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화.
사용인들이 씩씩하게 대답했다.
“네, 공작님!”
이들은 내가 동물들을 위해서 따로 고용한 이들이었다. 귀족들이 신수를 키우다 보니 저택 내에는 그들을 전담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귀족들은 신수들을 버리면서 가문에 충성하던 사용인들도 헌신짝처럼 버렸다.
그런 이들을 내가 고용한 것이다.
사실 신수의 폭은 다양해서 지금 저택 안에는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곰, 사슴, 토끼, 강아지…….
그들을 돌보기 위해서는 전문가가 필요했는데 이미 숙련된 이들이 있으니 고용하는 건 당연했다. 한순간에 일자리를 잃었던 이들은 내가 내민 손을 잡았다.
“이번에 방음 마법을 걸었으니 더 이상 소음 관련된 민원은 안 들어올 거야. 건의 사항 있는 사람?”
“저….”
“뭐지?”
“요새 제가 돌보는 토끼가 식사를 잘 하질 않습니다. 아무래도 변비가 아닐까 싶은데… 혹시 진료를 봐 주실 수 있는 분이 있을까요?”
돌보는 것과 약을 처방하고 진료를 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그러고 보니 의사가 없었군.
“엠마, 수의사를 구할 수 있을까?”
“집사장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좋아. 의사는 구할 수 있을 거야. 그때까지만 더 신경 써 줘. 그리고?”
한 명이 이야기를 꺼내자 사용인, 아니. 사육사들이 의욕적으로 손을 들고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았을 때 내 파라다이스에 한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신수였던 동물들이라 다행히 먹는 건 채소로 똑같았는데, 지내는 환경이 다른 건 어쩔 수 없었다.
동물들은 전부 지내는 환경이 다르다. 예를 들어 고양이는 햇빛이 잘 드는 따뜻한 곳을 좋아한다. 하지만, 강아지는 시원한 곳을 좋아했다.
아무래도… 공간을 분리해야겠는데. 이건 대공사가 되겠어.
생각에 빠져 있던 나는 원대한 결정을 내렸다.
* * *
나엘의 옆에서 곤히 잠들어 있었던 히샤가 고개를 번쩍 치켜들었다. 금빛이던 눈동자가 보랏빛으로 신비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새하얀 달을 향해 고개를 돌린 히샤가 몸을 가볍게 일으켰다.
밖을 향해 코를 씰룩거리던 히샤가 킁킁 냄새를 맡았다.
[히샤.]
히샤의 보랏빛 눈동자가 묘하게 반짝였다.
[히샤. 내게로 오렴.]
아주 오랫동안 그리워했었던 목소리였다.
히샤가 망설임 없이 열린 창문 틈으로 뛰어내렸다.
봄바람이 살랑살랑 꽃내음을 품고 부는 밤이었다. 히샤가 홀린 것처럼 걸음을 옮겼다.
“끼야웅.”
작은 히샤의 울음소리만이 그가 사라진 곳에 남았다.
* * *
내가 우리 그만 보자고 하지 않았니?
어떻게 해야 우리 아가들 복지 만족도를 끌어올릴까 고민하는 것도 바쁜데 또다시 있어서는 안 될 일이 벌어졌다.
“깡!”
메리와 함께 구르고 달리고 있는 남청색의 작은 강아지를 발견한 것이다.
“히샤?”
“깡!”
잘 놀고 있던 강아지가 맞다는 듯이 짖었다.
물론, 저 귀엽고 깜찍한 강아지에게는 별다른 사감이 없었다. 하지만… 누구야. 누가 또 쟬 데리고 온 거야.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무것도 모르는 메리는 다시 만난 히샤가 마음에 드는 듯 같이 어울려 놀고 있었다. 히샤도 메리가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엠마, 쟬 데리고 온 게 대체 누구야?”
“그게… 저도 아침에 알아봤는데 아무도 없답니다. 어젯밤까지만 해도 없었고, 오늘 아침에 새로 데리고 들어온 동물도 없었대요.”
그럼 쟤가 지 발로 오기라도 했다는 거야? 저 쪼그만 게 여기까지? 무슨 수로!
“까앙! 끼잉!”
메리와 함께 터그 놀이를 하던 히샤가 내 앞으로 달려왔다. 내 치마를 메리와 함께 물고 늘어졌다.
하. 넘어가면 안 되는데.
이렇게 귀여운 생명체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짓는 거다.
“어이구. 그랬어요? 놀아 줬으면 좋겠어요?”
내가 얼른 쭈그리고 앉아 두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니 뭐가 좋은지 배를 발라당 까 보인다.
메리와 히샤를 위해서 양손 스킬을 보여 주지.
그런 내 모습을 본 엠마가 떨떠름하게 물었다.
“……지금 히샤 때문에 골머리 앓던 중 아니셨어요?”
“강아지가 무슨 죄야. 말 못하는 짐승은 탓하는 거 아니랬어. 그리고 히샤가 왜 미워?”
다시 한번 말하지만 히샤가 문제가 아니었다. 얘한테 무슨 죄가 있겠어. 히샤 뒤에 딸려 올 게 문제였지.
“히샤. 네 주인한테 내가 너 데려온 거 아니라고 말 좀 해 줘라. 응?”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할 히샤가 분홍빛 혀를 내밀어 내 손을 핥았다.
그리고 3시간 뒤, 데자뷔가 펼쳐졌다. 아니다, 조금 다른가. 나엘이 저를 따르는 기사들을 잔뜩 데리고 쳐들어온 것이다.
슈타디온의 기사들이 황태자와 충돌을 일으키고 있다는 말에 나는 히샤를 서둘러 안아 올렸다.
“히샤. 네 주인에게 잘 말해 주는 거다?”
“컹!”
히샤가 내 뺨을 핥았다.
그거 승낙으로 받아들일게, 히샤. 좋아, 준비됐어.
히샤를 품에 안은 채 시끄러운 소리가 오가고 있는 저택의 앞으로 갔다.
“아무리 황태자 전하라고 하셔도 이렇게 하실 수는 없습니다! 여기는 슈타디온입니다.”
“강제로 문을 열길 바라는 건가?”
나엘의 차가운 목소리에 오금이 저릴 지경이었다.
그래, 쟤도 얼마나 열이 받겠어. 나는 다시 한번 비밀의 방을 떠올리며 나엘의 마음을 애써 이해해 보려 했다,
벽에 덕지덕지 붙은 나엘이라니. 으, 내가 그런 일을 당했어 봐.
사실 연예인 사진으로 방을 도배하는 건 흔한 일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하라고 사진을 찍고 화보를 파니까!
그런데 나엘은 아니잖아.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가사가 대체 왜 그렇게까지 나엘에게 집착했었던 것인지.
답을 해 줄 당사자가 없으니… 일단 쟤부터 해결해 볼까.
“문을 열어.”
“네, 공작님!”
불안한 얼굴로 밖을 보고 있던 기사들이 문을 열었다. 천천히 열리는 문에 실랑이 소리가 사라지고 이내 히샤를 안고 있는 나를 발견한 나엘이 말에서 내렸다.
안경 너머의 차가운 눈동자가 나를 설원으로 몰아내는 것 같았다.
“아가사, 너는 네가 한 말을 빈번히 어기는군.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라고 하지 않았었나?”
나엘이 손을 뻗어 히샤를 데리고 갔다. 히샤를 품에 안은 나엘이 나를 노려보았다.
“제가 데리고 온 거 아니에요. 아침에 보니까 와 있었고 아무도 어떻게 온 건지 몰라요.”
나엘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실 내가 말하면서도 ‘아, 이거 정말 거짓말 같은데.’ 싶었다. 저 쪼꼬만 게 인력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여기에 어떻게 왔겠는가.
귀신이 곡할 노릇이었다.
이야, 이 말을 여기에 써먹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군. 경고하지, 아가사. 또 한 번 이런 일을 벌인다면 나 또한 가만히 있지 않겠다.”
등 뒤의 기사들을 괜히 데리고 온 게 아니라는 거였다. 나엘이 왜 저렇게 히샤에게 지극정성인지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나엘은 지금 황태자 자리가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브륄스 제국의 황제에게는 한 명의 황후와 두 명의 황비가 있었다. 그중 나엘을 낳은 것은 1황비였다. 황제의 두 번째 아내.
오랜 기간 동안 황제에게 나엘 이외의 아들은 없었던 탓에 그는 어린 나이에 황태자로 책봉되어 황제가 되기 위해 자라 왔다. 그런데 황후가 뒤늦게 아들을 낳은 것이다. 그때부터 나엘의 황태자 자리를 놓고 찬반 논란이 뜨겁게 들끓고 있었다.
대대로 황제의 신수는 늑대였다. 지금 저 강아지 행세를 하고 있는 히샤도 실상은 아기 늑대랄까. 원래 강아지의 조상이 늑대라고 하니….
그런데 황제의 신수가 나엘이 태어나던 해에 히샤를 낳은 것이다. 안 그래도 유일한 황가의 핏줄인데 신수와 같은 해에 태어나다니.
그래서 자연스레 나엘이 황태자로 책봉되며 신수로는 히샤가 함께했었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어느 순간 신수로서의 능력을 잃고, 야생성도 잃은 늑대가 강아지처럼 변한 것뿐이라고 나와 있었다.
그렇지만 나엘에게는 히샤라도 있지만, 새로운 황자에게는 능력을 잃은 신수조차 없었다. 그러니까 히샤는 나엘을 지켜 주는 또 하나의 방패막이였던 것이다.
저렇게 기사들이 기세등등하게 나를 노려보는 것도 이해가 될 일이긴 한데.
야, 씨. 나 진짜 억울해!
“저도 이런 일이 계속 생기는 거 싫어요. 저도 이제 황태자 전하 안 좋아해요. 오히려 싫어한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