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나엘이 재판장 앞에 섰다. 은발을 깔끔하게 넘기고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었다.
이곳에서도 기자들이 기사를 찾아 쫓아다니는 건 다르지 않네.
나는 루시아, 엠마와 함께 재판소 인근 커피 하우스의 야외 테라스를 한 자리 차지하고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 음료, 꿀맛! 여기가 맛집이었네.
“정말로 재판이 시작되네요.”
“그러니까요. 사실 귀족 재판은 보통 열리는 데 3개월은 걸리잖아요.”
“그사이에 범인들은 다 도망치고. 증거 조작하고.”
그게 참… 뭐 같은 점이라고 할 수 있지.
처음부터 언론을 이용해서 제국민들을 선동하고자 한 건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아무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신문 기사가 발표되고 나서 고작 8일 만에 재판이 시작되자 안일하게 늘어져 있었던 배 두둑한 귀족들이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했을 땐 이미 늦었다.
“이번 일에 대하여 황실은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죄인들을 발본색원하여 합당한 처벌을 내릴 것이다.”
나엘이 나긋한 말투로 대답을 이어 가고 있었다.
“또한, 이번 일에 공을 세운 슈타디온 공작 가에는 훈장을 내릴 것이다.”
“슈타디온 공작 가에서 이번 일을 밝혀냈다고 들었습니다!”
“맞네. 슈타디온 공작 가로 투서가 들어왔고 공작은 신수들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 슈타디온이 아니었다면 신수들을 구할 수 없었겠지.”
그래, 그게 바로 나야. 큼큼.
바로 눈앞에서 얼굴에 금칠을 당하니 손발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요새 너무 외향적으로 살지 않았니?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급피곤해지는 기분이었다. 저 많은 기자가 내 이름을 연창하는 걸 들으니 기 빨리네…….
이것만 마시고 일어날 생각으로 음료를 마시고 있는데, 그 순간 나엘과 눈이 마주쳤다.
목소리가 들리긴 하지만 꽤 거리가 있었고 사람들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나와 나엘의 눈이 마주칠 확률은 극히 적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엘은 나를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나엘의 표정이 한결 부드러워지며 그를 들들 볶아 대는 기자들 사이에서도 여유를 되찾았다.
음. 이럴 땐…….
“파이팅……?”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나엘을 응원했다. 가서 나쁜 놈들 혼내 주고 와. 그런 의미로.
나도 몇 번은 재판에 출석하게 되어 있었다. 증언도 해야 하고 나쁜 놈들 벌을 받는 것도 봐야 하고.
하지만, 나엘은 오늘부터 내내 이 일에 붙들려 있을 것이다. 그러니까 힘내라고.
내 응원을 보았는지 나엘이 피식 웃었다. 그것이 먼 거리에서도 너무 선명하게 보였다.
왜 웃고 그런대. 정들게.
* * *
그 시각 이브라임은 홀로 슈타디온을 지키고 있었다. 이제 힘을 옮겨 담는 작업도 막바지에 달해 있었다.
이브라임은 제 몸속에서 꿈틀거리는 거대한 힘을 느꼈다.
피로감에 휩싸인 이브라임이 정원에 드러누웠다. 이제는 그게 너무 익숙해진 사용인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그 옆을 지나다녔다.
이브라임이 담벼락 위에 올라앉은 젤리를 응시했다.
“냐아, 냐아아아아!”
바람결에 나부끼는 나뭇잎이 목표인 듯했다. 젤리가 눈을 반짝이며 손을 휘두르다가…….
“젤리!”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그러고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담벼락 위로 다시 뛰어 올라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모습을 본 이브라임이 피식 웃고는 반쯤 일으켰던 몸을 다시 눕혔다.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젤리는 절대로 마탑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젤리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고뭉치였으니까.
분명 마탑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았을 것이다. 사랑스러운 사고뭉치.
이브라임이 그렇게 그만의 힐링 타임을 보내고 있을 때였다.
“냐아아아아!”
열심히 나뭇잎을 사냥하던 젤리가 몸을 기우뚱거리며 생각했다.
[뭔가 이상하다. 자꾸 몸속이 뜨거워지는 게…….]
‘화아아아아악!’
순간 젬이 했었던 말이 떠올랐다. 신수화하기 전에 ‘화하아아악!’ 했다고.
젤리가 두 팔을 하늘 위로 쭉 뻗었다. 젬에게 배운 대로!
그러자 강렬하고 짧은 황금빛이 터졌다. 이번에는 이브라임이 벌떡 일어날 정도의 빛이었다.
“젤리!!”
이브라임의 목소리가 정원에 울렸다. 그리고 정원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냐옹?”
우아하게 뻗은 꼬리와 앙증맞은 치즈 빛 귀.
햇빛 속에 드러난 통통한 뺨에 귀엽게 달린 수염과 사방으로 뻗쳐 있는 짧은 치즈색 머리카락.
낯익은 모습을 한 존재가 조심스럽게 뒤를 돌았다. 그 모습을 본 이브라임은 사랑스러운 사고뭉치의 이름을 입에 담았다.
“젤리……?”
“냐 각성했다냥!”
젤리가 자신을 알아본 이브라임에게 포르르 날아가 폭 안겼다.
“냐 이제 말할 수 있다냥!”
그러곤 이브라임의 품에 고개를 마구 비볐다. 그 행동에 이브라임이 비련의 여주인공 포즈로 주저앉았다.
‘아… 죽어도 여한이 없다.’
저택에 치명적인 귀요미가 한 마리 더 늘어났다. 따뜻한 햇볕이 비치는 오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