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6화
리암은 복귀 시간이 된 사무엘을 성벽까지 데려다주었다.
사실 사무엘은 운동 겸 뛰어가겠다고 주장했지만, 다프네가 이를 극구 반대했다.
늦은 밤에 어린애가 혼자 돌아다니면 안 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리암도 미성년자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하는 바였다.
하지만…… 뭐랄까.
누가 누구를 보호한다는 건지 잠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리암은 운전대에 몸을 기댄 채로, 치안대 기숙사로 달려가는 사무엘의 등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옹골차다.
그가 클롯모어로 발령받은 것은 이 지역의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아이참, 저렇게 뛰다가 넘어지면 어쩌려고.”
하지만 옆자리에 앉은 아가씨는 여전히 사랑스러운 동생이 위태로워 보이는 모양이다.
“동생이란…… 원래 그렇게 걱정되는 존재인 건가?”
“네, 아무래도.”
“그래도 누이가 믿어 주면 꽤 기뻐할걸.”
리암은 진심을 담아 충고를 건넸다. 하지만 어째 그게 다프네의 신경을 건드린 모양이었다. 무서울 정도로 표정을 구긴 채 그를 돌아보는 것을 보면.
“공작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왜 그렇게 화를 내지?”
“그럼 제가 방긋방긋 웃어 드릴 줄 알았습니까?”
다프네는 안고 있던 쿠션을 꽉 쥐었다.
“제 동생을 넘보시지 말라고 몇 번을 말씀드립니까?!”
“……뭐?”
리암은 대체 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 것인지 고민했으나, 곧 답을 떠올리곤 미소 지었다.
“아.”
그가 사무엘의 안색을 살펴보느라 얼굴을 붙잡았던 일을 이야기하는 모양이다. 각도에 따라서 꽤 오해할 만한 모습으로 보였을 것이다.
맙소사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다프네는 계속하여 오열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상자 너머에서 들려온 목소리가 너무나도 맑고 아름다워서 사무엘인 것 같다고 생각했기에 망정이지! 장갑을 골라 달라는 공작님의 같잖은 볼일에 홀랑 넘어가서 사무엘을 놓치고, 제가 그 현장을 발각하지 못했다면……!”
다프네는 사무엘을 붙잡고 얼굴을 들이밀던 리암을 떠올렸는지, 안색이 새파랗게 질려 가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귀여웠기 때문에, 리암은 고개를 끄덕여 모든 혐의를 기꺼이 뒤집어쓰기로 했다.
“그렇지, 나도 아쉬웠어.”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께서 제게 동생 걱정이 지나치다고 하시는 겁니까! 맙소사, 공작님도 제게 감사하셔야 한다고요! 그야 물론 사무엘이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게 할 만큼 잘생겼다는 점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래, 확실히 잘생겼어.”
“하지만 저 아이는 아직 성인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보시다시피 어린애라고요!”
‘보시다시피’라는 점에는 동의할 수 없었지만, 리암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무엘 서튼은 어린애다.
그래서 리암도 치안대에 자주 얼굴을 내밀어 그의 생활을 돌봐 주는 것이고.
“알아. 그래서 그저 잘생긴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려던 것뿐이었어.”
“거짓말하지 마십시오, 그 아이를 바라보는 공작님의 눈빛에 음험함이 가득했습니다!”
흥분한 다프네 서튼은 어느새 그에게 바짝 다가가 한 소리 했다.
“음.”
그렇지 않아도 좁은 차 안에서 서로 간격을 좁혀 봤자 좋은 일은 하나도 없을 테지만, 리암은 빙긋 웃으며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콩 기대었다.
“……!”
놀란 다프네는 튕기듯 몸을 뒤로 젖히며, 제 이마를 감싸 쥐었다.
“아픕니다!”
“주인을 매도하면 못써.”
리암은 이제 다시 자동차의 시동을 걸었다.
“난 법률을 지키며 사무엘을 아껴 줄 생각이니까.”
“계속하여 수작질을 이어 가겠다는 거군요. 제 순진한 동생에게.”
“수작 안 부렸어.”
“거짓말!”
그들의 대화가 이어지는 사이, 자동차는 빛이 적은 외곽 길을 따라서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무엘이 공작님을 형…… 이라고 부르는 거죠?”
다프네는 두 사람이 생각보다 친밀하게 지낸다는 점에도 놀랐지만, 사무엘이 리암을 두고 ‘형’이라고 부른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그야말로 기절하는 줄 알았다.
「날 신용할 수 없다면, 그분을 믿어 줘. 내게는 정말 친형 같은 사람이야.」
사라진 시간에서도 사무엘은 리암을 ‘형’이라고 했었는데, 이번에도 그렇게 되는 것이…… 어째 무섭기도 했다.
“그건 사연이 있는데.”
리암은 왠지 시무룩해진 다프네를 흘긋 바라보곤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돌렸다.
“사무엘이 오린샤이어에서 그대 몰래 빠져나오면서, 내 편지에는 잘 답장하지 않았거든. 친애하는 페이지 부인을 거치는 일이 미안해서, 그대의 편지만 열심히 답장했다고 해.”
다프네는 언젠가 사무엘의 답장이 오지 않는다며 리암이 불평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누나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줄로만 알았는데, 지금 보니 페이지 부인을 고생시키지 않기 위한 사무엘의 배려였던 모양이다.
“그리고 새로운 치안대원의 인적 사항을 전달받았을 때, 그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알았지.”
“제게는 왜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그야…….”
자동차가 시내에 접어들어, 주변이 조금 더 밝아졌다.
“사무엘이 직접 이야기하고 싶을 테니까.”
“…….”
“치안대원이 되는 건, 간단한 일이 아니야. 가혹한 체력 테스트와 각종 무술을 수련하는 기간을 거쳐 최고의 정예들만 선발되지. 사무엘 서튼은.”
리암을 일부러 한번 이야기를 쉬었다.
“그 고통스러운 시간을 혼자서 감당해 낸 거야, 누나의 곁으로 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사무엘의 마음을…… 헤아려 주신 거네요.”
“마땅히 그래야지, 그 역시 서튼이니까. 어쨌든 다시 만난 사무엘은 오랫동안 내게 소식을 전하지 못한 일로 몹시 미안해했어.”
“그래서요?”
“어떻게든 사죄하고 싶다길래, 어쩔 수 없이 한 가지 해결책을 건넨 거지. 나를 편하게 부르라고.”
“……네?”
다프네가 의아해하며 반문했다.
사죄하기 위해 편하게 부른다는 말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우리의 간격을 좁혀 보기로 했다고. 어쩔 수 없이.”
“그, 그게 어쩔 수 없는 일입니까? 달콤하기 짝이 없는 일이 아니고요?!”
어쩜 이렇게 하나하나에 펄쩍 뛰며 반응하는 걸까. 리암은 왠지 즐거워져서 다프네를 더 놀리고 싶어졌다.
“그가 내 진짜 동생이 되어 준다면 기쁠 거야.”
“사무엘은 제 동생입니다, 공작님과는 남이라고요! 생판 남!”
“너무 매정하게 굴지 마, 사무엘도 분명 형을 원할 테니.”
살짝 돌아보니 다프네가 분노로 새빨개진 얼굴로 숨을 씩씩 몰아쉬고 있었다.
“왜 그렇게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는 겁니까? 사무엘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그런 표정을 지으시다니!”
“너무 귀여워서.”
물론 그건 다프네의 이야기였다.
“사무엘이 귀여운 건 사실이긴 합니다만……!”
그녀가 이를 영원히 알아차리지 못할 것 같지만 말이다.
어느새 그들이 탑승한 차는 저택 앞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 * *
다프네가 리암과의 불쾌한 드라이브를 마치고 돌아오니, 하인 숙소의 복도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누군가가 탭댄스라도 추는 듯한 격렬한 발 망치 소음 말이다.
단체 생활에서 저런 층간 소음을 유발하는 건 범죄나 다름없었다.
다프네는 곧바로 그 몹쓸 인물을 찾아냈고, 조금 놀라고 말았다.
“아셔?”
절대로 탭댄스 같은 건 추지 않을 것 같은 인물의 방에서 그런 소리가 나고 있었으니.
다프네가 노크하자, 곧 문이 열렸는데 그의 얼굴은 기쁜 흥분으로 붉어져 있었다.
“귀소 기능이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닙니까? 당신 방은 저쪽입니다.”
그는 기분이 얼마나 좋은지, 쌀쌀맞은 말을 건네면서도 연신 입술이 움찔거리고 있었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흥, 제가 그런 일이 있다 한들 당신에게 이야기할 것 같습니까?”
“뭔데요?”
“어쩔 수 없는 분이군요. 후…… 어차피 알게 되실 일이니까 알려 드리겠습니다.”
선심 쓰는 투가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다프네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형님께 편지를 보냈습니다.”
“아…… 지난번에 이야기했던?”
사무엘에게 상자를 부치고 돌아올 때, 아셔는 형님이 그립다는 이야기를 했었다.
하지만 그가 너무나도 바빠서 함부로 ‘보고 싶다.’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며 쓸쓸해했었다.
“반가운 답장이 왔군요!”
다프네는 단번에 상황을 넘겨짚었다.
아셔는 다프네의 조언을 듣고서 용기를 내었고 이에 긍정적인 답이 돌아왔을 거라고.
“바로 그겁니다!”
아셔가 신이 나서 답했고, 다프네는 그와 손바닥을 착착 마주쳤다.
“진짜 잘됐어요! 너무너무 축하해요, 아셔!”
“하, 역시 용기를 내 보길 잘했습니다.”
“형님도 아셔를 그리워하셨대요?”
“당연한 것 아닙니까. 제 편지를 받은 이후로는 그리운 마음을 더는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아아, 알죠. 그거 뭔지 알 것 같아요.”
다프네는 그와 계속 손을 짝짝 마주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다프네 역시 사무엘과 다시 만난 이후로, 나쁜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고 그저 계속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으니까.
한번 마음의 길이 나 버린 후에는 무엇으로도 이를 막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저도 빨리 형님 마플 씨를 만나 보고 싶네요. 아셔와 많이 닮으셨나요?”
“아.”
다프네의 물음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다. 손바닥은 여전히 마주 댄 채였다.
“그분은 마플 씨가 아닙니다. 부끄럽군요. 제가 어린 시절부터 ‘형’이라고 부르다 보니, 습관이 되어서…….”
“그럼?”
“제게는 정말로 깊은 영향을 주신 분입니다. 애초에 공작님의 밑에서 일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된 것도…… 다 그분을 따르고 싶었기 때문이니까요.”
아셔의 뺨이 조금 더 붉어졌다.
“애슐리 슬로언 님께서 이번 일주기에는 반드시 저택에 오시겠다고 회신해 주셨습니다.”
……네?
다프네는 그와 손을 맞댄 채로 사고가 정지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