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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5)화 (135/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35화

“아, 아닌데요?!”

다프네는 어쩐지 부끄러운 마음에 황급히 부정하는 말이 나왔다.

곧 그녀를 따라서 리암도 차분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아, 음. 짐을 위로 올려 드릴까요?”

아무래도 부인이 너무 무안해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아도 다프네도 지나치게 과장하여 반응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어머, 저야 그렇게 해 주면 고맙죠. 그렇지 않아도 키가 닿지 않아서 곤란했는데.”

“당연한 일이죠.”

리암이 그녀의 가방을 받아서 보관대에 올려 주는 사이, 다프네는 시선을 돌려 창문 쪽을 바라보았다.

수확을 시작하는 경작지에는 새벽부터 부지런히 나온 일꾼들로 활기가 가득했다.

기차는 점차 속도를 높이며 나아갔고, 곧 아무도 살지 않는 넓은 가을 숲으로 풍경이 바뀌었다.

바람이 정원사 노릇을 하여 틔워 낸 색색의 가을꽃이 아름답게 흔들리는 풍경에, 근처 승객 몇 명이 작은 탄성을 내었다.

하지만 다프네는 그 풍경을 내다보는 척하며, 사실은 다른 것을 보고 있었다.

때때로 창문에 그늘이 드리워질 때마다 살짝 보이는 리암의 얼굴 말이다.

‘조금 전에 상처받으신 것 같았지?’

그러니까, 다프네가 기겁하면서 연인이 아니라고 소리를 질렀을 때 말이다.

그때 얼핏 돌아본 그의 얼굴은 잠시 굳어 있었다. 물론 금방 신사적인 미소를 지으며 부인에게 친절을 베풀었지만…….

‘너무 딱 잘라서 아니라고 했나?’

하지만 그걸 다른 식으로 대답할 수도 없었다. 연인이 아닌 것은 확실하니까.

‘차라리 내가 사용인이라고 밝혔다면, 좀 나았을까.’

딱히 그렇지도 않았을 것이다. 주인과 사용인을 엮어서 오해했다며, 부인이 굉장히 난감해했을 테니까.

다프네는 고개를 떨군 채로 다시 바로 앉았다.

맞은편의 부인은 어느새 뜨개질에 열중하고 있었고, 리암은 팔짱을 낀 채로 두 눈을 감고 있었다. 확신하는데 잠이 든 것은 아니었다.

우물쭈물하던 다프네는 챙겨 온 소설책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적당히 책장만 넘길 뿐, 그 속의 글자는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수도 중앙역에서 차를 타고 나오니, 공작가 타운하우스의 관리인이 리암을 마중 나왔다.

차량에 탑승하자, 리암의 자리 한편에 서류나 출석요구서 같은 것이 쌓여 있어서 다프네는 다소 안심했다.

아무래도 리암이 다프네만을 위해서 수도로 온 것은 아닌 듯했으니까. 만약 정말로 그랬다면 미안하고 부담스러워서 기차에서의 일을 더욱 미안하게 기억하게 되었으리라.

“일정이 이렇게 많으실 줄 알았다면, 제가 제대로 옷을 챙겨 올 것을 그랬습니다.”

“비공식적인 것뿐이라 상관없어. 게다가 어떻게 입어도 근사하기도 하고.”

그가 평소처럼 잘난 척을 하고는 어째 다프네의 눈치를 살폈다.

“왜 반박하지 않지?”

“그야.”

여기에서 또 ‘아닌데요?!’라고 말하는 게 좀 미안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프네는 이번만이라도 그를 칭찬하는 말을 해 보기로 했다.

“공작님이 그, 근사하시기 때문입니다.”

애써 쥐어짠 듯한 투라 혹시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것은 아닌가 싶었는데, 리암의 반응은 좀 의외였다.

“그걸 그렇게…….”

반대편 창문으로 고개를 돌리는 그의 입술 끝이 묘하게 꿈틀거리고 있었다. 엄청나게 기뻐하는 것이 분명했다.

‘겨우 이 정도로……?’

이런 소박한 칭찬의 말에 이런 반응이라니. 바깥에서는 더 대단한 말로 그를 칭찬하는 사람이 잔뜩 있어서, 이미 익숙하다 못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을 텐데.

‘다른 칭찬의 말을 하면 어떻게 반응하시는 거지?’

다프네는 부끄러워하는 리암이 조금은 귀여웠으므로, 뭔가 다른 이야기를 더 건네 볼까 싶었다.

뭐가 있을까?

마침 리암이 다시 그녀를 돌아보았다. 자동차의 창문에서 내리쬐는 햇살이 그의 얼굴 한 면에 닿아 유난히 그의 얼굴 윤곽이 선명하게 보였다.

시선이 마주치자 그가 웃었다. 조금 부끄러운 듯한 모습 탓인지 평소의 그보다 훨씬 더 부드러워 보였다.

아름다우신 분.

자연스럽게 떠오른 찬사는 어쩐지 그녀의 절절한 진심이 섞이고 말았다.

“……아.”

가볍게 농담처럼 입에 담을 수가 없을 만큼.

“아?”

리암이 멈추어 버린 다프네의 말에 의문을 표했고, 그녀는 얼른 고개를 저었다. 다행히 그들을 태운 자동차가 마침 왕립병원에 거의 도착했을 때였다.

“벼, 병원에는 혼자 가고 싶어요.”

“뭐? 하지만…….”

사실 이대로 있다가는 리암에게 어떤 말을 할지 몰라 도망가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상대로 리암은 그녀를 만류하려는 듯했으나, 다행히 다프네는 그럴싸한 변명을 알고 있었다.

“진료받을 때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게 될 테니 조금 조심스럽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작님을 복도에 세워 둔 채로 편안히 상담을 받을 수도 없을 듯…… 하고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다프네는 다소 목소리를 죽이며 리암의 눈치를 살폈다.

“그대가 편한 방향으로 해야지. 대신 끝나는 시간에 맞춰서 데리러 올게.”

“아뇨! 병원 앞에 대여 마차가 얼마나 많은데요. 저기 보이시죠?”

리암은 이 역시 그다지 찬성하는 기색은 아니었지만, 가벼운 미소와 함께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고, 고맙습니다.”

“별말씀을, 아무런 도움도 못 주었는데.”

그래도 다프네는 자신의 의견을 강제하지 않는 리암이 고마웠다.

자동차가 병원 현관 앞에 멈추었다. 다프네가 손가방을 챙기고 모자를 쓰는 사이에, 반대편 문으로 먼저 내린 리암이 기꺼이 문을 열어 주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나도 저녁까지는 돌아갈 테니.”

왠지 가족 사이에서나 있을 법한 대화라는 생각이 들어서, 다프네는 어색하게 고개만 끄덕이고 말았다.

“곤란한 일이 있으면 내 이름을 대고 병원장에게 이야기하고.”

“그런 행패는 안 부립니다!”

다프네는 뻣뻣하게 대답하고는 얼른 병원 내부로 향했다.

하지만 몇 걸음 정도 멀어진 후에는 괜한 후회가 들었다. 그에게 조금 더 부드럽게 대했어야 했는데…… 하는.

다프네는 살짝 뒤를 돌아보았다.

다행히 리암은 아직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으므로, 바로 시선이 마주쳤다.

“고, 공작님!”

어색한 목소리로 부르자 그가 “음?”이라며 살짝 턱을 들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저, 저도…… 저녁까지는 돌아갈 겁니다.”

그가 어떤 반응을 보이든 왠지 창피한 것 같아서, 다프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얼른 병원 안으로 달려갔다.

* * *

오랜만에 만난 의사와 마법사는 다프네의 건강을 면밀하게 살피고, 다행히도 별다른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전 여전히 기억이 돌아오지 않는데…… 정말 괜찮은 걸까요?”

적어도 애슐리가 끌려가는 장면 같은 것은 기억해 내고 싶었는데, 여전히 전혀 모르는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었다.

“괜찮습니다. 꼭 시간 순서대로 기억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라서, 막상 떠올라도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고요. 특히 아주 사소한 것들은 알아차리기 어렵죠.”

“그런가요.”

하지만 다프네는 어째 사소한 기억조차 살아나지 않는 것 같았다.

“급하게 생각하면 될 일도 어그러지는 법이니까요.”

“……네.”

“그럼 겨울 중에 또 진찰을 받으러 오시는 것 잊지 마세요. 이상이 느껴질 때는 언제든 연락 주세요.”

다프네는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하얗기만 한 진찰실을 힘없이 빠져나왔다. 병원에 오면 갑갑한 마음이 조금은 나아질 줄 알았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치료 마법을 받으면 조금은 나아진다던데.’

비록 확실한 부상이나 이상이 없는 상태에서 치료 마법을 받는 것은 그다지 추천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듣기는 했지만…….

‘조금만이라도 괜찮으니까. 마법을 부탁하면 무언가를 떠올릴 수 있지 않을까.’

특히…… 리암에 대해서 말이다.

다소 충동적인 생각이 들어 얼른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려고 할 때.

“다프네!”

멀리에서부터 그녀를 부르는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낡은 양복을 입고 삐딱하게 안경을 쓴 남자가 이쪽을 향해서 두 손을 흔들며 달려오고 있었다.

“……누구?”

다프네는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로 상대를 바라보다가 한참 만에 그리운 이름을 떠올렸다.

“엘! 설마 엘이야?!”

그녀의 앞으로 달려온 엘은 얼른 그녀의 두 손을 맞잡았다.

“다행이다! 내가 다프네의 기억에 남아 있다니……. 있지, 사실은 우리 몇 달 전에 데이트했었어!”

“어? 우리가?”

다프네는 일단 제 귀를 의심했다. 애슐리를 처단하느라 여념이 없었던 사이에 데이트까지 했다고? 그것도 엘이랑?

“응, 그것도 두 번이나 했는데. 엄청 즐거웠어.”

그는 당시를 회상하는 듯 하얀 얼굴이 반짝이도록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다프네는 그와 함께 웃을 수 없었다.

“아…… 미안해, 엘. 나 기억이…….”

“뭐가 문제야?”

엘은 다프네의 손을 제 가슴 근처로 끌고 가 소중히 모아 쥐더니 배시시 웃었다.

“그보다 더 즐거운 세 번째 데이트를 하면 되는걸! 지금 시간 괜찮아?”

“지금 바로?!”

“응!”

다프네는 진료실 쪽을 미련스레 흘긋 바라보았다. 사실 마법사에게 치료 마법을 부탁해 볼 생각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침 진료실에서 나온 마법사가 어딘가로 황급히 달려가기 시작하여, 어쩔 수 없이 이제는 그런 요청을 할 수 없게 되었다.

다프네는 다시 제 손을 붙든 엘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반짝이며 바라보는 그를 거절할 수가 없어서, 다프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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