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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랄라 (252/304)

샤를랄라

“아! 조만간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한 일정이 잡혀 있습니다. 아시죠?”

“안 그래도 대통령이 참석한다고 하더구나.”

“대통령이라…. 그럼 아버지도 오십니까?”

“아들이 초청했으니 나도 끼어서 가야지. 민국당 의원 몇과 한신당에서도 일부 가는 것 같더라.”

한국대 특별 강연을 목적으로 방한하는 클린턴이지만, 한국대학교만의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라는 무게감은 한국의 현 대통령이 움직여야 할 정도였다.

“괜히 끼어드는 정치인이 많네요. 얻을 것도 없을 텐데요.”

“신문에 한 줄이라도 나오면 그게 얻는 거다. 정치인이잖아. 게다가 미국 정치권과 친밀하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지.”

“그럼 클린턴과 따로 만나는 자리엔 아버지를 모셔야겠네요.”

“아들 덕분에 스포트라이트 좀 받는 거냐?”

“기자들에게 적당한 내용으로 기사 써 두라고 하겠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또 향후 미래에나 올바른 신념을 유지하고 자신만의 특별한 기사를 쓰는 기자는 찾아보기 어려운 현실이다. 다움과 네이보, SBS를 통해 정론을 쓰는 기자를 키우려 노력 중이지만, 기자도 사람이고 이득이 생기는 일에 더 마음이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검사과 판사조차 이득에 따라 움직이는데, 기자들에게 꼿꼿한 기자정신을 강요할 수 있겠는가.

“우리와 관련 있는 기자는 아닌 거지? SBS나 다른 인터넷 기자들 말이야.”

“그럼요. 우리 쪽은 절대로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래도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고 노력 중이다. 정론을 쓰라고 교육하는 기자들에게 사주 일가를 찬양하는 기사를 쓰라고 할 수는 없었다.

* * *

아버지 서재에서 나온 수안은 아내에게 아버지의 의중을 전했다.

수현의 맞선남에 관한 내용이다.

“우아. 아버님이 연예인도 괜찮다고 하세요?”

“오히려 연예인 쪽을 바라는 눈치더라고. 다 당신 덕분이지. 당신이 집안에 들어와서 인식을 바꿔 줬으니까.”

“이이는. 뭐든 제 덕분이에요? 당신이 내게 잘 맞춰 줬으니 우리가 잘사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당신은 셋째까지 가졌잖아. 연예계 활동하면서 애까지 낳는데, 당신이 잘한 거지. 그리고 당신이 낳아 준 정원이랑 나현이가 얼마나 예뻐? 아버지가 혹할 만하지.”

“내가 아니라 우리라고 해 줄래요? 누가 들으면 애를 나 혼자 가진 줄 알겠네.”

“그래. 그래.”

여전히 금실이 좋은 부부는 곧 태어날 아들을 기대하며 이름 짓기에 몰두했다.

“정수? 정태? 정식? 정룡?”

“음…. 이번에도 아버님께 부탁드리면 어때요? 아버님이 이름은 정말 잘 지으시는 것 같아요.”

“그럴까?”

“정원이도 얼마나 이름이 예뻐요.”

“나현이도 괜찮지 않나?”

“물론 당신이 지은 나현이 이름도 좋지만, 우리 셋째는 아버님이 지어 주셨으면 좋겠어요.”

“알았어. 조만간 부탁드려볼게.”

아현은 남편이 아이 이름을 짓는 데는 소질이 없다고 느껴졌다.

* * *

수안은 이후 회사로 돌아가 비서실과 새로운 맞선남 후보군을 물색했다.

“이 사람은 어때?”

“어휴. 아가씨가 얼굴만 봐도 오케이 하겠는데요?”

“얘는 솔직히 얼굴부터 사기야.”

“그렇죠?”

맞선남 후보 중 하나로 올라선 남자 배우는 국내에서 가장 잘생긴 남자 배우로 통하는 연예인이었다. 잘생기기만 했을까? 인기까지 톱을 달리는 배우였다.

수안은 아버지께 고른 후보를 허락받고 맞선 시기를 정했다.

“좋다! 너로 선택이다! 가라! 미남몬!”

“에이. 미남몬이라뇨. 듣는 미남몬 기분 언짢겠습니다.”

* * *

또각또각. 또각또각.

“또 맞선이라니, 이젠 지겹다.”

회장 비서실에서 전해 준 프로필은 들춰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약속 장소로 가서 적당히 거절하고 나올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바빠 죽겠는데 이게 뭐 하는 짓이야?”

QUEENY 커피 대전점의 신규 오픈에 신경 써야 할 시기였다. 게다가 인천점의 마무리도 남아 있었다. 신경 쓸 일이 태산인데 본인은 고작! 맞선이나 보러 이곳에 와 있었다.

구두 굽 소리도 신경질을 부리는 듯했다. 수현의 구두가 들어선 호텔 레스토랑은 무척 한산했다.

“오셨습니까? 아가씨.”

“와. 오늘은 박 팀장님이 나와 계시네요?”

고려 호텔 식음료 팀을 담당하는 팀장이 나와서 수현을 맞이하고 있었다. 예전 고려 호텔에 몸담았던 수현이라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박 팀장은 평소 밖에 나와 손님을 맞이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중요한 날이지 않습니까. 편히 만나 보십시오. 오늘 레스토랑은 점심에 간단한 인테리어 재배치가 진행된다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수현과 맞선남 외에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정말 수현이 들어오고 나서 아예 입구를 막아 버리고 있었다.

“…오빠가 그랬어요? 아니면 올케언니가 그랬나?”

“회장님께서 외부 시선을 신경 쓰지 않게 해 달라고 하시더군요.”

“하여튼. 나 부담 주려고 별짓을 다 하네.”

“뭐. 그건 아니지만….”

수현이 아니라 맞선남을 배려한 수안이다.

“들어가시죠. 안에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벌써 왔어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아가씨를 만나는데 30분은 먼저 나와 있어야죠. 정상입니다.”

“꼼짝없이 한 시간은 할애해야겠네요.”

먼저 나온 성의를 봐서라도 바로 일어서긴 어렵겠다 싶은 수현이다.

“차는 바로 가져다드리겠습니다. 식사는 따로 말씀해 주십시오.”

“식사까지야. 그럴 일은 없을 거예요. 같이 밥 먹으면 체할지도 모른다고요.”

자신만만한 수현은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 구석진 곳에 앉아 있는 남자의 뒷머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저 사람은 어째 뒤통수가 잘생겼어?’

뒷모습에서부터 느껴지는 잘생김의 아우라였다. 떡 벌어진 어깨와 목선에서 눈이 떨어지지 않았다. 수현은 또각또각 구둣발 소리를 내며 후다닥 다가섰다. 얼른 얼굴을 확인하고 기대를 버리기 위함이었다.

또각또각! 도도도!

그리고 그 소리에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 뒤로 돌아섰다.

샤를랄라 랄라리라~

“……!!”

수현은 세상의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와중에 그가 돌아서는 모습이 눈에 들어오고 있었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서로 눈이 마주치기까지 참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샤를랄라 랄라리라~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맑고 친절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지만, 수현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아직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에 적응하지 못한 수현은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 와중에 남자는 수현이 앉을 의자를 빼주고 있었다.

“아~ 앉~ 으~ 시~ 이~ 죠~ 오~”

그의 목소리가 길게 늘어져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네에?”

“계속 서서 얘기하시려고요? 하하.”

수현은 겨우 시간의 꼬리를 붙잡아 제 속도로 흘러가게 했다.

“아, 아닙니다.”

그가 빼준 의자에 앉아서도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 때문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두근거리는 심장도 그의 얼굴을 마주하자 거짓말처럼 숨을 죽인다. 심장마저 그에게 반해 버린 듯하다.

“와아.”

반칙.

그의 얼굴은 반칙이라는 말이 정말 잘 어울렸다.

“오빠는 오징어였네요. 오빠는 반칙도 아니지. 조금 잘난 일반인정도?”

그에 비교하니 자신의 오빠는 오징어로 생각될 지경이다. 강연에 가서 후배들에게 남들과 비교하지 말라던 그녀였지만, 그를 만나고 나니 도저히 비교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장님도 정말 멋진 분입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그분을 TV로 보고 자랐죠. 88올림픽에서 정말 대단하지 않았습니까? 92년, 96년은 더 대단했죠.”

“방송국 카메라가 왜곡이 이렇게 심한 줄 몰랐어요. 싹 다 갈아야겠는데요?”

그의 말에도 수현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실물을 영접하고 나니 지금까지 방송을 통해 봤던 그의 얼굴은 전부 거짓처럼 느껴졌다.

실제 그를 만났던 사람들이 자주 하는 말이었다. TV로 보는 그의 모습은 실물을 반도 담지 못한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 수현도 그중 하나가 됐다.

‘어떻게 저 얼굴이 화면에 그렇게 나올 수가 있냐고! 카메라 왜곡이 너무 심하지 않나? 아니면 못생긴 카메라맨의 농간인가?’

그런데도 대한민국 최고 미남으로 알려졌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그의 미모가 반밖에 담기지 않아도 그가 연예인 중에 톱으로 올라서는 데는 무리가 없었다.

“하하. 감사합니다. 수현 씨.”

“오늘 만남은 깜짝 이벤트 같은 건가요? 어떻게 이진태 씨가 여길….”

배우 이진태가 자신과 맞선을 볼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아버지나 오빠가 허락할 리가 없었다. 오빠가 맞선을 싫어하는 자신을 위해 특별한 이벤트를 진행하지 않는 이상 이진태가 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저…. 오늘 수현 씨와 맞선 보러 나왔습니다만.”

“…에이. 에에이. 에에~~ 이. 설마.”

도무지 믿지 못하는 수현이다.

“하하. 정말입니다. 강 회장님과 통화도 했습니다.”

“자, 잠깐만요. 확인 좀 하고요.”

수현은 얼른 가방에서 프로필을 꺼냈다.

‘끕! 이진태…. 맞네?’

서류엔 프로필 사진과 함께 이름이 분명하게 박혀 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의심이 가시지 않는다. 전화를 들어 오빠에게 연락했다.

“오빠?”

-어! 뭐야? 너 또?

지금 이 시각에 전화한다면 또 맞선이 파투 났다는 말이었다.

“이거 실화야?”

-무슨 소리야? 너 맞선은 어쩌고 전화야? 지금 시간이면…. 아예 안 갔냐? 너 미쳤어? 내가 고려 호텔 레스토랑까지 일부러 비워 달라고 했는데? 너 당장 튀어와!

“아 쫌! 여기 이분이 내 맞선남 맞느냐고!”

-아~ 앞에 있어?

“그래!”

-그럼 나와서 전화를 하든가. 왜 그 사람 앞에서 전화하고 그래?

“맞아. 아니야? 그것만 말해.”

-아버지 허락도 미리 받았다. 진태 씨가 사람이 착실해서 연예인이라도 괜찮다고….

“그럼 됐어. 끊어.”

-야. 너 이번에 미남몬까지 차버리면-

“뭐래?”

톡.

수안이 말하고 있었지만, 곧장 검지로 빨간색 통화 종료 버튼을 눌러 버리는 수현이다.

오빠보다 눈앞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이 더 중요했다.

“죄송해요. 아무래도 안 믿겨서요. 진짜였네요?”

“확인됐다니 다행입니다. 바로 쫓겨나는 줄 알았습니다. 하하.”

그가 예의상 보이는 미소마저 가슴을 울린다.

“와아. 힐링이 따로 없네. 세상이 화사해 보여요.”

“…….”

수현은 눈을 반짝이며 그 미소를 가슴에 담고 있었다. 방금 프로필에서 본 그의 나이는 딱 두 살 차이였다. 그런데도 뭔가 믿음직하고 신뢰가 간다. 오로지 얼굴 하나에서 비롯된 일이다.

“미쳤다 진짜. 어떻게 저 작은 얼굴에 눈코입이 다 들어가지?”

“네?”

“옴마! 내가 지금 입 밖으로 내뱉었나요? 속으로만 생각한다는 걸 나도 모르게 그만….”

“예상과 달리 재미있는 분이셨네요. 오늘 우리 만남이 기대되는데요?”

“저도 무척 기대되네요. 먹고 싶은 거 있어요? 내가 사 줄게요.”

“아직 식전이긴 한데, 우리 대화부터 하는 건 어떨까요? 우리 이제 막 만났잖습니까.”

“뭐가 궁금해요? 다 말해 줄게요.”

처음부터 적극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수현이다.

“키는 166. 쓰리 사이즈는 34, 25, 35. 몸무게는 비밀이라고 해 두죠.”

“하하하. 보통 쓰리 사이즈를 감추지 않아요?”

“쓰리 사이즈는 미스코리아처럼 아무렇게나 말하는 거라 상관없어요. 실제론 아무도 모르죠. 히히. 저도 따로 기억하고 살진 않거든요.”

화기애애한 자리는 저녁 무렵까지 이어졌다. 차는 물론이고 맞선남과 하지 않을 거라던 식사까지 그 자리에서 먹어 치웠다. 이후에 다시 차를 마시며 대화했는데, 수현은 그의 얼굴만 바라봐도 시간이 아깝지 않았다.

“아가씨?”

“아. 박 팀장님. 또 나올 요리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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