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남작님, 이건 정말 너무합니다!”
차마 저택 안까지는 들어가지 못하고, 정원에 우르르 몰려든 사람의 표정은 하나같이 다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선두에 선 것은 정육점 주인이었다.
“자자, 다들 진정하시게.”
살짝 난처한 표정을 한 남작이 한 손을 들어 사람들의 화가 손에 잡히는 양, 아래로 눌렀다.
“정말이지, 마녀 때문에 불안해서 못 살겠습니다.”
정육점 주인의 불만 어린 목소리에 남작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 문제일 줄 알았다. 그게 아니라면 신분 질서가 엄격한데 감히 평민들 주제에 이렇게 자신의 저택으로 몰려올 이유가 없었다.
감히 남작에게 불평불만을 놓을 만큼 위협적인 것이라면, 마녀밖에 없었다.
“어제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십니까? 대낮에 시장에 내려온 마녀가 사람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갔습니다.”
“어제 말인가?”
“네! 그리고 오늘 아침에는…….”
남자의 말이 잠시 끊겼다. 잠깐 망설이는 듯하던 남자는 굳은 결심을 한 표정으로 남작을 바라보았다.
“그게 안 섰습니다.”
“뭐?”
“남자라면 아침에 그게 서는 것이 정상 아닙니까! 근데 제가…… 오늘은 그게…… 얌전히 누워 있었습니다.”
자존심이 상하는지 남자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남작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아래로 떨어져 남자의 다리 사이를 향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바지 속의 것을 상상해 버린 남작은 비위가 상해 인상이 찌푸려졌다.
“이대로 영영 서지 않는다면, 저는!!”
정육점 주인은 울상을 하며 말을 채 잇지 못했다. 남자로서 가장 끔찍한 결말이었다. 남작 역시도 혀를 차며 고개를 내저었다. 같은 남자로서 그의 절망에 공감한 까닭이었다.
“원래 저는 어마어마한 남자였습니다. 제 아내인 마리는 밤마다 제 덕분에 지옥과 천국을 오간다고 말할 정도라니까요.”
참고로 그의 아내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어마 무시한 것이 오늘 아침에는 새색시처럼 얌전하게 누워 자고 있었습니다.”
덧붙이자면, 남자의 것은 어마 무시한 적도 없었으며, 오늘 아침 그것이 얌전한 것은 어제 하루 종일 라일라가 말한 저주를 생각하며 오들오들 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라일라의 저주가 두려워 잔뜩 떨고 있던 그가 심리적으로 만들어 낸 신체 현상일 뿐이었다.
“정말이지, 아무리 남작님의 따님이라고 하지만! 저희는 정말로 불안해서 이렇게는 더 못 살겠습니다.”
“자네 말대로 내 딸이네. 내 지금 자네들의 항변을 들어 주고는 있지만, 감히 귀족인 딸의 거처를 자네들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지만……. 그렇지만 마녀가 아닙니까!”
남자의 지적에 남작은 입술을 깨물었다. 남작이 무슨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그놈의 마녀가 발목을 잡았다.
탐관오리로 유명한 수도의 실세 귀족에게 뇌물을 바치고 수도에 진출하려고 해도, 딸이 마녀라고 소문이 난 귀족의 수도 진출을 도와줄 수는 없다고 거절당했다.
옆 영지의 영주에게 놀고 있는 산의 채굴권을 사려고 해도, 혹시 마녀가 들어와서 살려는 것 아니냐며, 자신의 영지에 마녀를 들여놓을 수는 없다고 단칼에 거절당했다.
어디 그뿐이랴? 냄새나는 마녀가 있다는 소문에 저택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줄줄이 그만두었고, 결국 보통 귀족 저택에서 받는 임금의 두 배는 주어야 비로소 사람을 부릴 수 있었다.
라일라를 숲의 오두막으로 내보내고 나서도 이렇게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사람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내가 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이런 꼴을 당하는지!’
남작은 속으로 전생의 자신을 원망하며 혀를 끌끌 찼다.
“내 10여 년 전에 자네들이 청을 해서 그 아이를 저택에서 내보내 숲으로 보내지 않았는가?”
“하지만 숲에서 나오지 않습니까!”
지루한 반복이었다. 근 10년간 사람들과 반복해서 나누었던 토론 아닌 토론이었다.
결론이 날 리가 없었다.
“그 마녀가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면, 저희가 이사하는 수밖에는 없겠습니다.”
정육점 주인은 큰 결심이라도 한 듯, 굳건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남작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영주민이 마음대로 이사를 할 수 없을 텐데?”
“저희도 다 알아봤습니다. 부득이한 사정이 있고, 옮기려는 지역의 영주께서 허가해 주시면 가능하다고 합니다. 게다가 황궁에 직접 탄원서를 내는 방법도 있다고 합니다.”
“지금 나를 협박하는 건가?”
세금을 내야 하는 평민들이 떠난다는 것은, 남작의 주머니로 들어와야 하는 돈이 엄한 다른 영주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을 뜻했다.
세금을 거둬들여 사는 발렌시아 남작에게 그들의 이사는 협박으로 충분했다.
감히 평민들 주제에 귀족인 자신에게, 게다가 엄연히 이 땅의 영주인 자신을 협박한다고 생각하자 남작은 인상을 찌푸리고 무리를 노려보았다.
이것도 다 라일라 탓이었다. 그 애가 마녀만 아니었다면 자신이 이 천한 것들에게 이런 수모를 당할 일이 없었다.
“저희가 남작님을 협박하다뇨! 그런 일은 없습니다.”
남자는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최후의 수단으로 이사를 하겠다고 말을 하긴 했으나, 자신의 가게를 버리고 이사를 할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감히 귀족을 상대로 협박을 할 배짱도 없었다.
“그게 아니라면, 지금 그 말이 협박이 아니라 뭐란 말인가?”
“그러니까, 그게…… 그것이…….”
“그게 아니라, 그만큼 저희가 절박하다는 겁니다. 그 마녀 때문에 도저히 발을 뻗고 살 수가 없을 만큼 불안하다는 겁니다. 도저히 같은 하늘을 이고는 살 수 없을 만큼.”
정육점 주인이 우물쭈물하고 있자, 뒤에 있던 남자가 끼어들었다. 남작의 눈이 휙 하고 그 남자를 향했다.
“아니, 그래서 지금 대체 나보고 뭘 어쩌라고 하는 건가!”
발렌시아 남작은 결국 참지 못하고 발칵 화를 냈다.
감히 자신을 찾아와서 이런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짜증이 났고,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라일라도 짜증이 났다.
제명을 다할 때까지 숲에 콕 박혀 있을 것이지, 대체 왜 기어 나와서 이 사달을 만들었단 말인가?
살 집도 마련해 줬겠다, 꼬박꼬박 먹을 것도 가져다주고, 필요한 것도 모두 마련해 주고, 그저 부탁한 것은 밖에 좀 나다니지 말라는 간단한 일인데 말이다.
신도 무심하시지. 착하고 선량한 자신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그러니까, 남작님. 저희 말은 그 마녀를 어떻게 좀 해 달라는 말입니다.”
“어떻게는 뭘 말하는 건가?”
“어떻게든 말입니다.”
“그러니까, 뭘 어떻게! 나더러 여기서 뭘 어떻게 더 하란 말인가!”
사실 상대방은 서로의 요구사항을 알았고, 어떻게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마녀사냥, 마녀재판, 화형식. 그런 것들.
하지만 상대가 자신의 딸이기에 차마 남작은 그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고, 상대가 귀족의 딸이기에 차마 그 말을 먼저 꺼내지 못하고 있는 것뿐이었다.
상대가 먼저 말을 꺼내기만 한다면 다른 편은 어쩔 수 없이 그 사안을 받아들였으리라. 다만, 둘 다 먼저 말을 꺼낼 용기가 없을 뿐이었다.
“여러분.”
남작과 사람들이 옥신각신하는 사이, 어디선가 가녀린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무리의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자, 그 자리에는 처연한 표정의 아리아드네가 서 있었다.
“정말로 죄송합니다…….”
당장 눈물이라도 한 방울 뚝 떨어뜨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아리아드네가 말했다.
“저희 언니의 일로 이렇게 여러분께 폐를 끼쳐 드려서 발렌시아 남작가의 일원으로 여러분께 사과를 드리겠습니다.”
“여, 영애님!”
“아리아드네!”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리아드네가 한 행동은 모여 선 사람들을 경악시키기에 충분했다. 심지어 그의 아버지인 발렌시아 남작까지도.
귀족 영애인 그녀가 평민들에게 고개를 숙인 것이었다.
“저희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답니다.”
고개를 든 아리아드네는 아까보다 더욱 울 것 같은 표정이었다. 심지어 눈은 이미 빨갛게 충혈이 되어 있기까지 했다.
귀족 아가씨면서, 평민에게 고개를 숙이면서까지 이해를 구하는 모습에 벌겋게 달아올라 있던 성난 군중들의 화가 소나기를 맞은 것처럼 수그러들었다.
“언니가 숲에서 머무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뒷바라지를 하고 있지만, 이렇게 가끔 언니가 돌발적인 행동을 하는 것까지는 저희가 통제가 어렵답니다. 그러니 부디 선량하신 여러분께서 넓은 아량으로 조금만 이해를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니, 그렇지만…….”
정육점 주인의 고개가 수그러들었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제 물건을 보는 것인지, 가련한 귀족 영애의 얼굴을 차마 볼 수 없어서 고개를 숙이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다.
“여러분들께서 지금의 상태가 불안하다고 느끼신다면, 저희가 다른 방도는 없는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의 의견은 충분히 알겠으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 주시면 안 될까요?”
양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가련한 눈빛을 한 아리아드네가 간절히 말을 하자 사람들을 서로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술렁거렸다.
“그, 그럼 오늘은 아가씨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니 이만 돌아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하지만 꼭 그 마녀를 어떻게든 해 주시길 바랍니다.”
주춤거리던 사람들은 정육점 주인의 그 말에 발을 돌렸다. 올 때는 남작의 딸 때문에 화가 나 있던 사람들이, 돌아갈 때는 남작의 또 다른 딸 때문에 가슴 아파하고 있었다.
하필이면 언니가 마녀라서 저 아리따운 귀족의 아가씨가 우리 같은 평민들에게 고개를 숙여야 한다니 참으로 불쌍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자신들이 그 귀족 아가씨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져 갈 때마다, 그 아가씨의 눈빛에 있던 처연함도 점점 사라져 갔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들이 완전히 저택을 벗어났을 때, 아리아드네의 얼굴에는 처연함이 아니라 짜증이 깃들어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럴 거예요?”
매서운 눈빛으로 제 아비를 책망하는 아리아드네의 얼굴에는 짜증을 넘어서서 질책이 담겨 있었다. 게다가 목소리는 아까의 가녀린 목소리는 오간 데 없이 날카로웠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아리아드네의 본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