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달콤한 딸기를 하나를 씹으며 비오스트는 새삼스럽게 오두막을 둘러보았다. 허름하고 초라한.
달큼한 과육을 이로 으깨고, 혀로 유린하며 비오스트는 눈앞의 라일라를 쳐다보았다.
서툴기 짝이 없는 손놀림으로 차를 우리고 있었다. 게다가 그 차라는 것도 찌꺼기나 다름없는 수준의 것으로 보였다.
“왜 여기서 살아요?”
툭 던진 비오스트의 말에 차를 따르던 라일라의 손이 멈칫했다. 그리고 여전히 불만이 가득 찬 표정으로 비오스트를 바라보았다.
“그건 왜 묻죠?”
별걸 다 물어본다는 듯이 말했지만, 의표를 찔린 사람처럼 손이 살짝 떨려서 몇 방울의 차가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어여쁜 아가씨가 숲에 혼자 사는데, 누구나 다 궁금하지 않을까요?”
어여쁜이라는 말에 다시 몇 방울의 차가 테이블에 흘렀다. 또다시 찌푸린 표정의 라일라가 비오스트를 응시했다.
“당신 변태야?”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자신을 걱정하는 사람에게 갑자기 변태냐고 묻자, 비오스트는 다시 질문을 넘겨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야 더러운 냄새가 나는…….”
거기까지 말하던 라일라가 아차 싶었던 듯, 말을 멈췄다.
“……냄새가 나는?”
비오스트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순진한 표정을 하고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라일라는 첫날에 비오스트가 냄새를 맡지 못한다고 했던 것을 생각해 내곤 얼른 얼버무렸다.
그랬다. 그는 자신의 악취를 맡지 못했다. 그러니까 저렇게 평온한 표정을 하고 있을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다들 인상을 찌푸리고, 코를 틀어막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바로 오늘 시장에서 만난 사람들처럼.
“라일라? 차가 넘치네요.”
“앗!”
찻잔을 채우고 넘치고 있는 차를 보며 라일라는 그제야 찻주전자를 위로 올렸다. 허둥지둥 닦을 것을 가지러 가는 라일라의 얼굴에서 확연한 동요가 느껴졌다.
그때는 돈이 급해서, 오두막에 찾아온 사람이 너무나 오랜만이라서 그냥 넘겨 버렸었다. 하지만 그의 말에 라일라는 새삼스럽게 비오스트가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했다.
그는 자신의 냄새를 맡지 못했다. 그에게만은, 라일라는 평범한 여자였다!
“괜찮아요. 내가 할게요.”
비오스트는 라일라의 손에 들려 있던 마른행주를 스스로 쥐었다. 지금쯤 남작의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을 수리가 보았다면 기겁했을 광경이었다.
고귀하신 황태자의 손에 행주라니!
“혹시나 손이라도 데면 안 되니까요.”
행주가 천천히 젖어 들기를 기다리며 비오스트는 그렇게 말했다. 사실 행주질을 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 줄도 몰라서 그저 물 위에 행주를 얹어 놓았을 뿐이면서.
“이건 이대로 먹는 게 좋겠네요.”
비오스트는 찻잔 가득히 차가 든 잔을 옆으로 살짝 밀었다. 그러자 차가 출렁거리며 바깥으로 더 흘러넘쳤다.
“이런…….”
그는 옆에 있던 행주를 다시 집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찻잔의 옆에 행주가 차를 흡수하도록 놓아두었다.
“이런 거 닦아 본 적 없죠?”
“들켰나요?”
라일라의 말에 비오스트는 순순히 실토했다.
“하지도 못하면서 왜 한다고 한 거예요?”
라일라는 찻잔을 조심스럽게 들어서 옆에 놓아두고, 그 자리를 닦아 냈다.
“그러게요. 내가 왜 그랬을까요?”
비오스트는 선선히 행주를 내어 주고, 다시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라일라는 바지런하게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
“평생 걸레질 한 번 안 해 본 귀족 도련님 아닌가요?”
“그것 역시 맞네요.”
귀족이 아니라 황족이긴 했지만.
“귀족 도련님이면 어울리는 곳에 있어요. 이런 시궁창 같은 곳에 오지 말고요.”
“나도 잘 모르겠어요. 이상하게…… 이 집에 오면 그렇게 되네요. 안 하던 짓을 하게 돼요.”
이건 또 무슨 소리냐는 듯, 라일라가 찌푸린 표정으로 비오스트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턱을 괴고 라일라를 쳐다보았다. 마치, 어떤 아름다운 물건을 감상이라도 하는 것처럼 눈빛 가득 선의와 찬양을 담고서 말이다.
“이상하게 어두운 집이 신경 쓰이고, 혼자 무서울까 봐 걱정되고, 혹시 손이라도 데지 않을까 마음이 쓰이고.”
비오스트의 시선이 라일라의 얼굴을 타고 내려갔다. 갸름하다 못해서 날카로울 정도의 턱선을 타고, 한 손으로도 부러뜨릴 수 있을 것 같은 가느다란 목선을 타고, 움푹 팬 쇄골도 지났다.
더 아래로 내려간다면 라일라는 소리를 지를 참이었지만, 비오스트의 시선은 옆을 향했다.
뼈에 간신히 살이 매달려 있는 수준의 앙상한 팔을 지나, 손가락뼈가 여실히 보이는 손까지. 거기에서 비오스트의 시선이 멈추었다.
“다쳤어요?”
그의 말에 라일라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낮에 시장에서 넘어지면서 손바닥에 쓸린 상처가 보였다. 붉은 핏방울이 맺힌 상처는 이제 아프지도 않았다.
“넘어졌나 봐요.”
아주 자연스럽게 비오스트가 손을 뻗어 라일라의 손목을 쥐었다. 부러질 듯 가는 것은 목만이 아니었다.
“저런……. 아팠겠네요.”
중얼거리는 비오스트의 목소리에 라일라는 홀린 듯이 가만히 있었다.
누군가, 라일라의 상처에 신경 쓰고 있었다.
누군가, 라일라의 아픔에 공감해 주고 있었다.
누군가, 라일라를 더럽다고 말하지 않고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었다.
기억하기로는 거의 처음으로 타인의 살갗이 라일라의 살갗에 닿았다. 미묘하게 따스한 그 감각에, 처음으로 느끼는 타인의 피부에 라일라의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약도 바르지 않은 모양이네요.”
천천히 비오스트의 입술이 라일라의 손바닥으로 향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는 라일라는 기괴한 체온만을 신경 쓰며 그것을 그대로 바라보고 있었다.
“읏-”
까칠한 혓바닥이 라일라의 손바닥을 쓸었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손목을 뒤로 빼려고 했지만, 이미 잡혀 있는 터였다.
다시 한번, 비오스트의 혀가 녹진하게 그녀의 손바닥을 쓸고 지나갔다. 상처를 핥아서 따가운 것인지, 아니면 누군가가 핥아 준다는 것이 이렇게 까칠한 느낌인지 라일라는 알 수 없었다.
“뭐, 뭐 하는 거예요?”
“침을 바르는 거예요.”
“치, 침?”
“상처에는 원래 침을 바르잖아요?”
“원……래?”
당황스러워하는 라일라의 표정을 보며 비오스트는 그저 싱긋이 웃었다.
“네. 원래 그런 거예요.”
그럴 리가.
비오스트는 손가락이 가시에 찔리는 것만으로도 황실의 주치의가 달려오는 황태자셨다. 처음에 그 모양을 보고 수리가 ‘아니. 그 정도는 그냥 침 바르면 낫는 것 아닙니까?’라고 말을 해서 민가에서는 그러는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던 것뿐이다.
하지만 숲속 오두막에 혼자 사는 아가씨는 그것도 몰랐던 듯했다.
아니, 사실은 남작의 딸이라고 했던가?
“흐읏-”
다시 한번, 비오스트가 혀를 내밀어 그녀의 손바닥을 쓸어내렸다. 이번에는 조금 미묘한 반응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신음은 신음이되 아까와는 약간의 높낮이를 달리하는 신음이었다. 아픔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품고 있는.
비오스트는 일부러 못 들은 척을 하며, 이번에는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대고, 상처를 오목하게 빨아 당겼다. 별로 살점도 없는 손바닥 살이 비오스트의 입안으로 가득 빨려 들어왔다.
‘태어날 때부터 악취를 풍기는 저주를 받아서 태어난 남작의 딸이랍니다.’
어젯밤 여기저기서 소문을 수집해 온 수리의 목소리가 비오스트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어릴 적에는 저택에서 살았던 모양인데, 좀 커서…… 아니, 10년 이상 저택에 없었다고 하니, 커서도 아니죠. 어릴 때 그냥 숲속 오두막에 버려져서 혼자 살았다고 합니다.’
입안에 모인 살점을 윗니로 누르며 세게 혓바닥을 쓸어 올렸다. 굳었던 핏방울이 이제야 녹아내린 것인지 비릿한 혈향이 비오스트의 입안에 감돌았다.
‘마녀라고 불리니 당연히 친구도 아무도 없고, 가족들한테도 버림받았으니 가엾긴 하네요.’
예상대로 달았다.
라일라의 피는 향긋했고, 달았으며, 또 그를 미치게 했다.
아주 조금만이라고 생각했었다. 모처럼이니 조금 맛이라도 볼까? 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막상 맛을 보니, 맛만으로 끝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으읏!”
게다가 보라. 그녀도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가만히 제 손을 맡기고, 달큼한 신음을 뱉어 내고 있을 리가 없었다.
비오스트는 다시 한번 라일라의 손바닥 살점을 베어 물었다.
아니다. 손바닥에서 끝날 수가 없었다.
그는 단번에 자리에서 일어나 쥐고 있던 손목을 당겨 라일라를 끌어 안았다. 비오스트를 안달 나게 만들었던 아찔한 향기가 바로 그의 코끝에서 강렬하게 향을 내뿜고 있었다.
“당신을 보면…….”
향기로운 그녀의 머리칼에 자신의 코를 묻고, 비오스트는 간신히 입을 뗐다.
라일라의 강렬한 향에 머리가 어떻게 되어 버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맹세코, 이렇게 자제력이 없는 자신은 처음이었다.
“내가 변하는 것 같아요.”
사실이었다. 그녀의 향을 맡으면, 비오스트는 사람이 아니라 짐승이 되고 싶었다.
이성 따위는 개나 줘 버리고, 그저 발정기의 짐승처럼 라일라만을 물고, 빨고, 핥고, 탐하고 싶었다.
“나와 같이 가요.”
조그만 귀가 비오스트의 입술에 닿는 것을 느끼며, 바싹 입을 가져다 대고 속삭였다. 움찔하며 자신에게 닿아 있는 라일라가 굳는 것이 느껴졌다.
“내가 이 빌어먹을 시궁창에서 구해 주겠어요.”
비오스트는 다시 한번 라일라의 향을 깊게 들이마셨다. 아니, 마시려고 했다. 라일라가, 그 조그만 몸에서 어디서 힘이 나왔는지 강하게 그를 밀쳐 버리지 않았다면 말이다.
평소였으면 근육질의 비오스트가 깡마른 라일라 따위가 민다고 해서 밀릴 리가 없었을 테지만, 한껏 그녀의 향기에 취해 있던 비오스트는 저도 모르게 두어 발자국 떨어져 나오고 말았다.
“……라일라?”
“당신은 날 구할 수 없어.”
살짝 상기된 붉은 뺨을 하고, 살짝 거칠어진 호흡을 다듬으며 라일라가 말했다.
비오스트는 당황스러웠다. 친구도 없는, 가족에게서도 버림받은 여자였다. 조금만 다정하게 대해 주면 바로 넘어올 줄 알았다.
이런 초라한 오두막에 사는 저 여자에게 자신은 갑자기 나타난 구원자요, 구세주였다. 당연히 그러겠노라는 대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라일라의 입에서는 거절의 말이 튀어나왔다.
“라일라.”
“내가 시궁창 같은 이곳에 있는 게 아니야. 내가 시궁창 그 자체인 거야.”
새파란 눈이 슬펐다.
고집스럽게 꾹 다문 입인데, 무언가 노려보는 것 같은 표정인데, 이상하게도 새파란 눈만은 슬퍼 보였다.
비오스트가 보기에 지금 라일라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