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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88)화 (8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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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9. 바보같이 울긴 왜 울고 그래

입술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엄지 끝이 치열을 훑었다. 온몸이 짜릿하게 달아오르는 다디단 맛이었다.

저도 모르게 고인 침을 쪽 빨고, 그렇게 스위치가 눌리면 미지 너머로 빠져 버릴 것만 같아 무서웠다.

“흐읏.”

가이딩이 다 이런 거라던 남들의 말대로 못 이기는 척 넘어가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리는 질끈 감은 눈꺼풀을 들어 주환을 쏘아보았다. 그리고 앞니를 세워 주환의 엄지 끝을 물었다.

“…….”

기력을 다 소진한 에스퍼가 가이딩을 안 받겠다고 고집을 피우는 걸 본 주환은 더욱 대담하게 나리를 유혹했다.

나리를 제 무릎 위에 앉힌 주환은 그녀의 등을 감싸 안고 귓불을 적셨다.

“이렇게 버텨 봤자 이 중사와 부대에 좋은 거 하나 없는데.”

“…….”

“제대로 가이딩받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안다.

내가 빨리 회복해야 부대원들도 빨리 복귀할 수 있기에 가이딩받아야 할 명분도 충분했다.

얘네 언제 가이딩하나 기다리다가 지친 후배들이 등 떠밀어 줄 정도로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나리는 주환의 손을 잡고 바르르 떨었다. 있는 힘껏 그의 손끝을 깨문 것 같은데 주환은 표정 하나 일그러지지 않았다. 옆구리에서 가슴으로 올라가는 손길만 뜨거워질 뿐이었다.

“으……. 흐, 흐……!”

나리는 온몸에 간지럽게 전기 오르는 감각에 주환의 손끝을 다 뱉어 내지 못하고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주환은 나리의 허리를 끌어안고 귓가에 속삭였다.

“빨아.”

깨물던 힘이 서서히 풀리더니 입술이 오므라들고 부드러운 혀끝이 그의 엄지에 닿았다.

하아. 주환은 나리의 목덜미에 입술을 묻었다. 나리의 서툰 혀 놀림에도 주환은 더욱 나리를 세게 끌어안아 목덜미며 어깨며 잇자국을 새겼다.

삐, 삐잇, 삐…….

달음박질치는 심장을 재는 소리가 너무 야속하게 들렸다.

“제 워치…… 빼 주시면 안 됩니까…….”

혼미한 와중에 겨우 만든 한 문장이었다.

“기록, 안 남았으면 합니다.”

“…….”

어설프게 제 손끝을 빠는 줄 알았는데 이 말을 하려고 달싹거린 것 같았다.

주환은 그녀의 어깨에서 입술을 떼고 나리의 턱을 잡아 제 쪽으로 돌렸다. 나리는 고개를 반대편으로 돌리며 얼굴을 숨겼다.

“이 중사?”

“워치만, 빼 주시고…… 그냥 계속하십…….”

“나 봐.”

나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환의 팔에 매달렸다. 툭, 그의 손에 떨어진 물기에 주환은 미간을 찌푸리고 나리를 다시 돌려세웠다.

“싫습니까?”

“그게…….”

“싫으면 싫다고 하면 되는데, 왜…… 왜 웁니까.”

나리는 벌게진 눈가를 슥슥 훔쳤다.

“싫은 건 아닙니다. 정말 싫은 건 아닌데……. 저도 바보같이 왜 우는지 모르겠습니다. 괘, 괜찮으니까…….”

가이딩 중에 우는 에스퍼는 들어 본 적이 없다.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하고 창피해서 나리는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하아.”

주환은 풀어 헤쳐진 나리의 상의를 쥐고 한숨을 쉬었다. 다친 어깨를 고정한 압박 붕대가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진통제를 놓아 가면서 무리한 사람에게 너무 과한 가이딩이었을까. 자신이 반박할 수 없는 핑계를 대 가며 몰아붙인 게 원인이었을까. 아니면…….

주환의 시선이 나리에게 닿다가 천막 너머로 향했다. 어른거리는 그림자 속에 있을 그놈 때문일까, 하고.

나리는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한쪽 팔을 들어 주환의 목을 감싸 안았다. 그리고 자기 손목에 걸린 워치를 물었다.

이게 다 고장이 난 심장 때문이다.

삐삐거리며 제멋대로 뛰는 심장 소리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

주환은 나리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가는 손목이 주환의 한 손에 잡히고도 남았다.

“괜찮긴 뭐가 괜찮습니까.”

손에 낀 장갑을 빼고 손가락 사이사이에 깍지를 끼어 붙잡았다. 그리고 나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하나도 안 괜찮아 보이는데.”

붉은 눈꼬리가 깜박거리더니 주환의 시선을 피해 모로 떨어졌다. 맘에도 없는 ‘괜찮다’라는 말이 나리의 입에서 한 차례 더 나왔다.

“저, 정말 괜찮습니다. 그…… 제가 빨리 전투 복귀하려면…… 그냥 빨리 하는 편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언제 몬스터가 올지 모르는데 부상자들 쉴드도 쳐서 빨리 이동해야 하지 말입니다…….”

“정말 괜찮으면 나리 씨가 날 만져도 됩니다.”

“……예?”

나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주환이 깍지 낀 손을 그대로 가져가 자신의 단추를 툭, 풀었다.

“내 페이스에 못 맞추면, 내가 이 중사한테 맞추면 되지 않겠습니까.”

으, 으으으으음?

나리는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로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벌써 그의 손에 잡힌 나리의 손이 주환의 옷으로 들어갔다.

“왜, 에스퍼들은 다 가이드만 보면 시커먼 욕망과 정욕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무서운 존재라면서.”

“……!”

현기증이 났다.

손등에 닿는 단단한 근육과 그 아래에 펄떡거리는 심장 박동이 나리를 너무 낯 뜨겁게 했다.

우와아악!

입술을 질끈 깨물지 않았더라면 저도 모르게 저리 괴상한 비명을 질렀으리라.

“이나리 중사님은 너무 착한 에스퍼라 탈인 것 같고. 나는 매너를 차리기에 참을성 없는 가이드라서 문제인 거 같고.”

그래서 낸 절충안이 이거라고요?

어, 어, 어으음…….

나리는 갈 곳 잃은 시선을 이리저리 굴리기만 했다. 손끝이 선연한 복근 쪽으로 미끄러지자 얼굴이 홧홧하게 타오르다가 터질 것만 같았다.

오 마이 갓.

나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렁그렁 넘실거리던 물기가 눈꼬리에 동그랗게 맺혔다.

주환은 고개를 숙여 그 눈꼬리에 입을 맞췄다.

❖ ❖ ❖

“…….”

강은 나리가 누워 있었던 간이 병상에 턱을 괴고 앉았다. 좀 전에 확인했던 시간을 또 확인하고는 더 눈살을 찌푸렸다.

화한 박하 향처럼 시원한 가이딩이 밤바람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안 봐도 뻔하게 흘러가고 있을 장면이 눈앞에 그려지자 강은 낮게 욕지거리를 뱉으며 일어났다.

나리를 살리고 싶으면 조금만 참고 기다리라는 이성과 그딴 거 갖다 버리라고 성화를 내는 본능이 첨예하게 대립해서 머리가 더 지끈거렸다.

그래, 3분이나 버텼으면 많이 봐준 거지.

강은 착하게 잘 참은 자신을 칭찬하면서 막사 뒤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비켜.”

부상자를 치료하는 척하면서 강의 길목을 가로막은 가이드가 땀을 뻘뻘 흘리면서 어물댔다.

“여, 연대장님, 어디 가십니까.”

강은 쌩하니 무시하면서 그를 통과했다. 등 뒤로 넘실거리는 검붉은 파장이 타오르는 날개처럼 강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연대장님!”

불길한 파장에 오스스 소름이 돋아 올랐다. 휴식을 취하던 부대원들이 일제히 일어나 강을 돌아보았다.

강은 자신을 가로막은 대원들을 사납게 째려보면서 명령했다.

“3분 안으로 복귀 준비해.”

3분?

아니,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모른다면서 천막을 친 게 언제라고 바로 또 짐을 싸라는 말인가.

“예!”

대원들은 속으로 구시렁거리며 빠릿빠릿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나리 중사.”

강은 부산스럽게 움직이기 시작한 천막 한가운데에 서서 컴컴한 풀숲 너머를 쏘아보았다.

강이 아무리 작게 불러도 나리의 귀에 닿았을 터.

“누가 자리 이탈하래. 빨리 안 나와?”

한번 부르면 냉큼 달려와야 하는 거 아닌가.

강은 심기 불편한 티를 풀풀 풍기며 주위의 공기를 제 기운으로 채웠다.

‘어, 아, 저어, 박 소령님, 인제 그만 가 봐야 합니다. 다들 복귀 준비하고 있어서…….’

‘하아. 이런 상태로 어떻게 복귀합니까?’

‘오, 그, 그렇지만…….’

강은 팔짱을 끼고 이를 악물며 나리를 향해서 으르렁거렸다.

“……이런 상태가 뭔데? 왜 복귀를 못 해.”

‘히익! 박 소령님, 정말 이 이상은 곤란……하, 합니다. 연대장님께서 오시기라도 하면……. 으음. 아!’

나리의 뒷말이 뭉개지자 강의 이마에 핏줄이 뾰족하게 돋았다.

이 정도면 일한의 입에서 최강이 보살 되었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을까?

강은 바로 순간 이동 했다.

“이나리, 뭐 해.”

바로 등 뒤에서 들리는 염라대왕의 목소리에 나리는 흠칫 놀라며 주환에게서 손을 뗐다.

주환은 제 가슴 위를 쓸던 나리의 손을 잡아챘다. 그러고는 입으로 가져갔다. 비스듬히 누워 있던 주환이 상체를 일으켜 나리의 어깨 위에 머리를 기댄 채 무덤덤하게 강을 보았다.

뭐 하고 있는지 알면서 왜 묻느냐는 투로.

나리는 풀어 헤쳐진 자신과 주환의 상의를 번갈아 보며 입술을 우물거렸다.

유독 사납게 이글거리는 강의 시선 때문에 심장께가 따끔거리며 아팠다.

C11 작전도 끝났고, 몬스터가 들이닥친 부대로 복귀하려면 파장이라도 안정돼야 부상자와 부대원들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내가 내 페어한테 가이딩받는다는데, 내가 왜 여자 친구도 있는 저 남자한테 인사 좀 받았다고 양심이 자꾸 찔려야 하는 거지?

내가 저 집착광공…… 아니, 그냥 미친놈 밑에서 개처럼 구르다 보니 저놈의 똥개처럼 굴고 있잖아? 바보같이 울긴 왜 울고!

나리는 입술을 앙다물고 두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박력 넘치고 카리스마 있는 SS급 에스퍼, 최 아무개 씨가 그랬던 것처럼 주환의 멱살을 확 그러쥐고 묵직하게 목소리를 깔았다.

“보시다시피 부대 복귀 준비 중입니다!”

“…….”

“…….”

나리의 떨리는 손과 움찔거리는 입꼬리를 본 주환은 웃음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강의 앞이라고 강하게 밀고 나가려고 애쓰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 통쾌하기도 했다.

“하.”

강은 어이없다는 듯이 혀를 찼다.

여태껏 가이딩을 부담스러워하던 건 뭐고, 인제 와서 센 척하는 건지.

“복귀 준비? 집어치워. 지금 당장 가야 하니까.”

“왜 지금 당장 가야 합니까. 아까는 3분이라면서요. 아직 1분 43초 남았지 말입니다.”

이게 정말.

강이 나리의 팔을 잡아당겼다.

“누가 불장난하는 바람에 부대가 활활 타고 몬스터가 방책을 넘어왔다고 하는데, 그럼 너 때문에 내가 1분 35초 기다려야 하나?”

나리가 강의 팔을 뿌리치며 입술을 씰룩거렸다.

“아이고. 그거 정말 큰일이 났지 말입니다. 난 또 우리 연대장님께서 작전도 끝났는데, 비장의 쉴드 어빌리티를 탈탈 털린 에스퍼가 달콤한 재충전 시간 좀 가지겠다는데, 훼방 놓으러 오신 줄 알았지 뭡니까?”

뭐? 달코옴?

나리의 기가 막힌 말에 강이 눈썹을 치켜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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