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RS CoV
강연장 뒤에서 두 남매의 대화가 이어졌다.
“아까는 순간 긴장했잖냐.”
“뭐 하러 오빠가 여기까지 와? 그리고 경호원들은 다 어딨어?”
학생들이 다 수안에게 몰려들 뻔했다. 누구 하나 시작하면 너도나도 시작하는 군중 심리가 발동될 순간이었다.
수현이 강연장으로 수안을 끌어들인 덕분에 군중 심리가 가라앉았다. 조금이라도 늦었으면 정말 뛰어들 자세였다.
“밖에서 대기 중. 뒷문으로 오라고 했어.”
“오빠는 제발 혼자 다니지 마. 아빠가 알았으면 오빠 한 소리 들었을걸?”
“열 마디 아니라 백 마디라도 들어야지 어쩌겠냐. 그나저나 너 오늘 집에 오냐?”
“응. 가야지. 서울까지 왔는데 또 호텔로 갈 순 없잖아.”
“알았다. 집에서 보자.”
“진짜 내 강연 보러 온 거야?”
“오길 잘했지? 너 오늘 정말 멋있더라. 잘했어. 내 동생.”
“마지막에 다 뒤집어 놓고는….”
비교하며 살지 말라고 열을 올렸는데, 수안은 오히려 비교를 성장의 양분으로 삼으라 했다.
“우쭈쭈. 정말 잘했다.”
“됐어! 저기 경호원들 오네. 얼른 가.”
수안이 엉덩이를 토닥거리자 얼른 팔을 치우고 나가라고 성화였다.
“이따 보자!”
* * *
수안은 차에 오르기 전, 장호의 잔소리를 추가로 들어야 했다.
“위험했습니다. 회장님.”
“알아. 알아.”
“앞으로 최소한의 경호원은 항상 동행하는 방향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이번처럼 회장님이 단독으로 외부에 노출되는 일이 없을 겁니다.”
“괜히 일 벌였다가 혹 붙이게 생겼네.”
수안의 안위는 혼자만의 일이 아니었다. 강운 그룹의 중추가 바로 수안이었고, 아버지처럼 대체할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곧 부회장으로 임명할 강운 그룹 경영진이 몇 명 있었지만, 이들이 강운 그룹에서 필요한 의사결정을 진행하기엔 부족했다.
‘아버지는 나라도 있었지.’
아버지가 회장이던 때는 자신이 부회장으로 있으며 회사를 이끌다시피 했었다. 아버지에게 불의의 사고가 생긴다 해도 경영 공백이 없었겠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수안도 어쩔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오케이. 앞으로 단독으로 움직이는 일은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회장님.”
“감사는 무슨. 한국대에 장학금이나 좀 전달하자. 한 100억만. 최 실장이 아니라 장 비서에게 말해야 하려나?”
“갑자기 장학금을 보내십니까?”
오늘 수현이 모교에 장학금 50억을 기탁했다. 자신이 그 자리에 없었다면 그냥 지나갔겠지만, 그 자리에 있었고 강연 말미에 단상에 올라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았는가. 기사에 나가면 당연히 연락이 올 것이다. 모교에서 강연 부탁이 오기 전에 돈으로 대체할 생각이었다.
“괜히 나도 강연해 달라고 할 게 뻔하잖아. 미리 장학금 전달해 주고 강연 같은 일은 없다고 해 줘.”
“…조만간 미국 클린턴 전 대통령의 특별 강연에 가셔야 할 텐데요? 미국 측과 관련 경호 협의가 있었습니다.”
“아. 클린턴이 오기로 했지.”
클린턴에게 약속했던 일이다. 한국대에 클린턴 전 대통령을 초청해 특별 강연을 진행하겠다고 했었고, 클린턴도 흔쾌히 수락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회장님 모교에 장학금으로 지급할 금액은 이미 예산에 잡혀 있다고 들었습니다. 추가 장학금까지 전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케이.”
이중으로 지급할 필요는 없겠다 싶었다.
“댁으로 모시겠습니다.”
그제야 수안은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얼른 가자. 정원이랑 나현이가 아빠 기다리겠다.”
“예. 회장님.”
* * *
오랜만에 수현이 집에 돌아온 탓인지 집 안이 소란했다.
“고모!”
“오구오구. 우리 나현이 잘 있쪘쪄요?”
6살 나현이는 예쁜 고모 품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왜케 늦게 왔어! 보고시펐자나!”
“헤헤. 우리 나현이 선물 사 오느라 늦었지~”
“오예!”
고모에게 선물을 받은 다음에서야 관심을 돌린 나현이다.
8살 정원이는 의젓하게 앉아 있었지만, 앉아 있는 자리가 할아버지의 무릎 위였다.
“우리 정원이 학교 잘 다녀왔어?”
“응. 할아버지. 학교 재미있어. 애들도 귀여워.”
“우리 정원이가 제일 귀엽지 않을까?”
“난 멋있어.”
“허허허. 그래. 정원이가 제일 멋있지.”
어머니는 수진이의 어린 아기를 안고 있었다.
“애 키우기 쉽지 않아.”
“이제 겨우 하나 낳아 놓고? 나는 너희 넷 키웠다.”
“으으. 생각만 해도 끔찍해.”
“네 오빠 덕분에 편했지. 수안이가 너희 다 업어 키웠어! 이것아. 넌 수안이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왜 그렇게 오빠 등에 업히길 좋아했는지…. 수현이랑 맨날 오빠 등을 차지하겠다고 싸웠잖아?”
수안이 동생들을 업어 키웠다는 말은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하린이가 우리 집안을 닮아야 할 텐데….”
“널 닮아도 어림없어 이것아. 네 아빠랑 나도 아직 수안이가 누굴 닮았는지 몰라.”
아현은 만삭의 배로 자리에 앉아 있다가 수안을 맞이했다.
“왔어요?”
“오늘 다 왔네?”
“다 오니까 집 안이 가득해요.”
수진은 남편 상준과 함께 아기를 데려왔고, 수현은 학교에서 바로 온 모양이다. 수용은 이제 막 들어서는 중이다.
“하린아~ 외삼촌 왔다.”
수용이 수진의 딸을 안아 보려고 다가오자 상준이 말렸다.
“처남. 밖에서 들어왔으면 손부터 씻고 오지?”
“아차. 쏘리.”
수안도 수용과 함께 손을 씻으러 들어갔다.
“형.”
“오늘 일찍 왔다?”
“흐흐. 수진 누나가 온다고 해서.”
“잘했네. 수현이가 자주 안 들어오니까 너라도 일찍 들어와.”
“예입!”
시끌벅적한 저녁 식사를 끝내고 수진은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갔고, 수현과 수용은 아버지의 잔소리를 피해 얼른 자신의 방으로 도망갔다. 수안은 여지없이 아버지에게 붙들렸다.
“넌 들어와.”
“예.”
아버지 집무실에 들어서자 낮의 일부터 꺼내신다.
“넌 위험하게 혼자 다니고 있어?”
“최 사장에게 들으셨어요?”
장호가 최학주에게 보고했을 것이고, 당연히 아버지 귀에도 들어갔을 것이다.
최학주는 이제 그룹에서 나가 아버지의 보좌관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룹의 대소사를 보고받으며 여전히 한 발을 걸치고 있었다. 그래서 보좌관이 된 지금도 최 사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회장 달았으면 그에 걸맞게 움직여야지. 수현이 강연하는 데는 뭐 하러 쫓아가?”
“…잡아다가 선 자리라도 만들려고 했죠.”
“아.”
안 그래도 자식들 결혼에 관해서 물어보려 했었다.
“아직도 도망 다녀?”
“사업이 재미있다고 하네요. 수용이도 그렇고요.”
“수용이는 알아서 할 것이고….”
“수현이는 나이가 차서 어떻게든 해야 하는데, 마땅치 않네요.”
“내가 좀 알아볼까?”
“정치권에서요? 아니면 재계에 제가 모르던 후보가 있던가요?”
“정치권이나 재계 아니라도 적당한 녀석이면 되겠지. 주변에 수소문해 보면 적당한 놈이 있을 거야.”
“어휴. 그렇게 생각하시면 저도 후보군을 넓힐 수 있죠. 제가 더 찾아보겠습니다.”
아버지가 허락하지 않을까 봐 후보를 선택하는 데 곤란함이 많았다. 아버지가 사람만 좋다고 한다면 수현의 마음에 들 남자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다 뒤져봤는데, 없으면 없다는 말이야. 기준 낮추고 후보군 다시 추려봐.”
그간 수안이 얼마나 수현의 남편감을 찾아왔는지 알고 있었다. 더 기다리다간 손주 얼굴도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었다.
“예. 괜찮은 놈으로 찾아 놓겠습니다.”
“그리고 삼디 그룹에서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받아 왔다며?”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입에 담았지만, 결국 스마트폰 사업에 관해서 묻는 것이다.
“향후 스마트폰의 발전 방향이 운영 체제와 카메라, 배터리 성능에 있습니다. 안드로이드를 통해 운영 체제를 마련했으니, 카메라와 배터리가 남습니다. 배터리는 그래핀을 이용해 성능을 올리고 있지만, 카메라는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삼디에서 디지털 카메라 사업을 받아 왔으니, K폰 2세대는 새로운 카메라를 달고 나올 겁니다.”
“이 회장이 속 좀 쓰리겠어. 허허허.”
“그래도 스마트폰을 시작할 수 있으니 삼디 전자 입장에선 좋은 일입니다. 디지털 카메라 시장의 축소도 예견된 일이고요.”
“푸흐흐. 협상 자리에서 똥 씹은 녀석 얼굴을 직접 봐야 했는데 말이야.”
“GL 전자 구 사장도 저희가 내건 조건을 모두 수용했습니다.”
“구필현 사장이? GL까지 손아귀에 들어왔으면 스마트폰 판은 끝이군. 하하하.”
“저도 한시름 놨습니다. 앞으로 전 세계 스마트폰 시장은 4파전으로 생각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사실은 독점이겠지만 말이다. 흐흐흐.”
실제로 4파전이 아니라 독점이다. 애플은 애초부터 강운 전자의 손아귀에 있었고, 앞으로 나올 삼디 전자의 스마트폰과 GL 전자의 스마트폰도 마찬가지였다.
“확보한 지분 때문에 독과점으로 얽힐 염려가 있어서 애플의 경우엔 자체 운영 체제로 진행될 겁니다.”
“미국에서 독과점은 상당한 추징금과 제재가 있으니 미리 준비해 둬야지.”
“그리고 SK 텔레콤은….”
“형님께 전화 받았다. 네가 수고 많았어.”
강병모 회장은 동생에게 따로 연락해 이번 일에 감사를 표했었다.
“얻어걸렸습니다. 겸사겸사 백부님 그룹에 좋은 일이 되어 다행이죠.”
“얻어걸리기는…. 콕 짚어서 SK 텔레콤만 물 먹였잖아.”
“이번 일로 백부님이 현금을 좀 많이 주셨습니다. 혹시 쓰실 일 있으면 최 사장에게 말씀하십시오. 미리 넘겨 놨습니다.”
수안이 강병모 회장에게 받은 현금 대부분을 이미 최학주의 손에 넘겨줬다. 수안이 현금 쓸 일이 어디 있겠는가. 국회의원으로 일선에서 일하는 아버지가 더 쓸모가 많을 것이다.
“안 그래도 현금 쓸 일이 좀 있었지. 기자들이 맨날 손을 내밀거든. 잘 쓰마.”
“너무 돈만 밝히는 놈들은 언제든 돌아섭니다. 미리미리 가지치기해 두십시오.”
“안 그래도 몇 놈은 쳐 냈다. 특히 신라 일보 놈들은 위아래가 없어.”
“다움과 네이보를 통해 경고하겠습니다. 국내에 언론사가 너무 많았죠. 몇 개는 폐간시켜도 됩니다.”
아버지에게 위아래 모르고 설쳤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맞지 않겠나.
‘버르장머리 없는 새끼들.’
아버지가 지금은 국회의원이라지만, 강운 그룹 총수였던 사람이다. 총수 시절엔 감히 말도 못 붙였는데, 국회의원이 됐다고 해서 태도가 달라졌다면 본보기를 보여 줘야 했다.
“강운 그룹은 이만하면 됐고…. 요즘 BE는 바이오 산업에 왜 그렇게 열을 올려?”
BE 인베스트먼트는 최근 바이오 기업을 인수하는 데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미 제약 회사를 보유했음에도 추가로 연구소를 설립했고, 질병을 연구하는 다른 연구소에도 지원을 이어 가고 있었다.
“사스는 이미 지나갔잖아?”
2003년에 사스(SARS: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 :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를 경험한 대한민국이다.
“사스는 지나갔지만, 여전히 치료제와 백신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염병 바이러스를 기반으로 하는 사스(SARS)의 치료제와 백신을 개발할 수 있으면 향후 유사한 전염병이 창궐해도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 감염병 바이러스는 향후 인류의 존속을 위협할 위험한 바이러스입니다.”
SARS 바이러스는 SARS-CoV로 칭해지며 중중급성 호흡기증후군을 일으키는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뜻이다. 이 바이러스의 아종으로 나오는 것이 바로 bat-SL-CoV 바이러스였고, 여기에 변종으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SARS-CoV-2 바이러스였다.
바로 이 SARS-CoV-2 바이러스가 COVID-19를 일으키는 감염병 바이러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