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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1)화 (21/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1화

‘이렇게 손이 큰데, 나한테 빌려줬던 장갑은 뭐야?’

그 장갑은 신기할 정도로 다프네의 손에 꼭 맞았었다. 게다가 무척 따듯하기도 했고.

‘……혹시.’

다프네는 고개를 들어 엘을 물끄러미 올려다보았다.

다프네는 손가락을 구부려 엘의 손을 꼭 맞잡았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장갑을 새로 사지 못할 정도였구나.’

하지만 다프네는 점잖은 지식인이었다.

친한 친구에게 ‘너, 돈이 없어서 장갑을 사지 못하는구나.’라는 말은 절대로 할 수 없었다.

“엘…….”

“응, 다프네.”

그가 순수하게 웃는 얼굴로 답할 때, 다프네는 그의 꿋꿋한 심성에 감동하여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너, 정말로 사무엘이랑 손 크기가 같구나!”

“정말?”

“응, 눈을 감으면 꼭 사랑하는 동생의 손을 잡았다고 착각할 것 같아.”

“다행이다…… 내가 정말로 다프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니.”

사장님이 그에게 장갑을 내밀었고, 엘은 장갑을 껴 치수를 확인했다.

다프네는 같은 장갑을 두 개 구매했다.

그 후에는 ‘사냥꾼의 요람’에서 나와 가까운 ‘요정의 주방’에서 함께 점심을 먹었다.

부드러운 빵도, 양념이 깊이 밴 고기도 무척 맛이 있어서 다프네는 접시까지 핥아 먹을 기세로 식사를 마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온 디저트를 먹을 때.

그녀는 마주 앉은 엘의 눈치를 살폈다.

그는 뭔가 이런 곳에 자주 오지 못했는지, 음식마다 탄성을 내곤 했다.

대체 평소에 어떤 음식만 먹고 살기에, 이토록 평범한 식당을 이렇게까지 신기해하는 걸까?

‘형편이 그냥 나쁜 정도가 아닌가 봐.’

그녀가 읽은 책에 의하면 어떤 귀족들은 생활이 어려워서 옷이나 장신구는 물론, 벽에 붙은 장식품까지 떼어 팔 정도라고 했다.

먹을 것이 없어서 저택 정원에 식량을 직접 재배하기도 한다고…….

‘그러고 보니…….’

다프네는 조금 전에 쥐었던 그의 손이 무척 거칠었던 것을 떠올렸다.

가난한 가문을 이어받아서 얼마나 고생하면서 지내는 걸까.

다프네는 그런 와중에도 이렇게 예쁜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엘이 너무나도 자랑스러웠다.

“엘, 나한테 손 좀 줄래?”

“어, 어? 왜……?”

“그냥, 네가 너무 고생하는 것 같아서 그래.”

“아니 난, 고생은 안 하는데.”

“무슨 소리야, 어서 이리 내.”

다시 재촉하자 그는 못 이기는 척 손을 내밀었다.

가문을 이어받았다는 사람의 손에는 그 흔한 인장 반지조차 없었다.

‘아마 그것조차 팔아야 했겠지.’

얼마나 수치스러웠을까.

다프네는 꼭 검술이라도 익힌 사람처럼 거칠어져 버린 그의 손을 살살 문질러 위로를 전했다.

“아…… 으, 저기 있잖아.”

간지러웠는지 엘이 몇 번이나 손을 빼려고 했지만, 다프네는 그 손을 더욱더 꼭 쥐었다.

“나와 약속하자, 엘.”

“약…… 속?”

“너와 나, 어떤 상황에서도 결심한 일을 포기하지 않기로.”

다프네가 건넨 이야기에,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아, 그럼 약속의 증표로 장갑을 교환하자.”

“증표?”

“당연하잖아, 결혼할 때도 약속의 증표로 반지를 주고받잖아. 똑같은 거야.”

“아하.”

“그럼 나부터 할게.”

다프네는 조금 전에 산 커다란 장갑을 꺼내어 그의 손에 직접 끼워 주었다.

“난 반드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거야.”

“같은 실수? 다프네, 무슨 실수를 저질렀어?”

“응, 하지만 이제는 절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거니까…….”

“그렇구나, 멋지다. 응원할게.”

다프네는 왠지 기쁜 마음이 들었다. 사무엘을 구하는 일에 대해 타인의 응원을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럼 이제 내가 결심한 일을 말해야겠네.”

“꼭 자세히 말해 주지 않아도 괜찮아. 아니, 부담되면 말하지 않아도 괜찮고.”

그는 다방면으로 무척 곤란한 상황에 놓여 있을 테니, 다프네는 그가 부담을 갖지 않기를 바랐다.

하지만 그는 씩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부모님과 같은 실수를 저지르지는 않을 거야.”

“부모님?”

“응, 여러모로 실패가 많으셨거든.”

아, 그래서 엘의 집이 가난한 걸지도 모른다. 다프네는 작게 고개만 끄덕였다.

“어쨌든 그런 의미에서 실은 오늘 다프네에게 할 말이 있기는 했어.”

“내게……?”

“응.”

그는 다프네가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던 작은 장갑을 집어 들었다.

“사실 편지로 적어 보낼까 하고 몇 번이나 고민했는데,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란 말인가.

다프네는 머릿속으로 이런 상황에서 엘이 자신에게 할 만한 이야기가 무엇이 있는지 몇 가지 선택지를 미리 만들어 보았다.

1. 돈 좀 빌려줄래?

2. 보증 좀 서 줄래?

3. 우리 가문의 가보야. 비싸게 사 줄래?

무엇 하나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들뿐이었다. 다프네는 모아 둔 돈 중에 얼마를 빌려줄 수 있을지 미리 헤아려 보았다.

“다프네 서튼.”

그녀를 부르는 소리가 바로 곁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엘은 어느새 자리에서 일어나 다프네의 옆에 한쪽 무릎을 꿇어앉아 있었다.

심상치 않은 간절한 자세 탓에, 어느새 가게에 있던 모든 사람이 이쪽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서, 설마!’

이쯤 되니 둔해 빠진 다프네라도 그가 보통 각오로 이야기를 꺼낸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었다.

‘세 가지 부탁을 전부 다 할 셈인가……!’

아니, 아무리 그래도 하나만 해 줬으면 좋겠는데. 동생에게 유산으로 남길 돈을 잔뜩 모아 두지 않으면 곤란하니까.

“혹시 괜찮다면…….”

“으, 응.”

“우리 가문을 위해 일해 주지 않을래?”

“어……?”

다프네는 조심스러운 어조로 그가 건넨 제안의 뜻을 되물었다. 그의 가문을 위해 일해 달라니. 그건 즉.

“내가 공작가에서 번 돈을 너희 가문에 빌려 달라는…… 뜻이지?”

“아니.”

그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난 네게, 우리 가문으로 와 달라는 제안을 하는 거야.”

“……!”

다프네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네가 행복할 수 있도록 내가 노력할게. 정말로 열심히 할게. 나한테는 다프네뿐이야.”

간곡한 말에도 그녀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미안, 나 실은…… 지금 일하는 곳을 그만둘 수 없어. 절대로.”

“절…… 대로?”

“응.”

“그건 맹약 때문이야?”

“알고 있었어?”

“응, 그 맹약이 5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도 알아.”

“……!”

그건 여타 다른 귀족들도 잘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적지 않게 놀라고 말았다.

“그 맹약이 끝난 이후라도 좋아, 기다릴게. 혹시 나와 함께 있어 줄 수는 없어?”

“…….”

“나, 아카데미에서 다프네가 처음으로 내 등짝을 때려 줬을 때…… 생각했어.”

그는 아주 소중한 추억을 떠올리듯 몹시 감격한 목소리였다.

“내가 잘못된 길에 들 때마다 다프네에게 등짝을 맞고 싶다고.”

“……엘.”

“부탁할게, 다프네. 제발 내 등을 영원히 때려 줘!”

엘의 목소리가 흥분으로 다시 높아졌는데, 덕분에 주변 사람의 시선이 묘하게 더 집요해졌다.

굉장한 흥미를 느끼고 바라보는 것이 틀림없었다.

‘하긴 요즘 같은 취업난에 이렇게 뜨거운 구인 상황을 보기는 어려울 테지.’

그렇게 생각하면 엘이 참 고맙기는 했다.

하지만 다프네는 여전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일단.”

다프네는 그와 마주 앉아서 시선을 맞추었다.

“내게 일자리를 주려고 해 줘서 고마워.”

비록 그것이 월급이 엄청나게 밀릴 것이 분명한, 가난한 가문의 고생스러운 자리일지라도 말이다.

“다프네…….”

“난 사정이 있어서 현재는 물론이고 5년 후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이것 하나는 약속할게.”

다프네는 그를 향해 싱긋 미소를 지었다.

“엘에게 도움이 필요할 때는 내가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도울게.”

“저, 정말로……?”

“응. 휴가가 아니라면 바로 달려가는 건 힘들겠지만, 적어도 편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테니까.”

“그럼…… 난 앞으로도 다프네에게 연락을 보내거나, 만남을 청해도 되는 거야?”

“당연하잖아. 어차피 늘 편지를 보내고 있었으면서, 뭘.”

“하지만 다프네가 공식적으로 우리 관계를 허락하는 건 처음이잖아. 어, 어떻게 해…… 너무 기뻐.”

고작해야 연락을 주고받는 정도에 ‘공식적으로 관계를 허락’할 필요는 없는 것 같지만, 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니 다프네는 그냥 웃고 말았다.

“나, 정말로 다프네에게 최선을 다할게. 내 자리에서 널 행복하게 해 줄게. 그러니까…….”

그는 꼭 맹세하는 듯한 말을 하고는 그녀의 손에 장갑을 끼워 주었다.

얇은 천이 완전히 손을 덮은 후, 그는 다프네의 손등에 잠시 입술을 맞추었다.

장갑을 끼웠기 때문에 딱히 거부감이 들지는 않았다.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가 있는지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가 살짝 고개를 들어 다프네를 응시했다. 입술 끝은 여전히 손등 위에 기댄 채었다.

“……나, 예쁘게 봐줘야 해. 응?”

안경 너머로 보이는 푸른 눈동자로 얼핏 간절함이 엿보였기 때문에 다프네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스무 살의 젊은이를 예쁘게 바라보는 것이 뭐 어렵다고.

“어. 그럴게. 넌 예뻐.”

“기쁘다. 난 역시 다프네가 좋아.”

“응, 나도 내가 좋아. 아…… 물론 엘도 좋고.”

그리 이야기하며 손을 거두자, 그들을 주목하던 식당 안 사람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

왜 손뼉을 치는 거지?

다프네는 잠시 의아해했지만, 식당 주인이 서비스로 초콜릿 아이스크림을 하나 더 주었기 때문에 이 의문의 축하를 기쁘게 받아들이기로 했다.

참 맛있었다.

* * *

다음 날에도 다프네는 달력에 줄을 찍 그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리암은 ‘오늘이야말로, 연락이 없으면 달려가서 멱살을 잡아 주마!’라며 잔뜩 이를 갈았는데.

다행히 오늘도 전령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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