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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1)화 (101/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1화

“미안해, 리암.”

리암이 수도로 돌아와 엘리엇에게 모든 것을 보고하던 밤.

엘리엇은 어째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로 조심스레 사과를 건넸다.

“마법사를…… 조금 더 빨리 보냈어야 했는데.”

아무리 슬로언 공작의 요청이 있었다고는 하나, 나라의 보물인 마법사가 이동하는 일에는 마땅한 절차가 요구되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리암은 중요한 증인이 죽어가는 것을 눈 뜨고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아니.”

하지만 엘리엇을 원망할 수는 없었다.

“너도 최선을 다해 주었으니까. 무엇보다…… 내 말을 믿는 것조차 어려웠을 텐데.”

존경과 사랑을 받는 마법사가 그런 잔인한 짓을 주도했다는 사실을 믿기는 어려울 것이다.

“믿어, 리암.”

“…….”

“리암 슬로언이 하는 말, 나는 무엇이든 믿어.”

“믿는다고?”

“친구니까. 그리고 너는 혹시 내가 틀린 일을 저지를 때 누구보다도 먼저 달려와서 바로잡아 줄 사람인걸.”

그는 턱을 괸 채로 눈초리를 잔뜩 휘어 가며 살랑살랑 미소 지었다.

평소의 리암이라면 그 얄미운 얼굴에 ‘아니’라며 부정하는 얄미운 말을 툭 던져 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차마 그럴 수가 없었다.

엘리엇에게는 이미 두 가지의 신세를 지고 있었다.

하나는 토마스의 치료였다.

소년이 마법사로 인한 상해를 입은 이상, 그 치료에도 마법사의 힘이 필요했다.

마법사 대부분이 애슐리의 입김이 닿아 있는 이 상황에서, 토마스를 믿고 맡길 수 있는 곳은 오직 왕실뿐이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색에서 발견된 것은 있었나?”

엘리엇은 왕실 역사상 처음으로, 마법사의 개인 주택을 수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비록 공식적인 수사가 아니라, 그의 측근을 활용하여 은밀하게 진행한 것이지만 말이다.

“응. 일단 다락까지 살펴보긴 했는데, 그가 실험에 가담했다 싶은 증거는 없었어. 다프네가 봤다는 리처드 서튼의 시계도 없었고.”

엘리엇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리암은 사과를 건넬 수밖에 없었다.

이로 인해 엘리엇은 애슐리에게 큰 약점을 하나 잡혔으니까.

왕국의 국방을 위해 마법사들이 보태는 힘이 적지 않은 만큼, 왕이 이들을 얼마나 대접하느냐는 무척 민감한 문제이기도 했다.

그런데 가장 존경을 받는 마법사를 의심하고 수색까지 했으니, 만약 이 일이 다른 원로 마법사들의 귀에 들어간다면 엘리엇은 꽤 곤란한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이다.

“……정말로 미안하다.”

리암은 엘리엇이 이런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서 그 일을 실행했음을 알고 있었다.

“사과하지 마, 리암. 나도 계산하고 행동한 거니까.”

엘리엇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장식장에 든 술잔을 꺼내어 브랜디를 조금 따라 그에게 건네었다.

“계산했다고?”

리암은 그가 건네는 술을 거절하지 않았다.

“응.”

그리고 엘리엇은 자신이 마실 술도 준비하여, 리암의 바로 옆자리에 딱 붙어 앉았다. 서로의 어깨가 닿을 정도로 가까이.

“이제 리암 슬로언은 정말로 날 버리지 못해. 그렇지?”

“…….”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날 믿을 테지.”

“고작, 그런 걸…….”

“고작?”

한 모금 술을 기울인 엘리엇은 생긋 웃으며 그를 돌아보았다.

“나는 귀족의 정점이라 불리는 남자를 내 것으로 만든 건데?”

“네 것이라니, 이 불쾌함을 어떻게 표현할 말이 없군.”

“그럴 때는 좋아한다고 말하는 거야.”

이 얄미운 왕의 등을 때려야 하나.

틀린 길을 고르면 때려도 좋다고 친히 허락해 주신 것을 기념해서 말이다. 물론 정말로 행동으로 옮길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서, 정말로 방법은 없는 건가?”

“그 마법사는 정말로 쉽지 않아.”

엘리엇은 단숨에 비워 낸 술잔을 테이블로 내려놓고서, 리암의 팔에 머리를 기대었다.

“그는 마법사뿐 아니라 일반 사람들에게도 대단한 지지를 받고 있어. 얼마 전 마법사 원로회에서는 그에게 ‘대마법사’ 칭호를 허락해 달라는 요청도 올라온 상황이고.”

“당치않군.”

“최연소 대마법사의 명예는 꽤 오래 기억될 테니까.”

“집 수색을 비밀에 부치는 대가를 내놓으라는 건가?”

“뭐…… 그도 내가 거절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아는 거지.”

“의외네.”

“의외라니?”

“형님이 네게 본색을 내비치다니.”

애슐리가 대마법사의 칭호를 달라는 말은, 형식만 갖추었을 뿐 왕을 협박하는 행위다.

어디까지 자신을 드러낼지 면밀하게 계산해 온 애슐리가 그런 요구를 할 줄이야.

“그도 마음이 급해진 걸지도 모르지. 나로서도 그게 좋기는 해. 발톱이 보이면 피할 수 있잖아.”

“그걸 기회로 역공할 수 있다면.”

“글쎄…….”

엘리엇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플이 이전에 보낸 실험 자료 같은 것을 그의 집에서 찾아낸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지. 이미 한 차례 실패했지만.”

“발견되지 않은 것을 보면 이미 태워 버렸겠지.”

“글쎄, 나는 그럴 것 같지 않아. 연구자들이란 기록의 원본을 꽤 소중히 여기거든. 더구나 그건…… 귀한 목숨을 이용한 결과지.”

어쩌면 휴고가 남긴 관찰 기록이, 나중에는 대단한 발견과 연결이 될지도 모른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원본은 최대한 보존하고 있을 거라는 의미였다.

비록 그게 어디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일단은 알았어, 더 찾아보지. 그리고…… 한 가지 물어볼 일이 있는데.”

“좋아, 말해. 성실하게 답해 줄게.”

“나한테 보낸 편지는 무슨 내용이었지? 다프네가 내게 가져다주려고 했던 것 말이야.”

리암은 쓰게 웃었다. 괘씸하게도 휴고는 왕의 편지를 태워 버린 모양이다. 타다 남은 봉투가 잿더미 속에서 발견되었다.

“아, 그건 린든 남작에 대해 알아봐 달라는 이야기였어.”

“린든 남작?”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이름에 리암은 잠시 눈동자를 굴려 과거를 헤집었다.

“그…… 보따리 상인의 신분 보증서에 그 이름이 있었던 것 같은데.”

“맞아. 몇몇 장사꾼들을 상대로 보증 수수료 장사를 하는 남자야. 특이점이라면 최근에 힐링엄 백작이 내놓은 수도 주택을 사들였고.”

“보증 수수료 장사가 그렇게 대단한 돈벌이가 되던가?”

리암의 물음에 엘리엇은 손을 모아 쥔 채로 웃는 소리만 내었다.

그는 평소 귀족들의 사업이나 재산에 대해서 깊이 관여하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정당하지 못한 돈이 그들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일에 대해서는 제법 신경을 곤두세우는 편이었다.

“알아보지.”

“응, 어쩌면 리암과도 아주 관계없는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그건 무슨……?”

엘리엇은 여태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켜 리암을 돌아보고는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

“내가 애슐리의 집을 수색했을 때 말이야…….”

* * *

리암은 왕궁에서 나와 타운하우스로 향했다.

오랜만에 탄 마차의 어색한 흔들림 속에서, 그는 주머니에 넣어 둔 열쇠를 꺼내어 만지작거렸다.

토마스를 발견했을 때, 기록과 함께 찾아낸 것으로 리암은 이 열쇠를 무심결에 품에 넣었다.

그러니까 이 열쇠는 불타 버린 증거 중 유일하게 온전한 것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렇다곤 해도 무엇을 여는 건지 알 도리가 없으니…….’

처음에는 마플 저택에 이 열쇠와 맞는 서랍이나 금고가 있으리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무엇 하나 맞는 것이 없었다.

수도로 온 이후에는 금고를 대여해 주는 은행이나 클럽을 수소문했다. 비록 오늘까지 별다른 소득은 없었지만 말이다.

‘그곳에 숨겨 둔 것을 보면, 사건과 관계가 있는 것은 분명한데.’

마침 마차가 조금씩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여, 리암은 열쇠를 도로 품에 넣었다.

늦은 시간임에도 다프네가 그를 마중 나와 있었다.

그녀는 이전과 달라지지 않은 모습이었다. 정갈하고 수수한 차림, 깔끔하게 묶어 올린 은발 그리고…….

“다녀오셨습니까.”

각이 잡힌 인사까지.

리암은 그 변함없는 모습에서 기묘한 섭섭함을 느끼고 말았다. 그의 감정을 알고서도 어찌 이렇게 반응이 없단 말인가.

적어도 조금은 부끄러워하거나, 어쩔 줄 모르는 반응을 보일 줄 알았는데.

‘애가 타는 건 나뿐이지.’

그는 쓰게 웃으며 마차에서 내렸다.

“다녀왔어, 다프네. 별일은 없었나?”

“앨러스테어 님께서 내일 오전 10시 30분에 중앙역에 도착할 것이라고 편지를 주셨습니다. 제가 마중을 나가겠습니다.”

다프네가 손을 내밀었기 때문에, 리암은 그녀에게 모자와 외투를 건네주었다.

“그래, 그리고?”

“아셔의 보고서가 왔습니다. 공작님의 책상 위에 올려 두었습니다.”

“읽어 보지. 더 있나?”

계단과 복도를 지나 방앞에 도착하여, 리암은 다프네를 돌아보았다.

“아뇨.”

그건 참으로 매정한 대답이었다. 애가 타는 마음에 기름을 부어 불을 붙이기에는 딱 적당할 정도로.

“아…… 있습니다.”

하지만 곧 다른 일을 떠올렸는지 다프네는 금방 제 말을 바꾸었다.

“들어와서 이야기해. 무슨 일이지?”

리암은 제 침실로 들어가며 다소 심드렁하게 물었다. 어차피 다프네가 두근거리는 로맨틱한 이야기를 할 것 같지도 않았으니까.

“저어, 그게…….”

그런데, 그를 따라 들어온 다프네는 고개를 푹 숙인 채로 머뭇거리기 시작했다.

“……?”

“그, 그게 말입니다.”

게다가 말을 더듬기까지 하다니.

리암은 분명히 또 실망하게 될 것을 각오하면서도 어떤 기대를 품고 말았다. 혹시 다프네가 그날에 관하여 이야기하려는 것은 아닌가 하고.

“그날…… 말입니다.”

“……!”

리암은 놀라서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줄 알았다.

“어, 어.”

그는 애써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답을 건네고서 다프네의 이야기를 기다렸다.

“그…….”

하지만 어째 이야기하기가 쉽지 않은지, 그녀는 한참이나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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