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꽃-83화 (83/88)

83.

닿은 입술이 달았다.

어떻게 사람 입술이 달 수 있는지는 비오스트도 이해할 수 없었지만, 라일라의 입술은 그러했다. 말랑거리는 젤리 같았고, 부드러운 초콜릿 같았고, 혀끝에서 녹아내리는 캐러멜 같았다.

아니, 그것보다도 더 달았다. 비오스트에게는 꿀보다 달고, 설탕보다 더 단 것이 라일라의 입술이었다.

씹으면 씹을수록 더 달아지는 것만 같아서 비오스트는 몇 번이나 라일라의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아랫입술도, 윗입술도, 모두 씹을 때마다 단물이 흠뻑 나오는 것 같았다.

“하아…….”

그리고 비오스트는 그것보다 더 단 것이 숨어 있는 곳이 어딘지 알았다. 작은 한숨과 함께 열린 그곳으로 비오스트는 단숨에 진입을 시도했다.

반쯤 열린 치아 사이로 혀를 밀어 넣자, 단단한 성벽은 이내 스르르 열렸다. 애초부터 비오스트를 막을 생각도 없었던 것 같았다.

그가 깊게 숨을 들이마시자 라일라의 향기가 그의 콧속으로 흘러들어 왔다.

몸이 회복돼서일까? 아니면 그녀가 행복해서일까?

라일라의 향기는 만개한 꽃과 같이 화려한 향이었다. 마치 자신을 뽐내고, 벌을 유혹하고, 그리고 빛이 날 것만 같은 향기였다.

그리고 미칠 것 같은 향기였다.

조금 더.

조금만 더.

비오스트는 더욱 깊게 숨을 들이쉬며 탐욕스럽게 라일라의 향기를 제 안에 담으려 했다. 아무리 담아도 부족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닥치는 대로 그것을 그러모으는 것은 본능이었다.

그리고 그는 라일라의 향기를 더욱 진하게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었다.

비오스트는 손을 뻗어, 라일라의 뒤통수를 제 손으로 받쳤다. 그리고 제 얼굴을, 정확하게는 제 입술을 더욱 라일라의 쪽으로 밀착시켰다.

“읏!”

라일라의 혀 아래쪽으로 제 혀를 들이밀고는 강하게 빨아 당기자, 그녀는 작은 신음을 내뱉었다. 더불어 진한 향기도.

라일라는 혀뿌리가 아릴 정도로 비오스트가 자신을 괴롭히는데, 왜 저도 모르게 발끝에 힘이 들어가는지, 왜 그의 옷깃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눈을 감은 채, 비오스트의 키스를 받아들이고, 그가 주는 감각에 온전히 몸을 내맡기고 있을 뿐이었다.

비오스트의 혀가 제 혀를 휘감자 저도 모르게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의 혀가 거칠게 혀를 비벼 올리자 머릿속이 어질어질해졌다. 그리고 그가 라일라의 혀를 뭉텅뭉텅 씹어 삼켰을 때는 온몸에 닭살이 돋아 올랐다.

삼키지 못한 숨과 삼키지 못한 타액을 비오스트가 모조리 앗아 가 버렸을 때는 왈칵 울음마저 터질 것 같았다.

“……아!”

순간 라일라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잊고 있던 것이 생각나서였다.

“자, 자시마…….”

비오스트의 입술에 짓눌려 제대로 발음이 나오지 않았지만, 라일라는 손으로 그를 밀어내고, 고개를 뒤로 당김으로써 제가 하고 싶은 말이 뭔지를 그에게 전하려고 했다.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왜?”

라일라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살짝 입술을 떼어 주며 비오스트는 물었다. 그 말을 할 때도 라일라의 입술이 그의 입술에 살짝 닿았다가 떨어졌다.

“플로랜스가 있잖아.”

그 말에 슬쩍 비오스트가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플로랜스가 거기에 있었다. 라일라의 품에 안겨서 그녀와 비오스트의 사이에.

“그런데?”

물론 비오스트도 그건 알고 있었다. 그래서 라일라의 몸을 끌어안은 것이 아니라 그녀의 뒤통수만 손으로 받친 것이었고, 그녀의 몸과 자신의 몸 사이에 충분한 공간을 둔 채 키스를 하고 있던 것이었다.

가운데에 플로랜스가 있으니까 말이다.

“애가 보잖아.”

라일라의 말에 비오스트는 힐끗 시선을 내려 플로랜스를 다시 쳐다보았다. 하지만 라일라의 말과는 반대로 플로랜스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한 시간도 안 되서 깨더니 제 엄마가 좀 얼러 주었다고 금세 다시 자는 모양이었다.

“안 봐.”

비오스트는 보란 듯이 턱으로 자기 아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고 있네.”

“그래도.”

라일라는 아까보다 더욱 몸을 뒤로 빼며, 플로랜스를 고쳐 안았다.

한층 더 멀어진 라일라의 입술을 보며 비오스트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지금 제 입속에 있어도 모자랄 판에 이렇게 멀리?

“라일라. 아기잖아. 게다가 자고 있고. 아무것도 모를 거야.”

비오스트는 조금 더 라일라 쪽으로 몸을 기울이며 그녀를 유혹했다. 조금 전까지 격한 키스로 비오스트의 입술은 누구의 것인지 모를 타액으로 번들거렸고, 그건 라일라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싫어.”

확실한 거부 의사를 보이며 라일라는 몸을 살짝 틀었다. 비오스트를 보고 있노라면 그의 유혹에 넘어가 버릴 것 같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이나, 저 번들거리는 입술, 또 자신을 간절히 원하는 것 같은 눈으로 쳐다보는 비오스트는 너무…… 야했다.

“라일라.”

은근슬쩍 비오스트의 손이 라일라의 손에 얹어졌다. 얹어진 것이 아니라 유혹적으로 그녀의 피부를 매만지고, 커다란 손이 라일라의 손등을 타고 올랐다.

“비오스트.”

라일라 역시 비오스트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쳐다보았다. 매우 단호한 눈빛이었다. 완강한 거부에 뭔가 말을 하려고 벌어졌던 비오스트의 입술이 다시 닫혔다.

지금 라일라의 삶에 1번은 플로랜스였다. 나머지는 전부 그다음인 게 분명했다. 비오스트조차도 나머지에 속했다.

“좋아.”

항복의 의사를 담아 비오스트는 양 손바닥을 라일라에게 내보였다. 하지만 그게 진짜 항복이라는 뜻은 아니었다.

비오스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그런 비오스트의 등으로는 혹여 자신이 너무 완강하게 거부해서 화가 났을까 봐 염려하는 라일라의 시선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세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궁녀에게 고개를 까닥여 비오스트는 제가 원하는 것을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얼른 고개를 숙이곤 종종걸음으로 어딘가를 향했다.

비오스트는 고개를 돌려 플로랜스를 안고 그가 뭘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눈빛으로 저를 쳐다보고 있는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세실이 얼른 방 안으로 들어왔다. 늘 단정하게 묶여 있던 세실의 머리가 풀어져 있는 것을 보고 비오스트는 조금 의아하다고 생각했지만,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이니 개의치 않았다.

“부르셨습니까, 폐하?”

“플로랜스를 데려가.”

고개를 까닥여 비오스트는 라일라의 품에 안겨 잠이 든 플로랜스를 가리켰다.

“잘 자는데, 왜?”

라일라는 얼른 세실에게 플로랜스를 넘겨 주지 않고 비오스트에게 물었다.

“곧 젖도 먹어야 해.”

“젖먹이 유모가 있잖아.”

“하지만…….”

라일라는 무어라고 말을 하려고 했지만, 이미 비오스트가 라일라의 품에서 플로랜스를 안아 든 뒤였다. 그리고 라일라가 다시 입을 열었을 때는, 비오스트가 플로랜스를 이미 세실의 품에 안긴 뒤였고 말이다.

“세실이 알아서 잘할 거야. 아주 유능한 유모야. 그것도 플로랜스에게 꼭 맞는.”

맞는 말이었다. 대대로 온라이언 황실의 황손들을 키워 왔던 집안의 세실이었다. 비오스트를 키웠던 어머니로부터 비오스트의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평생을 배우고 익혔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물론 세실이 일을 잘하는 건 알아. 하지만…….”

플로랜스를 안고 나가는 세실의 뒷모습을 보며 라일라는 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라일라.”

비오스트는 손을 내밀어 라일라의 이에 짓눌린 아랫입술을 빼내었다. 아까 어찌나 물고 빨았던지 라일라의 입술은 살짝 부풀어 있었다.

“플로랜스는 너무 작아.”

“아기들은 원래 다 작은 것 아닌가?”

“하지만 의사가 그랬어. 플로랜스는 보통의 아기들보다 더 작다고. 내가 내 배 속에 오래 품지 못해서 그럴 거야.”

망할 황실 의원의 주둥이를 꿰매어 버리는 건데!

풀 죽은 라일라의 목소리를 들으며 비오스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지금도 늦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그가 라일라에게 더는 헛소리를 못 하도록 입을 꿰매어 버릴 수도 있었다.

“무슨 소리야? 넌 충분히 오래 플로랜스를 네 배에 품었어. 그 고통 속에서도 말이야.”

“하지만 네가 날 억눌렀잖아. 마법사에게 들었어. 무슨 내 몸에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했다고. 그래서 임신기간은 10개월이지만 플로랜스가 자란 시간은 8개월쯤일 거라고.”

제길! 그 마법사의 입도 꿰매어 버려야 했다.

“8개월짜리 애를 강제로 꺼내 버렸으니, 플로랜스가 작은 거야. 난 그게 너무 미안해.”

“라일라.”

풀 죽은 라일라가 가엾기 그지없어서 비오스트는 가만히 어깨를 감싸 쥐었다.

“그 애를 꺼낸 건 나야.”

살짝 라일라를 제 쪽으로 끌어당기자 라일라는 별 저항 없이 스르륵 그의 품에 안겼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라일라는 여전히 작고, 마르고, 연약했다.

“그러니 굳이 누구를 탓해야 한다면, 내 탓을 해.”

라일라의 정수리에 살며시 입을 맞추며 비오스트는 말했다.

“그건 날 살리려고 그런 거잖아.”

“그래.”

“그러니까…….”

“그러니까 플로랜스는 나한테 고마워해야지.”

엉뚱한 결론에 라일라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귀엽긴!

그게 무슨 소리냐며 동그랗게 뜬 눈으로 물어보는 라일라를 두고 비오스트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도 피식 웃었나?

“플로랜스도 무사히 태어나고, 자기를 이렇게나 생각해 주는 엄마도 무사하게 해 줬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며 비오스트는 은근히 라일라에게 제 몸을 기대었다.

“아기만큼 너도 소중해, 라일라.”

비오스트의 입술이 라일라의 입술에 더 가까이 다가왔다.

“널 좀 더 소중하게 여겨, 라일라.”

그리고 조금 더, 다가갔다. 거의 입술에 닿을 정도로.

“난…… 그게 뭔지 잘 모르겠어.”

살짝, 멀어졌다.

어쩔 줄 몰라 하는 것처럼 라일라의 입술이 어물거렸다.

자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어떤 것인지 라일라는 잘 몰랐다.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알게 해 줄게.”

바싹, 비오스트의 입술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라일라.”

이름을 부르는 순간, 입술과 입술이 닿았다. 두 사람의 숨결이 서로 엉키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