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창밖에 일렁이는 횃불을 처음 봤을 때, 라일라는 드디어 올 것이 왔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드디어 죽음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되레 마음이 차분해지기까지 했다.
다만 지금 오두막에 얌전히 틀어박혀 있다가 그들이 자신을 끌고 나갈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지, 먼저 밖으로 나가서 순순히 잡히는 것이 나은지 그것이 문제였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결과는 같을 것이지만.
라일라는 그 언젠가 남작저에서 보낸 물품 중에 있었던 그림책을 떠올렸다. 그 책에는 마녀를 어떻게 분별해 내는지, 그리고 어떻게 죽여야 하는 지가 그려져 있었다.
글을 모르는 제 언니를 위해서 친절한 아리아드네가 특별히 잔인한 그림이 그려진 것으로 손수 골라서 보낸 책이었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나온 것은 쌓아 올린 장작들 위에서 긴 장대에 묶여 불에 타 죽는 마녀의 그림이었다.
“뜨겁겠다.”
남의 일처럼 라일라는 중얼거렸다.
“아프려나?”
당연한 이야기였다. 실수로 손가락이 조금 데도 아픈데, 불에 타 죽는다니,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일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마녀를 화형에 처하는 것이리라.
고통 없이 죽는 것이 최고의 소원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차피 이 삶이 더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게다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르는 삶보다는, 불에 타 죽는 것이 짧은 시간이리라.
“휴우…….”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오두막을 둘러보았다. 비참하고 초라한 자신의 인생을 끝마치기에 안성맞춤인 거지 같은 오두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라일라의 눈에 들어온 것은 오늘 낮에 정성을 다해서 끓였던 스튜였다.
사냥은 결국 실패했다. 라일라는 덫의 아가리를 벌릴 수 없었고, 그것은 나뭇가지를 입에 물고서 숲에 버려져 있었다. 대신, 라일라는 일전에 시장에서 샀던 스튜용 고기로 다시 비프스튜를 끓였다.
평소라면 그 정도 양의 고기가 생기면, 아껴 먹는다고 고기의 흔적이 남을 정도만 넣어서 비프스튜를 끓였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아낌없이 있는 고기를 전부 넣었다. 감자도, 양파도 아끼지 않았다.
비록 스테이크를 해 줄 수 없었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 주고 싶었다.
“못 먹게 됐네…….”
아까웠다.
혹시나 또 찾아올까 해서 정성을 다해서 끓였는데.
혹시나 잘 먹어 줄까 해서 냄비 가득 끓였는데.
라일라의 시선이 창밖으로 옮겨 갔다. 아까보다 성큼 다가온 횃불들이, 성난 군중들이 보였다.
왜 하필 오늘이었을까.
하루만 더 기다릴 수 없었는지, 그 남자가 와서 저 스튜를 맛볼 때까지 기다려 줄 수는 없었는지, 원망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조금만…… 더…….”
그토록 기다렸던 순간인데, 막상 때가 닥치자 미루고 싶어진 라일라였다.
그녀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러는 자신을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었다.
문을 열자, 창문 너머로 보이던 사람들이 더욱 선명하게 보였다. 그들의 눈에 어린 화, 두려움, 의지 같은 것들도 더욱 선명했다.
“마녀야! 우리는 너를 처단하기 위해서……!”
“돌아가.”
선두에 있던 남자의 우렁찬 외침은 중얼거리듯, 내뱉은 라일라의 말 때문에 채 끝맺음을 맺지 못했다.
마녀의 입에서 나온 단어에 잠시 횃불이 술렁거렸지만, 그렇다고 그 말대로 순순히 돌아가지는 않았다.
“처단은 다음에 당할 테니까, 돌아가라고.”
그들이 물러나지 않자 라일라는 다시 한번 말했다.
마치 오늘은 물건이 없으니 다음에 오라고 말하는 가게 주인처럼 자신의 목숨을 헐값에 팔아넘기고 있었다.
“그, 그럴 수는 없다!”
라일라의 말 때문에 당황했던 한스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다시 용감하게 소리쳤다.
“어째서?”
“마녀의 처단은 우리 마을의 숙원으로 우리는 편안한 밤과 안락한……!”
“21년이나 참았으면, 하루 이틀 정도 더 참아 줄 수 있잖아.”
담담하게 말하는 라일라의 말 때문에 이번에도 한스의 말은 끊기고야 말았다.
“아니, 우리는 더 못 참아.”
번번이 말이 끊기는 바람에 날카로워진 한스는 단호하게 라일라의 청을 거부했다.
“뭘 못 참겠다는 건데?”
새파란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스산한 바람이 마녀와 사람들의 사이에 불었다. 마녀의 뻣뻣한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핏기 없는 얼굴에는 표정마저 사라졌다.
“당신들이 대체, 뭘 참았는데?”
한 명, 한 명, 눈을 맞춰 가며 묻는 마녀의 질문에 대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새파란 눈빛이 자신을 쳐다보자 저도 모르게 주춤거리며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날 뿐이었다.
“내가, 도대체, 너희들한테, 뭘, 잘못했어?”
한 단어씩 끊어 가며 이야기를 하는 라일라의 목소리에 천천히 감정이 실리었다.
“내가 정말 어린애들을 잡아먹기라도 하는 걸 봤어? 정말 너희 동네에 사라진 애가 있어? 내가 저주를 내려서 죽은 사람이라도 있어? 마을에 역병이라도 들었어? 대체 내가 너희들한테 뭘 잘못했어!”
라일라의 마지막 말은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20년이 넘도록 토해 내지 않았던 그녀의 감정이었다.
외롭다고 느껴도, 말할 수 없었다. 슬프다고 느껴도 말할 수 없었다.
들어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으니까.
라일라는 혼자였으니까.
“살아 있는 것.”
하지만…… 마녀의 절규를 안타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마녀였고, 마녀는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평범한 인간에게는 불안이었고, 위협의 싹이었다.
“네가 우리 주변에 악취를 풍기면서 살아 있는 것. 그게 가장 잘못이야.”
어느 한 남자의 말에 라일라는 가만히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덧 아까의 절규하던 감정은 유리병 속의 모래알처럼 가라앉아 있었다. 대신 라일라는 피식, 웃어 버렸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논쟁은 허무했다. 그의 생각은 라일라의 평소 생각과 일치했다.
“이런 냄새나는 마녀가 살아 있는 것 자체가 잘못이긴 하지. 하지만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내가 이렇게 태어난 것이 잘못된 일인 거야.”
“흥! 궤변을 늘어놓는 걸 보니, 역시 마녀로군. 그런 헛소리로 우리를 현혹하려는 거지?”
“마음대로 생각해.”
라일라는 힐끗, 오두막 안을 바라보았다.
항상 죽음을 꿈꿔 왔던 라일라였는데, 그토록 원하는 순간이 바로 눈앞에 있는데 자꾸만 미련이 남았다.
스튜.
비오스트.
“……젠장.”
라일라는 혼자 욕설을 중얼거렸다.
“역시 안 되겠어. 다음에 다시 와. 며칠 뒤에 죽어 줄게.”
“흥! 시간을 벌려는 속셈이지!”
“마음대로 생각해. 여하튼 며칠 뒤에 다시 오면 얌전히…….”
“남작님께 도움을 청하려는 거라면 소용없어!”
며칠 뒤에 얌전히 죽어 줄 테니, 그때 다시 오라는 말을 라일라가 하려는 순간, 한스가 소리쳤다. 번번이 자신의 말을 끊었던 라일라에게 복수를 하려는 듯이 말이다.
“발렌시아 남작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지지하고 계시다.”
“그게…… 무슨 소리야?”
“발렌시아 남작님께서 마녀 토벌에 허가를 내리셨다는 말이다.”
더는 창백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라일라의 얼굴이 더욱 창백해졌다. 하얗다 못해 새파랗게 비쳐 보일 만큼.
“아버님께서…… 마녀 토벌을…… 허락하셨다고?”
“그렇다!”
“날…… 죽이라고…… 말했단 말이야?”
라일라는 자신의 딸을 죽이라고 말을 하는 발렌시아 남작을,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렸다. 아니, 떠올리려고 했다. 하지만 할 수 없었다.
라일라는 자신의 아버지를 본 지 이미 너무 오래되었다. 아버지뿐만이 아니라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저택에 있을 때도 만나 뵙기가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오두막으로 쫓겨나고 나서는 더욱 볼 수 없었다. 그래서 라일라는 제 부모님이었지만, 그들의 지금 모습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마녀를 물리치자!”
“마녀를 죽이자!”
어지러운 목소리가 라일라의 귀를 때렸다.
자신의 혈육이 자신을 죽이라고 말했다는 충격에 휘청거리는 라일라를 향해서 횃불의 무리들이 다가왔다.
비틀거리던 라일라가 간신히 중심을 잡고 앞을 바라보자, 어느새 사람들은 바로 눈앞까지 와 있었다.
“읏!”
너무 가까이 들이댄 횃불의 뜨거움이 라일라를 덮쳤다. 머리카락 일부가 열기를 견디지 못하고 타들어 가자 순식간에 고기가 불에 그을리는 냄새를 풍겼다.
“역시 마녀다! 불을 무서워한다!”
뜨거움을 피하려 버둥대는 라일라를 보며 누군가 소리쳤다.
“마녀를 화형에 처하자!”
억센 손 하나가 라일라의 한 팔을 붙들었다. 그것이 신호인 양, 다른 손이 다른 편 팔을 붙들었다.
“이것 놔!”
라일라가 그렇게 소리쳤을 때는 이미 달려든 다른 손들이 그녀의 양발도 붙든 뒤였고, 라일라는 너무도 가볍게 허공으로 들어 올려졌다.
붙잡힌 팔을 움직여 보려고 해도 억센 사내들의 악력에 꼼짝할 수 없었다. 다리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팔보다 가는 라일라의 다리는 그저 움찔거리는 것이 다였다.
“놔! 놓으라고!”
모두가 두려워하는, 너무 무서워서 밤잠을 설쳐야 하는 마녀였건만, 그 마녀의 명령을 듣는 사람은 없었다. 집에서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을 어여쁜 아내와 귀여운 딸보다도 가벼운 몸을 사냥감처럼 들어 올려 마을 광장의 화형장으로 데려가고 있을 뿐이었다.
“으아아아악!”
갑자기 뒤쪽에서 남자의 비명이 들렸다.
다행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머리는 붙잡히지 않은 라일라가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어두운 밤인 데다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지라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비명에 놀란 것은 라일라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팔다리를 붙들고 있던 사람들도, 위협하듯 횃불을 들이대고 있던 사람들도, 그녀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순간 행동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이 마녀처형단의 대장 격이었던 한스는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파악하려 손에 쥔 횃불을 이리저리 비추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자, 결국 그는 횃불을 들고 무리의 사이를 가로질렀다.
그 순간, 한스의 눈에 저 뒤쪽에서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던 횃불 하나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으윽!”
신음과 같은 비명과 함께.
그리고 바닥에 떨어진 불이 그것을 쥐고 있던 사람을 깔아뭉개고 있는 늠름한 것의 형체를 비추었다.
“……!!”
“저, 저게 뭐야!!”
“으아아악!!”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미, 미친!!”
한스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