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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48)화 (48/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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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9. SS급을 어떻게 잡지?

일한은 깊은 잠에 빠진 강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려다보았다. 산 하나를 무너트린 파장을 쓰고 폭주하기 일보 직전의 상태로 복귀했건만 연구소에서 강제로 제 가이딩을 뽑지 않는다는 게 영 찝찝했다.

띵.

[일한아, 지금 일부러 내 전화 안 받는 거냐? 최강, 그 망할 놈한테 손 떼고 선봐서 장가갈 준비나 해라.]

아버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띵.

[대통령님께 뭐라고 보고를 올리실지 몰라도 저는 유일한 소령의 미흡한 페어 관리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최 대령 회복할 때까지 유 소령은 근신해야 할 것 같은데 말입니다.]

이건 장대신 과장.

띵.

[이번 주말에 본가에 들러라. 저녁 약속 있다.]

이건 어머니.

머릿속에서 자꾸 울려 대는 알림 소리 때문에 가이딩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일한은 워치를 풀어서 연동 기능을 끄고 탁자 위에 탁 올려놓았다.

“후우.”

밀린 일들도 많고 해야 할 일도 배로 늘었는데 강의 곁을 떠날 수가 없었다.

SS급 가이드 황에덴이 아직 부대 내에 있었다. 무슨 꼬투리를 잡아 여기서 자신을 물러나게 할지 모를 일이었다.

“야, 최강. 평소에 자라고 할 때는 안 자더니만 이럴 땐 너무 잘 잔다?”

정확히는 진정제와 수면 유도제 때문이었다.

일만 벌이는 녀석의 얼굴을 이럴 때 한번 쳐 보자며 일한은 강의 뺨을 잡아 뭉개고 늘렸다.

“야, 이 이기적이고 못된 새끼야.”

“…….”

“아무리 내가 싫어도 S급 가이드를 정성껏 잘 써먹어야 하지 않냐? 넌 괜찮을지 몰라도 난 징계 먹고 해외 파병 보내 버릴 수도 있다고.”

“…….”

“그러면 넌 그 SS급 꼬맹이랑 잘되고 좋겠다? 어?”

일한은 알아듣지도 못할 강에게 화풀이하다 한숨을 쉬며 손을 놓았다.

위세를 떨치던 C12 구역의 몬스터들이 전멸했다.

그러나 그것은 승리가 아니었다.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다른 구역의 몬스터가 민둥산이 된 흙무더기 속에 묻힌 사체 냄새를 따라 이동할 것이고, 지진과 흙 사태로 안전 구역의 사람들만 불안하게 만들었으니까.

최강, 네 말대로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전쟁의 의미는 뭘까? 우리가 이 시스템 속에서 얼마나 발버둥 쳐야 하는지 모르겠다.

“나리가 전역한다고 할 때, 우리도 할 걸 그랬어. 이 빌어먹을 몬스터랑 페어 시스템이 뭔지. 군 생활 12년, 아니지 발현하고 사관 학교 때까지 치면 인생의 반 이상을 군에서 썩었네.”

일한은 씁쓸하게 웃으며 강의 머리를 흩트렸다. 그러다가 깊게 팬 미간을 꾹꾹 눌렀다.

그때, 우리가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첫 파병 때 생각나? 그때, 우리 너무 어렸었는데……. 선배들이 군기도 안 잡힌 생도 꼬맹이들 데리고 뭘 어쩔 거냐고 그래서, 네가 팔씨름으로 A급 에스퍼 팔 부러뜨리고, 나리가 나와서 너랑 겨룬다고 그랬잖아. 정말 너나 나리나 대책 없던 애들이었는데…….”

평소에 꼰대 같은 짓은 하지 않는 멋진 상사가 될 거라며, 군대 썰은 풀어 본 적 없던 일한이었다. 그런데 오늘따라 옛날이 고팠다.

“황에덴 직접 보니까 ‘아, 그때 선배들이 이런 기분이었나……?’ 싶다. 후우…… 골 때린다. 정말, SS급 가이드를 무슨 수로 잡아.”

“…….”

수액이 톡톡 들어가는 소리가 가이딩실 안을 울릴 정도로 침묵이 흘렀다.

똑똑똑.

누군가 가이딩실의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뭐 따로 음식을 시킨 것도 없었고, 오겠다고 한 사람도 없었다. 일한은 조심스럽게 허리춤 뒤에 있는 권총을 그러쥐고 문을 열었다.

“아저씨, 가이딩 끝났어?”

에덴이었다.

일한은 까마득한 후배에게 웃으면서 등 뒤에 쥐었던 총을 놓았다.

“여기, 가이딩 중이라는 사인 못 봤습니까?”

부대 내 연구소에 있는 가이딩실은 첫째도 안정, 둘째도 안정이 필요한 매우 예민하고 위험한 에스퍼들을 위한 공간이었다.

‘정숙, 가이딩 중.’이라는 사인이 괜히 큼직하게 빛나는 게 아니다. 숨 쉴 때도 조심조심, 뒤꿈치 들고 사뿐사뿐 걸으라는 으름장이었다.

에덴은 삐딱하게 서서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가이딩을 너무 오랫동안 하길래. 궁금해서요.”

그러더니 아주 뻔뻔하게 입구를 가로막은 일한과 출입구의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갔다. 에덴은 팔짱을 낀 채로 가이딩실 안을 쓱 둘러보더니 강이 자고 있는 리클라이너 앞에 섰다.

에덴은 가이딩실을 가득 채우던 일한의 가이딩을 흩트렸다. 꿈을 꾸고 있던 강의 뇌파가 흔들렸다.

일한은 모니터와 에덴을 번갈아 보고 있다가 서서히 가이딩을 거뒀다. 지금 에덴을 막을 방도가 없는 데다가 SS급 가이딩과 강의 파장 반응이 어떨지 보고 싶었다.

“궁금할 게 뭐 있겠습니까. 더 집중력이 필요할 뿐이지, 남다를 것 없는 평범한 가이딩입니다.”

“평범하다, 라…….”

정말 별거 아니었다. 에덴의 눈에는 S급 가이드의 가이딩이나 A급, B급의 가이딩이나 다 같은 범주에 든 것처럼 보였다.

붉으락푸르락 터지기 직전처럼 위험해 보이던 강의 모습이 제법 사람답게 변했지만, 여전히 몸속에서 돌고 있는 파장은 폭풍우가 치는 파도처럼 큰 너울을 치고 있었다.

“생도님께서 잠시 가이딩해 보겠습니까?”

“안 그래도 제가 하려고 했어요. 유일한 소령님보다 내가 더 나을 테니까.”

일한의 미소가 사기그릇처럼 반들반들하고 딱딱하게 굳었다. 에덴은 한껏 일한의 자존심을 긁으며 흘긋 쳐다보았다. S급도 별것 아니다.

앙상한 두 손이 기울어진 강의 머리를 잡아 바로 세웠다. 넘실대며 갉아먹을 상대를 찾는 강의 파장 위로 에덴의 가이딩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

일한은 멍하니 벌어지는 입매를 가렸다. 그리고 심각하게 얼굴을 굳혔다.

에덴의 가이딩은 뭔가 달랐다. 에스퍼의 파장에 맞춰 안정시키는 보통의 가이딩과 달리 에덴의 가이딩은 힘으로 짓누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이 대책 없는 가이딩이 강에게 통한다는 것이 가장 믿기지가 않았다.

이 방식의 가이딩이 과연 문제가 없는 걸까.

일한은 초조하게 강의 반응을 살폈다. 가이딩포비아가 심한 데다가 워낙 예민하기도 예민해서 구속 스트랩과 진정제 없이는 가이딩이 힘든 들짐승 같은 녀석이었다.

그렇게 5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쯤, 강의 손끝이 움찔거렸다.

“생도님, 그만.”

일한은 서둘러 에덴의 입을 틀어막고 강에게서 떨어트렸다.

“아앗! 아직 가이딩 안 끝났단…….”

“쉿.”

일한은 모니터를 가리켰다. 꿈을 꾸고 있던 강이 렘수면에서 깨어나고 있었다.

일한은 바짝 긴장한 채 강에게서 멀찍이 떨어졌다.

강은 갑자기 벌떡 몸을 일으켰다. 주먹질이나 발길질이 날아오지 않을까 했는데, 누구를 찾는 듯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어디 갔어……?”

강은 허옇게 질린 낯빛으로 휘청거리며 가이딩실을 나가려고 했다. 제대로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속을 헤집던 불안정한 파장이 강의 그림자를 따라 넘실거렸다.

“이 일병?”

자신이 옛날얘기를 늘어놓아서 그랬을까. 강은 잠결에 10년 전의 나리를 찾고 있었다.

“으음! 음음!”

에덴은 바르작거리며 자신을 꽉 붙든 일한을 떨어트리려고 했다. 일한은 팔에 더 힘을 주고 모니터를 관찰했다.

에덴의 가이딩에 움찔거렸던 강의 파장과 뇌파는 완전히 깨지 않고 꿈속을 거닐고 있었다.

일한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나리는 괜찮아. 아슬아슬했지만 큰 부상은 없대. 지금 치료받고 가이딩받고 있을 거야.”

“어?”

강은 일한을 쳐다보더니 멍하니 눈을 깜박거렸다. 그리고 이내 이 상황이 현실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 험악하게 인상을 구겼다.

일한의 품에 안긴 조그맣고 마른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일한의 가이딩이 아닌 에덴의 가이딩이 불쾌하게 제 살갗 위로 기어 다녔다.

“뭐야, 유일한…….”

“강아.”

“황에덴, 얘가 왜 여기 있어? X발, 너……!”

“최강. 진정해. 일단, 들어 봐 봐.”

일한은 차분한 목소리로 강을 불렀지만, 잠에서 깨어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강은 욕설을 뱉으며 팔뚝에 꽂힌 링거 바늘과 몸 여기저기에 붙인 파장 계측 단자를 거칠게 떼어 냈다.

삐! 삐! 삑, 삐이…….

모니터 속 일렁이던 그래프가 가파르게 상승하다가 뚝, 끊겼다.

구속 스트랩에 묶여 있었지만 지난번과 달리 강은 다치는 것도 개의치 않는 듯이 날뛰었다.

“젠장, XX, 빌어먹을 가이드 놈들! 미친 연구원 새끼들이랑 이번엔 또 뭘 하려는 거야!”

“최강, 아무 일 없었어. 괜찮아. 다 괜찮았다니까?”

분노와 원망이 뒤섞인 시선이 일한을 향했다.

강이 시스템과 가이드를 불신하는 녀석이라는 것은 일한도 알고 있었다. 강과 같이 먹고 자고 싸우고 달래 가며 지낸 10년은 보통 친구나 동료로서 버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군부의 명령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동고동락해야만 하는 상황에서 시스템에 의해 떨어질 수 없는 처지를 서로서로 연민하며, 이나리라는 공공의 목적이 강과 일한을 페어로 만들었다.

그랬는데, 그렇다고 믿었는데…….

유일한, 네가 황에덴을 나한테 데리고 와?

강은 울컥 치솟는 배신감에 미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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