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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화 (12/152)

제 남동생은 안 됩니다, 공작님 12화

다프네가 얼른 중심을 잡으며 그의 옷자락을 쭉 당겼다. ‘앗’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으로 보아 놀란 모양이다.

“너무 빠르잖아요!”

다프네의 항의에 그는 왠지 웃음이 났다. 곧 거센 겨울바람 소리가 그들의 귓가를 윙윙 메웠다. 아마 속도 때문일 것이다.

“와, 자동차보다 빠른 거 아니에요? 대단해요, 아셔!”

그는 다프네의 아부를 비웃었다. 아무리 자전거로 속력을 낸다고 한들 다프네까지 싣고 자동차보다 빠를 리는 없지 않은가.

역시 다프네 서튼은 이성적 사고가 불가능한 인간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어째…… 묘하게 기운이 솟아난 그의 다리는 엄청난 속도로 페달을 돌리기 시작했다.

이러다가 정말 자동차보다 빨라지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니…… 이 정도면 진짜로 더 빠른 거 아니야?’

그는 괜히 우쭐거리는 마음으로 눈앞에 펼쳐진 언덕을 노려보았다. 이대로라면 저 언덕을 넘는 것도 간단할 것 같았다.

“언덕은 내려서 걸어가요! 저 무거우니까!”

“흥, 깃털 인간은 얌전히 계시죠. 제가 언덕 따위에 질 것 같습니까?”

“질 것 같은데?”

“놀랄 준비나 하시죠, 이 고집불통!”

그는 크게 호흡을 삼키고는 단숨에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역시 그의 예상은 옳았다. 자전거로 언덕을 오르는 것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보세요, 허억, 이렇게 간단하게…… 여유롭게……!”

“…….”

“헉, 허억, 헉, 헉.”

그는 보란 듯이 언덕 위의 저택을 노려보며 두 다리를 움직였다. 어느새 추위로 얼어붙었던 몸이 딱 알맞게 녹았는지 땀이 비처럼 쏟아지고 있었다.

잠시 잊고 있었던 피로가 그를 찾아오기까지는 얼마 걸리지도 않았다.

그는 진을 빼면서 언덕을 다 오르고 나서야, 자신이 다프네의 간계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적극적으로 그를 응원할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그는 자전거에서 폴짝 내리는 다프네를 노려보았다. 그는 지쳐서 땀이 주룩주룩 흐르는데 저 얄미운 여자는 뽀송하기만 했다.

“이게 다 당신 때문……!”

“그러게 제가 걸어서 올라간다고 했잖아요.”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괜히 신이 나서 그녀를 자전거에 붙잡아 둔 것은 아셔였다.

“어쨌든 고마워요, 덕분에 편하게 왔네요. 자전거는 제가 정원사 아저씨께 돌려 드릴게요.”

아셔는 얼른 끔찍한 자전거에서 내렸다.

저 얄미운 여자에게 뭐라고 한 마디 쏴주고 싶었는데, 딱히 떠오르는 말이 없어서 속만 태우고 있었다.

“아, 맞다.”

그때, 자전거를 돌돌 끌고 가던 다프네가 그를 돌아보았다.

“말랑말랑한 음식을 준비하라고 전해 두어야겠네요. 어르신은 이가 좋지 않으시잖아요.”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러니까, 그분 말이에요. 공작님과 가장 가까운 핏줄을 지닌 재능의 집합체 같은 분.”

“당신이야말로 무슨 소리입니까, 그분은 돌도 씹어 먹을 나이인데요.”

“도, 돌을 씹어요?”

“그분은 열세 살의 나이에 이미 천재의 반열에 들었죠. 정말 가문의 자랑입니…… 아!”

무언가를 발견했는지 아셔는 현관 쪽을 돌아보았다.

“마침 저기 계시는군요. 일찍 도착하셨나 봅니다.”

그 순간.

이유는 모르겠지만 다프네는 왠지…… 아셔가 가리키는 방향을 돌아보고 싶지 않았다.

열세 살 소년이라니.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 * *

“이런 치욕은 처음이다.”

다프네는 모두가 볼 수 있는 현관에서 납작 엎드렸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다.

가문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는 꼬마 신사분을 사용인 취급했으니, 저런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는 것이다.

“감히 날 어린애 취급해?!”

다프네는 ‘어린애시잖아요.’라고 생각했지만 이를 입 밖으로 내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지금은 그저 이 무시무시한 소년의 기분을 맞춰 주고, 그녀를 지지해 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회의까지는 하루가 남았으니, 어떻게든 그녀가 소년의 비위를 잘 맞추면 조금은 마음을 열지 않을까.

사실 어린 소년을 다루는 일에는 자신이 있었다.

아버지가 계시지 않은 사이에 사무엘을 책임진 것도 다프네였으니까.

“너, 지금 마음속으로 날 어린애라며 우습게 생각했지?”

“아, 아뇨.”

“뻔하지.”

아이는 팔짱을 끼운 채로 다프네의 주변을 빙글빙글 돌았다.

“내일까지 적당히 기분을 맞춰 주면, 내가 널 지지할 거다. 뭐 그런 시답지 않은 계략이라도 생각한 건가?”

“헉……!”

다프네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년을 올려다보았다.

오전만 해도 천사처럼 예쁜 소년으로 보였는데, 지금은 완전히 새카만 날개를 두른 악마처럼 보였다.

누가 슬로언의 핏줄 아니랄까 봐!

“멍청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군. 손님도 알아보지 못하는 주제에, 내 기분을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다프네는 일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내 아버지께서는 저런 멍청한 이들에게 세금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늘 주장해 오셨지.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이제야 알겠어. 돈을 받기가 미안할 지경이야. 도리어 내가 지원금을 주고 싶을 정도네.”

그건 참 넙죽 받아들이고 싶은 말이지만, 다프네는 아직 납세의 의무가 없었다.

“아니죠, 저런 여자야말로 적극적으로 세금을 내야 한다고 봅니다. 존재만으로도 공공에 해악이 되니까요!”

그들의 곁을 지키고 있던 아셔가 신이 나서 소년의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아셔 마플, 역시 지혜로운 휴고 마플의 아들이군. 좋은 의견이야.”

“오랜만에 뵙습니다, 앨러스테어 님. 더욱 늠름해지셨군요.”

늠름이라니.

다프네는 슬그머니 고개를 들고 소년의 모습을 살폈다. 가느다란 몸 어디에도 늠름이라는 글자가 끼어들 구석은 없어 보였다.

“마플, 네가 곁에 있었는데 어쩌다가 이런 게 저택으로 굴러 들어온 거지?”

“그건 통한의 실수입니다. 제가 조금 더 빨리 수도에 갔더라면……! 크윽.”

아셔는 다프네가 구박을 받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즐거운 듯했다. 꼭 연극배우나 할 법한 작위적인 태도로 제 심장을 쥐어뜯는 것을 보면.

“그렇군. 하지만 바꾸어 생각해 보면, 명석한 아셔 마플이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뻔뻔한 인물이라는 뜻인가.”

“그렇습니다. 이 여자는 그냥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고요! 쇠줄 같은 고집쟁이에 부끄러움도 모르는 파렴치한이죠!”

“이런 것을 자랑스러운 공작가에 둘 수는 없는 법이지.”

“암요, 암요!”

“들어라, 서튼의 장녀.”

어린 소년은 앳된 얼굴로 만들 수 있는 가장 근엄한 표정으로 다프네를 불렀다.

다프네는 얼른 이마를 바닥에 쿵 처박았다. 왠지 두려운 마음에 두 손이 달달 떨려왔다.

“수행원은 늘 공작의 곁에 있는 만큼 항시 바른 몸가짐을 가져야 한다. 너 같은 경망스러운 인물에게 그런 보직을 맡길 수는 없다.”

“……하, 하지만.”

다프네는 용기를 내어 자신을 변호하려고 했지만, 소년은 이를 들어 주지 않았다.

엄격한 목소리로 그녀의 말허리를 자르며 다음과 같이 선언했다.

“가문 회의에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인정하지 않겠다. 당장 나갈 준비를 하도록!”

그리고 소년은 더는 대화를 나누지 않겠다는 듯, 획 몸을 돌려 저택으로 들어갔다.

“지당한 말씀입니다!”

얄미운 아셔가 괴상한 춤을 추며 그의 뒤를 따랐다.

* * *

갑작스럽게 열린 가문 회의를 준비하느라 저택은 다시 바빠졌다.

집사는 모처럼 정리해 놓은 손님용 접시를 다시 꺼낸 뒤 접대에 내놓을 포도주를 신중하게 고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하인 일을 수행 중인 다프네는 동쪽 손님방에 부족함 없이 석탄을 실어 날라야 했다.

앨러스테어도 이 동쪽 별관에 머문다고 들었기 때문에, 다프네는 혹시 그와 마주치면 쿠키라도 건네며 부드럽게 이야기를 나눌 계획을 세웠다.

나이를 막론하고 쿠키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는 법이며, 먹을 것을 주는 건 좋은 사람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계획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가문의 샛별인 앨러스테어 슬로언과 석탄쟁이인 다프네가 마주칠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프네, 앨러스테어 님을 화나게 했다면서요?”

다프네가 의기소침한 얼굴로 손님용 서재의 벽난로에 석탄을 넣고 있을 때, 동료 하녀 브리가 다가와 굳이 그녀의 아픈 구석을 쿡 찔렀다.

언젠가 손이 아픈 다프네를 위해 약을 건네주었던 친절한 하녀 아가씨 말이다.

“그게 어쩔 수 없었어요. 그렇게 귀여운 소년이 가문의 어른일 줄은 몰랐단 말이에요.”

“하긴, 아직 한참 어리시죠. 인상만 쓰지 않으시면 훨씬 더 귀여워 보이실 텐데.”

다프네는 ‘맞아요.’라고 답하며, 새카매진 장갑을 벗었다. 벽난로 주변에 펼쳐 놓은 천을 접어서 바구니에 놓은 후에는 줄곧 구부정해 있던 허리를 폈다.

“어구구구.”

저절로 앓는 소리가 나왔다. 오전에 자전거를 탈 때 무리해서 아셔를 뒤에 앉혔기 때문이리라.

중간에 아셔가 자리를 바꾸어 주지 않았다면, 아마 더욱 힘들었겠지.

“괜찮아요?”

브리가 걱정스레 건넨 질문에 다프네는 씩 미소를 지었다.

“물론이죠! 이 정도로 그만둘 작정이었다면, 처음부터 공작가에 오지도 않았을 거예요. 일단 어떻게든 앨러스테어 님께 사죄를 드리려고요.”

“아니 그게 아니라, 허리…….”

허리가 괜찮으냐, 물으려던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다프네는 ‘읏차’ 소리를 내며 기운차게 석탄 양동이를 번쩍 들어 올렸다.

“……씩씩하네요, 다프네.”

“제 백 가지 장점 중 하나죠. 이제 공작님의 집무실에 석탄을 채우기만 하면 쉴 수 있어요!”

다프네가 씩 웃었고, 브리는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건, 씩씩한 다프네가 좋아서 드리는 조언인데요.”

조언? 설마 이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 있는 걸까?

하긴, 사용인들은 주인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꽤 유용할지도.

“뭔데요?”

다프네는 잔뜩 기대하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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