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짐승의 꽃-5화 (5/88)

5.

“영애의 성함이 아리아드네라고 하셨던가요?”

자신에게 유혹의 눈빛을 보내는 남작의 딸에게 비오스트는 물었다.

딱히 궁금해서는 아니었고, 인사치레 정도의 물음이었다.

“네, 그렇습니다, 전하.”

“아주 아름다운 이름이군요.”

“황공하옵니다, 전하.”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말하는 아리아드네를 남작은 아주 대견하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저어, 황태자 전하. 이것은 제가 팔불출로 보일 것 같아서 말하기가 상당히 황공하옵니다만…….”

“말씀하시지요, 남작님.”

“사실 우리 아리아드네는 이런 시골구석에서 썩기는 아까운 아이입니다. 이 근방에 아주 미인으로 소문이 자자하지요. 어떻게 소문이 퍼졌는지 벌써 귀족 도련님들의 혼담 신청이 들어오곤 한답니다.”

수도에는 저런 얼굴이 열 집 건너 하나씩 있다는 말을 비오스트는 굳이 하지 않았다. 아리아드네와 비슷한 미모를 가진 황궁의 하녀가 어림짐작으로 기백은 될 것 같다는 말 역시도 하지 않았다.

“네, 따님이 아주 자랑스러우시겠습니다.”

그저 웃으며 포도주를 좀 더 홀짝였을 뿐이었다.

저녁 식사 자리에 남작이 딸과 함께하고 싶다고 말할 때, 이런 이야기가 나오리라는 것을 비오스트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나마 은근슬쩍 비오스트가 묵고 있는 침실에 속옷 차림의 영애를 밀어 넣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

그런 일이 생기면, 자신을 성욕의 화신쯤으로 보는 것인가 싶어서 이런 건방진 짓을 하는 작자들을 전부 물어뜯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기 때문이다.

“네, 그렇죠. 저, 그래서 말인데…….”

슬쩍, 남작이 뭔가 말하려는 듯 운을 떼었다.

“식사 잘했습니다, 남작님.”

비오스트는 옆에 놓인 냅킨에 입을 닦고, 마지막으로 물을 한 잔 마셨다.

쓸데없는 헛소리를 굳이 더 들을 필요는 없었다. 비오스트는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네?”

“제가 어제 비를 맞으며 숲을 헤매서인지 아직 좀 피곤하군요. 방에 가서 좀 쉬어야겠습니다.”

“아아- 네, 네!”

자신의 말에 남작은 황급히 대답하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리아드네. 황태자님을 방으로 모셔 드리도록 해라.”

“괜찮습니다, 남작님. 저 혼자도 충분합니다. 밖에는 제 시종도 기다리고 있고 말입니다.”

“아아- 그것이 말입니다. 시종분께서 피곤해 보이셔서 제가 먼저 들어가서 쉬시는 게 좋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비오스트의 시종인 수리는 그의 더러운 성격을 매우 잘 알았다. 그러니 먼저 들어가서 쉴 리가 없었다. 무언가 허울 좋은 말로 그를 꾀었으리라.

감히 주인인 비오스트가 허락하지 않았는데 먼저 가 버린 수리는 벌을 받을 것이었다. 아마 벌을 각오할 만큼의 무언가로 수리를 꼬였겠지.

그리고 그 무언가가 돈이라는 것을 비오스트는 아주 잘 알았다.

눈치 빠르고 싹싹한 비오스트의 시종은 돈이라면 기꺼이 제 영혼을 팔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더욱 믿을 만한 시종이기도 했다.

제국의 황태자만큼 든든한 돈줄이 없다는 걸, 영리한 시종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택을 잘 알고 있는 아리아드네가 황태자 전하를 모셔다 드리는 것이 나을 겁니다. 저택 안은 지금 어두운 곳도 있고, 감히 황태자님께 등불을 들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귀한 남작 영애께도 그런 일을 시킬 수야 없지요.”

“하핫! 아닙니다, 황태자 전하. 부디 제가 모신 손님이니 제 성의를 무시하지 말아 주십시오.”

“그럼 그러도록 하지요.”

더는 공작과의 입씨름이 귀찮아진 비오스트는 그렇게 말하며 아리아드네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결심했다. 만약 저것이 제 몸을 바치려 든다면, 감히 황태자를 능욕한 죄로 저 작은 머리를 저택의 벽에 처박아 버리겠다고 말이다.

자신이 그런 흉포한 황태자라는 것이 알려지면 안 되니, 그다음에는 당연히 남작가를 멸문시킬 예정이었다. 이유야 적당히 황태자를 시해하려 했다든가를 가져다 붙이면 될 일이었다.

이따위 시골 영지 남작가의 멸문 따위 누구도 관심 없어 할 일이었다.

그러니 제발 저 남작 영애가 눈빛으로만 추파를 던지고, 제 몸뚱이는 던지지 않기를 이 남작가를 위해서 바랄 뿐이었다.

“가시지요, 전하.”

촛대 하나를 들고 앞장을 서는 아리아드네의 뒤를 비오스트는 말없이 따랐다.

순간, 아주 좋은 생각이 났다. 내일은 오두막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초를 몇 개 들고서 말이다.

제가 필요한 것을 들이밀면, 그 하악질 잘하는 고양이가 무슨 말을 할지 궁금했다. 얌전히 고롱고롱하며 제 턱을 내어 줄지, 아니면 그래도 하악질을 할지 말이다.

“어멋!”

앞서서 걷던 아리아드네가 갑자기 소리를 치더니 비틀거렸다. 그리고 마치 잘 짜인 연극처럼, 살짝 뒤쪽에 서 있던 비오스트의 품에 안기었다.

“죄송합니다, 전하. 그만 발을 헛디디었네요.”

“이런, 괜찮습니까?”

“네, 네.”

괜찮다고 말을 하면서도 아리아드네는 비오스트에게 기댄 몸은 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속이 뻔히 보이는 수법에 비오스트는 코웃음을 쳤다.

하급 귀족이라서 그런가, 쓰는 수법도 하급이었다.

“아무래도 영애께서는 돌아가시는 게 좋겠습니다. 저는 이미 이 저택의 구조쯤은 다 외웠고, 여기서 제 방에 가는 길도 다 알고 있습니다.”

“아, 아닙니다. 전하. 제가 모시겠습니다.”

“정말로 괜찮습니다. 외려 제가 영애를 방까지 모셔다 드려야 하는 것 같군요.”

“네? 그럼…….”

비오스트가 살짝 아리아드네를 일으켜 세우자 그녀는 순순히 제 몸을 세웠다. 살짝 빨개진 볼이 뭘 상상하고 있는지가 빤히 보였다.

“가시죠, 영애. 제가 방까지 모셔다 드리지요.”

“네, 전하.”

아리아드네는 수줍게 고개를 숙이며 발길을 틀어서 제 방으로 향했다.

힐끗거리며 비오스트를 쳐다보는 아리아드네의 눈빛에 점점 정염이 깃들었다. 비오스트의 얼굴을, 그의 탄탄한 가슴을, 단단해 보이는 복부를 바라보는 눈빛에 색욕이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아리아드네의 방 앞에 당도했을 때는 그녀의 얼굴은 빨갛게 되고 호흡이 거칠어진 뒤였다.

“여기가 영애의 방이군요.”

“네, 전하.”

황태자와의 달콤한 하룻밤을 꿈꾸며 아리아드네는 제 방의 문을 살짝 열었다. 그리고 먼저 방에 들어와, 황태자가 들어올 수 있도록 한 걸음 옆으로 물러섰다.

“그럼 편안한 밤 되시기를.”

수줍게 고개를 숙인 아리아드네의 시선에 황태자의 발이 문밖에 있는 것이 보였고, 그대로 문이 닫히는 것이 보였다.

“저, 전하?”

아리아드네가 당황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을 때는 이미 문이 닫힌 뒤였다.

“황태자 전하?”

그녀가 당황해서 황급히 자신의 방문을 열었을 때는 이미 복도에 아무도 없었다. 사람이 이렇게 빨리 사라질 수가 있나 싶어서 아리아드네는 복도에 나와서 좌우를 둘러보았다.

그저 희미한 복도의 등만이 불을 밝히고 있을 뿐, 황태자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말도 안 돼…….”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황태자의 모습에 아리아드네는 텅 빈 복도에서 혼자 중얼거렸다.

* * *

방문을 열자, 남작의 저택에서 가장 좋은 방이 나왔다. 그래 봤자 황궁의 황태자궁에 비하면 비루했지만.

환히 켜져 있는 촛불과 아늑하게 타고 있는 벽난로의 장작이 비오스트를 반겼다.

“수리.”

문을 닫으며 그의 시종의 이름을 부르자, 열심히 장작불을 때고 있던 시종이 몸을 일으켰다.

“아니, 황태자님! 저녁 식사가 벌써 끝나신 겁니까?”

호들갑스럽게 놀라는 수리를 비오스트는 그저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저는 황태자님께서 오시기 전에 방을 따뜻하게 데워 놓고, 얼른 다시 가려고 했는데 말입니다. 황태자님께서 식사를 이렇게 빨리 마치실지 꿈에도 몰랐네요!”

“수리 네 꿈이 유랑극단 단원인 줄은 전혀 몰랐군.”

비오스트는 수리를 가볍게 지나쳐서 재킷의 단추를 풀었다.

“무슨 소리십니까? 황태자님께서 황제가 되셨을 때, 성심성의껏 보필을 해 드릴 수 있는 유능한 황실 시종장이 되는 것이 바로 저의 원대한 꿈입니다.”

“황실 시종장의 덕목에 뛰어난 연기력은 없을 텐데?”

벗어 낸 재킷을 비오스트가 아무렇게나 집어 던졌지만, 수리는 재빨리 그것을 받아 내었다.

“연기라니 무슨 그런…….”

번지르르한 말을 이어 가려던 수리는 무심히 저를 쳐다보는 비오스트의 눈빛에 꿀꺽, 뒷말을 삼켰다.

“살려 주십시오.”

그 대신 나온 말은 그것이었다. 시종의 말에 황태자는 피식 웃어 버렸다.

사실, 수리는 썩 마음에 드는 시종이었다.

눈치도 빨랐고, 약삭빠르며, 황태자의 앞이라고 그저 벌벌 떨고만 있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수리가 촌구석 남작의 셋째인 주제에 돈에 대한 탐욕과 출세에 대한 거대한 야망이 있어서 가능했다.

수리의 적당히 욕심을 부리고, 적당히 비위도 잘 맞추고, 또 적당히 이렇게 비굴한 점이 비오스트는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모르쇠로 잡아떼는, 그래서 감히 자신을 속여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멍청한 인간은 아니었다.

“얼마 받았어?”

“500실링요.”

“고작?”

셔츠의 단추를 끄르며 황태자는 다시 물었다. 황태자비의 자리를 노리는 주제에 500실링밖에 투자하지 않다니 남작도 어지간히 구두쇠로군 싶었다.

“잘되면 500실링을 더 준다고 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럴 일은 없을 테니 그건 없는 돈이죠.”

비오스트가 셔츠를 전부 벗어 내자 그의 미끈한 몸이 나타났다. 상처 하나 없는 하얀 피부는 귀공자의 그것과도 같았지만, 잘 짜인 섬세한 근육은 기사단장의 몸이라고 해도 될 법했다.

바지를 벗기 위해서 비오스트가 손을 움직이자 힘이 들어간 팔뚝의 근육이 불끈 솟아올랐다. 남자가 봐도 근사한 몸이라 수리는 홀린 듯이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남색 취미도 있었나?”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수리를 보며 비오스트가 그렇게 툭- 말을 던지자 그제야 수리는 꿈에서 깨어난 듯 고개를 들었다.

“솔직히 원래는 없어도 황태자님을 보면 그런 취미가 생길까 봐 무섭습니다.”

“내일부터 시종을 바꿔야겠군.”

“무서우니까,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재빨리 비오스트의 바지를 받아 내며 수리는 말했다.

비오스트가 팬티까지 벗어 내자 수리는 더욱 그를 바라보지 않으려고 노력해야 했다.

정확하게는 그의 하반신을.

남자라면 저도 모르게 눈이 가게 만드는 커다란 것을 비오스트는 가지고 있었고, 수리 역시 그의 것을 저도 모르게 몰래 훔쳐보곤 했으나 오늘은 절대로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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