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발렌시아 남작가에서 가장 좋은 방에 딸린 욕실답게 매우 화려했다. 화려한 욕실로 비오스트는 들어섰다. 수증기가 자욱하게 낀 욕실에는 은은하게 좋은 향기가 났다.
제 잘못을 잘 아는 수리가 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 미리 준비해 놓은 모양이었다.
평소라면 분명 비오스트가 가장 좋아하는 향이었다. 뜨거운 욕조에 몸을 담그고 이 향을 맡고 있노라면, 하루의 피곤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평소라면 말이다.
“흐음…….”
하지만 지금은 그냥 밍숭맹숭한 향이라고 느껴질 뿐이었다. 별 특징도, 별 강렬함도 없는 그런 향.
라일라의 그 향을 맡고 나서는 사실, 모든 향기가 그렇게 느껴졌다.
건장한 비오스트의 몸이 물이 가득 찬 욕조 안에 들어가자 가장자리로 물이 흘러넘쳤다.
목욕시중을 들기 위해서 따라 들어온 수리의 발에 뜨거운 물이 닿고, 바지의 가장자리가 닿아 젖어 들었다.
“수리.”
“네, 넷!”
미처 바지를 걷지 않은 자신을 탓하며 막 고개를 숙여 바지를 걷어 올리려던 수리는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평소대로라면 뜨거운 물에 몸을 깊숙이 담그고, 향을 음미하고 있어야 하는 황태자가 눈을 뜨고 자신을 불렀다는 것에 당황하고 있었다.
“남작의 숲에 오두막이 하나 있던데.”
“오두막이요?”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수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거기에 여자 하나가 혼자 살고 있더군.”
“여자 혼자 살고 있는 숲의 오두막이라면……. 으……. 혹시…….”
비오스트의 말을 곱씹던 수리는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신음을 내뱉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게 있어?”
“혹시 막 음침하고, 스산하고, 기분 나쁜, 그런 오두막이었습니까?”
수리의 말에 비오스트는 그 오두막을 떠올렸다.
음침하고, 스산하며, 기분 나쁜 오두막이었냐라……. 딱 그랬다.
모든 문은 바람이 불 때마다 비명을 지르듯 삐걱거렸고, 등잔 하나 없이 벽난로의 불만으로 온기와 빛을 의지했다.
오두막을 채우고 있는 세간은 보잘것없는 것을 넘어서서 잘도 이러고 살고 있군, 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아마도.”
“아마도라니, 설마 거기에 가신 겁니까?”
수리의 얼굴이 더욱 괴상망측하게 찡그려졌다.
“비를 피하셨다는 곳이 혹시 그 오두막입니까?”
“못생긴 얼굴은 그만 치우고, 말이나 하지 그래?”
“거긴, 마녀가 사는 오두막입니다.”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말하는 수리를 보며, 비오스트는 아무 말 없이 빤히 그를 쳐다보았다.
“아주 흉측한 마녀라고 합니다.”
비오스트가 아무 말이 없자 수리는 더욱 정색하며 이야기를 했다.
마녀라…….
비오스트는 그날 보았던 라일라를 떠올렸다.
푸석하기 그지없는, 금색이라고 말하기도 뭣한 머리카락. 사흘은 앓고 일어난 사람처럼 창백한 얼굴. 흉년을 지낸 사람처럼 바싹 마른 몸. 게다가 날카롭고 예민하기 그지없어 보이는 눈까지.
확실히 외견으로는 마녀라고 불리기에 손색은 없었다.
“훗…….”
비오스트는 거기까지 생각을 하고는 피식 웃어 버렸다.
제 속내를 그렇게 빤히 보여 주는 마녀도 있던가? 그렇게 행동 하나하나가 무슨 생각인지 알 수 있는 마녀도 있던가?
그런 빤한 애가 마녀라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사람의 목을 자르는 비오스트는 마왕쯤은 되어야 할 게 틀림없었다.
자신이 마왕이 아니니, 그녀도 마녀가 아니었다.
“그 마녀에 대해서 조사해 봐.”
“네? 마녀에 대해서요? 아이고! 아무리 황태자 전하라도 그러지 마십시오. 저주라도 받으시면 어쩌려고 그러십니까?”
“그런 일 없으니까 알아나 봐. 이름은 라일라라고 하더군.”
“윽! 이름도 아십니까? 그 마녀를 만나신 겁니까?”
소름 끼친다는 듯, 수리는 제 손을 떨어 대며 이야기를 했다.
“풀 네임을 알아 와. 원래 어디 출신인지, 부모는 누구인지, 뭐 하는 인간인지, 언제부터 거기서 살기 시작했으며, 왜 마녀라고 불리는지, 좋아하는 음식, 색상, 노래, 신체 사이즈 등등. 알아 올 수 있는 건 전부 알아 와.”
“아니, 하필이면 마녀한테 관심을 가지시는 겁니까? 듣자 하니 아주 고약한 마녀던데요!”
“뭐 들은 거라도 있어?”
“네. 저주받은 마녀라고 합니다.”
“저주하는 마녀가 아니라?”
“네. 아주 말도 못 하게 희귀한 악취가 나는 저주를 받은 마녀라고 하던데요. 사람이 도저히 가까이 갈 수도 없답니다.”
수리는 생각만 해도 소름 끼친다는 듯, 다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마치 바로 옆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는 듯, 연신 코를 찡그렸다.
그런 수리의 모습을 비오스트는 흥미롭게 관찰했다.
외지인인 수리가 소문만 듣고 이렇게 반응을 하는 걸 보니, 직접 겪은 이 마을 사람들은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비오스트의 눈에는 라일라가 사람들에게 무슨 취급을 받으며 살았는지가 아주 훤하게 보이는 듯했다.
분명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했겠지. 저주받은 흉한 것의 취급을 받고, 마녀 취급을 받고, 저를 낳은 제 부모도 그 아이를 버렸으니, 그렇게 외떨어진 오두막에 혼자 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그렇게 사람만 보면 버림받은 고양이처럼 하악질을 해 댄 것이겠지.
불쌍하고, 가엾고, 잡아먹기 딱 좋은 손쉬운 먹잇감.
“그 마녀에 대해서 더 알아 와. 내일 아침에 초와 말도 좀 준비해 두고.”
“초요?”
주인의 뜬금없는 주문에 또 수리의 눈이 똥그랗게 떠졌다.
“초는 뭘 하시게요?”
수리의 질문에 비오스트는 들은 척도 않고, 그저 느긋하게 눈을 감았다. 눈치 빠른 수리는 그것을 보며 조용히 입을 닫았다.
보통의 사람들은 뜨겁다고 말할, 하지만 비오스트에게는 열이 오르기 적당한 온도였다.
뜨거운 물이 근육을 마사지하듯 어루만지고, 코끝에는 평소에 좋아하는 향기가 맴돌고 있었다.
하지만, 부족했다.
“스읍-”
비오스트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지만 머릿속으로는 다른 향을 상상하고 있었다.
그때의 그 오두막에서 느꼈던 라일라의 향이었다.
그것은 어떤 꽃과도 비교할 수 없는 향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구두 굽에 짓밟히는 꽃잎이 마지막으로 비명을 지르며 내뿜는 것과 같은 강렬한 향이었다.
코로 맡는 것이 아니라 비오스트의 두개골을 가르고, 뇌에 바로 찍어 내리는 것 같은 짙은 향이었다.
당장 라일라의 목덜미에 그의 코를 묻고 싶었다. 당장 그 흰 살결에 이를 박아 넣고, 물어뜯고 싶었다. 그러면 찢어진 살결에서 더욱 진한 향이 나올 것 같았다.
비오스트가 상상하는 향기 속에서 희뿌연 수증기를 가르고 라일라의 얼굴이 떠올랐다.
파리하게 보일 만큼 창백한 흰 피부였다. 잔뜩 경계하는 앙칼진 길고양이 같은 눈빛이었다.
‘그래. 눈빛만은 제법 근사했지.’
슬쩍, 비오스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오르려고 했다.
“……적당한 여자라도 불러올까요?”
갑자기 들리는 수리의 목소리에 라일라는 사라지고 말았다.
비오스트는 얼굴에 짜증을 그대로 드러내며 수리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리는 슬쩍 제 턱으로 제 주인이 몸을 담그고 있는 욕조의 어딘가를 가리켰다.
“밤 시중을 들 여자가 필요하신 거 같은데…….”
“황족의 고귀한 씨를 아무 여자한테나 뿌릴 것 같으냐?”
“뭐, 사내가 급하면 그럴 수도 있죠. 흠……. 이 우람한 걸 받아 내려면 전문적인 여자가 아니면 안 될 것…….”
“나가 봐.”
뭐라고 중얼거리려는 수리를 비오스트는 단칼에 잘라 냈다. 그리고 다시 눈을 감았다.
라일라를 다시 부를 참이었다. 그리고 그녀의 향을 다시 맡을 참이었다.
지금 비오스트에게 필요한 것은 그것뿐이었다.
* * *
“후우…….”
라일라는 한숨을 내쉬며 눈앞의 100실링을 바라보았다.
돈이 생긴 것은 좋았다.
이거면 등잔 기름도 살 수 있고, 근 한 달간 먹지 못했던 고기도 살 수 있었다. 그러고도 돈이 남아서 다음 달도, 그다음 달도 고기를 먹을 수도 있을 돈이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을 사려면 라일라가 직접 시장을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휴우…….”
라일라는 다시 한번 한숨을 쉬며 바닥이 바싹 말라 버린 등잔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제저녁, 잠도 오지 않는데 침대에 한참을 누워 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어쩔 수 없지…….”
정말로 어쩔 수가 없어서 라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옷을 벗기 시작했다.
입고 있던 소박하고 낡은 드레스를 의자에 걸쳐 두고, 남루한 속옷도 벗어 버렸다. 신발까지 벗어 던진 알몸의 라일라는 집의 뒷문을 열었다.
평소에는 무릎 정도, 비가 와서 불어나면 라일라의 허리까지 황토물이 흐르는 개울가가 거기에 있었다.
라일라의 식수원이자 빨래터이자 목욕탕인 곳이었다.
“읏! 차가워!”
살짝 발만 담갔을 뿐인데, 산골 물의 차가움에 라일라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소소 돋아나는 닭살을 무시하고, 라일라는 그대로 발을 집어넣었다.
다른 쪽 한발을 마저 집어넣고, 쭈뼛거리며 엉덩이까지 담그자, 뼛속까지 추위가 엄습했다.
“으흐읏!”
라일라는 다시 한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몸을 문지르려 달달 떨리는 손을 들어 올리자, 문득 어제 그 남자의 얼굴이 생각났다.
수상한 자라고 생각했던 남자는 라일라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녀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았고, 정말로 돈을 주었다. 게다가 라일라를 비난하지도, 욕하지도, 무서워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라일라에게 친절하게 말을 걸고, 웃어 주기까지 했다!
“비오스트…….”
라일라는 어제 들었던 그 남자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라일라의 입에서 그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그녀의 몸이 부르르 떨렸다.
“감기에 걸리겠어.”
자신이 차가운 물속에 있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라일라는 열심히 몸을 문질러 씻기 시작했다.
추위에 이가 서로 딱딱거리며 맞부딪칠 때까지.
입술이 파랗게 질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