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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2)화 (10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2화

귀여워서 어쩐담.

그는 저를 흘금거리는 다프네의 얼굴을 기분 좋게 바라보았다.

“그날 제게 공작님께서…….”

마음을 주었다고 고백했지.

리암은 성급하게 답을 건네려는 제 입술에 꾹 힘을 주었다. 지금은 다프네의 답을 기다려야 할 때니까.

“저, 절 좋…… 아니, 신상 셔츠를 빌려주지 않으셨습니까?”

“음?”

“핏자국을 말끔하게 다 지웠습니다. 정말 다행이지 않습니까?”

리암은 다프네의 얼굴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정말로 그 이야기를 하려던 것인가 해서.

겨우 셔츠의 이야기로 저렇게까지 뜸을 들였다고?

“다행…… 이네. 고생 많았어.”

“제 의무죠.”

뽐내듯 답한 다프네는 익숙하게 그의 옷에 붙은 장식과 타이를 빠르게 풀어냈다.

억지로 표정을 숨기려는 듯이 입술 끝에 힘을 꾹 준 채로.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가운은 욕실에 걸어 두었으니…….”

다프네는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는데, 리암의 눈에는 어째 꼭 도망이라도 치는 듯 보였다.

이대로 보내 주어야 하나.

잠시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왠지 그렇게 하기에는 다프네 서튼이 괘씸했다.

“다프네.”

리암은 벌어진 거리를 좁히며 다가섰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들어야 할 말이 있었다.

“예?”

다프네는 그의 옷가지를 품에 안은 채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혹시 무언가 시킬 일이 있는 걸까 싶었지만 막상 그의 진지한 표정을 확인한 순간에는 그게 아니라는 사실을 금방 깨닫고 말았다.

“내게 할 말이 있을 텐데, 그렇지?”

“…….”

다프네가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자, 리암은 이제 자세한 설명까지 덧붙여 주었다. 참 친절하게도 말이다.

“엠버혼의 오두막에서 내가 먼저 떠날 때 말이야.”

“……예.”

“그대가 나를 다시 만나게 되면 할 말이 있다고 했었는데, 아직 듣지 못한 것 같아서.”

“그, 그랬죠.”

“그동안은 휴고 마플의 일로 정신이 없었으니까, 그대가 날 배려해 준 거라고 생각해.”

리암의 추궁에 다프네는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에게 하려던 말은…… 사라진 시간에서 그녀가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밝히려는 것이었다.

그것도 애슐리와.

그 이후로 몇 번이나 리암에게 사실을 말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어째 용기가 나지 않아서 오늘까지 제대로 밝히지 못했다.

사실을 알게 되면 그가 다프네를 피하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도 말하지 않을 수는 없는데…….’

만약 리암이 다프네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지 않았다면, 그 불쾌한 과거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상관이 없었다.

하지만 그가 진솔한 감정을 고백한 이상, 다프네도 그에게 진실을 말할 의무가 있었다.

그를…… 거절하는 말과 함께.

적어도 다프네는 도리를 배운 인간이 아닌가. 감정에만 사로잡혀서 행동하는 짐승이 아니라.

‘……그래야 하는데.’

오늘도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뭐, 뭐였더라.”

다프네는 그의 옷을 세게 끌어안은 채로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기억이 안 나네요. 아, 그날은 정말 정신이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다프네.”

그가 진지하게 부르며 다가오기에, 다프네는 얼른 뒤로 성큼성큼 물러섰다.

“나중에 생각나면 꼭 말씀드리겠습니다. 무, 물론 전 명석하니까 금방 떠오를 겁니다.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어째 점점 말이 빨라지며, 다프네는 자신이 무엇을 이야기하는지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 안녕히 주무십시오.”

다프네는 머쓱해져서 그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서 얼른 방에서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거의 문이 닫힐 때 즈음, 그가 작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애써 듣지 못한 척 무시하고서 달칵 문을 닫아 버렸다.

“후…….”

조용하고 어두운 복도에서 다프네도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닫은 문에 살짝 이마를 기대자, 그새 얼굴에 열이라도 올랐는지 유난히 차가움이 느껴졌다.

이래서야 사실을 전할 수 있을까.

다프네는 사실, 그의 형과 혼인했었다고.

* * *

만약 다프네의 직업이 마부였다면,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이 부드러워졌다는 것으로 계절을 느꼈을 것이다.

빵집 주인이었다면, 반죽의 발효 시간에서 계절을 알아차렸을 것이고.

하지만 그녀는 공작의 하나뿐인 수행원이었으니, 그녀가 계절을 느끼는 장소는 다름 아닌 공작의 옷장 앞이었다.

그녀는 겨우내 그가 즐겨 입었던 방한복을 손질하여 깊은 곳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맑은 봄날에 어울리는 옷과 소품을 꺼내어 정리해 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혹시 다프네가 자리를 비우는 날이라고 해도, 누군가가 금방 리암을 도울 수 있도록 만반의 대비를 해 두는 것이다.

정리를 마친 후에는 뻐근한 몸을 이끌고 리암의 집무실로 찾아갔다. 일을 마치면 찾아오라는 그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부르셨습니까.”

“응, 기다리고 있었지.”

신문을 읽고 있던 리암은 다프네에게 곁으로 오라고 명령하고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언가 부탁할 일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에 다가섰지만, 막상 마주 서자 리암이 한쪽 손을 그녀의 얼굴 쪽으로 가져갔다.

“먼지가 묻었네.”

그의 손이 뺨에 닿기 직전, 다프네는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감싸 쥐며 황급히 몸을 돌렸다.

다가오던 손길이 멈칫하자, 다프네는 번뜩 정신이 들었다. 이건 너무 과한 행동이 아니었을까, 하고.

“아니, 저기…… 옷장 정리를 해서 그렇습니다. 늘 이렇게 되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그런 변명을 하면서도, 다프네는 혹시 리암이 상처를 입지 않았을까 걱정하며 살그머니 고개를 들어 보았다.

다행히 그는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조용히 자리로 돌아갈 뿐이었다.

‘내가 너무 예민하게 반응했나?’

생각해 보면 리암은 사용인들에게 다정하게 구는 면이 있어서, 얼굴에 묻은 먼지를 직접 닦아 주는 친절은 누구에게라도 베풀 것 같았다.

그러니까, 조금 전에는 다프네를 특별히 이성으로 의식하여 한 행동이 아닐 거라는 뜻이었다.

‘사과…… 해야 할까?’

그건 그것대로 또 이상할 것 같은데.

우물거리는 사이 소파로 돌아가 긴 다리를 척 꼬아 앉은 리암이 다시 그녀를 불렀다.

“다프네, 내가 부탁한 일은?”

그녀는 얼른 올바른 사용인의 자세로 바꾸어 서며, 믿음직스럽게 대답했다.

“네, 앨러스테어 님에게 린든 남작가의 초대장은 넘겼습니다. 남작가에도 가문 의장이 갈 것이라고 전해 두었습니다.”

“좋아, 음…… 그리고.”

이야기를 멈춘 리암은 잠시 제 미간을 가볍게 눌렀다. 아무래도 피곤한 모양이었다.

신경 쓸 것이 많은 탓이었다. 서부 엠버혼, 기억을 잃은 아이, 공작으로서의 통상 업무에 아직도 용도를 찾아내지 못한 열쇠까지.

“갑작스럽긴 한데, 출장을 갈 거야.”

“예, 준비하겠습니다. 언제 출발하십니까?”

“오늘.”

“목적지와 기간을 말씀해 주시면 짐을 싸고, 기차역에도 연락해 두겠습니다.”

“아니, 역에는 연락하지 않아도 괜찮아.”

“예?”

“짐도 꼼꼼히 싸지 않아도 되고. 좀 낡은 정장을 부탁하지. 위장용으로 몇 벌 마련해 둔 것이 있지 않나?”

“예, 있습니다. 바로 준비하겠습니다.”

그가 ‘위장’이라는 말을 사용했기 때문에, 다프네는 굳이 더 캐묻지 않고서 그의 방을 빠져나왔다.

공작으로서 왕께서 시키신 일을 처리하려는 것일 테니까.

‘왠지 안심되네.’

그가 신분을 위장하여 가는 출장에는 다프네가 동행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당분간은 리암과 떨어져서 지낼 수 있다는 뜻이었다. 그동안은 어떻게 결혼에 관해 이야기할지 고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신경 쓰였던 일을 확인하러 가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바로 ‘린든 남작’ 말이다.

그는 지난 생에서 애슐리와 가깝게 지냈던 귀족이었다.

얼마 전 머물렀던 그의 집에서도 린든 남작의 편지가 있었으니, 그 사실은 이번에도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거기에 애슐리에 대한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라.’

운이 좋다면 애슐리의 집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휴고의 관찰 기록이 있을지도 모른다.

다프네는 오늘 아침에 신문에서 보았던 구인광고를 떠올렸다.

린든 남작이 새롭게 매입한 수도 주택에서 사흘의 연회 기간 중 임시로 일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타인의 저택에서 무언가를 수색하기에, 사용인만큼 좋은 자리에는 없으니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 * *

출장을 떠나는 리암을 배웅하며, 다프네는 며칠의 휴가를 부탁했다.

리암은 그녀의 휴일 일정을 무척 신경 쓰는 눈치이기는 했지만, 별다른 이견 없이 허락해 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안녕히 다녀오십시오.”

다프네는 허리를 90도로 숙여서 인사하고는 부리나케 제 방으로 돌아왔다.

그 후에는 거울 앞에 앉아서 머리를 빠듯하게 틀어 올리고, 조금 낡은 정장을 하나 꺼내어 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구인광고가 실린 신문과 이력서를 챙겨서 린든 남작가로 향했다.

본래 힐링엄 백작가의 것이었던 수도 주택은 제법 아름다웠다.

상앗빛 건물 외벽은 갓 피어난 봄꽃으로 화려하게 장식이 되어 있었고, 그 위로는 장인이 문양을 하나하나 깎아 넣은 근사한 푸른 지붕이 있었다.

“실례합니다.”

다프네는 주택 뒤편으로 돌아가, 장작을 패는 하인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사람을 구하신다고 들어서요.”

“당신도요?”

그렇게 되묻는 것으로 보아, 아무래도 오늘은 면접을 보러 온 사람이 더 있었던 듯했다.

“네, 아직 자리가 다 찬 것이 아니라면, 저도 면접을 보고 싶은데요.”

“따라오세요.”

하인은 다프네를 뒷문 안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래층은 공작가와 크게 다르지 않은 풍경이었다.

사용인들이 바쁘게 오가는 좁은 복도와 계단 그리고 주방에서 흘러나오는 열기와 주방장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다프네는 곧 사용인 홀로 안내되었다. 현이 세 개밖에 남지 않은 현악기로 경쾌한 소리를 연주하던 하녀 몇 명이 살짝 눈치를 살피다가 자리를 비켜 주었다.

다프네는 그들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귀한 휴식 시간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는 의미로.

“여기에서 기다리세요.”

안내를 도와준 하인이 물러가고, 다프네는 주머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 들었다.

그녀의 이력서였다.

“면접을 보러 오셨다고요?”

곧 허리에 열쇠를 단 가정부가 다프네를 만나러 왔다. 페이지 부인과 비슷한 연배인 듯싶었다.

“네, 처음 뵙겠습니다.”

다프네는 익숙한 예법으로 그녀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프네 페이지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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