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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의 효능 (28/304)

약의 효능

지금은 많은 집에서 아침마다 일간 신문을 배달하는 시대였다.

전봇대에 홍보물을 붙이고 전화번호를 떼어가게 만들어 연락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밀어 넣으면 될 일이다.

가정집 주변에 폐쇄 회로(CCTV)가 존재하는 세상도 아니니, 혹시나 경찰이 조사한다 해도 추적은 불가능했다.

“우선 알약부터 제대로 만들자. 두 놈에게 똑같이 써먹을 수 있겠어.”

“약에 중독된 사람이 전국적 사기꾼이 되진 못할 겁니다.”

“하나씩 준비하자. 배 이사.”

배영성은 일전에 만들어 숨겨 놨던 가루를 찾았고, 공장을 돌아다니며 폐기 직전의 중고 프레스 기계와 알약 금형을 구입했다. 알약의 금형은 기성품과 달리 만들기 위해 따로 손봐야 했지만,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배영성의 알약이 완성되자 화려하게 문구가 강조된 인쇄물과 샘플 알약을 품은 신문이 조동팔과 주수동의 집으로 배달되었다.

* * *

한 남성이 출근을 위해 나오다가 정원으로 던져지는 신문을 보고 짜증이었다.

“신문을 이제야 가져와?”

뻔히 보이는 신문을 이유로 집 안에 있는 내연녀를 불러올 수도 없는 일이라 허리를 구부려 신문을 집었다.

그리고 신문 사이로 살짝 삐져나온 광고물에 눈길을 줬다.

“이건 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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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견기업 초봉이 130만 원이던 시절이다. 15만 원에 달하는 가격은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기에 가격 면에서부터 믿음직스럽다.

홍보물 뒷면에 조악한 비닐에 쌓인 알약, 네 개가 있었다.

파란색 알약 4개였다.

남성은 주위를 둘러보고 얼른 알약과 홍보물을 주머니에 넣었다.

이 남성의 이름은 주수동이다.

* * *

또 다른 남성이 퇴근길 집 대문 앞에 놓인 신문을 보고 혀를 찼다.

“쯧쯧. 이걸 아직도 안 가지고 들어가고 여기 뒀단 말이야?”

그리고 그 역시 신문 사이로 삐져나온 화려한 홍보물에 눈이 갔다.

“이것들이 지저분하게 광고지를….”

쭈욱 홍보물을 잡아 뽑아 버리려던 남자는 이물감에 뒤를 살펴봤다.

무언가 붙어 있었다.

“뭐야? 이게.”

다시 홍보물을 살펴보자 광고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88상사의 신약! 발기부전에 희소식! 1알만 먹어도 하루 종일 바짝!]

“하! 이딴 가짜 약이나 팔아먹어 보겠다고.”

그러나 자신이 파는 다단계로 파는 건강 보조 식품도 비슷했다.

‘얘들은 왜 이렇게 비싸게 팔아? 나처럼 다단계 판매도 아니면서.’

역시 가격이 신뢰도를 올려줬다.

말은 가짜 약이라 하면서도 주머니에 약을 챙기는 남자였다.

이 남성의 이름은 조동팔이다.

“그래도 약으로 만들었다면 작은 효과라도 있을지 모르지….”

공짜의 효과는 대단했다.

* * *

“둘 다 성공입니다. 실장님.”

멀리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둘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약을 확인하고 돌아와 보고 할 수 있었다.

“굿.”

“전화번호는 저희와 관련 없는 곳으로 잘 만들어 놨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곧장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겁니다. 최 실장이 우선 전화기 앞에 대기하고 있습니다.”

“약은 잘 만들어 둔 거지?”

“예. 여러 통을 만들어 놨습니다. 30알이 1통이고 이번이 첫 주문이 들어오면 서비스로 2통을 더 줄 생각입니다. 금방 다 먹을 겁니다.”

“지문 안 남게 조심해. 지문뿐 아니라 뭐든 남아선 안 돼.”

“예. 실장님.”

며칠 지나지 않아 첫 주문이 들어왔다. 고객은 오직 둘 뿐이었다.

“전화 감사합니다. 88 상사입니다.”

-88상사. 맞습니까?

남성의 목소리였다. 최장호는 둘 중에 누구인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둘 중의 하나였다. 전화한 사람을 모르기가 더 힘들었다.

“전화 맞게 주셨습니다. 고객님. 주문 도와드리겠습니다.”

-바로 주문하라고?

설명도 없이 주문하란다.

“요즘 주문이 너무 많아서. 이봐! 거기 물건 조심해! 재고도 거의 떨어졌잖아! 죄송합니다. 고객님. 회사가 바쁘게 움직이는 터라…. ”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혼신의 연기를 보이는 최장호다.

-아. 잘 팔리나 보네. 나도 이거나 팔아 볼까?

“예. 불티나게 팔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행사로 오늘까지만 한 통 주문하면 두 통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하고 있습니다. 내일부터는 원래 정가로 판매합니다.”

-어디서 납품받아요?

“저희 미국에서 직수입하고 있습니다. 거래처는 저만 알고 있지요. 주문 안 하시면 끊습니다. 하시려면 빨리하시든가요. 괜히 시장 탐내지 마시고 물건이나 적당히 사가세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이라 딱 세 통만 더 주고 끝낼 생각이었다.

-까칠하기는… 주문하죠.

“예. 그러면 주문하실 1통에 증정 2통으로 총 3통 맞죠?”

-아뇨. 10통 줘요. 그러면 증정 20통 포함해 30통 맞죠?

“아….”

-재고가 부족합니까?

이렇게 많은 주문은 생각지 못했지만, 여기서 파탄을 드러낼 수 없었다.

“아닙니다. 다른 주문 빼서라도 드려야죠. 직접 배달해 드리고 대금 수령하겠습니다. 위치 알려주시죠. 무조건 현금박치기 아시죠?”

-당연히 현금 박치기겠지.

스스로도 현금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예. 외국에서 떼어오는 물건이라, 언제 어떻게 될지 몰라서 꼭 현금이어야 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손님.”

-알았수. 장소는….

장소와 만날 시간까지 정한 최장호는 배영성에게 연락했다.

배영성은 전화를 받고 깜짝 놀랐다.

“뭐? 30통? 미쳤어?”

-그렇다고 없다고 할 수는 없잖수.

“야. 그거 다 먹으면… 아니, 다 먹기도 전에 죽어!”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중독자로 사는 것보다 그냥 죽는 게 더 낫지 않아요? 내일모레까지 줘야 하는데 어떻게 안 될까?

“하아… 그걸 또 언제 만들고 있냐….”

-되긴 되나 보네.

“둘 다 주문한 거야?”

-아니. 한쪽에서만 들어왔는데, 방금 연락 온 곳은 위치가 조동팔이야. 주수동은 아직.

“썅. 그럼 두 배로 준비해야 하잖아!”

-나도 이렇게 주문을 많이 할 줄은 몰랐지.

“그놈한테 연락받으면 회사 연락처 바뀐다고 말해. 나도 가면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전할게.”

-오케이. 접수했수. 갈 때는 분장 확실하게 합시다.

약속된 날. 배영성은 후줄근한 옷에 조끼와 모자까지 눌러썼다. 얼굴은 거무튀튀해서 고된 일에 찌들어 보였다. 거기다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있어 본래의 얼굴을 아는 이라도 배영성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분장 끝.”

“넌 군대에서 뭘 배운 거야? 나랑 왜 이렇게 배운 게 달라?”

“이걸 군에서 배웠겠소? 내가 스스로 배웠지. 그리고 내가 제대로 안 해서 그렇지 군에 있을 때는 날렸다는 거 아뇨. 잘하면 안기부까지 갔을 텐데, 줄을 잘못 타서 튕겨 나왔소.”

최장호는 군에서부터 안기부를 목표로 달려왔지만, 문턱에서 좌절해야 했다. 강운 비서실에 들어와 있다가 찾다가 수안의 경호원으로 밀어 넣은 것이다.

“그럼 다녀올게.”

“말 많이 하지 마시고, 스스로를 배달원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아셨지? 그리고 절대로 바로 돌아오시면 안 되고 대중교통으로 여기저기 들러서 혹시나 모를 꼬리를 떼셔야 해.”

“그 소리 한 번만 더하면 백번이다.”

“내가 마음이 놓여야 말이지.”

배영성은 차를 타지 않고 지하철과 버스로 이동했다.

박스를 들고 다녀야 했지만, 무겁지 않아 다행이었다.

약속된 위치 주변에 약간 이르게 도착한 배영성은 주변을 조심스럽게 둘러보며 자신을 지켜보는 누군가가 있는지 확인했다. 나라에서 금지한 물건을 거래하는 일이다. 혹시라도 일이 잘못되면 인생이 끝장이었다.

‘혹시라도 보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라고 했었지….’

마약을 운반하고 거래하는 일이다. 게다가 양이 좀 많은가. 초범이라도 너끈히 10년 이상 처분이 가능했다. 해서 누군가 눈초리가 사나운 사람이 있다면 오히려 자연스럽게 행동하라고 했다.

이것도 최장호가 신신당부한 일이다.

만약 그렇게 형사를 먼저 확인하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내빼라고 했었다.

하지만 공원에 가끔 운동 나온 사람들이나 산책하는 사람들은 있어도 딱히 의심 갈만한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내가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다고 했었지.’

일반인인 배영성의 입장에서 작정하고 자리 잡은 형사를 알아보긴 힘들다고 했다.

‘슬슬 자리를 옮겨 볼까.’

천천히 주변을 돌며 약속된 장소를 향해 나아갔다. 아직까지 주변은 깨끗했다.

산책하는 사람도 없는 한적한 곳이라 의심할 대상도 없었다.

약속된 장소에는 나름 깔끔하게 차려입은 남성이 나와 있었다.

‘주수동….’

조동팔은 대구에 있어 서울에 근거지를 가진 주수동을 먼저 찾은 참이다.

조동팔의 주문 이후에 금방 주수동의 주문도 들어왔기에 이렇게 순서를 바꿔 물건을 전달 할 수 있었다.

벤치에 앉아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주수동은 배영성을 발견하고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88 상사?”

“어… 주문하신 분이신가요?”

“뭘 하다 이제 온 거야? 물건이나 놓고 가.”

“아. 예… 그 전에 값을 치르셔야 하는데.”

“젠장. 요즘 돈도 부족한데… 여기.”

아까운 듯이 두툼한 봉투를 건네준다.

봉투를 슬쩍 들여다본 배영성은 얼른 품에 넣고 박스를 넘겼다.

“뭐가 이렇게 가벼워? 물건 다 있는 거 맞아?”

“저도 잘…. 저도 배달하고 돈만 받아 오라는 지시를 받았거든요.”

“기다려 봐. 물건 좀 확인하고.”

박스 테이프를 북북 뜯어 내용물을 확인하는 주수동의 모습에 배영성은 식은땀이 흘렀다. 자신은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른다고 했으니 놀란 모습도 보일 수 없었다.

‘멍청한 놈!!! 그게 뭔 줄 알고 이렇게 사람 많은 데서….’

“수는 맞네….”

“…그리고 이제 물건도 마침 떨어져서, 회사 위치를 바꾼다고 전하라고 했습니다. 연락처도 바뀐다고….”

“하! 그러든가 말든가. 설마 여기서만 이걸 팔겠어?”

“안녕히 계십쇼. 가 보겠습니다. 사장님.”

남성은 박스를 들고 돌아갔고 배영성은 다시 허리를 조금 수그리고 터덜터덜 공원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뺑뺑이를 돌았다. 지하철과 버스를 오가며 이동하고 몇 번 택시도 잡아탔다. 마지막으로 적당한 건물에 들어가 밖을 살폈다.

30분. 1시간. 2시간… 그 어떤 낌새도 보이지 않는다.

최장호의 지시를 훌륭히 완수한 배영성은 목욕탕이 있는 숙소로 향했다.

‘오늘은 여인숙에서 자야겠네.’

오늘은 집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이것도 장호가 지시한 부분이다.

* * *

며칠 뒤 배영성이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수안에게 보고했다.

“임무 완수했습니다. 실장님.”

대구의 두 번째 주문도 같은 방식으로 배달을 완료한 다음이었다.

“벌써?”

“목표물 둘 전부 추가 주문을 했고, 대량으로 약을 사 갔습니다. 사용한 연락처와 사무실 완전히 정리했고, 추적할 단서는 남기지 않았습니다.”

“오케이! 오~ 케이!!”

기뻐하는 수안에게 배영성이 옆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일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여기 최 실장이 수고 많았습니다.”

“최 실장.”

“예. 실장님!”

“대한민국 많은 국민들의 미래를 네 손으로 구했다.”

“하하하. 배 이사님이 완벽하게 비밀 임무를 수행한 덕분입니다.”

“둘 다 수고했어.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되겠네. 아! 배 이사. 약이 얼마나 센 거야? 중독은 확실하지?”

“한 달만 복용해도 부작용이 적지 않을 겁니다. 근육 손실에 다른 무기력증으로 인해서 밖에도 나다니지 못하며 평소에도 환각을 달고 살아야 합니다. 그 약을 끊기는 쉽지 않을 겁니다.”

“둘이 지금 서른 후반이니….”

“건강한 나이지만, 이 약은 급속도로 근육을 약화시킵니다. 특히 젊은 사람은 쉽게 끊기 힘든 약입니다.”

“치명적이라고? 몸이 약해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로?”

“혹시 그런 문제가 생기면 우리 표적이 약을 끊지 않을까요?”

최장호의 염려에 배영성이 답했다.

“애미 애비도 못 알아보게 만드는 약이라 그럴 일은 없어.”

“대량으로 팔았으면. 얼마나 팔았어?”

“각각 30통입니다. 30알이 들었으니, 총 900알입니다.”

“그거 먹고 살 수 있어?”

수안이 궁금한 부분이다. 배영성은 이 약이 사람을 급속도로 약화시킨다고 했다.

“…어렵습니다. 중독이 아니라 사망에 이를 겁니다. 약이 너무 지저분하게 만들어졌습니다. 불순물이 많아서… ”

“이봐. 사람을 함부로 죽이진 말아야 하잖아. 처음부터 중독으로 끝내는 거 아니었나?”

“범죄는 저지르기 전에 막는 것이 좋습니다.”

“…막기만 했어야지. 죽여서 막는 게 아니라.”

“이미 지난 일입니다. 그들 손에서 다시 약을 빼 올 수는 없습니다. 위험이 큽니다. 실장님.”

최 실장의 말에 수안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거 자꾸 일이….”

수안은 이미 일이 이렇게 처리되었고, 다시 그들과 마주하지 않을 셈이라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다. 그 둘보단 눈앞의 두 사람의 가치가 더 높았다.

“배 이사. 최 실장.”

““예.””

“이번까지는 우리가 지저분하게 일을 처리했지만, 앞으로는 이러지 말자. 솔직히 내 측근이라는 너희들에게 이런 일을 맡기고 싶지 않았어.”

약물 중독 정로도 끝내고 싶었지만, 이미 대량으로 판매했다.

또다시 배영성과 최장호를 살인 사건에 끌어들인 셈이다.

“나름대로 스릴 있고 재미있었습니다.”

“저도 긴장되면서도 짜릿했습니다. 보람도 있고요.”

배영성과 최장호가 아직 법의 심판을 받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스릴도 경찰서에 가고 법정에 서보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릴걸?”

“…….”

“…….”

수안의 말에 둘의 표정이 일순 굳어졌다. 아내가 생긴 둘이다. 그 전에 가족도 있었다.

집안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이었고 아내에겐 믿음직한 남편이었다.

“결혼해서 마누라까지 있는데 스릴 찾지 마. 진심이야. 앞으로는 이런 일 없어. 비밀스럽게 처리할 일이 있으면 돈으로 해외 용병을 쓰자. 우리가 직접 손대는 일은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해.”

“미래는. 오직 실장님만 아시지 않습니까.”

“우리가 아니면 누가 합니까? 용병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나도 다는 모르지만 배 이사 말대로 나 외엔 아무도 모르지. 그러니 나만 가만히 있으면 다시 이런 일은 없어.”

“…….”

“…….”

더는 이런 일에 연루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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