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꽃-84화 (84/88)

84.

그것은 계략이었다.

라일라의 삶에서 1순위가 플로랜스이고 비오스트는 그 외의 나머지에 불과하다면, 1순위를 제거하면 그만이었다. 물론 거칠게 제거하면 안 되었다. 그랬다간 라일라가 영영 자신을 미워할 테니까.

게다가 라일라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그 작은 아기는 좀 얄밉긴 했지만, 퍽 귀엽기도 했다. 특히나 라일라를 닮은 파란 눈이 자신을 쳐다볼 때는 제법 귀엽다고 비오스트도 생각하곤 했었다.

그래서 아주 안전하고, 정성스럽게 플로랜스를 돌봐 줄 세실에게로 아이를 보내 버린 것이었다.

이제부터 플로랜스는 포근한 유모의 품 안에서 어름을 당하고, 젖유모의 미지근한 젖을 마음껏 마시고, 둘 중 누군가의 품 안에서 가벼운 토닥거림을 받으며 트림을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트림 하나에 칭찬을 받고, 눈짓 하나에 예쁘다는 소리를 듣고, 가끔 보여 주는 작은 미소 하나에 껌뻑 죽는 세실과 다른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비오스트가 플로랜스를 강제로 보내 버린 곳은 티끌 하나만큼의 불편함도 없는 곳이었다.

그러고 나면? 라일라는 자신의 차지였다.

“라일라.”

달콤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비오스트는 바싹 그녀의 앞으로 당겨 앉았다. 가운데에 배려해 줘야 하는 플로랜스가 없는 만큼 비오스트의 가슴과 라일라의 가슴이 맞닿았고, 그의 단단한 배도 라일라의 배에 맞닿았다.

그리고 그대로 라일라의 입술을 머금었다.

아까의 키스로 살짝 부어오른 라일라의 입술을 부드럽게 빨아 당겼다. 혀로 그것을 다정하게 훑으며, 그녀의 안으로 들어갔다.

완강하게 비오스트를 밀어냈던 라일라는 더는 그를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눈을 감고 그가 주는 감각을 모두 받아들이려 하고 있었다.

“라일라.”

조용히 자신을 부르는 음성이 달았다.

“네가 없는 동안, 알게 되었어.”

속삭이는 그 숨결이 달아서 라일라는 스스로 비오스트의 입술을 핥아 내렸다. 그에 비하면 훨씬 서툴긴 했지만, 조금 전 그가 했던 것과 똑같이 입을 내밀어 비오스트의 입술을 머금기도 했다.

“네가 얼마나 그리운지.”

비오스트의 입술이 라일라의 턱에 살짝 입을 맞췄다. 그리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갔다.

“네가 얼마나 소중한지.”

라일라의 옷을 잡아당기는 손은 조심스러웠고, 드러난 맨살을 쓰다듬는 손은 다정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드러난 흰 목덜미에 입을 가져다 대자, 작은 탄성이 위에서 들려왔다. 아마 라일라는 모를 것이다. 그 작은 숨과 그 작은 목소리마저도 얼마나 사랑스러운지.

비오스트는 그대로 얼굴을 내려 뽀얀 라일라의 가슴에 입을 맞추었다. 어느새 반쯤 뉘어져 비오스트의 등에 손을 가져다 대고 있던 라일라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이를 낳아서인지, 수유 중이라서 인지, 라일라의 가슴은 이전보다 조금 더 커져 있었다.

“좋은 향기가 나.”

라일라의 가슴에 코를 비비며, 비오스트는 말했다.

“보드랍고, 따뜻한 향이야.”

그리고 달콤한 향이었다. 혀를 내밀어 비오스트가 직접 맛을 보니 그랬다.

“아……!”

말랑하고 부드러운 것을 한 움큼 베어 물자, 라일라의 입에서 신음이 터져 나왔다. 입이 머물고 있지 않은 다른 쪽을 비오스트가 손으로 쥐었다. 이전보다 조금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작은 가슴이었다.

공간이 남지 않도록 살짝 힘을 주어 보드라운 그것의 형체를 무너뜨리자, 라일라의 신음은 더욱 커졌다.

“라일라.”

라일라의 신음을 들으며 비오스트는 입안 가득 보드라운 것을 물었다. 그리고 제 입안에 들어온 것을 다정하게 핥아 주었다.

“비, 비오스트…….”

드디어 라일라가 애타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를 원하고, 그를 갈망하고, 오직 그만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처럼.

“…….”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부드럽게 그녀의 가슴을 쥐고, 손바닥을 밀어 올렸다. 입으로는 살점을 더욱 모아 올리며, 마지막에 남은 그것을 혀로 뭉근하게 비볐다.

“흐읏!”

라일라의 입에서 새된 신음이 터져 나오며, 어깨를 떨었다. 비오스트의 등을 더욱 바싹 끌어안았음은 물론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행동에 비오스트는 기뻤다. 지금 라일라의 머릿속에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있을 테니까.

라일라가 제가 주는 감각에 빠져서,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자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오롯한 충만감이 빠듯하게 비오스트를 채워 갔다.

그는 자신의 침이 잔뜩 묻어 있는 가슴을 다른 손으로 쥐고, 손으로 쥐고 있던 가슴 쪽으로 입을 옮겨 갔다. 그것은 진즉부터 비오스트를 기다리고 있었다.

비오스트가 입술을 가져다 대자, 라일라의 몸이 퍼덕거렸다. 조금 전처럼 살점을 뭉텅 깨물자 새된 신음이 다시 터져 나왔다.

“아, 아! 아앗! 아…….”

그리고 그가 조금 세게 손에 힘을 주고, 입안에 모인 살점을 강하게 빨아 당긴 순간, 라일라가 그의 등을 움켜쥐려는 듯 세게 긁어내렸다.

비오스트는 한쪽 팔로 라일라를 끌어당겨, 경직된 라일라가 제 품에서 파르르 떠는 것을 온전히 느꼈다.

“하아……. 하아…….”

작은 숨소리를 들으며, 비오스트는 붉은 멍울이 남은 뽀얀 가슴에 입을 맞췄다. 처음과는 달리 라일라는 움찔거리지도, 떨지도 않았다.

마치 되짚어 가는 것처럼 비오스트의 입술이 위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가슴을, 쇄골을, 목덜미를, 턱을.

그리고 입술을 끝으로 비오스트가 입술을 뗐을 때 라일라의 눈꺼풀은 닫혀 있었다. 고른 숨소리를 내면서.

비오스트가 원하는 대로였다. 라일라는 좀 더 자고, 좀 더 쉬어야 했다.

일부러 플로랜스를 떼어 놓고, 일부러 좀 피곤하게 만들고, 일부러 좀 나른하게 만들어서라도 말이다.

비오스트는 잠자는 라일라를 조심스럽게 안아 올렸다.

“좋은 꿈을 꾸길 바라.”

침대에 라일라를 내려놓고 나서, 비오스트는 정말 마지막으로 라일라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 * *

그야말로 수리는 억울했다.

“아, 아니. 잠깐만요.”

얼마나 억울하고 당황스러웠던지 말까지 더듬거렸다.

어제 새벽부터 오후까지 황자를 돌봤던 세실에게 저녁부터 휴식시간이 주어졌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휴식이긴 했지만, 어쨌든 그러했다.

그 소식을 미리 수리가 아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황제의 최측근이었기 때문이다.

비오스트가 라일라와 플로랜스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면, 당연히 세실에게는 자유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수리는 준비를 시작했다.

주방에 피 같은 돈을 찔러 주며 근사한 저녁 식사를 차리게 했고, 역시나 피 같은 돈으로 좋은 향기가 나는 초를 준비해서 세실의 방에 켰다.

한껏 멋을 낸 자신이 장미꽃 한 다발을 들고 세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물론이었다. 방에 들어온 세실이 놀란 표정으로 쳐다봤을 때 와인 잔을 들어 올리고 싱긋 웃어 준 것까지, 아주 완벽했다.

저녁 식사를 마시고, 약간의 취기가 오른 세실을 소파에 인도한 것까지도 훌륭했다.

한 잔의 와인을 더 따라 주고, 달콤한 고백을 좀 더 속삭이고, 키스한 순간은 정말이지…… 그보다 더 완벽할 수는 없다고 생각될 지경이었다.

“아!”

수리가 좀 더 세실을 밀어붙이며 키스하자, 세실은 스스로 엉클어진 머리를 풀기까지 했다.

드디어! 드디어!! 라고 수리가 생각한 순간이었다.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두 혀가 맞붙은 채 그대로 딱 굳어 버렸다.

“유모님.”

문이 열리고 비오스트의 명을 받아 세실을 찾으러 온 궁녀가 본 광경은 어째서인지 황제 폐하의 시종은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유모는 언제나처럼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소파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무슨 일이지?”

“아, 폐하께서 찾으십니다.”

저도 모르게 바닥에 쓰러져 있던 수리를 쳐다보고 있던 궁녀는 세실의 질문을 듣고서야 그녀를 바라보며 용건을 전했다.

“바로 가겠다.”

세실은 그 말 그대로 자리에서 바로 일어섰다.

“아니, 저기!”

자기를 두고 떠나려는 세실을 향해 수리는 뭐라고 항변의 말을 하려고 했다. 하지만 세실은 이미 궁녀의 뒤를 따라서 휭하니 방 안을 나가 버리고 말았다.

미안하지만, 잠시만 기다려 달라는 말만을 남기고서.

“…….”

그리고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세실의 품에 플로랜스가 안겨 있는 것을 보고 수리를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오늘 저녁에, 저 작은 황자님은 전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이게 무슨? 아니, 어? 아니, 왜?”

플로랜스를 보며 수리는 말을 더듬었다.

“아, 아니. 잠깐만요. 이건 아니지 않습니까?”

“쉿! 플로랜스 님께서 주무시고 계시니 조용히 해 주세요.”

세실의 말에 수리는 다시 어버버 상태가 되어 버렸다. 억울해 죽겠는데 억울하다고 말도 못 하다니!

“당신 말고 플로랜스 님을 돌볼 다른 사람은 없습니까?”

“폐하께서 저를 부르셨잖아요.”

“아니, 폐하고 나발이고!”

“무엄하시네요. 감히 폐하께 나발이라뇨?”

세실의 인상이 대번 찌푸려졌다.

“게다가 제가 플로랜스 님께서 주무시니 조용히 하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속삭이는 세실의 목소리에는 단호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자 수리는 더욱 억울해졌다.

오늘 세실을 위해서 완벽한 밤을 준비한 것은 자신이었다. 물론, 100% 세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을 위한 완벽한 밤인 것도 있긴 했지만 어쨌든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밤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황제 폐하의 단 한 마디에 그것이 와장창 깨졌고, 작은 아기 때문에 아주 산산조각이 난 것이다. 그런데 세실은 그들의 탓을 하기보다는 수리를 탓하고 있었다.

“플로랜스 님께서 주무셔야 하시니 이만 돌아가시겠어요?”

거기다가 이제는 아예 방에서 쫓겨나고 말았다.

“아니! 내가! 왜! 아니! 왜!”

복도에서 오도카니 서 있던 수리는 갑자기 현실을 자각하고 소리를 질렀다.

정말이지 억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