 대기업에 저항 못 해. 손해 감수하고 팔아야.]
매일매일 터지는 악재 기사로 샤롯 그룹 소속 직원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었다. 샤롯 그룹 본사 관리팀 직원 하나가 담배를 태우러 나왔다가 다른 팀 직원과 만났다.
“오늘은 또 뭐야? 사무실 분위기 완전 상갓집이야.”
“제과에서 밀어내기 출고했다가 들켰단다. 기사가 제대로 터졌어.”
“그거 항상 하던 일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