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꽃-7화 (7/88)

7.

“어휴~ 이게 무슨 냄새야?”

라일라의 옆쪽에서 중년의 남자가 중얼거렸다. 그 이야기를 들은 라일라의 어깨가 살짝 움찔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 발을 재촉했다.

“누가 방귀라도 뀐 거 아니야?”

남자가 좀 더 목소리를 높이는 소리가 라일라의 뒤통수를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게 시발점이라도 되는 듯, 사방에서 비슷한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러게? 이게 무슨 냄새래?”

“내가 40 평생을 살면서 이런 냄새는 처음 맡아 보는데?”

“나는 50 평생을 살면서 이런 냄새는 처음이야!”

“제기랄! 진짜 코가 썩겠네!”

라일라는 머리에 쓰고 있던 후드를 더욱 깊이 뒤집어썼다. 그리고 고개를 더욱 아래로 숙였다. 어서 빨리 제가 찾는 가게가 나오기를 바랄 뿐이었다.

‘저기!’

나란히 늘어선 가게 중 정육점을 발견한 라일라는 속으로 반가움에 소리쳤다. 저기서 고기를 먼저 산 다음, 등잔 기름을 사면 볼일은 끝이었다. 볼일이 끝나면, 라일라는 오두막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악취를 맡고, 욕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는 외딴 오두막으로.

“돼지고기, 1파운드.”

라일라는 정육점의 앞에 도착하기도 전에 재빨리 주문했다.

되도록 빨리 걸어서 목적지에 도착하고, 되도록 빨리 주문을 하고, 되도록 빨리 물건을 사서 돌아온다.

라일라의 계획은 단순했다.

“네~ 돼지고기 1파운드요. 부위는 어느 걸로 드릴깝쇼?”

“아, 아무거나.”

“에이~ 아무거나 가 어디 있습니까? 뭐 해 드실 건데요?”

사람 좋은 인상의 정육점 주인은 싱글벙글 웃으면서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손님에게 싹싹한, 그리고 딱 맞은 물건을 찾아 주려는 착한 상인이었다.

그리고 라일라에게는 그게 문제였다.

“구이? 스튜? 아니면 파이? 아! 요즘은 돼지고기로 스테이크를 해 먹는 게 또 유행……. 응?”

라일라에게 돼지고기의 조리법을 늘어놓던 정육점 주인의 표정이 일순간 변했다. 그리고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던 라일라의 표정 역시 그대로 굳어 버렸다.

“킁- 킁- 이게 무슨 냄새야?”

주인이 라일라의 악취를 맡고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자, 라일라의 눈빛이 흔들렸다.

‘도망갈까?’

순간, 라일라는 실제로 다리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 도망가서 다른 정육점까지, 혹은 만물상까지 뛰어갈까? 그래서 더 빨리 주문하고, 더 빨리 물건을 사서, 더 빨리 돌아가면?

“칠면조 고기 있어요?”

“아이고~ 어서 오십시오~”

라일라의 생각은 다른 손님의 출현으로 끊겼다. 냄새의 근원을 찾으려던 정육점 주인 역시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쪽으로 바라보았다.

“안 그래도 오늘 막 들어온 아주 커다란 놈이 하나 있지요.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먼저 온 손님부터 주문을 받고요. 돼지고기 1파운드를 무슨 부위로 드릴까요?”

“스튜. 스튜용으로.”

주인이 라일라를 바라보자, 그녀는 재빨리 아무 말이나 던졌다.

어차피 고기의 용도에 따른 구분 따위는 할 줄 몰랐다. 대충 있는 재료를 끓여서, 혹은 구워서, 대충 소금을 쳐서 먹는다. 그게 라일라식의 요리였다.

“네. 알겠습니다 스튜용으로요!”

“응? 이게 무슨 냄새야?”

이번에는 새로 온 손님인 아주머니 쪽이 코를 킁킁거리기 시작했다.

상인이 고기를 썰어 주는 대로 값을 치르고 떠나기 위해서 주머니 속 백 실링을 만지작거리던 라일라가 그대로 굳었다.

“무슨 썩은 냄새가 나는데?”

여자는 의심스러운 눈으로 가게를 훑어보았다.

“여기, 상한 고기 파는 거 아녜요?”

“아이고!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돼지고기를 꺼내 썰고 있던 정육점 주인은 여자의 말에 펄쩍 뛰며 정색을 했다.

“아니, 지금 딱 썩은 냄새가 나잖아요. 이 가게에서.”

“저희 제품은 전부 싱싱합니다. 썩은 게 있을 리가 없어요.”

“당연히 말은 그렇게 하겠죠. 됐어요. 전 다른 가게에서 사겠어요.”

여자는 팽하니 고개를 돌리며 그대로 빠른 걸음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니, 이게 무슨 억울한……. 어서옵쇼!”

자신의 억울함을 말하려던 상인의 푸념은 다른 손님의 등장으로 바로 인사말로 바뀌었다.

“여기 돼지고기……. 음?”

고기를 막 사려던 새로운 손님도 주문하려다 말고 코를 벌름거리기 시작했다.

“돼, 돼지고기를 드릴깝쇼?”

“아니, 아니에요. 오늘은 해산물이 좋겠네요.”

무언가를 하려던 남자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황급히 가게에서 벗어났다. 조금 전 가게를 떠난 여자처럼 말은 하지 않았지만, 이상한 냄새를 맡고 가게의 신선도를 의심한 게 틀림없었다.

“아니, 갑자기 어디서 나는 악취…….”

벌써 두 명이나 손님을 떠나보낸 정육점 주인은 억울한 표정을 짓다가 말을 멈추었다.

생각해 보니, 갑자기는 아니었다. 자신의 눈앞에 후드를 쓴 손님이 나타나면서부터 악취가 시작되었던 것 같았다.

주인의 의심스러운 시선에 라일라는 후드를 더욱 내려 쓰며 시선을 회피했다.

“어이, 너야?”

“…….”

정육점 주인이 뭘 묻는 것인지는 명확하게 알고 있었지만, 라일라는 대답할 수 없었다. 100실링을 쥔 손에서 진득하게 땀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주인의 시선이 라일라의 행색을 눈으로 훑는 것이 느껴졌다.

“원, 재수가 없으려니. 어디서 이런 거지 같은 게 가게를 얼씬거려서. 야! 너 돈도 없지? 고기를 받아서 튈 생각이었지?”

아마도 그는 라일라를 부랑자로 짐작하는 것 같았다. 씻지도 않아서 냄새가 나는, 배가 고파서 고기를 주문하는 척하고 도망갈, 그런 부랑자.

“당장 내 가게에서 꺼져!”

돌아서야 했다.

주인의 말대로 이대로 꺼지고, 다른 정육점을 찾아서 고기를 사면 되는 거였다. 돈은 있었으니까.

원래의 계획대로 빨리 주문을 하고, 빨리 사서, 빨리 돌아가면…….

‘병신 같은 계획이야.’

라일라는 속으로 자신의 계획을 비웃었다. 자신의 악취가 번지는 것보다 빠르게 물건을 살 수는 없었다. 후각보다 더 빠른 손놀림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저리 안 꺼져!”

라일라가 굳은 듯 가게 앞에 서 있자, 주인은 더 열이 받았는지 성큼성큼 다가와서 라일라의 어깨를 세게 밀쳤다.

작고 마른 체구의 라일라가 온종일 발골을 하고, 고기를 써는 정육점 주인의 힘을 이길 리가 없었다. 라일라는 뒤로 떠밀려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그리고 거의 코끝까지 눌러 썼던 후드가 라일라의 고개가 젖혀지면서 훌렁 벗겨지고 말았다.

“어디서 재수가 없으려니까. 카악- 퉤!”

정육점 주인은 자신의 가게에 찾아온 부랑자를 밀어 넘어뜨린 것으로는 부족한지 넘어진 라일라의 손등 위로 침을 뱉었다.

걸쭉하고 진득한, 기분 나쁜 미지근한 온도를 느끼며 라일라는 제 손등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저 더러운 침과 같은 취급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라일라의 파란 눈동자가 더욱 새파랗게 빛났다.

“너.”

라일라의 새파란 눈이 남자를 노려보았다.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남자도 뒤를 돌아 라일라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라일라에게서 쏘아져 나오는 서슬 퍼런 눈빛에 잠시 움찔했다. 정말로 아주 잠시.

그는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이 작고 깡마른 여자라는 것을 다시 확인하곤 비죽이 비열한 미소를 띠었다.

“어쭈? 거지새끼 주제에 그렇게 노려보면 어쩔 건데?”

“내가 어쩔 수 있다면?”

“뭐?”

라일라는 아까 남자의 표정을 흉내 내며, 비죽이 비열한 미소를 지었다. 안광이 뿜어져 나올 것처럼 새파란 눈동자를 빛내며.

“당장 날 일으켜 세워.”

“이게 미쳤…….”

“대가리가 안 돌아가? 냄새나는 여자잖아. 그 여자가 널 어쩔 수 있다고 이야기하잖아.”

“……뭐?”

남자는 아직도 라일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고 있었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말이 아니라 꿀꿀거리게 해 줘? 아니면, 구더기가 네 더러운 구멍에서 끊임없이 튀어나오게 해 줄까?”

“지금 무슨……!”

버럭 화를 내려던 남자가 그대로 굳었다. 그리고 눈이 커다래지더니, 재빨리 라일라를 다시 훑었다.

뻣뻣하고 부스스하지만, 분명히 금발이었다. 자신을 노려보는 눈도 파란색이었다. 그리고 아까 그 손님이 말한 것처럼 썩은 냄새가 나고 있는 여자였다.

“마, 마녀……!”

남자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그대로 털썩 주저앉았다.

“멍청한 새끼. 일으키라니까, 지가 넘어지면 어쩌자는 거야?”

라일라는 욕설을 중얼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넘어지면서 손바닥이 쓸려서 따가웠다.

힐끗 주변을 둘러보자, 멀찌감치 떨어져서 구경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라일라와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며 얼른 숨는 이도 있었다.

아무도 다가오지 않는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다.

“내놔.”

라일라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덩치에 맞지 않게 바들바들 떨고 있는 정육점 주인을 향해서 말했다.

“네, 넷! 다, 다 드리겠습니다. 저주만 피하게 해 주신다면!”

그는 거의 기다시피 해서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돈을 담아 둔 통에서 한 움큼의 돈을 쥐어 내 라일라의 앞에 내밀었다.

“멍청한 놈. 내가 산 돼지고기를 내놓으라고.”

“네? 아, 네!”

주인은 화들짝 놀라며 아까 썰던 고기를 다급하게 담기 시작했다. 썰었던 고기뿐만이 아니라 옆에 있던 덩어리 고기도 통째로 담았다.

“얼마야?”

주인이 벌벌 떨며 그것을 라일라에게 내밀자, 그것을 낚아채며 값을 물었다. 묵직한 것이 처음에 라일라가 주문한 1파운드가 아니라, 그 두 배는 족히 나갈 것 같았다.

“그, 그냥 가지고 가시면 됩니다.”

“내가 마녀지, 강도인 줄 알아?”

라일라는 제 스스로 마녀라고 칭하며 주머니에서 100실링을 꺼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냥 가셔도 됩니다. 아니, 제발 제 성의를 받아 주시길 바랍니다.”

남자는 황급히 손사래까지 치며, 돈을 마다했다.

“왜? 내가 거지새끼라서, 적선하는 거야?”

“아이고! 그런 말씀 마십쇼! 제가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남자는 이제 라일라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아까 라일라를 밀쳤을 때와는 180도 다른 사람 같은 태도였다.

“죽을죄를 지었으면, 그냥 죽는 게 낫지 않아?”

혼잣말처럼 라일라가 중얼거리는 소리에 남자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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