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냄새
이방효와 배영성은 세상의 모든 돈이 굴러들어오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정력에 좋다면 많은 돈을 지불하는 사람들이다. 물개의 거시기가 고가에 팔리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만약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약이 탄생한다면 누구든 약을 구입하고 싶어 할 것이다.
물론 정력제가 아니라 의료용 약품이었지만, 사람들은 희대의 정력제가 개발되었다고 여길 것이다.
“이방효 지사장은 파이자 제약과의 계약을 다시 살펴봐. 나중에 계약에 문제가 있었다는 식으로 뒤통수 맞지 않도록 확실하게.”
“대형 로펌을 통해 계약을 다시 공증받고, 인수한 제약사에 정확한 목표를 제시하겠습니다. 그리고 생산 라인을 확보해서 대량으로 생산할 기반을 만들어 두겠습니다. 보안도 확실하게 지키겠습니다.”
“좋아. 확실하게 알아들었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끝내자. 나머지는 내가 보고서로 다 봤으니까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 없어.”
“예. 실장님.”
회의가 끝났다는 말에 배영성이 이방효 지사장을 조용히 불렀다.
“이 지사장….”
“예. 배 이사님. 말씀하십시오.”
“그 약…. 시제품 나오면. 알지?”
나이 마흔이 넘어 신혼을 시작한 배영성이 가장 관심을 보일 수밖에 없다.
“어휴. 제가 배 이사님 안 챙기면 누굴 챙기겠습니까. 하하하.”
둘의 대화를 듣던 수안이 눈을 번쩍 떴다.
“바로 그거야. 이 지사장.”
“네?”
“제약 회사에서 그 약 만들어 내는 데 성공하면 여기저기서 그와 같은 일들이 벌어질 거야. 리베이트 같은 것 없이도 얼마든지 약 그 자체로 리베이트가 된다는 말이지. 영업적인 측면에서 활용할 생각을 하라 이 말이야.”
“오오오!”
과거에도 실데나필로 제조된 알약은 같은 방법으로 영업력을 키워나갔다.
“가서 이제 낚시나 하자. 낚시 왔으니까 낚시한 티는 내야지. 적당히 시간 때우다가 들어와서 회에 소주나 먹자고.”
“예. 가시죠. 회는 미리 사다 놨습니다.”
“우리가 월척이라도 잡으면 어쩌려고?”
“하하하. 맞습니다. 이번엔 꼭 월척을 낚을 겁니다.”
이방효 지사장이 자신만만하게 소리쳤지만, 이날도 작은 우럭 몇 마리를 빼고는 꽝이었다.
* * *
“올해는 벌써부터 덥네. 미치겠다. 아주.”
7월 초부터 뜨거운 여름이 시작됐다. 1994년은 기록적인 폭염을 보여 주는 해였다.
‘벌써부터 이상 기후가 시작되는 모양이네.’
“실장님!”
배영성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주, 죽었답니다.”
“누구. 김일성?”
“네.”
“내가 죽는다고 했었잖아. 어제 죽었는데 오늘 발표한 거야.”
무능력한 정치, 무능한 전쟁광, 무자비한 숙청광 그리고 후계자가 이어받을 정도의 음란함. 나쁜 것은 모조리 갖추고 있는 독재자의 죽음이다.
점쟁이들이 김일성의 죽음을 시시때때로 예언했기에 그중 하나는 맞을 수밖에 없었고, 올해 김일성의 죽음을 예측한 점쟁이가 일약 고명한 점쟁이로 떠오른다. 하지만 수안처럼 날짜까지 확실하게 맞춘 이는 없다. 이미 미래를 경험하고 돌아온 수안에게 비길 수는 없는 일이다.
“아….”
“이번 일로 여기저기 시끄러울 거야. 북풍이지. 그리고 파동의 연속이고.”
조문 파동과 주사파 파동 등 시끄러운 정국이 연속될 예정이다. 성수대교 붕괴를 막았기에 다행이지만 다른 사건 사고는 막지 못했기에 문민정부의 추락이 시작되는 해였다. 충주호 유람선 화재 사건과 지존파, 박한상의 살인, 대한 항공 2033편 활주로 이탈, 아현동 도시가스 폭발사고가 이어지고 부천과 인천 등지에서 공무원들의 세금 포탈 사건이 터져서 김일삼 정부의 개혁 조치에서 얻은 점수를 다 까먹어 버린다.
또 북한 핵 문제를 둘러싸고 정책 혼선이 발생하고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쌀 수입 개방 파동, 농안법 파동, 행정 구역 파동으로 정책 조정 능력에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낸다. 거기에 민주당과의 여야갈등이 더해지며 김일삼의 국가 경영 능력에 의문이 제기되어 국민들의 신뢰도가 바닥에 떨어지는 해였다.
수안이 많은 것을 기억하진 못해도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국내 주식은 그대로 가지고 있지?”
“예. 일부 정리하라고 하신 종목 외에 나머지는 보유하고 있습니다.”
“규모도 작은데 떨어지면 말이 안 되거든. 게다가 김정일이 떡하니 후계자로 자리잡고 있으니까 시장 충격은 크지 않아. 나이가 몇인데 천년만년 살 줄 알았겠어? 북한에서나 위대한 영도자가 영원무궁토록 산다고 착각하고 있지, 국내에서도 국외에서도 이제 죽나 저제 죽나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야.”
그래도 떨어지기는 한다. 수안은 추가로 지시했다.
“그래도 다음 주 월요일 장 초반에 급락하는 모습을 취할 거야. 그때가 쓸어 담을 타이밍이야.”
“예! 실장님.”
* * *
집에 가서 오랜만에 남동생 수용과 대화를 나눴다.
녀석은 20살이 되었지만, 여전히 공부하고 있었다.
“공부 잘하고 있냐?”
“아. 응.”
“한 번에 갈 것이지. 놀다가 재수하니까 1년을 더 허비하잖아. 게다가 이번이 수학능력 시험으로 바뀌었으니 더 힘들지.”
수용은 지난해 한국대 입학을 하지 못해 재수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끄응.”
“분명 내가 너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얘기했잖아. 아버지가 너는 무조건 한국대로 보내실 거라고.”
첫째 여동생 수진은 어머니를 닮아 미술과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해외로 나가 공부하고 있다. 아버지도 여동생들에게 큰 기대를 하진 않으셨기에 나중에 수진에게 적당한 자리를 물려주는 정도면 충분하다 여기고 있었다.
둘째 여동생 수현은 한국대는 가지 못했어도 그 아래 급으로 인정받는 대학에 들어가 아버지도 인정했다. 수현은 대학을 졸업하면 유학을 결정할지 그대로 회사로 입사할지 결정되지 않았지만, 수안은 여동생의 행보를 대충 짐작하고 있었다.
‘이번 결혼은 그렇게 흘러가게 두지 않으마. 수현아.’
전생엔 연애를 통해 결혼을 했었던 수현이지만 끝은 좋지 않았기에 수안은 아예 여지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집안에 마지막 남은 자식이고, 경영자 자리를 물려받을 수용의 경우 한국대에 들어가라는 아버지의 명은 당연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아무리 첫째인 날 예뻐하신다고 해도 대안을 생각하지 않으실 분은 아니니까.’
수안은 자신이 뛰어난 능력을 보여 주는 것으로 후계 구도를 일찌감치 정리했다고 자신하지 않았다. 특히 둘째 아들이면서도 강운 그룹을 오롯이 쟁취한 강 회장의 성향을 보면 오히려 경계심을 가질 이유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영역에서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난 셈이지.’
강 회장은 그런 경쟁자를 그대로 커나가게 둘 사람이 아니었다.
빼먹을 것은 빼먹고 둘이 힘을 빼며 싸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어두운 곳에서 사장단과 만나고 있었고, 해외에 투자 회사도 숨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디 게임이 되나.’
잔뜩 주눅이 들어 있는 수용은 수안의 경쟁자가 되기에 한참 멀었다.
그저 한 사람 몫이라도 제대로 하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회사를 쪼개 주지 않겠니? 사랑하는 동생아?’
“수안아. 안 그래도 수용이가 공부하느라 힘든데, 너까지 그러지 마.”
어머니의 말에 수안도 수용을 타박하는 말을 멈췄다.
“예. 어머니. 수용아. 대학 가면 원 없이 놀 수 있으니까 조금만 더 참아. 이제 얼마 안 남았다.”
“알았어. 형.”
수안의 눈높이에 수용은 보이지 않는다. 강 회장의 눈높이를 뛰어넘어 그 뒤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강운의 지분은 해외에서 착실하게 모으고 있었다. 물려주지 않으면 스스로 쟁취하면 그만이다. 떨어지는 사과를 무능력하게 기다리는 것은 수안에게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버지를 끌어내릴 생각은 없으니까.’
* * *
수안의 대학생 생활도 이제 끝나간다.
올해만 지나면 졸업이었다.
여전히 수안은 선후배 술자리에 나타나 계산을 도맡아 처리하며 인기를 얻고 있었다.
선후배들은 술 생각이 없다가도 수안을 만나면 절로 입안에 군침이 돈다고 말하곤 했다.
공짜 술이 생각나기 때문이다.
“이제 너 졸업하면 우리 술은 누가 사 주냐.”
“큭. 주원이 너도 얼른 졸업이나 하셔. 언제까지 대학가를 기웃거릴 건데?”
같은 법학과 동기인 주원이 녀석도 수안이 졸업하면 누구에게 술을 얻어먹어야 할지 걱정이었다.
“사법 시험에 합격해야 졸업을 할 거 아냐?”
“아이고. 죽을 때까지 여기 붙어 있으시겠다고?”
“네가 악담을 하는구나….”
“내년에 내 동생이 들어올지도 몰라. 그 녀석한테 얻어먹든가.”
“수용이?”
“법학과는 못 들어오겠지만, 내가 미리 얘기해 둘게.”
“됐다. 91학번이 95학번에게 얻어먹는 것도 이상할 일인데, 그것도 다른 과 후배에게 술을 얻어먹겠어?”
“하긴 좀 이상하긴 하네.”
수안의 경우 법학과 선후배라는 연결점이 있으니 부담스러워도 얻어먹을 수 있었지만, 수용의 경우에는 얻어먹기 꺼림칙할 것이다.
“내가 내년에 치르는 사법 시험은 꼭 붙고 만다.”
“꼭 붙어서 내 투자가 헛되지 않게 해 주라.”
“투자였어? 공짜 술 아냐?”
“그럼 내가 아무 생각 없이 술을 사겠냐?”
“쥐약이었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한테는 쥐약이 아니지.”
“왜?”
“네가 붙을 일이 있겠냐? 맨날 놀지 못해서 안달인데 붙는 게 이상하지.”
“뭐 임마!”
“그리고 네가 붙어서 판검사가 됐다고 치자. 내가 술 사 줬다고 해서 도움 줄 거야? 넌 임마. 내가 술 안 사 줬어도 내 편 들어 줘야지! 친구가 괜히 친구야?”
“푸흐하하하. 당연한 말이었네. 서로 주고받는 사이는 남한테나 통용되는 거지. 우리 사이에 이득 남겨 먹을 것도 아니니까.”
“내 말이 그 말이야. 넌 나한테 단단히 코 꿰인 줄만 알아.”
* * *
수안은 주원을 보내고 방수혁을 불러냈다. 졸업 전에 제안할 일이 있었다.
“이여~ 강운가 아들이 맨날 이렇게 시간이 남아?”
“아직 강운 그룹에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또 그 소리야? 그리고 졸업반이지만 아직 대학생이라고.”
방수혁과 수안은 첫 만남 이후 지속적으로 관계를 이어 가 이제 편하게 친구처럼 지내고 있었다.
“오늘도 술?”
“오늘은 술 아니고 사업 얘기.”
“사업?”
“너. 작곡하지?”
추후 BTC를 만들어 낼 방수혁이지만, 그 전에 방수혁은 수많은 히트곡을 제조한 명 작곡가였다.
“어? 네가 어떻게 알아?”
“술 먹고 네 입으로 나불댔으니까 알지.”
“아. 그놈의 술이 문제지… 오. 악상이 떠오른다!”
“그 악상은 잘 기억하고 계시고….”
“기다려 봐. 지금 정리해야 안 잊어버리지.”
대화하다 말고 노트를 꺼내 방금 떠오른 가사와 악상을 정리하는 방수혁이다.
“얘도 중증이야.”
수안의 말에 아랑곳하지 않고 죽죽 써 내려가는 곡을 보며 수안은 방수혁이 천재는 천재라고 생각했다.
“이번 곡은 제대로 나오겠다. 크흐흐.”
“이제 얘기해도 되나?”
“시간 많이 뺏지 마라. 나 할 일 많아.”
“너 지금까지 작곡한 곡은 누가 불러 줄 건데?”
“사업 얘기한다며? 작곡한 곡은 왜?”
“곡이 좋으면 뭐 하냐? 누가 불러 줘야 사람들이 알잖아.”
“당연히… 가수를 찾아가야지.”
“가수가 널 만나는 준대?”
“…기획사 찾아가서 얘기하면….”
“그럼 기획사가 이제 막 시작한 작곡가를 “어이쿠. 어서 오십시오. 작곡가님.”할 것 같아?”
“아니지… 그래도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고.”
“그 시작. 내가 바꿔 줄게.”
“네가… 내 곡에 투자하겠다고?”
“그 곡에 투자한다는 말은 아니고… 다른 방식으로 지원해 주려고.”
“에이. 그럼 뭐야? 제대로 얘기 안 하냐?”
“기획사에 연결해 줄게.”
“기획사에?”
“정확하게는 내가 기획사를 인수하고 있어.”
“기획사를 인수해? 그러니까… 네가 기획사를 인수하면 내가 거기 들어간다? 나 정확하게 이해했냐?”
“그래. 그 말이야.”
“흐음….”
“물론 앞으로 네 곡만 쪽쪽 빨아먹겠다는 뜻은 아니야. 네가 클 수 있도록 프로듀싱도 배우고 곡도 가수들이 불러 줄 수 있도록 만들 테지만, 너도 네 생각이 있을 거 아냐.”
“그래. 나도 내 생각이 있어.”
작곡을 하고 있지만, 자신의 위치를 작곡가로 끝낼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시작이 필요할 거야.”
“시작은 필요하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나와 함께하면 상당히 단축할 수 있을 거야.”
“…얼마나?”
“네가 하기 나름이지. 말했잖아. 기획사도 이제 막 시작하려는 신생 기획사야. 거기서 네가 뭘 배우고 시작하건 네 능력 바운더리 안에서 결정될 일이야. 내가 막 밀어붙인다고 될 일인가?”
방수혁은 신생 기획사에서 작곡 외에 프로듀싱을 배우게 될 것이고, 여기서 배운 프로듀싱과 기획사 경영은 훗날 그가 세울 기획사의 기반이 될 것이다.
“후우… 이해는 되지만….”
“넌 이것만 생각하면 될 거야. 네가 쓴 곡. 누군가의 입에서 불려야 하고 그 곡을 부를 가수를 네가 선택할 수 있게 될 거야. 내가 만든 기획사라면 내 입김으로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잖아.”
“나 참. 이제 나도 강운 그룹의 후광을 입는 건가?”
“강운이 아니라, 오로지 내 회사야. 강운과는 전혀 무관해.”
“혹시… 기획사 인수를 나 때문에 결정하진 않았지?”
“푸훗. 자의식이 너무 과잉이지 않냐?”
“그렇다고 웃냐? 웃어?”
“푸하하. 네가 웃기잖아.”
“그럼 기획사는 가수 중심이지?”
“가수뿐이 아니지. 종합 엔터테인먼트라고 해야 맞아. 그리고 기획사에 이 사람도 같이 들어올 거야.”
탁.
수안은 올해 데뷔한 가수 사진을 올려놨다.
“어어? 이 사람은 올해 데뷔한 신인이잖아?”
“내가 사람 보는 눈 하나는 끝내주거든. 이 사람도 너랑 같은 천재 부류야. 빠른 생일이라 한 학번 위지만 우리와는 동갑이고.”
사진 속 인물은 훗날 JYP를 일으키는 가수 박준영이다.
“오오….”
“지금부터 경쟁이야. 박준영도 이제 전문적으로 작곡과 프로듀싱을 배우기 시작할 것이고, 너도 마찬가지야. 앞으로 너희 둘이 성장하면 기획사를 이끌어 가게 될 거야.”
수안은 박준영과 방수혁을 미리부터 선점해서 연예 기획사를 크게 키워나갈 생각이었다.
“배운다는 입장에서 작은 기획사라면 나쁘지 않지.”
“누가 작다고 그래?”
“신생이라며?”
“신생이라고 해서 무조건 작다는 편견은 버려. 자본금이 50억은 투입될 테니까.”
“허읍!”
“기존 회사를 인수하는 방향으로 시작해 종합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일으킬 거야. 가수 박준영과 작곡가 방수혁은 그 안에 속한 아티스트로 시작할 거고.”
“후아. 넌 나한테 뭘 보고 이렇게 투자하냐?”
“내 눈. 내 감각이 말해 주고 있어. 너에게서 진한 돈 냄새가 풍겨.”
미래를 보고 온 수안의 눈이 방수혁을 향한 믿음의 근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