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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4화 〉1부 64화 작아지는 소녀 (64/66)



〈 64화 〉1부 64화 작아지는 소녀

그녀의 말에 황급히 몸을 보았다. 어제 입고 잔 파란색 반바지가 엉덩이에 걸쳐 있다.




“말도 안 돼. 어제 입을  다리 쪽에 여유가 있긴 했어도 딱 맞았는데….”
“그러게. 그거 내가 준 옷이지? 나보다 한 치수 큰 거라 너한테는 작거나  맞을 것 같았는데.
루나 너 생각보다 마른 체형이구나?”
“그런가요?”
“이참에 내가 골라준 거 입어봐. 이 원피스 너한테 잘 어울릴 것 같아.”


그녀가 건넨 원피스는 어깨에 프릴이 달린 하얀 원피스였다.






“네? 무릎 위로 오는데, 너무 짧은 거 아니에요?”
“엄, 사실 내 몸에 맞춰 산거라 원래는 무릎 아래로 내려오는 건데…넌 역시 키가 크니까 그건 어쩔 수가 없네. 그냥 입어.”
“네?”
“짧은 옷, 젊을  입어보지 다 늙어서 입어 볼래? 10대 때 해보는 일탈이라 생각하고 한  입어 봐.”




지프는 그렇게 말하고 가벼운 발걸음으로 밖을 나갔다.
별 수 없이 셔츠를 벗고 원피스를 입고 속바지를 찾아 입었다.


“요즘 밥도  먹는데…갑자기 살이 빠지냐.”





입고 있던 파란 반바지와 하얀 셔츠를 쓰레기통에 던지고 밖으로 나갔다.





◆◆◆


“…오늘은 어때요?”
“세상에, 어제보다 줄었어.”




지프는 연필을 내려 두고 한숨을  내쉬었다. 착잡하다. 이게 대체 뭘까.
신장이 줄어들었다. 부동의 175는 사흘 사이에 5센티미터나 줄었고 살도 그만큼 빠졌다.


“루나. 최근에 뭐 이상한  먹지는 않았지?”
“지프. 이게 뭘 먹는다고 일어날 일이 아니잖아요. 좀 상한 거 먹는다고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긴, 그건 그래…나도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지금까지 알려진 과학적 사실이나 기술로는 밝혀내기 어려운 일이야. 고칠 수도 없는 일이고.”




점점 작아지고 있다는 것은 옷을 입으면서 알게 되었다. 평소에 약간 꼈던 옷이 꼭 맞는 것이었다. 그 다음은 화장실 거울을 보면서. 후에는 느낌상으로. 혹시,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재어 보니….






지프는 병원을 가보자고 말했지만 거절했다. 신장이 급속도로 커지는 거면 몰라도 작아지는 걸 누가 정의내릴 수 있을까? 그것도 한창 자랄 성장기에….
병원에서는 병명을 알아낼  없을 것이거니와 오히려 흥미롭게 보다 실험대상으로 잡히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이다.



“그러게요. 이러다간 꼼짝 없이 죽는 날만 기다리면 되겠어요? 이렇게 작아지고 작아지다 세포랑 친구할 수도 있을 거고.”
“진정해! 너무 비약했어. 비록 줄어드는 속도가 빨라지고는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에서 멈추지 않겠니?”
“멈추지 않고 계속 작아지면요? 저는 어떻게 되는 건데요?
이럴 줄 알았어요. 이럴 줄 알았다고요.”





뭔가 이상한 세상에서 이상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이런 과학적이고 기본 상식선을 넘는 일이 일어날 줄은 몰랐다. 그것도 이렇게 갑자기. 아무런 신호 없이 침실에서 잠을 자고 일어난 아침에 말이다.


“루나, 그게 무슨 말이니? 이럴 줄 알았다고? 지금 이 상황을 예상했다는 거야?”
“안 되겠어요. 지프, 당장 여길 벗어나요.”
“왜 그래. 갑자기 왜….”


나가야 한다. 당장 이 도시를 벗어나야 해.
지프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이 현상을 직접 눈으로 보면서도 이해할 수 없겠지.



“이대로 가다간  정말 죽을지도 몰라요.
당장 짐 챙겨서 나오세요!”
“이루나!”
“부탁이에요. 제   들어주세요.”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지프는 납득하지 못했는지 가방에 물건을 넣고 있는 손을 잡았다.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 드러났다.
그녀는 당장 이제까지의 일을 설명해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 평범한 여고생 이전에도 당신은 나를 알고 있었다고. 그렇게 말해도 결코 기억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저도 바로 나갈 거예요.
저도 많이 혼란스럽지만 지금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에요.”
“무슨….”
“이따 전부 설명해줄게요. 그러니까 얼른, 빨리요.”



그녀는 단호한 대답에 손을 놓고 밖으로 나갔다.
나가면서도 생각하는 게 보인다.


그래. 나 역시 혼란스럽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그렇다고 히어로처럼 특수능력이 생겨난 것도 아니고. 그냥 신장이 줄어들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래, 히어로는 무슨. 이건 병이야. 키가 급속도로 작아지는 병.”




지난 사흘 간 가장 평화롭고 바쁘게 보냈다. 시지프와 함께 세 끼를 해결하고 같이 거리를 거닐며 수다를 떨었다.  나라의 역사와 언어 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 사이에 누가  술수를 부린 것일까…아니. 아니야. 그만 생각하자. 누가  죽이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스스로 느끼고 있었잖아.”





그만 생각하려 고개를 젓고 짐을 마저 담았다. 그럼에도 머릿속에는 이 상황에 대해 부정하려는 생각이 자꾸만 떠올랐다.




방 밖으로 나오자 짐을 챙긴 지프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녀는 걱정 어린 눈빛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차타고 나서 말씀드릴게요.”





건물 밖으로 나오자 밝은 빛이 눈을 찔렀다. 손으로 눈을 가리었다. 하늘은 파랗고 태양은  빛을 내리쬐며 땅을 달궜다. 거리는 오늘도 시끄럽고 평화롭다.


“루나, 듣기 전에 이거 하나만 물어볼게.
…혹시 쫓기고 있어?”


고개를 돌려 그녀의 얼굴을 쳐다봤다. 불안하고 초조한지 입술이 벌벌 떨고 있다. 동공은 흔들리고 잡은 손은 축축했다. 당장  건드리면 부서질 사물을 보는 느낌이 이러할까?


“…네. 맞아요.”


제법 담담하게 답했지만 속은 전혀 그러지 못했다. 얼굴과 목은 뜨거워지고 곧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축축해진 손이 더 이상 축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새 그녀의 눈에서 물이 흘러나왔다. 깔끔하게 떨어지는 한 방울이 아닌 댐에서 구멍이 나 물이 새어 나오는 눈물이었다.


“지프….”



소리 없는 눈물이다. 쓰러지듯 주저앉고서 양 손으로 제 얼굴을 가리고 흐느낀다.
소리를 낼 수 없을 만큼 슬픈 것일까? 그렇게 내가 당신에게 애틋하게 느껴지는 사람이었던가? 그렇게도 슬픈 사실인 걸까….




“시지프. 전 당신이 왜 그렇게 울고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
딱히 좋은 일이 아니라는  알고 있지만….”
“…….”




그러자 그녀가 손을 내리며 올려다봤다. 눈물에 젖은 얼굴이 드러났다. 빨갛게 익은 코와 눈물에 부푼  눈만큼이나 화장한 입술도 붉게 보였다.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왜 그렇게 불행하게 사는 거야?”


불행. 그 단어를 듣자 뜨거웠던 얼굴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울렁이던 속도 잠잠해졌다.





“이전부터 불안해하고 두려워하는 모습이 자꾸만 보였어. 처음  가게에서 봤을 때도 그랬어. 엄마 손에 이끌려온 중학생의 얼굴이 왜 그렇게 지쳐 보였는지. 여든 먹은 할머니처럼 인생 다  얼굴로 엄마와 대화를 나누고, 죽은 눈으로 나에게 인사를 했지.”
“그건….”
“처음에는 모범생은 다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며 넘겼어. 공부에 지쳤나 보다…꽃을 보고 눈을 빛내는 너를 보며 그런 생각을 했지.
하지만 고등학교에 들어간 네가 과학자가 되고 싶다며 몰래 내게 와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따로 공부를 하는 너의 눈이 죽어있을 때는 조금 이상했어.”





그녀가 벌떡 일어서서  팔을 손으로 잡았다.



“엄마의 반대를 무릅쓰고 자기 하고 싶은 공부를 한다는 애의 눈이 왜 그렇게 즐거워 보이지 않는 걸까…물어보니 엄마에게서 벗어나면서도 안정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일이 과학자뿐이라고. 네가 그런 대답을 했지.
결국 너는 하고 싶어서 하는  아니었던 거야. 과학이 재미있어서, 과학 공부가 즐거워서…과학자를 하면서 이루고 싶은 비전은 하나도 없었던 거니까.”
“네, 이제 과학자 하고 싶지 않아요.”
“그래, 네가 그렇게 말했지. 사실 당신이 알고 있던 이루나는 이루나가 아니고,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눈에서 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생기 없던 하얀 볼이 붉게 달아올랐다.


“처음에는 황당했어. 이게 늦은 사춘기가 들어 이러는 걸지. 하지만 곧 마음을 고쳐먹고 따라 나섰어. 사춘기면 어떻고 단순한 반항심이면 어떻겠니? 내 눈엔 여전히 열여덟 여고생 이루나로 보이는데.”
“전 이루나가 아니에요.”
“알아. 네가 이루나인 걸 알고 있고, 사실 말을 얼버무렸지만 학교를 더 안 다니고 네가 가고자 하는 곳에  거라는 것도 알고 있어.
진짜 너의 기억을 찾고 싶은 거고, 진짜 네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거잖아. 맞지?”



그녀는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정확하게 알고 있다. 혼란이 사라진 부은 눈 안에 보이는 파란 눈이 초롱초롱했다.



“그럼 지금 무슨 말씀을 하고 싶은 거예요? 제가 이루나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잖아요.
누군지도 모르고 단지 과거의 기억 몇 번 만으로 저를 믿고 좋아하고 따라 오셨고, 앞으로도 계속 그러시겠다는 거예요?”
“응. 맞아.”





그녀의 말에 화가 났다. 아니, 말이 안 되니까 당연히 화가 나는 것이다.
누군지도,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여태 알고 있던 모든 그 사람의 모든 것이 사실은 전부 거짓이라는  알면서도 따라오겠다고?
저 사람의 진심이 뭘까. 도대체?


“그러니까, 그걸 다 알면서도 계속 따라 오시는 이유가 뭔데요? 왜요? 도대체 왜 그러는 건데요!”
“그냥, 그냥 네가 좋아서!”
“고작 그런 이유로 자기 인생을 망치면서까지 따라올  있는 거예요?
전 이해하지 못하겠어요. 납득이 안 된다고요.”
“도대체 어떤 면에서?”
“그냥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랬어요. 당신이 나타나면 의심이 되고 불안하고. 나를 쫓는 자가 당신은 아닐까? 지금 이렇게 잘해주고 친절을 베푸는 것도 사실은 긴장을 풀게 만들어서 어떻게든 나를 죽이려고 하는  아닐까?”
“루나, 원래 이유 없는 친절도 있는 법이야.
그리고 말했다 시피, 나는 감정적이고 즉흥적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라 했잖아?”
“아니요? 이유 없는 친절은 없어요. 그 누구도 이유 없는 행동은 하지 않아요.
각자 나름의 이유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거든요. 납득이 안 되는 지금  현상도 어떤 원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좋다는 말 한 마디에 폭포처럼 쏟아냈다. 납득할  없거든. 이해할 수도 없고.
어떻게 그게 되는 거지? 아니,  때는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사라진 어떤 어린 남자 아이를 사랑했듯. 이 여자도 사랑하는 것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여자는 아닐 것이다. 아닐 거야.
의심을 놓아선  돼. 방심을 해버리면 또 어디서 공격이 날아들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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