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실데나필 (29/304)

실데나필

짝!

수안은 박수를 치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자, 이제 이런 감정은 털어 버리고 일하자, 일. 국내 신규 사업자 명단하고 업종별 투자 제안서 받아둔 것 가져와. 그리고 해외 지사에 투자 문의 들어온 곳 싹 가져오고. 아는 거라도 다 먹어 버리자.”

“예. 실장님!”

수안은 둘이 죽는 것까지 바라지 않았다.

그저 사기 사건을 다시 벌이지 못하는 정도면 충분했다. 그들이 아니라도 대한민국에 사기꾼은 많았고, 새로 생길 사기꾼도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가장 큰 사고를 친 둘을 빼냈으니 이와 같은 사람이 다시 나오긴 힘들었다. 죽는 것을 바라지 않았으니 그나마 이것이 성과라고 스스로 위안했다.

‘그래도 막기는 막아야 할 것 아닌가.’

같은 사기꾼이 나오더라도 사람이 다르다. 가진 능력이 다르면, 규모도 다르기 마련이다.

미래가 어느 방향으로 향하더라도 대한민국 국민이 행복한 방향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 *

회사와 학교를 오가며 바쁘게 살던 수안은 아버지와 어머니로부터 새로운 혼처를 구했다는 소식을 듣고 약속장소로 향했다. 고르고 골랐다는 말에 상대방이 어디 출신인지도 묻지 못한 수안은 나름 들뜬 마음으로 상대를 기다렸다.

“어머. 제가 늦었나요?”

“아! 안녕하십니… 까.”

여성의 목소리에 자리에서 일어나 뒤를 돌아 인사하던 수안은 상대의 얼굴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씨양.’

국내 항공사의 아주 유명한 딸이다. 수안에 비하면 몇 살 아래인 저 여자도 충분히 부모님 레이더에 들어올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어야 했다.

‘골라도 하필이면!’

“호호호. 해외에서 지내다가 잠깐 들어왔더니 부모님께서 이런 자리를 마련하셨네요.”

속으론 잔뜩 기대하고 있으면서 조신한 모습을 보이는 여성이다.

‘재력 A+, 외모 A+, 체력 SSS. 강수안이라니! 최고의 선택이야 엄마!’

“기내식은 괜찮았겠죠? 과자는 봉지를 뜯어서 접시에 잘 담아 내오던가요?”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아. 요즘 귀댁 항공사 서비스가 좋다고 소문을 들어서.”

문제의 항공기 회항은 10년도 더 지나야 벌어질 일이다. 눈앞의 여인이 당사자라도 알아들을 수 있는 얘기가 아니었다.

“호호. 저희 항공사 서비스가 좀 월등하긴 하죠.”

‘아직 소문이 안 났나? 감쪽같이 성질을 죽이고 사나 보네. 아니면 보안이 확실하던지.’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미래를 살다 온 수안은 잘 알고 있었다.

“모친은 건강하시고요?”

그 성질머리는 여전하냐는 물음이었다.

걸핏하면 직원들을 해고하는 아줌마였다.

“예. 아버지도 어머니도 아직 정정하시죠. 강운 그룹 회장님 내외께서도 정정하시죠?”

‘상을 보아하니….’

화장으로 감춰도 눈매에 신경질적이고 날카로운 기세가 드러난다.

지금도 억지로 짜증을 감추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상대가 상대인지라 함부로 하지 못할 뿐이다. 감히 강운 그룹 장남이 앞에 있는데 어떻게 성질을 부릴 수 있겠는가.

수안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자리에 와서 마주한 이상 예의를 차려야 했다.

칭찬할 구석을 찾다가 지금 시대 여성에겐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았다.

“여성분치고는 키가 상당히 크시네요.”

“아버지 어머니가 크셔서 자식들이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았죠. 강수안 씨도 상당히 크시잖아요. 우리 같은 사람들 중에 저보다 큰 분은 많지 않은데….”

‘눈 하나 깜짝 안 하는구나.’

“만약 우리가 이어지면 아이들도 상당히 크겠죠? 호호호.”

‘어휴. 괜히 물어봐서 더러운 소리를 들었네.’

수안은 저 입에서 나오는 끔찍한 소리를 더 듣고 싶지 않았다.

“차 드세요.”

“예.”

차를 마시는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차를 마시는 그녀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조신한 여성의 표본이라 생각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안은 실체를 알고 있었다.

‘예의고 뭐고 더는 못 참는다. 아무래도… 집에 가서 좀 따져야겠어.’

“제가 회사 일이 많은데, 부모님 성화에 어쩔 수 없이 나왔습니다. 공부하느라 바쁘신데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냥 일어나신다고요?”

“얼굴 봤으면 되지 않습니까?”

이 얼굴을 오래 보고 싶지 않았다.

“다음엔….”

‘다음은 얼어 죽을 다음.’

“미국 가셔서 공부 열심히 하세요. 파이팅.”

“어? 어?”

수안은 혹시라도 따라붙을까 빠른 걸음으로 도망치듯 나왔고, 곧장 집으로 진격했다.

“어머니!”

“아이고 깜짝이야.”

“잠깐 저 좀 보시죠.”

“얘가 왜 이래. 오늘 약속은 어쩌고 벌써 들어와?”

“이리 좀 와서 앉아 보세요. 아버진 회사에서 아직 이죠?”

“그렇지. 회장님은 저녁 늦게나 오시겠지.”

불퉁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 있는 아들을 보니 오늘 일이 제대로 성사되진 않은 것 같았다.

“여자애가 너무 커서 별로든? 키는 그래도 그나마 그쪽 총수는 다른 기업보다 좀 낫다고 하던데….”

“키도 문제지만…. 애는 남자 혼자서 낳습니까? 자식 머리는 엄마를 닮는다고 하던데? 내가 어머니 닮아서 이렇게 똑똑하잖아요.”

어차피 그 집안 자식들은 그놈이 그놈인데, 그중에서도 딸자식들은 어미 성격을 닮았다.

“호호. 그래 네가 날 닮아서 이렇게 똑똑하지. 아차. 그보다. 그쪽 사모님 얘기는 잘 모르는데.”

“알아보시면 가관일 겁니다. 맨날 운전기사 갈아치우는 사람이에요. 기사들이 더러워서 못하겠다고 한 달에도 몇 명씩 나가떨어진다고 하던데요? 분에 못 이겨서 물건 집어 던지는 일도 예사로 일어난다고 했어요. 그 딸들이라고 그 성격 안 물려받았을까요? 보고 배운 짓이 그것밖에 없을 텐데?”

“그, 그래?”

“그리고 오늘 나온 그분은… 정말 아닙니다. 아주 그냥 짜증이 그득그득 담겨가지고는… 부모님을 모시기는커녕 혈압으로 뒷목 잡게 만들 여자였어요!”

“사진으로 볼 때는 괜찮았는데….”

“차라리 내가 연애를 하는 게 나을 지경이에요. 자꾸 이런 식이면 내가 누굴 만나서 결혼을 해요?”

“더 알아보고 제대로 된 집안 자제로 알아보마. 너무 열 내지 마.”

“후우. 죄송해요. 저도 얼른 결혼해서 부모님께 손주도 안겨 드리고 싶고, 제대로 모시고 싶은 마음에 화가 났던 것 같아요.”

“그래. 우리 아들 마음 엄마가 잘 알지.”

“민망하지만 한 번 더 부탁드릴게요. 어머니. 저는 다시 회사로 가 볼게요.”

“오늘은 언제 들어오니?”

“회사 끝나고, 배 이사랑 오랜만에 밤낚시 가기로 했어요.”

“그래?”

“몇 번 하다 보니 재미있네요.”

“가서 기분 풀고 와. 다음엔 아담하고 괜찮은 아이로 찾아보마.”

수안은 얼른 집에서 나가 차를 타고 다시 회사로 향했다.

* * *

사무실에 도착하자 배영성이 들어와 문을 잠그고 긴급하게 보고했다.

“주수동이 죽었답니다!”

때때로 주수동 주변을 감시하던 최장호의 시선에 앰뷸런스가 확인되었다.

앰뷸런스가 곧장 장례식장으로 들어갔음을 확인하고 배 이사에게 연락을 넣은 것이다.

고작 한 달을 버텨냈다.

“벌써 죽어?”

“네. 약이 직접적으로 죽이진 않지만, 몸을 쇠약하게 만듭니다. 충분히 예견된 일입니다.”

수안은 마른세수를 하며 정신을 차리려 노력했다.

“조동팔도 다단계 회원을 모집하는 큰 행사에 자주 빠지고 있답니다. 분주하게 외부 활동을 이어 가던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래. 여기도 중요하지. 이쪽 소식 계속 주목하고 있어.”

“우리가 경찰에 손쓰긴 힘들겠죠?”

“우리가 직접 관련된 일이야.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해. 문제가 생겨도 우리가 막아야 할 판이라고.”

주수동의 사망원인이 어떻게 밝혀질지 걱정이었지만, 이쪽에서 알아볼 수는 없었다. 그저 지켜보는 것이 최선이다.

“예. 알겠습니다.”

“주수동 집은 어때? 남편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죽었잖아.”

법적으로 아내도 아니었고 내연녀에 불과했지만, 상당한 자산을 가졌던 주수동이 죽었다. 내연녀라도 사실혼 관계를 유지했으면 얼마든지 이를 증명해 상속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까짓 상속은 수안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평소 집에만 박혀 있어서 상황을 파악하기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나마 이번에 잠깐 밖으로 나오긴 했는데, 접근 자체가 어려웠습니다. 우리가 접근할 이유가 없으니까요.”

다만 남은 약이 어떻게 될지가 궁금했을 뿐이다.

‘남은 약은… 경찰이 회수하지 않을까?’

“그럼 이제 최 실장도 서울에서 대구로 내려가라고 해. 조동팔이 진짜야.”

“예. 알겠습니다.”

“대신 조심하라고 해. 다단계는 경찰 수사가 시작될 수도 있잖아. 주변에서 돌아다니다가 걸리면 골치 아파.”

“예. 최 실장이 알아서 조심하겠지만 한 번 더 당부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인천 쪽으로 가시겠습니까?”

“더 밑으로 가자. 안면도가 좋겠어. 거기도 회사 휴양시설 있잖아.”

“예. 준비하겠습니다.”

“신혼 생활 재미있을 텐데 자꾸 데려가서 미안해.”

“아휴. 괜찮습니다. 다 일인데요.”

“오늘 이방효 미국 지사장 온다고 했으니까 적당히 회의 끝내고 회포도 풀자.”

“예. 실장님.”

* * *

강수안과 배영성 그리고 이방효는 낚시꾼 차림으로 회사 소유 펜션에 들어와 있었다.

최장호 경호실장은 안에 들어오지 않고 밖에서 1인 경호를 하고 있다.

“미국 지사 결과 보고 드리겠습니다. 최근 실장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미국에서 제약 회사 하나를 인수 완료했습니다. 인수 비용은 3천만 달러 규모로 적당한 수준입니다. 그리고 실데나필을 주원료로 파이자 제약에서 개발 중이던 약품 소유권을 인수했으며, 기초 개발 단계라서 여기도 많은 자금이 소요되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약간 비싼 것은 아닌지 의심입니다. 워낙에 검증되지 않은 물질인 터라….”

수안은 보고서를 통해 금액을 확인하며 말했다.

“괜찮아. 그거 충분히 돈 되는 거야. 어휴. 싸게도 샀다.”

“흠. 우선 파이자 제약에서 개발 중이던 실데나필 약품은 심장병을 목표로 하고 있었습니다. 곧 받은 자료를 모두 인수한 제약 회사에 넘겨주려 합니다.”

“좋아. 이제 개발 중이던 그 약품을 왜 구입하라고 했는지 얘기해 줄게. 이 사장.”

“예. 실장님.”

“내가 실데나필을 인수하라고 한 이유는 심장병 때문이 아니야.”

“…전혀 다른 병을 목적으로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남자들이라면 꿈꾸는 약이 있어. 모두들 이런 상상을 하곤 해.”

수안이 이렇게 말을 시작하면 이방효 지사장은 자신이 상상력을 총동원해야 했다.

“음… 탈모약?”

“오오. 그것도 좋지만 말이야. 남자라면 밤에 제왕이 되고 싶은 법이잖아.”

“아…. 아? 네에?!!”

밤의 제왕이라는 말을 이해하던 이방효 지사장의 비명 같은 물음이었다.

배영성 이사도 마찬가지로 놀랐다.

“그, 그 약이…. 정말로 그런 약이 있었습니까?”

“실데나필은 인류. 특히 남성에게 없어선 안 될 약이야. 또한 궁극적으론 여성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겠지.”

“그럼… 이걸 먹으면… 거시기 뭐시냐…. 그 물건이….”

“바짝 고개를 들지. 그것도 몇 시간 동안.”

“흡!”

“헉!”

“상상해 봐. 한 알을 먹기만 하면 남성의 상징이 바짝 서는 약이야. 사람들이 이 약을 안 사 먹을까? 인류의 절반은 남성이야. 그리고 여성도 무척 원하는 약이 될 거야. 알잖아?”

세계에서 엄청난 반향을 이끌어내는 약이다.

특허만 제대로 내면 캐시 카우로 손색이 없는 약이었다.

그리고 그 시작점은 미국이 될 터였다.

“…엄청난 반향을 불러올 겁니다.”

“세상의 돈을 쓸어 모으고도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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