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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3)화 (103/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3화

다프네는 진짜 페이지 부인에게 사죄하는 마음을 품은 채로 그렇게 답했다. 사실 다른 이름을 사용해 볼까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준비해 온 이력서를 내밀었다.

“반가워요, 페이지 양. 난 가정부인 넬슨입니다. 잠시만 실례하죠.”

그녀는 다프네가 가져온 이력서를 펼치고, 작은 돋보기안경을 꺼내어 이를 유심히 읽어 내려갔다.

“이런.”

어느 한 곳에서 그녀가 앓는 소리를 내었다.

“미안합니다. 아직 혼인하지 않으신 분인 줄 알았습니다, 페이지 부인.”

예상했던 반응에 다프네는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괜찮습니다. 자주 오해를 받아서요.”

“그렇군요. 보아하니 경험은…….”

넬슨 부인은 다시 이력서로 시선을 옮겼다.

“서튼이라는 분을 모셨군요.”

“네, 수도에서 거주하시는 신사분이시죠.”

“실례가 아니라면 그분은?”

“안타깝게도 돌아가셨습니다. 함께 드린 소개장은 아드님이신 서튼 씨가 써 주셨고요.”

물론 그 소개장은 다프네가 직접 적은 것이다.

“음…… 그러네요.”

이를 살펴보던 넬슨 부인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귀족이 아닌, 중간계급을 위해 봉사하던 하녀가 제대로 된 예법을 알고나 있을지 걱정하는 것이리라.

“서튼은 대대로 슬로언 공작가에 충성하는 유서 깊은 가문입니다. 제가 모신 분은 왕가로부터 대마법사 칭호를 받으신 서튼 님의 직계 후손이었고요. 저도 이에 마땅한 예절로 그분들을 모셨습니다.”

다프네는 제 가문을 치켜세우는 이야기가 부끄럽기는 했지만, 지금은 뻔뻔하게 굴어서라도 여기에서 일자리를 얻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애슐리를 고발할 증거를 찾아내기 위해서라도.

잠시 고민하던 넬슨 부인은 안경을 품에 넣었다.

“좋네요. 일하는 사흘간은 여기에서 머물러야 하는데, 가족분들과는 이야기 나누어 보셨습니까?”

“아, 네. 괜찮습니다.”

“남편분이 직업을 존중해 주시는 모양이죠? 좋은 분이네요.”

이런 말에는 그냥, 그렇다고 답하면 될 것을.

“아, 아뇨!”

‘남편’이라는 단어에서 자연스럽게 애슐리를 떠올리고 만 다프네는, 그가 ‘좋은 분’이라는 말에 저도 모르게 열렬한 부정의 말을 건네고 말았다.

“어, 그러니까. 저기…….”

다프네가 뭐라고 말을 잇지 못하자 곧 넬슨 부인이 동정 어린 시선을 보냈다.

“……젊은 나이에 결혼해서 고생이 많군요.”

아무래도 다프네의 가상 남편인 ‘페이지 씨’가 몹쓸 사람으로 여겨진 모양이었다.

가령, 부인이 벌어 오는 돈으로 한량처럼 지낸다거나 하는……

“수고가 많아요.”

“가, 감사합니다.”

차라리 그런 설정이 나은 것 같기도 하여, 다프네는 달리 남편에 대한 변명을 덧붙이지 않았다.

“그럼 잠시 여기에 앉아 기다려 주시겠어요? 마님께 당신에 대해 보고하고 오겠습니다. 차를 가져다주라고 할게요.”

“아, 네.”

다프네는 부인이 권한대로 자리에 앉았다. 조금 전에 악기를 연주하던 하녀가 다프네의 앞으로 홍차를 가져다주었다.

좋은 잎을 이용해 정성을 들여 내린 것으로, 제법 대접을 받는 듯한 기분에 다프네는 왠지 좋은 예감이 들었다.

일이 잘 풀릴 것만 같은.

“아, 페이지 부인?”

차를 반 정도 마셨을 때, 다시 그녀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네!”

다프네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빙글 몸을 돌렸다.

“마님께서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방금 저희 쪽으로 면접을 보러 오신 다른 분이 있습니다만.”

“예.”

혹시 다프네 외에 다른 유력 채용 후보도 있는가 싶어서 잠시 걱정하던 찰나, 넬슨 부인이 흥미로워하는 기색을 내비치며 말했다.

“혹시 부인과 친척이 아닐까 해서요.”

“친척이요?”

설마, 페이지 부인이? 아니, 그녀는 이제 더는 하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녀의 가족이 여기에 일하러 온 건가?

‘대체 누구지?’

의아해하는 사이, 계단 위에서 정장을 입은 남성이 내려왔다. 차림새로 보아 여기의 집사인 듯싶었다.

그리고 그의 뒤로…….

조금 전에 다프네가 챙겨 준 허름한 정장을 입은 리암 슬로언이 뒤따르고 있었다.

“허?”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경망스러운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 반응을 지켜본 넬슨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친척인 모양이군요.”

“아, 어…… 그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라 버벅거리기만 하는 다프네의 앞으로 리암이 마주 섰다.

“페이지 부인이 있다기에 누구인가 했더니.”

“…….”

다프네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서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런데, 넬슨 부인은 공작님이 왜 나와 친척이라고 생각한 거지?’

조금 뒤늦게 든 의문에 대한 답은 금방 풀렸다.

“페이지 씨, 아무래도 두 분은 가족이신 모양이군요?”

집사가 리암을 ‘페이지 씨’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 리암 역시 그 이름으로 여기에서 단기 일자리를 구하려고 온 듯했다.

‘……왜?’

다프네는 의문이 들었지만, 일단은 이를 내비치지 않기로 했다.

그저 지금은 수상해 보이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두 사람 모두 쫓겨나 저택을 수색할 기회를 잃어버릴 수는 없으니까.

“가족이…… 맞습니다.”

다프네와 같은 생각을 했는지, 리암도 얼른 두 사람의 관계를 인정했다.

“예, 가족이죠.”

다프네도 얼른 함께 대답했다.

“그렇군요. 실례가 아니라면…….”

그들의 관계를 물으려고 하는 질문이 시작될 때, 리암이 한쪽 눈을 찡긋하여 무어라고 신호를 보내왔다.

설마, 남매라고 하자고?

아니 그건 안 될 것이다. 페이지는 다프네가 결혼 후에 얻은 성이라는 설정이니까.

그게 아니라면 남편이라고?

그것도 설정 오류다.

다프네는 조금 전에 자신의 남편이 무척 몹쓸 사람이라는 암시를 주었다.

아마 넬슨 부인은 다프네의 남편이 주정뱅이 따위라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저렇게 허우대가 멀쩡한 미남이 아니라.

‘뭐라고 하지? 뭐라고 해?’

당혹이 깊어지는 사이, 리암이 부드럽게 다프네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꼭 사이가 좋은 ‘부부’가 그렇게 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희는 육촌…….”

“제, 제 남편의 동생이에요!”

다프네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답해 놓고서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그냥 가만히 있을걸!’

리암이 ‘육촌’이라는 가깝고도 먼 좋은 핑계를 찾아냈을 거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해서, 그의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멋대로 말해 버렸다.

그것도…….

‘줄곧 말하지 못했던 사실인데!’

다프네는 머릿속이 터질 것 같은 와중에도 차마 드러내 놓고 절망할 수는 없어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아…….”

다프네의 이야기를 들은 리암은 잠시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금세 씩 웃으면서 다프네의 이야기에 장단을 맞추어 주었다.

“예, 제게는 형수님 되시는 분입니다.”

“…….”

순간 다프네는 숨이 턱 막혀 왔다.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닌데도 말이다.

* * *

다행히 그들은 모두 채용이 결정되었다.

연회는 이틀 후부터 시작되어, 먼 곳에서 올라오는 남작의 친척까지 합하면 약 서른 명의 손님들이 예상되는 자리였다.

다프네가 해야 할 일은 전담 하녀가 없는 남작의 친척 부인들을 돌보고, 그들의 방을 정리하는 것이다.

리암도 남작의 남자 친척들을 맡았다. 거기에 연회에서 음식을 나르는 일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그들은 곧바로 근로 계약서를 작성했다. 그 자리에는 남작의 변호사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혹시 리암이 정체를 들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리암 슬로언은 수도의 신사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인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였던 모양이다.

변호사는 리암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고서도, 어째 이상한 낌새를 하나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왜지?’

다프네는 제 옆에 앉은 리암을 흘긋 바라보았다. 낡은 옷을 입고 있다고 해도, 펜을 잡고 사인을 하는 사소한 움직임마다 쓸데없을 정도로 우아함이 녹아 있었다.

그런 것은 하루 이틀 만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니, 그의 신분을 한 번쯤은 의심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어쨌든 문제없이 단기 계약을 마치고 집을 나오는 길, 다프네는 별수 없이 리암과 단둘이 남게 되었다.

“왜 그대가 페이지 부인이 된 거지?”

리암이 그렇게 먼저 물었는데, 그건 다프네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공작님이야말로 왜 페이지 씨가 된 겁니까?!”

“페이지 부인에게는 나중에 사과를 드릴 거야.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어쩔 수…… 흠.”

그러다 문득 리암은 무언가 의아했는지, 걸음을 멈추고서 다프네를 빙글 돌아보았다.

“왜, 왜 그러십니까.”

그의 눈에는 의심의 기색이 가득했기 때문에, 다프네는 부쩍 긴장하고 말았다.

“그대도 설명해 봐.”

“뭐, 뭐를 말입니까?”

“여기는 어떻게 알았지?”

“그, 그야 신문에 여기에서 사람을 구한다는 기사를 봤죠…… 그리고 전 마침 휴가를 보내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휴가에 단기 노동을 하러 왔다고?”

리암은 ‘절대로 그럴 리가 없다’라고 확신하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지난겨울에 엘이 클롯모어로 일하러 왔을 때, 다프네는 위와 같은 행위에 대해 단호하게 이의를 제기한 적이 있었다.

“……그게.”

다프네는 잠시 우물거렸다.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실대로 이야기했다가 애슐리에 대해 어찌 그리 잘 알고 있느냐고 그가 캐물을까 두려웠다.

“그…… 있잖습니까.”

다프네는 별수 없이 껄끄러웠던 시간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녀가 애슐리의 집에서 신세를 지던 때 말이다.

“지난번에 그…… 집에서요.”

“음?”

“린든 남작님이 보낸 편지가 있는 것을 봤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리암의 표정에 묘한 의심이 깃들었다.

겨우 편지 봉투를 하나 보고 이렇게 잠입을 감행하는 것이 다소 억지스럽게 느껴진 걸지도 모른다.

조금 침묵이 길어지는 것이 어색하여, 다프네는 그에게 조심스레 질문을 하나 건네었다.

“그럼 공작님은 어떻게 해서 여기로 오신 겁니까?”

“명령으로.”

“예?”

“전하의 명령. 그리고…….”

리암은 지난번에 엘리엇이 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애슐리의 가택 수사에서 린든 남작과 연락을 주고받은 흔적이 여럿 발견되었다고.

“그대와 같은 것을 의심하고 왔어. 파티의 손님보다는 사용인 쪽이 수색에 더 유리하기도 하고.”

“하지만…….”

다프네는 걱정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공작님이 사용인이라니, 가능하시겠습니까?”

“물론.”

“이 직업은 간단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손과 발이 되어야 하는 만큼 눈치도 빨라야 하고요.”

그런 일을 ‘받는 것’에 익숙한 공작님께서 해낼 리가 없었다.

다프네는 리암이 하루도 채 일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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