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하아…… 하아…….”
붉은 피가 하염없이 비오스트의 어깨에서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비오스트는 그것이 아니라 제 앞만 쳐다보고 있었다.
“이게…… 무슨…….”
복부에 자신의 검이 박힌 황제의 모습만이 비오스트의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이럴…… 리가 없는…… 데.”
황제 역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자신의 배를 꿰뚫고 있는 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라이언의 신성한 피를 이어받은, 그의 이름의 계승자인 자신은 무적이었다. 압도적인 권력과 압도적인 힘으로 그 누구도 자신을 위협할 수 없었다.
같은 온라이언의 피라도 계승자가 아닌 르미에르나 비오스트와는 차원이 다른 힘을 가진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의 배에 검이 꽂혀 있었다.
그것도 한낱 자신의 피조물이며, 자신의 혈통을 잇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비오스트가 꽂은 검이었다.
이럴 리가 없었다.
이럴 수가 없었다.
“뭐가 잘난 온라이언의 힘이야.”
꼴좋다는 듯이 황제를 내려다보며 비오스트는 한쪽 손을 그의 배에 꽂힌 검에 가져다 대었다.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말을 하고 있었지만, 황제의 발톱이 꽂혔던 팔은 들어 올리기는커녕 점점 감각이 없어지는 중이었다.
“당신은 내가 재규어로 변하지 않아서 어리석다고 했지? 천만에. 변한 당신이 어리석었어.”
“……뭐?”
아직도 지금의 상황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황제는 멍한 눈으로 비오스트를 쳐다보았다.
“온라이언의 인간은 강해. 재규어로 변하면 더욱더 강하지. 당신의 말대로 그 누구도 감히 덤비지 못할 만큼.”
비오스트는 한 손으로 검을 꽉 쥐었다.
“하지만 그 중간은 그저 어중간할 뿐이야.”
처음부터 그 점을 노리고 있었던 비오스트였다. 일부러 그를 자극하는 말을 고르고, 자신의 야욕을 아낌없이 드러내며, 황제가 재규어로 변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변신의 순간, 그의 앞발이 먼저 변해서 날카로운 발톱으로 자신의 어깨를 찍어 내린 그 순간, 비오스트는 아직 인간인 채인 황제의 복부에 검을 찔러 넣었다.
만약 그가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검을 막아 냈을 것이다. 맨손으로 검을 막는 것쯤이야 황제에게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엄청난 근육을 가진 커다란 앞발은 그럴 수가 없었다.
그리고 만약 그가 재규어로 변신을 완료한 상태였더라도, 비오스트는 그의 배에 검을 찔러 넣을 수 없었을 터였다. 인간의 힘으로는 신의 화신과 같은 재규어에게 그런 치명상을 줄 수 없었다.
그러니, 그 중간이어야 했다. 재규어도, 인간도 아닌 그때를 비오스트는 노렸던 것이었다.
“온라이언의 마지막 계승자여.”
비오스트는 황제를 쳐다보았다.
그가 평생을 두려워했던 자였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인제 그만 뒈지시길.”
비오스트는 그대로 힘을 주어 그대로 손을 위로 쳐올렸다. 살과 뼈를 가르는 끔찍한 소리와 함께 그의 검이 허공까지 치솟아 올랐다.
분수같이 솟아오른 피가 하얀 벽과 천장에 흩뿌려졌다. 그리고 그 앞에 서 있던 비오스트에게까지도.
“하아…….”
비오스트는 참고 있던 숨을 내뱉었다.
툭.
검을 들고 있던 손에 힘을 풀자 피에 젖은 카펫 위로 검이 떨어졌다. 비오스트는 비틀거리며 문을 향했다.
피를 너무 흘렸는지 어지러웠지만, 아직 남은 것이 있었다.
“저, 전하?”
“황태자 전하!”
황제와 황태자의 독대를 위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들이 피투성이의 비오스트가 걸어 나오자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안이 소란스러웠지만 둘을 방해할 수 없었기에 대기하고 있던 자들은 어안이 벙벙했다.
“폐, 폐하!”
“황제 폐하!”
비오스트를 지나쳐 안으로 들어간 이들의 비명 섞인 목소리가 그들의 황제를 부르짖었다.
황실 의원을 부르라느니 하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어지간한 멍청이가 아니라면 상체가 세로로 두 동강이 난 사람이 살아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을 테니.
“전하, 이게…….”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들어오지 말고, 황제의 측근 쪽이 들어오려고 해도 절대 막으라는 명을 받은 수리는 비오스트의 곁으로 다가오며 그가 상황을 설명해 주기를 바랐다.
“수리.”
또 그 눈이었다.
퀭하고, 광기가 번들거리는 눈. 미친놈의 눈.
그 눈이 수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반란이다.”
히죽, 미친놈이 웃었다.
그리고 그대로 쓰러졌다.
* * *
눈을 뜨자 익숙한 천장이 보였다. 눈치 빠른 수리는 쓰러진 비오스트를 황태자의 침소가 아니라 라일라의 방에 눕혀 놓았다.
비오스트는 이곳이 어디인지를 인지하고 나서 이내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
“읏!”
그 순간 어깨에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신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아니, 찌르는 듯한 통증이 아니라 찔렸던 자리에서 느껴지는 통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황제의 발톱이 그의 어깨를 관통한 자리가 아픈 것이었으니까.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빠르게 상처가 아물 것이고, 곧 흉터만을 남긴 채 아무렇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픈 것은 아픈 것이었다.
비오스트는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살짝 숨을 들이마셨다. 아주 옅지만, 아직 남아 있는 라일라의 향기가 느껴지기를 기대하며.
“젠장!”
하지만 자신의 상처에서 나는 피 냄새가 너무 강해서 라일라의 향이 느껴지지 않자 저절로 그의 입에서는 욕설이 흘러나왔다.
“아, 일어나셨습니까?”
창가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던 수리가 그 욕설 소리를 듣고 퍼뜩 정신을 차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말했잖아. 반란이라고.”
비오스트는 제가 덮고 있던 이불을 움켜쥐고 그대로 코로 가져갔다. 그리고 다시 라일라의 향을 맡는 것을 시도해 보았지만, 역시나 방 안에 가득한 피 냄새 때문인지 라일라의 향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황제를 죽였고, 제 1황위 계승자인 내가 황제가 되는 거야. 즉위식 날짜나 알아봐.”
그는 황제가 되는 일이 가게에서 빵 한 덩이를 사는 것처럼 가벼운 일인 것처럼 수리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치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폈다 쥐었다를 하고 있었다.
‘황제를 죽인다고 해서 온라이언의 힘이 자연적으로 계승되는 것은 아닌가 보군.’
황제는 이제껏 비오스트에게 정확하게 온라이언의 힘이 어떻게 계승되는지 알려 준 적이 없었다. 그저 황제의 지위와 함께 후대로 이어지는 것이라고만 말했을 뿐이었다.
아마 계승의 비밀을 알게 되면 비오스트가 흉계를 꾸며 힘을 빼앗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였을 것이다.
온라이언의 힘은 매우 강력했으며, 그것을 얻으면 막강한 권력과 지위를 동시에 얻는 것이었으니, 당연히 누구나 그것을 탐낼 것이라고 생각했다.
‘뭐, 상관없지.’
하지만 정작 비오스트는 그 힘에 아무런 욕심을 내지 않았다. 애초에 그것을 얻고자 했던 것은 황제를 죽이기 위해서였다. 이미 그를 죽인 지금은 그 힘 따위 필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제 말은 대체 어떻게 폐하를…… 그렇게 만드신 겁니까?”
그래도 전 황제에 대한 예우를 차리려는 것인지 수리가 조심스럽게 에둘러서 물었다.
“아니, 그렇게 하실 수 있으면서 이제까지는 왜 안 하신 거고요?”
제일 궁금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비오스트가 진작에 황제를 죽였으면 이제껏 제가 이렇게 똥줄 빠지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라일라를 데려오는 것도, 그 가엾은 소녀를 속이는 것도, 거기다가 그녀가 도망갔다고 찾는 것도, 가장 중요한 것은 세실이 그렇게 고생하지도 않고, 그래서 자신을 차지도 않고, 그녀를 보호하려고 그렇게 기를 쓰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그동안은 안 한 게 아니라, 못 했던 거야.”
비오스트는 드디어 냄새 맡기를 포기했다. 지금 상태로는 빌어먹을 코가 빌어먹을 피 냄새만 맡을 수 있었다.
“못 했던 거면, 어떻게 갑자기 할 수 있게 되신 건데요?”
“라일라 덕분에.”
“네?”
갑자기 여기 있지도 않은 사람의 이름을 꺼내자 수리는 더욱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
“블레어 백작가에서 라일라에게 보낸 암살자를 기억해?”
“아, 네.”
잊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날 일로 인해서 명망 높은 백작가가 몰락했는데, 거기다가 그 일을 실질적으로 지휘한 사람이 자신인데 어찌 잊을 수 있을까?
“그때 깨달았어. 그때가 바로 온라이언들의 약점이라는 것을.”
쓰러지는 라일라를 보며 비오스트는 그녀에게 달려갔었다. 그녀를 안아 주기 위해서 다시 사람으로 변하면서.
그리고 그 순간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었다. 뻗는 손이 앞발이 아니라 손으로 변하는 것이 너무도 더디게 느껴졌고, 그래서 그녀를 곧바로 안아줄 수 없어서 안타까웠다.
그녀를 안아 주기 위해서 사람으로 변하자, 빠른 재규어의 다리 대신 인간의 다리로 변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람과 짐승이 동시에 될 수는 없었다.
이전에는 한 번도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었다.
자신은 빨랐고, 재규어는 더욱 빨랐으며, 변하는 그 순간은 몇 초 걸리지도 않는 순식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라는 것을 그날 처음 깨달았었다.
변신하는 그 순간이 사실은 생각보다 길다는 것을, 변신을 하는 중의 그 순간은 사람도 짐승도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그 순간이 바로 약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것을 뭉텅 빼 버리는 통에 하나도 이해하지 못한 수리는 멍청하게 되묻는 수밖에 없었다.
“귀족들에게는 적당히 말해. 굳이 사실대로 말을 할 필요는 없겠지. 그저 폐하께서는 오랜 지병으로 갑작스럽게 승하하셨다고 해.”
“물론 그렇게 처리할 예정이기는 합니다만…….”
“대충 정리되는 대로 즉위식을 거행하도록 하지.”
비오스트는 수리의 말을 싹둑 잘라 내며 말했다.
“근데, 즉위식이라는 것이…….”
“최우선은 라일라야.”
뭐라고 말하려는 수리의 말을 이번에도 싹둑 잘라 내며 비오스트는 명령했다.
“라일라를 찾아. 빨리.”
비오스트의 모든 행동과 모든 생각의 원인은 그것이었고, 결론도 결국 그것으로 귀결되었다.
라일라를 찾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