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5화 〉1부 65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65/66)



〈 65화 〉1부 65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는 내내 머리가 어지러웠다. 더운 날씨에 땀을 흘리며 바라보는 세상은 취기가 잔뜩 올라온 것처럼 흐릿하게 보였다. 어느 새 그녀가 바짝 붙었다는 사실을 그걸 뒤늦게 알아채고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






분명 조금 전까지 시끌벅적했는데. 지금 귀에는 시지프의 목소리만 또렷하게 들린다.
앞뒤로 스쳐가는 외눈박이들의 시선. 강렬한 태양빛에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는 어린 아이들. 소란스럽고 활발한 도시. 쾌활한 티고.  가운데 덩그러니 남겨진 우리  사람.


“…루나. 네가 뭐라 해도 난 널 믿어.”


아니. 당신은  믿지 않아. 믿길 바라며 마음의 순하고 여린 부분을 찾아 이용하는 것뿐이지.



“뭘 믿어요? 도대체 저에게서 어떤 걸 보고 그렇게 단숨에, 의심 한 줄 없이 믿을 수 있는 건데요. 왜, 어떻게 믿을 수 있는 건데요?”
“모든 걸!”
“거짓말 하지 마세요.”



그럴 리가 없어. 절대로.


“정말이야. 너의 모든  보고 믿어.
네가 거짓을 말했다면 어떻게든 내가 알고 있는 이루나를 연기했을 거라 생각하거든. 본래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은 원래 뭐든 숨기려고 하고, 거짓말에 대해 모르는  어떻게든 끝까지 둘러대고 아니라고 발뺌을 하지.”
“…….”
“하지만 너는 아니었잖아. 루나,  그러지 않았어.
미숙하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 넘기면서도 마지막엔 너의 비밀을 말했고, 지금 여기서도 숨기려는 기색을 보여주지 않고 있잖아.”


지프는 차분함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햇볕은 여전히 뜨거웠고 주변에는 소음이 울렸지만 그녀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 귀를 때렸다.





“…그건.”
“나는 너라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지 못해. 네가 생각하는 너의 모든 것과 내가 생각하는 너의 모든 것은 매우 다를 거야. 그렇게 보면 내 말은 언젠가 너에게 큰 상처를 줄 수도 있겠지.”


그래. 분명 그럴 것이다. 인간은 대게 죽을 때까지 자기 자신마저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진정 자신이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떤 삶을 살고 싶어 하는지. 꿈은 무엇인지….
자기 자신도 모르는 이들이 어찌 타인의 모든 것을 안다고 말할  있을까?



“알면서 왜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던지세요? 뭐가 그렇게 자신이 있으셔서?”
“그럼에도 널 믿고 있다는 거야. 그리고 널 이해하고 싶고, 돕고 싶고, 목표를 이루는데 도와주고 싶어.”
“…….”



아니. 당신은 날 믿지 못해. 이해하지 못해. 도와줘서도 안 돼.
자신에 대해서도 가끔은 이해할 수 없고 밉고 싫을 텐데 어떻게 남을 믿고 돕고 이해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가 있는 거지?



 하얀 손을 내미는 저의가 뭐야. 속에 숨겨진 의도가 뭐야?
믿으려다가도 내가 모르는 뒷모습이 있을까봐. 이 세계에서 힘들어 하는 나를 도와주는 당신이 사실은 독이고 짐일까봐. 함부로  다가가겠어.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거예요. 왜요? 왜 그러는 건데요?”
“계속 말했잖아. 널 믿고 싶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고.”




그래서 당신이 하는 말과 행동이 다 가짜 같다는 걸 당신은 알고 있을까? 지금까지 잘해주고 잘 대해준 말들이 다 거짓 같다고. 꼭 무슨 의도가 있고 더러운 사심을 채우려는 걸로 보인다는 걸.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길 바라고 있다. 이게 인간의 이중성인 것일까? 이미 뇌에선 당신의 모든 것을 부정하라고 외치면서 다른 마음 한 구석에선 지금 말하는 모든 이야기에 거짓된 먼지 한  없길 바라고 있다.
그래. 그래서 지금 이 헛소리를 계속 듣고 있잖아.



“심지어 혼란할 나를 위해 그간의 일을 설명해주겠다고 말했지? 네가  미더운 존재였다면 도망치거나 그 속사정은 지어서라도 별  아니라는  강조했을 거야. 왜냐하면 나는 너의 어머니를 대신 나서서 따라온 대리인과도 같은 존재니까. 집으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라도 거짓말을  수 있었겠지.”
“그거야….”


그러게. 거짓말을  수도 있었다. 연기를 못해도 억지로 입을 열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면 그녀 역시 심적으로는 의심해도 정확한 사정을 알지는 못했을 것이다. 여차하면 대리인 신분으로 집에서 못 나오게  수도 있었을 것이라.




그러나 거짓말을 하지 않고 숨기다 결국 사실을 털어놓았다. 흔들리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의 파란 눈은 왜곡되지 않은 모습을 보는 듯 깨끗하게 보였다. 파란 눈에 그려진 홍채가 색색별로 다른 게 보였다.




“그렇긴 하네요. 그럼 이제 말했으니 저를 집으로 데려가실 건가요?”
“아니. 오히려 그런 솔직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에 데려가지 않을 거야. 일행이 된 나를 완전히 믿고 따른다는 걸로 받아들였거든.
뭐, 이젠 네 몸이 이렇게 되어 버려서 돌아가는 게 더 위험한 일이   같긴 하다.”
“…….”
“이제부터 내가 도와줄게. 나는 돈도 많고, 성인이고 꾸준히 운동해서 체력도 있어.”
“도와줘요? 대체 뭘, 어떤 걸 도와주실 건데요?”
“앞으로 네가 가고자 하는 곳. 하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일. 전부 다!”


지프는 그렇게 답하고 휴지를 꺼내 눈물을 닦았다.


가고자 하는 곳. 하고자 하는 것. 이루고자 하는 일.
몸은 계속해서 작아지고 집에 돌아가기도 전에 죽어버릴 지도 이 몸을 끌고 다니며 도와주겠단다. 너무 우습다.



“풉.”



작게 자조를 띠었다. 동시에 왁자지껄한 거리의 소음이 한꺼번에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 영화처럼.


그 때. 그녀가 제 눈을 닦는 모습 뒤로 어떤 기억이 겹쳐 보였다. 그녀가 여기까지 따라왔을 때 대답한 이유였다.



‘처음에는 그저 꽃을 좋아하는 학생이라고만 생각했어. 요즘 세상에 꽃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니. 똑똑하고 신장도 크고 날씬하고 웃을 때 시원시원하고…하지만 너는 생각보다  대단한 아이였어.
안정적인 생활에서 목표를 찾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단숨에 너의 세상을 부수고 나왔잖아. 나는 목표를 위해서라면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는 네가 좋아.’


호감. 우정. 신의, 작은 동경…사랑.
말에서 그 모든 감정이 마음에 담겼다.


“…….”
“너를 함부로 대하던 사람들은 잊어 버려. 이젠 내가 있잖니.”




그 말에 참던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손으로 그녀의 양 팔을 잡고서 달아오른 얼굴을 그 품에 숨겼다.




볕에 뜨거워진 티고의 거리 위. 시끄러운 함성과도 같은 소음 속에서 크게 울음을 터뜨렸다. 지프는 저보다 크고 넓은 등을 손으로 토닥이며 울음이 그칠 때까지 달래주었다.


감정이 쌓이고 쌓여 한순간에 무너져 내린다. 그렇게 그녀 앞에서 운 것이 벌써  번째였다.



◆◆◆






“더 할 말 없어?”


손가락으로 손수건을 말아 눈 주위를 찍어내듯 닦다가 그녀가 던진 질문이었다.



“음, 그러니까…난 이제부터 너의 동료잖아? 그러니까, 네가 하고자하는 걸 도울 조력자란 말이지. 그럼 너에 대한 걸 많이 알아야 하는데, 지금까지 알던 전교 1등 이루나가 아니면 원래의 너에 대해선 아는 게 너무 없는  같거든.”
“…저도 잘 몰라요.”
“응?”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대답에 그녀는 정말 고개를 갸웃 거렸다. 그래서 그간 일을 최대한 차분하게 설명했다.




“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고…원래는 정안이라는 어린 남자 아이가 있었고, 네 어머니도 사실은 그 남자 아이의 엄마였다…이거야?
그동안 너를 위협하거나 기이했던 현상을 겪었고?
꿈이랑 비슷한 이상 공간에서 ‘루나’라는 친구를 만났고…정안이라는 애가 사라지면서 모든 게 바뀌었다.  말이지?”
“네. 맞아요.”
“관리자가 말하는 ‘님’은 너의 친구 루나 같다는 거고?”
“정확하게 말하면…달이요.”
“…뭐?”




대화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던 그녀가 동작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봤다. 당혹스럽다는 표정이다.
그래, 이럴 것 같긴 했어. 농담이니 장난이니. 그런 생각을 하고 있겠지.



“지프, 저 농담하는 거 아니에요.”
“…….”
“그러니까, 달이 저를 부른 거예요.”


그렇게 말하고 쿡.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누가 들어도 웃기고 미친 소리로 들릴 이 말을 진지하게 뱉은 스스로의 모습을 상상하고 보니 너무나도 우스웠던 것이다.
하지만 시지프의 얼굴은 사뭇 진지했다. 조금 놀란 듯 눈썹을 치켜들긴 했지만 비웃거나 불신하는 기색은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네. 음.”
“달이 너를 불렀다고 말했어?”
“그건 아니지만, 자기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지만 달이 저를 부른 게 아니라면 제가 어떻게 여기에  것이겠어요?
고향에서의 기억은 없지만 모든  너무 낯설었거든요. 닮은  닮지 않은 세계에 떨어진 제가 외눈 천지인 세상에서 회색 양복을 입은 이들과 함께 길을 걷고 점토마냥 모양과 크기가 변하는 달을 매일 밤마다 조우하며 인사를 하며 하루를 마치는 것을 말이에요.”



그 말에 그녀는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한  끄덕였다. 이해했다는 의미였다.





“지프, 라벤더라는 꽃을 아세요?”
“아니, 전혀.”
“음, 역시 여기선 그렇게  불리려나….”
“어떻게 생겼는데?”
“줄기가 길고 끝에 여러 송이가 모여 펴 있어요. 꽃잎은 보라색인데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로 짙은 향을 풍겨요.”
“글쎄…난 잘 모르겠는데. 그것도 꿈에서  거니?”
“처음에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도 봤었고, 최근에는 꿈에서 봤어요.
어디선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생각했는데 라벤더라는 꽃이었다는 걸 깨달았어요. 본래 향이 그윽한 향을 흘려서 향수로도 많이 썼어요.”
“아하.”
“지프는 무슨 꽃인지 알 것 같아요?”
“글쎄. 내가 지난 3년 동안 꽃집을 운영해서 동서륙에서 팔리는 웬만한 꽃은 알고 있지만 그런 이름은 들어본 적이 없는 걸? 네가 말하는 게 이름도 없는 잡꽃이면 몰라도….”
“꽃 중에 이름 없는 종도 있어요?”
“있긴 하지. 적어도 서대륙에선 상품가치가 높은 꽃들을 많이 사거든. 화려하고 눈에 확 띄는 것들을 위주로.”
“아….”
“나도 모든 걸 알고 싶지만 이름도 없는 꽃까지 알아볼 만큼 여유도 없었고….”


지프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자신이 별로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안타까워 하는 걸까.





“지프를 탓하려는  아니에요! 그럼 보라색 꽃을 피우는 종은 알고 있어요?”
“물론이지. 원한다면 밤새도록 알려줄 수도 있어!”
“‘밤의 친구’라는 별명을 가진 꽃을 아시나요?”


예전에도 이런 질문을 그녀에게 날렸었다. 그러니까, 꽃집을 처음 방문했을  말이다.
 때는 정안이도 있었고 혼란스럽고 무서운 것에 비해  멀쩡한 세상 같았지. 아마?






“모르겠어.”



역시 그런가. 모를 수밖에 없나?



“미안해. 내가 도움이 되는 게 전혀 없네.”
“괜찮아요.”




그래. 그 때도 이런 소리를 했었지. 정말 한결 같은 사람.
당신이 전적으로 믿는다 말했듯 당신을 믿어보겠다 다짐한 것은. 정말 어쩌면….



“왜 그래? 무슨 생각 하고 있어?
루나야. 너무 걱정하지 마.   될 거야.”
“네. 물론. 당연하죠.”




…잠깐은 이렇게 전적으로 기대는   괜찮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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