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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5)화 (55/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55화

“…….”

문 앞에서의 기묘한 대치가 조금 길어졌다.

사무엘은 상자 너머로 다프네의 집요한 시선을 느꼈다.

거대한 상자를 수상하게 바라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이건 다프네가 사무엘에게 보낸 상자고, 지금쯤 오린샤이어에 있어야 하는 물건이니까.

“저기 실례지만.”

줄곧 상자를 유심히 바라보던 다프네가 조용히 양해의 말을 건넸다.

“그 상자…… 말인데요.”

사무엘은 이제 바닥에 납작 엎으려야 할 때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하지?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기는 했지만, 사무엘은 상자를 든 채로 달달 떠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그런 모습이 더욱 수상하게 보인다는 걸 알았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실례가 아니라면, 제가 그 상자를 좀 봐도 괜찮을까요?”

의심하는 기색이 가득한 다프네의 요청이 들려왔다. 동시에 한 걸음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아아.’

사무엘이 암울한 미래를 예감하며 상자로 이마를 푹 기대었을 때.

“다프네.”

멀리에서 그녀를 부르는 다른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암 슬로언이었다.

“공작님.”

상자로 다가오던 다프네는 즉시 걸음을 멈추고 그를 향해 돌아섰다.

“확인할 일이 있어서 왔는데, 잠시 시간 괜찮은가? 꽤 급한 일이야.”

“아.”

주저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마 사무엘이 든 상자 때문이리라. 얼마 전에 자신이 보낸 것과 똑같이 생긴 상자가 당장 눈앞에 있으니 얼마나 의아할까.

“다프네, 이리 와.”

그녀가 망설이는 것을 알았는지 리암이 재차 그녀를 불러들였다. 명령조에 가까운 투였기 때문인지, 그녀는 더 지체하지 않았다.

사무엘은 다프네의 기척이 멀어지길 기다린 뒤 상자 옆으로 흘긋 고개를 내밀었다.

그녀의 뒷모습 너머로 리암이 사무엘을 향해 한쪽 눈을 찡긋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형…… 날 도와준 거구나.’

사무엘은 감격하여 당장 그를 꼭 안아 주고 싶었다.

다만 지금은 도망치는 것이 우선이었기 때문에, 얼른 우편국을 빠져나와 가까운 골목으로 몸을 숨겼다.

“후…….”

상자를 잠시 곁에 내려놓자, 그제야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왔다.

곧 그가 선 골목 너머로 검붉은 자동차 한 대가 멈추어 섰다. 돌아보니 어느새 그를 따라온 리암 슬로언이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형.”

“타, 데려다주지.”

평소라면 사양했을 일이지만, 사무엘은 빨리 마을에서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에 뒷자리에 얼른 상자를 실었다.

“고마워, 형…… 진짜로.”

운전석 옆에 타며 조심스레 인사를 건네자, 리암은 차에 놓아두었던 귀여운 쿠션을 그에게 안겨 주었다.

“이거라도 안고 있어. 많이 놀랐지?”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어.”

사무엘은 포근한 쿠션을 꼭 끌어안았다. 왠지 조금씩 안정감이 돌아왔다.

“그 정도라면 차라리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낫겠는데.”

사실 사무엘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같은 마을에 사는 이상, 언제까지나 들키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으니까.

“그래도…… 그건 싫어.”

“그렇다면 내가 전하께 말씀드려 널 다른 마을로 보내 줄…….”

“그건 더욱 싫어!”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사무엘은 고개를 번쩍 들고 외쳤다.

“내가 치안대원이 된 건 누나를 가까이에서 지키고 싶었기 때문이란 말이야.”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수도 없으면서 말이지.”

“으…….”

꽤 아픈 곳을 지적당했기 때문에 사무엘은 울상을 지었다.

“하긴, 오늘은 마주하지 않는 게 나았겠군. 대체 안색이 왜 이렇지?”

리암이 사무엘의 턱을 가볍게 쥐어 당겼다.

“별거 아니야, 형.”

사무엘은 손등으로 제 뺨을 문지르며, 리암의 손길에서 벗어났다.

“어제 밤을 새워서 그래.”

“그 정도가 아닌데.”

“어……. 그러고 보니 식사도 깜빡했나?”

“역시.”

리암은 다시 그의 목덜미 부근을 두 손으로 붙잡아 강제로 당겼다. 곧 집요한 시선이 쏟아졌다.

“눈 밑도 새카맣고.”

“괜찮다니까.”

순간 가까이 마주한 고귀하신 공작님의 매끈한 이마에 주름이 잡혔다.

“성벽 치안대에 이야기해야겠어.”

잔뜩 화가 묻어난 목소리에, 사무엘은 우람한 어깨를 움찔거렸다.

“헉, 내가 자, 잘못했어……! 앞으로 안 그럴게!”

사무엘은 얼른 항복했다.

리암이 치안대를 오가면, 다프네도 그 뒤를 따를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사무엘의 존재를 들키는 것도 시간문제일 테니까.

“앞으로는 잘 자고, 잘 먹을게. 그러니까…….”

리암이 원하는 대답을 건네며, 사무엘은 어서 그가 자신을 놓아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리암은 멀어지지 않았다.

“……형?”

조금 걱정이 든 사무엘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

리암은 꼭 조각처럼 굳어 있었다. 그것도 자동차 창문 너머를 물끄러미 바라본 채로.

사무엘은 왠지 심장이 철렁하는 기분이 들었다.

왠지 등 뒤에서 익숙한 시선이 느껴지는 것 같은 이 기분…….

사무엘은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 천천히.

“……히익!”

예상대로 창문 너머에는 다프네 서튼이 창문 안쪽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당장 떨어져! 당장!”

그녀는 시선만으로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무엇인지 시연하는 중이었다.

사무엘은 왠지 엉덩이에 힘이 들어갔다.

* * *

아무리 화가 났다고 해도, 다프네는 다프네였다.

그녀는 성실하게 다섯 시까지 우편국의 업무를 완전히 마쳤다.

사무엘은 그 시각에 맞추어 공작저를 방문했고, 노란 응접실에서 두 무릎을 꿇고 다프네를 기다렸다.

“누나…….”

다프네가 퇴근하여 돌아오자 사무엘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사무엘 서튼.”

두 눈을 가느다랗게 뜬 다프네가 낮은 목소리로 부르며 다가오자 사무엘은 그만 딸꾹질이 나오기 시작했다.

“히끅.”

너무 무서웠다.

‘내가 잘못했어’라며 빌고 싶었지만, 도무지 입술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어느새 다프네는 그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사무엘은 두 눈을 질끈 감고서, 마지막 용기를 쥐어짜 외쳤다.

“나, 누나가 너무 보고 싶어서 그랬어!”

동시에 그의 목덜미가 꽉 조여지는 느낌과 함께 누나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이 뺨에 닿았다.

“……대체 왜 이렇게 마른 거야?!”

“어?”

사무엘은 당황하여 고개를 들었다. 그의 목덜미를 끌어안은 다프네가 울먹이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너, 이렇게 비쩍 말라서…… 맙소사, 내가 보내 주는 약재는 잘 달여 먹은 거 맞아?”

“어, 어…….”

사무엘은 조금 당황해서 어색하게 뻗은 팔을 허우적거렸다.

“……나 말랐어?”

조심스레 묻자, 다프네가 그를 안은 팔을 풀고는 그의 팔을 찰싹 때렸다.

“무슨 말이니? 당연하지! 맙소사, 얼굴이 반쪽이 된 것 좀 봐.”

“나…… 말랐구나.”

사무엘이 그렇게 중얼거릴 때, 이유는 모르겠지만 멀리에 선 리암이 필사적으로 고개를 젓는 모습이 보였다.

“그동안 식사는 제대로 한 거야?”

다프네는 그의 얼굴을 감싸 쥐었다.

“하긴 그럴 리가 없지. 잘 먹었다면 네가 이렇게 여전히 비실비실할 리 없어.”

사무엘은 제 몸을 내려다보며 조심스레 제 의견을 밝혔다.

“조금은 키와 근육이 붙었다고 자만했는데.”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다프네는 그의 우람한 팔을 붙잡았다.

“이런 가느다란 팔로는 빵 봉지밖에 못 들어.”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다프네의 손목은 사무엘의 절반도 되지 않을 만큼 가늘었다.

누나야말로 빵 봉지 담당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사무엘은 잠시 그런 생각을 했지만, 곧 고개를 저었다. 다프네가 사무엘을 가리켜 말랐다고 한다면, 그는 마른 거였다.

“미안해, 누나. 나 더…… 많이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할게.”

멀찍이 선 리암이 ‘이미 넌 충분한 부피야.’라고 입 모양만으로 이야기를 전해 왔다. 물론 사무엘은 이를 못 본 척했다.

“그런데 네가 치안대라는 거친 일을 하다니…… 대체 어떻게 된 거야?”

“누나.”

사무엘은 커다란 두 손을 모아 다프네의 손을 쥐었다.

“예전에 누나가 말했지? 공작님의 수행원이 되고 싶었다고.”

다프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고, 사무엘은 입술을 헤 벌리며 순수한 미소를 지었다.

“나도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을 뿐이야. 나 매달 월급도 받고 있고, 꼬박꼬박 모아 놓았어.”

“세상에…….”

다프네는 감동한 듯 두 손을 입가로 가져다 대었다.

한편,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이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리암은 이제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너무 지적할 것이 많아서 어디에서부터 이야기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비리비리하다니. 대체 누가?

사무엘 서튼을 클롯모어의 성벽에 세워두는 것만으로도, 치안대의 방어력과 전투력이 동시에 다섯 배는 증가할 것이 분명했다.

그가 지닌 미소년의 얼굴도 이와 반비례하는 열정적인 육체를 부각할 뿐이었다.

“있잖아, 나 열심히 몸을 더 키울게……. 누나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 수 있도록 힘낼게!”

아니, 리암은 고개를 저었다.

저 장대한 몸은 이미 육체미의 정점에 섰다고 해도 좋았다. 더 키우는 것도 불가능하거니와, 그건 인간의 영역이 아니었다.

하지만 애틋한 가족애로 불타는 남매는 여전히 그 사실을 모르는 듯했다.

“흡, 아버지께서 아신다면 분명히 널 자랑스럽게 여기실 거야. 왜냐하면…….”

다프네는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사무엘을 끌어안았다.

“넌 연약한 몸을 극복하고, 네 꿈을 쟁취했으니까……! 크흑!”

“누나아!”

“…….”

뭐랄까, 리암은 이쯤 되니 세상을 떠난 남매의 아버지 리처드 서튼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대체 뭐가 문제냐고.

어쨌든 최근 들어 조금 이상한 기색을 보이던 다프네가 진심 어린 미소를 짓고 있다는 점은 꽤 좋았다.

‘역시 그동안 우울해했던 건…… 동생이 보고 싶어서였을까?’

그런 거라면 방해할 수는 없지.

리암은 서튼 남매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조용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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