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네, 네?”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하고 바닥에 꿇어앉아서 라일라를 올려다보며 남자가 말을 더듬었다. 라일라는 그저 무표정하게 그를 쳐다봐 주었을 뿐이었다.
“얼마냐고.”
“도, 돈은 필요 없…….”
“네 코도 필요 없고?”
남자는 바닥을 짚고 있던 손으로 얼른 제 코를 감싸 쥐었다.
마녀가 아니니, 코를 사라지게 하는 저주 따위 걸 수 있을 리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라일라를 마녀라고, 그리고 저주도 내릴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 듯했다.
“마지막이야. 얼마야?”
“이, 이 실링입니다.”
협박이 먹혔던 모양인지, 남자는 속사포처럼 말을 내뱉었다.
라일라는 100실링짜리를 돈통에 집어넣고, 거스름돈을 챙겼다. 98실링.
라일라가 주문한 것은 1파운드였으니까, 남자가 제멋대로 더 담은 고기 따위는 알 바 아니었다.
“저, 저기 자비로운 마녀님. 저한테 저주를 걸지는 않으실 거죠?”
거스름돈을 주머니에 넣고 가게를 나가려는 라일라에게 남자가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여전히 코를 감싸 쥔 채라 약간 코맹맹이 소리였다.
“봐서.”
라일라는 남자의 침이 묻은 손등을 그의 옷에 슥슥 닦으며 말했다.
그녀가 조금만 더 하면, 저 덩치 큰 사내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오줌도 지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굳이 그런 것까지 보고 싶지는 않은 라일라였다.
남자를 옆을 스쳐 지나가며, 라일라는 가게에서 나왔다. 여전히 가게 앞은 아무도 없었고, 저 멀리서 라일라를 바라보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었다.
두려움, 그리고 혐오가 가득한 얼굴로.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라일라의 일생에서 가장 많이 본 얼굴이 바로 그런 얼굴들이었으니까.
* * *
파리 한 마리가 라일라의 앞에서 윙윙 날아다녔다.
필시 테이블 위에 놓인 고기 때문에 날아왔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고기보다 더 강렬한 냄새에 취한 것인지 라일라의 주변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라일라는 파리를 쫓을 기색도 없이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고 있었다. 어쩌면 앞이 아닐 수도 있었고.
그러다 툭- 하고 한 방울의 눈물이 라일라의 눈에서 떨어졌다.
새삼스러울 필요가 없다고, 늘 있는 일이 아니냐고 자신에게 그렇게 말했었는데…….
사람들의 그 눈빛이 라일라의 머리 안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더러운 것을 보았다는 혐오감. 자신에게 저주를 내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리고 이 더러운 악취가 자신에게 나는 것이 아니라서 참으로 다행이라는 안도감까지.
그런 것들이 엉망으로 뒤섞인 눈빛과 표정, 그 얼굴들.
“나도 이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어.”
작은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나라고, 이런 더러운 냄새나는 몸뚱이로 태어나고 싶었겠냔 말이야.”
다시 한번 툭- 눈물 한 방울이 라일라의 눈에서 떨어져 내렸다. 어느새 그녀의 눈에는 눈물이 한가득 고여 있었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라일라는 악취가 났었다. 제 어머니는 냄새나는 아이에게 제 젖을 주기를 거부했다.
라일라의 아버지는 가문의 수치라 여기며 부끄러워했다.
뒤늦게 태어난 여동생은 제 언니를 업신여기고, 혐오했다. 라일라는 버림받은 아이였다.
어린 시절, 백작의 저택에서는 하인들도 기거하지 않는 마구간 옆에 달린 작은 창고에서 기거했다.
그리고 열 살이 되자 생일선물로 이 오두막을 선물로 받았다. 말이 선물이었지, 저택에서 꺼지라는 말과 다름이 없었다.
낮에는 외로움과 싸우며, 밤에는 울부짖는 짐승의 소리에 몸서리치며 그렇게 지금까지 살아온 라일라였다.
스물하나가 되도록, 이제껏 단 한 번도 사랑받아 본 적이 없는 라일라였다.
그러니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하지만 이 슬픔 역시도 새삼스러울 것이 없었다.
시간이 가면 해가 지듯, 환한 낮의 뒤에는 어두움 밤이 찾아오듯, 그렇게 라일라의 슬픔도 항상 찾아왔었다.
* * *
라일라의 손가락이 움찔했다.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던 눈빛도 흔들렸다. 초점 없던 눈을 몇 번 깜박이자 오두막의 창문 너머로 깜깜한 어둠이 보였다. 그리고 오두막 안은 환하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뭘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갑자기 들리는 남자의 목소리에 라일라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라일라가 고개를 돌린 그 자리에는 촛대의 다른 한쪽의 초에 불을 옮겨 켜고 있는 비오스트가 서 있었다.
“너, 뭐, 뭐야!”
당황한 라일라의 입에서 반말이 튀어나왔지만, 비오스트는 그저 싱긋이 웃을 뿐이었다.
“통성명은 지난번에 하지 않았나요? 비오스트입니다.”
친절하게 자신의 가슴을 오른손으로 눌러 주며 비오스트는 제 이름을 말했다. 라일라가 말하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님을 충분히 알면서도.
“어떻게 들어왔어요?”
“문을 열고?”
비오스트는 제가 열고 들어와 다시 잠근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잠겨 있었을 텐데?”
“잠겨 있긴 했지만, 그저 고리 하나를 걸었을 뿐이니까요. 안 그래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했어요. 여자 혼자 사는 집인데 방범이 너무 허술한 것 아닌가요?”
비오스트는 불이 붙은 초를 다시 촛대에 꽂았다. 네 개의 초가 은은하게 빛나자 조그만 오두막은 충분히 환했다.
“게다가, 그냥 여자도 아니고 이렇게 예쁜 숙녀분이 사는데?”
비오스트는 그렇게 덧붙이며 방긋 웃었고, 라일라는 인상을 찌푸렸다. 자신이 아름답지 않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남자가 매력을 느낄 만한 구석은 더더욱 없었다. 비쩍 마르고 입이 거친 여자를 좋아하는 변태가 아닌 이상은.
‘역시 변태로군.’
라일라는 또다시 비오스트를 그렇게 정의 내렸다. 자신이 변태로 몰리고 있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비오스트는 싱글벙글 웃으며 테이블에 앉았다.
“왜 멋대로 앉는 거죠? 아니, 그것보다 왜 멋대로 남의 집에 들어오는 거예요?”
“지난번에 오두막이 컴컴했던 게 영 마음에 걸려서 말이죠.”
비오스트는 보란 듯이 환히 빛나고 있는 초를 가리켰다. 그의 말에 같이 초를 힐끗 쳐다본 라일라의 표정이 한결 누그러들었다.
“혹시 아직도 깜빡하고 있을까 봐 신경이 쓰였거든요. 그래서 좀 챙겨 왔어요.”
그다음에 비오스트가 가리킨 것은 이미 자신이 한쪽에 세워 둔 여유분의 초가 든 자루였다.
“이, 이렇게 많이?”
슬금슬금 그쪽으로 다가가 자루를 열어 본 라일라가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자루 안에는 거의 서른 개 정도의 초가 들어 있었다.
수리가 남작의 저택에서 깡그리 긁어 온 물건이었다. 오늘 밤 남작은 컴컴한 어둠 속에서 식사하고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따위 것은 비오스트가 알 바 아니었다.
“당신, 정체가 뭐야?”
다시 반말.
선물로 경계심을 풀어놓을 작정이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 고양이는 더 발톱을 세우고 있었다. 아니, 발톱은 바싹 깎아서 이미 없던가?
“그냥……. 나는 당신이 좀 걱정이 되어서요.”
이번에는 미소가 없었다.
정말로 진심이니 믿어 달라는 듯, 비오스트는 제법 애절한 눈빛을 하고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가 바라던 대로, 라일라는 움찔했다.
“사실, 며칠 전 당신이 나를 이 오두막에 들여보내 주었을 때, 나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어요. 비는 억수같이 쏟아지지, 여기는 초행길이라 어딘지도 모르겠지, 일행과는 이미 멀어져 버렸고, 이대로 숲을 헤매다 체온이 떨어져서 죽는 건 아닐까 하고…….”
비오스트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당신이 나를 이 안에 들여보내 주고, 또 춥지 않게 오두막을 데워 주고, 따뜻한 수프까지 내주어서 정말로 감사했어요.”
전부 돈을 받은 서비스였건만, 비오스트는 그것은 쏙 빼먹고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나도 조금 더 보답하고 싶어서 찾은 거죠. 그리고 그때 먹었던 그 수프…….”
말하던 비오스트가 잠시 멈칫했다. 앉아 있을 구실을 만들기 위해서 입을 놀리고 있었지만, 그 수프는 정말로 쓰레기였다. 다시 먹고 싶지는 않을 만큼.
“……와 딸기도 정말 맛있었고요.”
“그런 이유로 비싼 초를 이렇게 많이 준다고?”
“딸기가 그만큼 맛있었거든요. 그 딸기는 어디서 산 거죠? 정말로 맛있던데?”
“내가 직접 딴 거예요.”
다시 존댓말. 오락가락하는 라일라를 보며 비오스트는 속으로 살짝 웃었다. 그녀는 흔들리고 있었다.
“아아! 그래서 그렇게 맛있었던 건가요? 귀여운 아가씨가 따다 준 딸기라서?”
“자꾸 무슨 개소리를 하는 거야!”
첫째. 귀엽다고, 예쁘다고 말을 하면 화를 낸다.
“그 딸기가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요.”
둘째. 비오스트가 웃으면, 시선을 피한다.
“그래서 말인데, 그 딸기 혹시 남은 게 있다면 조금 더 얻어먹을 수 있을까요?”
“내가 왜 너한테……!”
버럭 소리를 지르려던, 라일라가 움찔한 것은 촛대에 얌전히 꽂혀서 빛나고 있는 초를 보고 말아서였다.
“……기다려요.”
셋째. 받은 게 있으면, 보답하려고 한다. 혹은, 원하는 것이 있으면 자신도 기꺼이 무언가를 준다.
딸기를 가지러 가는 라일라의 뒷모습을 보며, 비오스트는 살그머니 웃었다. 정보는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고, 앙칼진 고양이는 생각보다 다루기 쉬울 것 같았다.
“흐음…….”
혼자 테이블에 남게 되자 비오스트는 한껏 오두막의 공기를 들이마셨다. 라일라의 향기가 담뿍 배어났다.
여전히 관능적이며, 색스러운 향이었다. 비오스트의 아래가 라일라의 향기만으로도 단단해지고 있었다.
“어디서부터 잡아먹으면 좋을까?”
저쪽에 있는 라일라가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비오스트가 혼자 중얼거렸다.
그는 천천히 웃으며 다시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다시금 라일라의 향기가 그의 코 안으로 들어와, 그의 뇌를 애무하기 시작했다.
그 어떤 창녀보다 비오스트가 쾌락을 느끼는 지점을 잘 아는 손길이었고, 능숙했으며, 만족스러웠다.
빌어먹을 조건만 아니었으면, 당장에…….
“왜 눈을 감고 있는 거죠?”
바로 앞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비오스트는 눈을 떴다. 향기의 근원이 불퉁한 얼굴을 하고 제 앞에 서 있었다.
날카로운 새파란 눈동자가 자신을 바라보고 서 있자, 비오스트는 아래에 좀 더 피가 몰리는 느낌이었다.
“아, 좀 피곤해서요.”
젖은 손을 한 라일라의 손에 딸기가 한 접시 담겨 있었다.
“먹음직스럽네요.”
비오스트는 빙그레 웃었다.
한입 베어 물면 아주 달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