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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1) (251/304)

팬데믹 (1)

‘이걸 잡아야 나중에 감염병19도 잡을 수 있어.’

사스 바이러스를 잡을 수 있다면 이후 변종으로 나올 SARS-CoV-2 또한 잡을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이번에 BE를 통해 인수한 제약 회사들 전부에서 이를 연구 중이었다. 백신과 치료제가 돈이 되는지 안 되는지는 따질 필요 없었다. BE에서 전폭적으로 이들의 연구를 지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위험해?”

다른 사람이 말했다면 콧방귀도 안 뀌었을 테지만, 아들의 말이라 신뢰가 남달랐다. 지금까지 아들이 예견한 일 중에 맞추지 못한 일이 없었다. 게다가 아들의 표정은 한껏 진지했다.

‘진짜 위험합니다. 아버지.’

“향후 20년. 사스가 변종 바이러스로 변한다면 수백만의 사상자가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 이를 무기로 사용하려 변종을 생산한다면, 더욱 위험해집니다.”

항주에서 시작한 폐렴 바이러스는 인위적으로 만들어졌다는 설이 있었다. 실제 관련 연구 기관에서 일했다는 사람들 입에서 나온 말이라 수안도 그럴 수도 있다고 짐작했었다.

‘미국 연구소와 중국이 합작해 연구했었다고 했어. 중국 항주 연구소에서 일했다는 미국 연구원들의 증언이 있었지.’

지금은 아버지의 말이 우선이라 상념을 접어놨다.

“뭐? 수백만?”

“국내가 아니라 해외까지 포함한 예상 수치입니다. 죽지 않고 전염병에 걸리는 수치만 생각하면 억 단위까지 예상해야 합니다. 전 세계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코로나바이러스 기반의 전염병은 백신도 없는 신종 전염병입니다.”

“사스와 유사한 질병이 전 세계적으로 퍼질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냐? 그것도 수백만이 사망할 정도로 심각하게?”

“이번 사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바이러스의 전염력이 이번보다 강했다면 전 세계 의료 체계가 무너지는 것도 순식간이었을 겁니다. 특히 감염병에 취약한 후진국은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 있습니다. 의료 수준이 높아지는 것과 비슷한 수준으로 위험도가 올라가면 막을 수 있지만, 갑자기 위험도가 올라가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 그때는 선진국도 위험해집니다.”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 시대에 전염병은 과거의 전염병과 다른 결과를 초래한다.

중앙아시아와 유럽에 14세기 흑사병이 퍼져 수천만 혹은 수억 명이 사망하는 피해를 일으켰지만, 당시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가던 시기의 한반도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었다. 국가 간 왕래가 뜸한 과거였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4세기부터 17세기까지 창궐한 흑사병은 중국(몽골 제국)에서 시작해 유럽과 서아시아까지 전해졌다는 가설이 유력한데, 사람이 병을 옮겼다는 결론에는 가설이 필요 없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일일생활권으로 좁혀졌다. 지구 반대편에 있어도 비행기를 통해 단 몇 시간 만에 도달할 수 있었으니, 전염병 또한 그와 같은 속도로 전파되는 것이다.

일일생활권은 결국 후진국에 창궐한 전염병이 선진국에도 영향을 미치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로도 그랬지.’

중국 항주에서 시작한 바이러스는 순식간에 세계로 뻗어나갔다.

감염병 사태에 둔감했던 사람들은 WHO와 국가의 경고를 무시하고 사람들과 어울렸으며 곧 하루에 수백 명씩 사망하는 감염병 팬데믹 사태를 지켜봐야 했다. 이후엔 국가의 감염병 관리조차 여러 나라에서 부실을 드러냈고, 국가의 방역 지침을 지켜야 할 국민도 서로 갈라져 싸웠다. 총체적 난국이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팬데믹 상황이었다.

덕분에 선진국은 사실 선진국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고, 중국과 일본은 예나 지금이나 믿지 못할 놈들이었다는 사실만 상기시켜 줬다.

당시엔 오로지 대한민국만 정상적인 국가 운영을 하고 있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다고 해도 좋았다. 완벽한 감염병 사태의 종식은 아니었지만, 세계 어느 나라보다 촘촘한 그물을 치고 감염병 19를 막아내고 있었다.

감염병 사태가 완벽히 종식되지 않은 점도 오히려 전화위복이었다. 감염병 사태의 종식을 선언했다가 다시 가파르게 올라서는 확진자를 마주한 국가가 어디 한 둘이었는가.

감염병은 세계를 옮겨 다니며 변종을 양산했고, 국제선은 국가를 오가며 사람을 이동시켰다.

언제든 감염병이 다시 시작될 상황이라면 계속해서 긴장을 유지해야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법이다.

강운모는 아들의 굳은 얼굴을 보며 말했다.

“…후. 이유야 어쨌건 바이오 산업에 미리 손을 뻗어 두면 좋겠지.”

“예. BE 인베스트먼트는 감염병 사태에 대비하고 인류의 질병 치료제를 개발하며 바이오 산업을 이끌어 갈 겁니다. 이리저리 따져 봐도 손해가 아닙니다. 그리고 올해 질병관리본부가 출범되었습니다. 대통령의 혜안이 돋보이는 일 처리입니다. 민국당에서도 질본에 신경 써 주십시오.”

작년 사스를 경험한 정부는 올해 질병관리본부를 출범했다. 훗날 팬데믹 상황에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는 단체였다.

“그렇다면 세계보건기구(WHO, World Health Organization)에도 사람을 심어둬야겠군. 질병관리본부야 이제 막 시작했으니 별거 없어.”

“아! 맞습니다. WHO를 더 신경 써야죠.”

중국이 지원한 사람이 WHO 사무총장이 되는 바람에 전 세계적 감염병 사태를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었다.

‘…BE에서 지원할 분야가 하나 더 늘겠군.’

차기 WHO 사무총장을 BE에서 만들어야 했다.

“현 WHO 사무총장이 한국 사람이니….”

“아버지 말씀대로 사스는 끝났습니다. 향후 누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이후에 창궐할 전염병은 2012년 메르스(MERS: 중동 호흡기증후군: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다. 아직 8년이나 남았다. 게다가 메르스가 대한민국에 퍼진 것은 더 늦은 2015년이지만, 그 전에 해결하면 될 일이다.

메르스 또한 코로나바이러스 기반의 전염병이었다. 지금부터 하나하나 준비하면 감염병 19의 백신을 마련하는 것도 꿈이 아니다.

“이미 한국인이 사무총장을 맡았으니 차기까지 한국인이 차지하긴 쉽지 않아.”

“사무총장의 국적은 상관없습니다. 저희와 뜻을 같이하기만 하면 됩니다.”

“네가 열을 올리는 걸 보니 예삿일이 아닌 모양이다.”

“…….”

인류가 겪어야 할 감염병 팬데믹(Pandemic: 세계적 대유행)은 지금껏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지금부터 준비하면 작은 불씨일 때 잡을 수 있습니다.”

“너무 일찍 처리하면 감사할 줄을 모르는 법이야.”

“……!!”

예전 IMF 상황에서 이현창에게 본인이 했던 말이 아니던가.

편작의 형제들까지 얘기하며 위기의 때가 오면 등장한다고 했었다. 더 많은 이득을 얻기 위해 일정 피해를 감수했었지만, 위기를 겪고 더 강하게 성장할 국내 금융 시장을 위함이기도 했다.

“…그 말씀도 맞습니다. 미래를 생각한다면 인류는 충격을 겪을 필요가 있습니다.”

이번에도 같았다. 감염병 위기를 통해 국가와 국민의 대처 능력을 키우고 다음을 준비해야 했다.

팬데믹으로 충격을 받아야 전염병을 스스로 방어하려 나서기 때문이다. 미국과 유럽의 나라들도 마스크를 쓰지 않고 버티다가 우수수 사람들이 죽어 나가자 그제야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인식이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감염병 19가 전 인류에 감염병 팬데믹을 선사한다지만, 다음이라고 없을 것인가. 수안이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면 오히려 최악의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음이다.

‘감염병 19를 쉽게 막아도 바이러스는 감염병 24, 29로 변화해 등장할 수 있어.’

만약 수안이 첫 번째 세계적 팬데믹을 수월하게 막아내는 바람에 다음을 준비하지 못하게 된다면 그땐 진정한 인류의 종말이 올 수도 있었다.

‘내가 살아가지 못한 그 이후의 세상….’

감사한 마음을 갖고 안 갖고는 나중의 일이다. 각 나라와 그 안에 살아가는 인류는 세계적 감염병을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이를 위해서라면 희생은 불가피한 일이다. 민주 정부의 수립에 피가 필요한 것도 같은 이유였다.

“바이오는 제가 속도를 조절하겠습니다. 합리적인 시기를 가늠해 보겠습니다.”

백신과 치료제가 나와도 초기부터 출시한다는 선택지는 사라졌다.

새로운 바이러스라 정밀 분석이 필요하다, 임상 실험이 늦어진다, 이유야 여러 가지를 댈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네게 맡겼다. 네가 알아서 할 일이지. 나야 늙은이 걱정에 불과해.”

늙은이 걱정보다 더한 아들의 걱정이 심히 염려되었지만, 지금 하는 일은 아들만이 진행할 수 있는 일이다. 자신이 나서서 될 일이라면 나서겠지만, 지금은 아들 수안이 나서야 했다.

“아버지 덕분에 WHO도 알았잖습니까. 아직도 배울 것이 많으니 아들에게 자주 시간 좀 내주십시오. 하하.”

“으이그.”

수안은 괜히 너무 심한 염려를 보였다고 생각하며 다른 가벼운 주제를 꺼냈다.

“아. 그리고 창수, 창식 형제가 결혼을 서두르려고 하던데 백부님께 들으셨습니까?”

“푸흐. SL 전선 딸들? 걔들은 골라도 쌍둥이를 골라 왔어?”

둘은 애인에게 허락을 구한 다음 바로 백부님께 말씀드린다고 했었다. 백부님이 그 얘길 안 했을 리가 없었다.

“형님이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다고 하더라.”

결혼 적령기의 두 아들이 동시에 신붓감을 구해 왔으니 기쁘긴 하지만, 같은 집의 둘이라는 점이 문제였다.

“양쪽이 겹사돈이라 더 고민이지.”

게다가 상대 집안에서도 같은 집과 겹사돈이 된다.

“그래도 SL 전선에선 한송 그룹이 범 강운이라서 나름 환영한다고 들었다. 네 덕분에 SK 텔레콤까지 인수해서 덩치를 키웠잖아. GL 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덩치가 작은 SL 전선이니 한송 그룹이면 감지덕지할 혼처지.”

현재 강운 그룹 직계와 사돈인 재벌가가 없는 상황이다. 직계가 아니라면 방계라도 사돈을 맺고 싶어 하는 재벌가는 많았다.

“다행이네요. 백부님만 허락하시면 곧 결혼한다는 뜻이죠?”

“형님도 반쯤은 마음이 기울었어. 두 아들이 좋다는데 마냥 반대할 수도 없잖아. 녀석들이 언제 마음에 드는 신붓감을 또 데려오겠어?”

“그도 그렇죠.”

창수와 창식의 나이가 결혼 적령기를 가득 채우고 조금 넘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진짜 노총각 신세를 면하기 어려울 수도 있었다.

“걔들도 결혼하겠다고 난리인데, 수현이는 언제 하려고….”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여차하면 수현이 노처녀로 늙어 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부자였다.

“그래도 아버지께서 후보군을 늘려 주셨으니 이번엔 제대로 찾아 놓겠습니다.”

“정 안 되면 연예인이라도 붙여 봐.”

“헙! 거기까지 생각하세요?”

다른 점에 놀란 것이 아니라 미리 생각한 듯이 연예인 얘길 꺼냈기에 놀란 것이다.

“너도 보란 듯이 잘살잖아. 수현이도 제 사업 잘하고 있고, 굳이 정·재계에서 찾을 필요도 없으니 뭐….”

아버지 마음이 여기까지 열렸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마치 수현의 상대로 연예인을 데려오라는 투였다.

“수현이가 예쁘니까 잘난 놈 만나면 2세도 얼마나 예쁘겠냐. 아들이든 딸이든 잘난 남편을 만나면 누굴 닮아도 좋겠지.”

강운모는 아들이 낳은 손자 정원이와 손녀 나현이가 얼마나 예쁜지 이번에 수진이 딸을 보고 알았다.

물론 갓 태어난 손녀딸이 예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린이도 제 아빠를 많이 닮아 귀엽고 예뻤다.

하지만, 일반인과 연예인의 차이는 상당했다. 태생이 다르다는 말이 괜히 있지 않았다. 수안의 아들 정원이는 특히 엄마 아현을 많이 닮았는데, 나중에 커서 얼마나 여자들을 울리고 다닐지 짐작도 되지 않는다. 그리고 나현이는 엄마와 아빠를 절반씩 닮았는데, 좋은 것만 빼다 박아서 누구든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딜 가도 귀엽고 예쁘다는 말만 듣는 손녀딸이다.

그런 손주들을 봐서인지 사람의 인물을 괜히 보는 게 아니다 싶었다.

집안도 중요하지만….

‘애초에 태어나기를 잘나고 볼 일이야.’

나머지는 강운 그룹에서 채워 주면 되지 않겠는가. 상대 집안이 기우는 정도는 문제도 아니다. 국내에서 강운 그룹과 비교해 기울지 않는 재벌가가 있겠는가. 조금 기우느냐 많이 기우느냐는 차이는 무시할 수 있었다.

“하하하. 그렇죠. 이번엔 꼭 성사시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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