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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2)화 (2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22화

리암은 어제의 일을 교훈 삼아, 이번에는 아예 전령과 함께 왕실로 돌진하기로 했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지엄하신 전하의 발등을 밟으시면 안 돼요.”

다프네는 그에게 교양 있는 수도 귀족의 기본 상식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리암은 콧방귀를 뀌었다.

“흥, 내가 그렇게 하는 게 싫으면 어제 그대가 왕실로 쳐들어가서 그 멍멍이 자식을 밟아 버렸어야지.”

“제가 무슨 수로 지엄하신 분의 발등을 밟아요. 바로 사형이라고요.”

“무슨 소리야.”

리암은 코트 깃을 툭툭 잡아당기고는 다프네를 향해 씩 미소를 지었다.

“그 질긴 생명력을 보면, 발등이 아니라 등짝을 후려갈겨도 살아남을 것 같은데. 그 멍청한 왕 놈은 아마 더 때려 달라고 네게 등을 내밀걸?”

“전하께서 잘도 그러겠습니다.”

다프네는 심드렁한 얼굴로 그리 말하고는 곧 한쪽 귀를 후비적거렸다. 농담도 어느 정도 현실성이 있어야 웃긴 거니까.

* * *

리암이 왕실에 도착하니, 왕의 집무실로 바로 안내되었다.

리암을 소파 자리를 권하는 시종을 손을 들어 거절하고는 창가에 몸을 기대어 섰다.

“전하께서 곧 오실 겁니다.”

“바로 만나자더니, 또 기다리게 하는 건가.”

리암이 불평했지만, 시종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슬로언 공작의 부당한 기다림이 길어졌던 것이 사실이기도 했으니까.

“마법사들의 요청으로 잠시 짧은 면담을 진행하시는 것뿐입니다.”

“……마법사라.”

리암은 잠시 쓰게 미소 짓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그들은 국력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마력을 각성한 자는 반드시 왕의 마법사가 되어 이 나라에 그 능력을 바쳐야 했고, 왕은 그들에게 무한한 명예와 부를 제공했다. 어지간한 상황에서 우선권을 주는 것은 물론이고.

“기다리겠네.”

그리 답한 리암은 사철 푸른 나무로 미로를 그려 놓은 왕실의 정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저런 것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렸을 때 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후계자로서 왕실에 초대되었던 형님이 자랑하듯 이야기했던가.

공작가의 정원에도 비슷한 것을 만들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던 것 같은데…….

‘무산되었겠지.’

그는 괜히 짧게 혀를 찼다. 마음이 죄어 올 때면 자신도 모르게 나오는 습관 같은 것이다.

“저기…….”

그때, 바로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암은 흠칫하며 뒤를 돌아보았다. 매끈한 하얀 정장을 입은 금발의 남자가 그를 향해 방긋 미소를 짓고 있었다.

세상의 풍파나 슬픔 혹은 분노 따위를 느껴 본 적조차 없는 듯한 천진난만한 웃음은 ‘그’의 무기 중 하나였다. 이 순수한 미소를 본 사람은 바로 호감과 보호 본능을 품곤 했으니까.

하지만 리암은 절대로 이에 넘어가지 않았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전하.”

리암은 허리를 숙여 그에 대한 예의를 빈틈없이 취했다.

“너무 격식을 갖추는 거 아니야?”

그러자 ‘왕’이 바로 울상을 지었다. 이마저도 귀엽다며 호들갑을 떠는 이들이 왕실에는 넘쳐 나고 있었다.

리암은 저 요망한 왕이 이 나라를 미쳐 돌아가게 하는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할 뿐이었지만.

“신하는 왕에게 충성과 그에 걸맞은 격식을 갖춰야 하지요. 그 이유를 아십니까?”

“음…….”

리암이 낸 문제에 왕은 잠시 제 턱을 쥔 채로 고민에 빠졌다.

“나를 좋아해서?”

“아뇨,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뻔뻔한 등짝을 한 대 후려갈기고 싶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건 시비를 거는 것과 다름없었다.

적어도 리암은 분명 그랬다.

그런데 저 이상한 왕은 살며시 뺨을 붉히는 것이 아닌가.

‘저, 저 미친놈이……!’

리암은 그를 경계하며 황급히 다섯 걸음 정도 물러났다. 그가 리암의 잘생긴 얼굴에 반하기라도 하면 귀찮아질 테니까.

“아, 미안해.”

리암이 기겁하는 것을 알았는지 그가 얼른 손을 휘저었다. 하지만 이제 귀까지 빨개진 얼굴은 여전히 원래대로 돌아올 기미가 없어 보였다.

“전하, 제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이 드신다면.”

리암은 여기에 더 있다가는 저 요망함이 옮을 것 같은 기분에 어서 본론부터 꺼냈다.

“빠르게 승계를 허락해 주시길.”

“아, 그래야지.”

왕은 책상 위에 반쯤 몸을 걸치고 앉았다. 곧장 팔을 뻗어 금테를 두른 서류를 꺼내는 것을 보니, 승계 서류는 미리 준비해 둔 모양이었다.

“음.”

그는 굳이 서류를 높이 들고서 그 내용을 한 줄씩 손으로 가리켜 읽으며 확인하기 시작했다.

리암은 그 느려터진 행동에 제 속이 터질 것 같았지만, 재촉하는 이야기를 건네면 혹시 더 시간이 지체될까 침묵을 지켰다.

“으음…….”

그가 서류를 확인하는 시간이 묘하게 길어졌다.

이쯤 되니 진짜로 왕의 등짝을 때리고 발등을 밟고 싶어져서, 리암은 다프네가 알려 준 수도 귀족의 상식 제1장을 떠올렸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지엄하신 전하의 발등을 밟으시면 안 돼요.」

그래, 안 되지.

그건 리암의 추락을 기대하는 호사가들에게 양념 바른 고깃덩이를 던져 주는 꼴이다.

지금은 1초라도 더 빨리 저 망할 서류를 받아서 사제에게 보여 주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래야 다프네와 그가 무사히 가문의 맹약을 승계받아, 5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살게 될 테니까.

재미있을까.

아, 그야 바로 답할 수 있었다. 즐거워 미쳐 버리겠지, 분명.

그는 다프네가 지닌 마성의 매력을 떠올렸다. 리암의 입에서 ‘동생’이라는 말이 나오기만 하면 새끼 양처럼 부들부들 떠는 모습이 깜찍해서 미쳐 버릴 것 같았다.

‘재미있고 귀여운 고용인, 다프네 서튼.’

그는 어느새 쿡쿡거리는 소리를 내며 웃고 있었다.

“리암…… 왜 날 바라보면서 웃음을 짓고 얼굴을 붉히지?”

한참 기분 좋은 생각을 떠올리는데, 갑자기 웬 개가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리암은 단번에 미간을 구겼다.

“안 붉혔습니다. 설령 그랬다고 하더라도 전하와는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내가 서류를 확인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점점 얼굴을 붉혔잖아.”

“제가 미쳤습…… 아니, 됐습니다. 사인은 하셨습니까?”

“응, 근데 사인하기 전에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빨리 물어보시죠.”

리암은 얼른 서류를 받아 돌아가고 싶어서 미칠 지경이었으므로, 왕의 질문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든 빠르게 대답해 줄 생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공작저 사용인 식사는 영양 균형을 맞춰서 제공되고 있어?”

“네.”

“그렇구나…… 다행이다.”

“그럼 사인하시죠.”

“응, 그럴게.”

왕은 이제야 서류를 내려놓고, 펜을 찾아 들었다. 리암의 시선이 펜촉의 끝에 고정되었다.

“아, 그런데.”

하지만 그 뾰족한 끝이 바로 종이에 닿는 일은 없었다.

“아, 제기…….”

리암은 저도 모르게 욕설이 흘러나왔지만, 입술을 꽉 깨물어서 중간에 멈췄다.

“하나 더 질문해도 돼?”

“……하시죠.”

“봉급은 제때제때 잘 주고 있는 거, 맞지?”

“예, 봉급일이 휴일이면 하루 전에 주고 있습니다.”

“아, 다행이다. 걱정했는데.”

대체 아까부터 뭘 걱정했다는 건가. 리암의 불만은 점점 더 깊어졌다.

설마 리암이 사용인들을 괴롭히는 유치한 사람으로 보인 건가? 본인은 알현조차 제대로 받지 않는데, 대체 누구한테 덤터기를 씌우는 건지.

“아, 그리고 있잖아!”

“제기랄, 또 뭔데?!”

리암은 결국 참았던 거친 말을 내뱉고 말았다. 중요한 서류를 건네받을 때까지는 적어도 신하로서의 예의를 차릴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한계였다.

이런 리암의 행태에도 왕은 조금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신입 사용인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 그런 걸 텃새라고 부르던데. 아카데미에선 굉장했거든.”

“엘리엇, 내가 방금 욕하는 거 못 들었어?”

엘리엇은 왕의 이름이었다. 정확히는 엘리엇 라모니아 이타나드.

신분을 숨길 때는 사무엘이라는 깜찍한 이름을 쓴다고 들었는데, 어쨌든 리암과는 상관없는 사실이었다.

“그냥 엘이라고 부르라니까.”

“어느 정신 나간 사람이 왕을 애칭으로 불러?”

“음…… 수족냉증에 시달리는 사람?”

“미안한데.”

리암은 씩씩거리며 다가가 왕, 엘리엇의 얼굴에 제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가 절대로 수족냉증이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따듯하다, 리암.”

엘리엇이 그의 손에 살짝 뺨을 비비려고 하기에, 리암은 얼른 제 손을 거두었다.

“질문 시간 끝났으면 빨리 사인해.”

“아직 대답 못 들었는데.”

“없어! 텃세 없다고!”

“다행이네. 혹시 연봉 인상률은…….”

“……우리 집에 취직하고 싶은 거라면, 자리 하나 내줘? 장작 좀 팰래?”

그건 이제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제발 좀 사인하라는 이야기였다.

적어도 리암은 그런 의미였다.

“저, 정말?”

하지만 저 요망하기 짝이 없는 왕은 어째 반색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럼 나 다음 휴가 때, 너희 집에 하인으로 가서 일해도 돼?”

그건 또 무슨 신박한 개 소리인가.

리암은 헛소리를 그만하라고 이야기하려다가 그냥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알았으니까, 사인부터 해.”

“신난다! 꼭 갈게. 반드시 채용해 주어야 해?”

“알았다고!”

리암은 언뜻 보이는 엘리엇의 발등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참아야 했다.

「아무리 화가 나셔도 지엄하신 전하의 발등을 밟으시면 안 돼요.」

암, 그렇지.

그는 늦장을 피우는 왕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다프네를 생각했다.

너무 웃긴 여자라서 이렇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어쩔 수 없이 웃게 된다.

게다가 꽤 미인이기도 했다.

덕분에 얼마 전 기차에서는, 깜빡 잠이 든 얼굴을 꽤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그 와중에 침까지 흘리는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서, 그는 흘러나오는 웃음을 간신히 참으며 그녀의 입술에 손을 가져갔었다.

명색이 공작의 수행원인데, 얼굴과 옷에 하얀 자국이나 낸 채로 돌아다니게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감싸 쥔 얼굴이 참 부드러워서…… 그는 그대로 잠시 멈추어 버렸다.(물론 그의 손바닥에 진득한 침이 묻어났다는 점은 유감이었다.)

한 손에 쏙 들어올 정도로 작은 얼굴이라니.

물론 이성적인 호감이 든 것은 아니었다.

그저 좀 신기했을 뿐.

누군가에게는 꽤 매력적으로 보일 것 같은데, 어째서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확신하는 것인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아카데미에서 연서를 꽤 받았을 것 같은데.

어느 미친 스토커 같은 놈이 작정하고 그녀가 받은 편지를 죄다 훔쳐서 내다 버리지 않는 다음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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