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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0)화 (100/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00화

리암은 그의 몸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지만 이제 더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리암은 그를 쥐었던 손을 놓았다.

툭 하고 그의 몸이 바닥에 떨어져 흐트러졌다. 호흡이 어려운지 가슴께가 불규칙적으로 오르내리고 있었다.

리암은 제 뒤에 서 있는 치안대에게 명령했다.

“그를…… 마법사에게 보여야 한다. 아직 숨은 붙어 있는 것 같으니. 바로 수도로 연락해!”

비껴 맞은 탓인지 운이 좋다면 증언을 할 수 있을 정도로는 목숨을 유지시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리암은 빠르게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이제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정을 지어 말하는 그의 잔혹한 말과 ‘불길’이라는 말이 리암의 머릿속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어 들려왔다.

그건…… 다프네를 두고 온 오두막이 그리되었다는 뜻이리라.

‘그럴 리 없다.’

그는 애써 부인하며 고개를 내 저었다. 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쩔 수 없는 두려움이 피어나고 말았다.

그리 말하던 휴고 마플의 눈빛이나, 일그러진 미소에는 너무나도 깊은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아니.’

어쨌든 다프네 서튼이 죽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서튼의 후예다.’

그 예로, 이미 한 번 서튼의 마법이라 알려진 ‘시간’을 되돌렸다고 하지 않는가.

그러니까 어떤 일이 있다고 해도, 마법사 서튼이 남겨 둔 마법이 그녀를 보호해 줄 것이 틀림없었다.

“아, 제기랄!”

그는 복도를 가로지르며 저도 모르게 욕설을 지껄이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500년 전에 죽어 버린 마법사에게 구원을 바라는 것밖에 하지 못하다니, 그는 제 나약함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그녀를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구나, 리암.」

「저는 슬로언 공작입니다.」

「……교훈은 대시로 충분했을 텐데.」

애석하게도 애슐리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그건 오만이었다.

가면을 쓰고서야 겨우 공작 행세를 하는 연약한 리암 슬로언이 다른 누군가를 완벽하게 지킬 수 있을 리 없었다.

‘…….’

조금씩 무너져 가는 머릿속에서, 리암은 다프네를 잃은 미래를 생각했다.

순간 톱니바퀴에 이물이 끼어 버린 듯 그의 생각 전체가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아…….’

이물은 점점 깊어져 견고한 톱니 사이를 점점 벌어지게 했다. 그러다 이내 머릿속은 멈추었다.

‘……그렇구나, 나.’

리암은 삐걱거리는 자신을 바라보다가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이대로 정말 다프네를 잃는다면, 그는 정말로 무너지게 되리라.

지금까지 소중한 것을 잃은 경험은 몇 번이나 해 왔다.

유일한 친구였던 대시, 나름대로 그를 아껴 준 아버지와 이해자 리처드 서튼…… 그때마다 리암은 무너졌지만, 이렇게 일어설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그녀는 그와 피로 이어진 맹약의 서튼이었고, 또.

그가 욕망하는 유일한 상대였다.

어쩌면 두 번 다시는 찾아오지 않을 감정의 주인이었다.

‘제발.’

그는 제 나약하고, 쓸모없음을 간단히 인정했다.

‘어떤 기적이라도 좋습니다.’

계단을 뛰어 내려가며, 그는 세상 사람들이 섬기는 모든 신을 떠올렸다.

“……다프네.”

그리고 작게 그녀의 이름을 읊조리며, 현관을 달려 나갔다. 조금 전에 세워 둔 그의 차를 향해서.

하지만 갑자기 곁에서 다가온 누군가가 그의 팔을 붙잡았다.

놓으라며 윽박지르기 위해 고개를 돌린 순간.

성급함에 좁아진 시야로 동그랗고 파란 눈동자가 들어왔다.

“아…….”

리암은 떨리는 손으로 허공을 더듬거리다가, 가까스로 상대의 뺨을 쥐었다.

보드랍고 따듯했다.

그리고 이제야 조금 화가 난 듯한 다프네의 표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그가 허락도 구하지 않고 뺨을 만지작거리니 화가 난 것일까.

그건 너무나도 일상적인 다프네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는 한 가지 걱정이 들었다.

어쩌면, 이건 환상이 아닐까…… 하는.

“마, 말을.”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말해 봐, 제발 내게…….”

그리고 환상일지도 모를 다프네 서튼에게 애원했다. 예쁜 모양으로 모여 있던 입술이 드디어 움직였다.

“……공작님?”

“또.”

“괜찮으십니까?”

그녀가 진심으로 걱정스레 바라보는 모습에 리암은 어째 좀 두려워졌다. 이 목소리 역시 그의 기억에서 흘러나오는 환상인가 싶어서.

“나 좀…… 때려 줘.”

그건 정말로 간절한 부탁이었다.

“고통스러워도 좋으니까.”

게다가 진지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어째 다프네의 표정은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하게 식어 가기만 했다.

“느닷없이 그런 말을 들어야 하는 사람 쪽이 더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십니까.”

“한 번이라도 좋아. 제발 날 때려 줘.”

“저기.”

다프네는 그의 어깨 너머를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이 대화를 듣는 아셔의 몸에서 영혼이 반쯤 빠져나가고 있습니다.”

“……음?”

아셔라니. 리암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그곳에는 토마스를 둘러업은 아셔가 서 있었다.

다프네가 지적한 대로 안경 너머로 보이는 그의 눈동자가 거대한 혼란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아…….”

그를 보는 순간, 리암은 놀라울 정도로 현실감이 훅 끼쳐 들었다.

그게 그렇지 않은가. 리암이 다프네 서튼을 망상할 수는 있어도 아셔를 망상하지는 않을 테니까!

“맙소사, 그대가 너무 좋아. 사랑해, 아셔!”

리암은 얼른 달려가 아셔를 푹 끌어안았다.

* * *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토마스를 안아 든 리암은 저택 안 침실로 향하며 다프네에게 사정을 물었다.

어떻게 그 오두막을 빠져나올 수 있었는지.

“공작님이 떠나고 오두막 앞에 연기를 피웠습니다. 아무래도 토마스가 걱정되어서요.”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절벽 위를 지나가는 사람이 이를 발견해 주었다.

“그 은인이 바로 저입니다, 공작님. 처음에는 산불이라도 난 줄 알고 놀랐습니다.”

아셔가 다소 뽐내듯이 턱을 들어 올렸다.

“채집꾼들이 사용하는 길을 따라서 아래로 내려가 보니, 이 여자가 저를 발견하자마자 엄청 반가워하면서 괴상한 춤을 추지 뭡니까!”

“이상한 춤이 아니었습니다. 환영의 마음을 그대로 형상화한 아름다운 춤사위였다고요.”

“아뇨, 불쾌감이 돋아나서 그대로 돌아가고 싶어지는 춤사위였습니다.”

리암은 두 사람이 서로 툴툴거리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기묘한 감정에 사로잡혔다. 왠지…… 얄밉다고 해야 하나.

이런 대화를 듣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말이다.

“어쨌든…… 죄송합니다.”

조금 분위기가 진정되자 다프네가 리암의 곁으로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왜 내게 사과하는 거지?”

“제가 오두막을 떠날 때 일지를…… 챙기지 않았습니다. 치안대가 발견하도록 제자리에 두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었던 것뿐인데.”

그녀는 잠시 우물거리다가, 이야기를 이어 갔다.

“마차를 타고 언덕을 넘어올 때, 숲에서 폭발음이 들렸습니다. 아마…… 이런 일을 대비해서 무슨 수를 써 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말은 사실이었군.”

리암은 아찔한 생각이 떠올라서 잠시 침묵을 지켰다. 만약 다프네가 그냥 오두막에서 멍하니 그를 기다리기만 했다면, 지금쯤…….

“죄송합니다.”

“아니야, 그대가 무사한 것만으로도 아주 기뻐. 진심이야. 증거는 이제부터 치안대와 함께 수색해 보아야지.”

마침 층계 위로 들것에 실린 휴고의 모습이 나타났다.

세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들것에 실려 나가는 그의 모습을 조용히 바라보기만 했다.

머리에서 흐른 진득한 피가 굳어 그의 얼굴은 이미 엉망이었다. 정말로 숨이 붙어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버지.”

아셔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그 먹먹한 목소리에 곁을 지나던 치안대원들의 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휴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서둘러야 했으나, 누구도 감히 재촉하는 말을 하지 못했다.

리암은 감히 아셔의 마음을 헤아렸다.

아셔는 아주 오랫동안 아버지의 인정을 기다려왔다. 언젠가는 리암을 제대로 평가하고, 그를 모셔 온 아셔를 칭찬해 줄 것이라며.

하지만 결국 이런 결론이 나고 말았으니…… 절망스럽지 않을까.

“아셔.”

리암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그의 한쪽 어깨를 가볍게 짚었다. 어느새 아셔의 눈가에는 작은 눈물이 맺혀 있었다.

“아뇨.”

아셔는 얼른 제 눈가를 훔치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위로를 거절하듯이.

“아닙니다.”

그리고 애써 부릅뜬 눈으로 치안대원들을 다시 돌아보았다.

“죄인을 연행하세요.”

아셔는 가문을 대표하는 아버지의 앞에서, 이제 더는 경의를 보이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이제야 멀어져 가는 그를 향해 고개나 허리를 숙이지도 않았다.

그저 차가운 안경만 고쳐 쓴 채로 죄인이 끌려가는 길을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었다.

* * *

휴고의 방으로 돌아가니, 남은 치안대원이 그의 방에서 몇 구의 시신을 더 발견한 상황이었다.

“응접실에서 두 구 그리고 옷장에서 한 구가 발견했습니다.”

그들의 신원은 다프네가 확인해 주었다.

둘은 기차에서 만났던 남자들이었고, 나머지 한 명은 그녀를 태워 준 마부였다.

남자들로부터 도망을 온 끝에 휴고에게 살해를 당했던 모양이다.

마플 저택이 유난히 조용했던 것은, 이 상황을 목격한 사용인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도망을 쳤기 때문이고.

치안대원은 그들을 대상으로 휴고의 살해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다시 찾아가 본 오두막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폭파된 채였다.

그곳에서 인체 실험을 했다는 증거는 무엇 하나 찾아볼 수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토마스가 무사히 깨어났다는 것이다. 지독한 어지럼증을 호소하던 토마스는 자신에 대한 것은 거의 떠올리지 못했다.

어렴풋이 ‘어느 할아버지’로부터 약을 받아먹었다는 사실은 떠올리기는 했지만 약의 부작용으로 그의 기억이 다소 일관적이지 못한 탓에, 이 증언은 공식적인 증거로 채택되지 못했다.

다프네는 기차에서 만났던 루비를 수소문하여 토마스와 재회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리암은 아셔를 서부 엠버혼의 임시 지방관으로 임명했다.

그사이 아이들이 살고 있던 시설의 원장은 실종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다프네는 그가 애슐리의 보호를 받는 것은 아닌가 하고 의심했지만, 안타깝게도 이를 증명할 방법은 이제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한편, 휴고는 바라던 결말을 얻어 냈다.

수도에서 파견된 마법사가 동부 엠버혼에 채 도착하기도 전에 그 목숨이 스러지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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