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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광공은 필요없어 (49)화 (49/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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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 보다시피 일하는 중입니다만

평소보다 더 거세진 강의 거부 반응에 일한은 아차 하고 혀를 찼다. 그러나 에덴의 앞에서 강에게 자신의 처지를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저 강의 머리가 이성적으로 식어서 자신의 의도를 알아차려 주길, 제 말을 들어 주길 속으로 빌었다.

깨질 듯한 머리를 쥐어뜯던 강은 이를 갈며 거친 숨을 내쉬었다.

에덴은 강을 보며 한심하다는 듯이 쯧쯧 혀를 찼다.

“발악해 봤자, 손해 보는 건 에스퍼라는 거…… 아저씨 나이쯤이면 알지 않아?”

강이 에덴을 홱 돌아보았다.

“어휴, 왜 저래, 진짜! 에스퍼가 가이드한테 가이딩받는 게 뭐, 큰일이라고…….”

“너 지금, 뭐라 그랬냐.”

오, 신이시여.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에덴의 발언에 일한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미인은 박복하다더니, 그게 자신의 팔자였다. 나리의 일도 그렇고 강도 그렇고 수습만 몇 년째란 말인가.

두 사람이 C12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다음번에는 차원의 균열이 있는 C15 구역까지 그를 끌고 갈지도 모른다.

“강아! 여긴 내가 맡을게. 넌 빨리 박 소령한테 가 봐. 응?”

눈치 빠르고 잔머리가 비범한 일한은 이 시한폭탄을 주환에게 토스하기로 했다.

“박 소령? 아, 박주환…….”

불신의 눈으로 이를 갈고 있던 대마왕은 주환과 나리를 떠올리더니, 머리를 쥐었던 손을 내리고 으르르 낮게 짖었다.

“그래, 지금 박주환 소령은 나보다 더 괘씸한 짓을 하고 있을 거야.”

미안합니다. 박주환 소령.

부디 살아서 봅시다.

일한은 속으로 주환의 명복을 빌었다.

빤히 보이는 일한의 속셈을 모를 리 없는 강이었다.

“저 재수 없는 놈. 네가 제일 못된 새끼라는 건 알지?”

“예. 그럼요.”

일한은 이를 꽉 물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잘생긴 죄, 피지컬도 멋진 죄, 머리까지 좋은 죄, 정 많고 의리 있는 죄. 따질 죄가 많은데 재수까지 있을 리가 없었다.

❖ ❖ ❖

가이딩이 섞인 숨결은 혹할 수밖에 없는 향이었다. 달큼하고 홧홧한 주환의 가이딩이 예민한 후각을 건드리자, 나리의 입 안에 저절로 감돌았다.

자신에게 스며드는 주환을 밀어 내려고 해도, 조금만 천천히 다가와 달라고 그 다부진 어깨를 붙잡아 흔들어 보려고 해도 저절로 힘이 빠졌다.

주환은 분홍빛 홍조가 덧그려진 나리의 뺨 위에, 그리고 콧방울 위에, 촉촉한 입술과 턱 끝에 입을 맞추더니 목덜미를 한 입 물었다.

잇자국을 새기며 쫍쫍 빨다가 혀로 뭉근하게 간지럽혔다. 나리는 무릎을 세우고 몸을 비틀며 주환을 말렸다.

“박 소령님, 거기는 좀…….”

옷깃을 끝까지 채워도 보일 것 같은데요.

가이딩에 녹진해진 팔다리가 제대로 저항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이대로 그를 끌어안고 입 안에 삼키라는 욕구가 나리의 머릿속을 계속 맴돌며 유혹했다.

반대로 이성은 안 된다며 나리의 멱살을 붙잡아 뺨을 때렸다.

어떻게 해…….

〈키스 한 번에 고장 난 것도 아니고. 그 팔 좀 어떻게 해 봐.〉

팔? 팔요?

밀어 내지도 못하고 어중간하게 어깨를 잡았던 나리의 손이 바르르 떨리며 주환의 머리를 살포시 끌어안았다. 가슴 가득히 굳어졌던 감정이 날숨과 함께 새어 나왔다.

하아.

잔뜩 세웠던 긴장이 풀어지면서 나른하게 주환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이대로 기분 좋게 잠들 것 같았다.

〈뭐 하는 거야? 이나리.〉

가벼운 웃음이 섞인 목소리에 나리는 흠칫 어깨를 떨었다. 꿈결처럼 맴도는 목소리가 주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그보다 머리털을 뾰족뾰족하게 만드는 까칠한 말투였다.

“뭐 하는 거야? 이 중사. 대답 안 하나?”

헉!

노곤노곤했던 몸이 무조건 반사로 뻣뻣해지면서 퍼뜩 튀어 올랐다.

“네! 중사 이나리!”

“……?”

갑작스러운 관등 성명에 주환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나리를 쳐다보았다.

“이 중사?”

“네. 네? 아, 그게…….”

나리는 당황해하면서 양 검지를 들어 자신의 머리 위에 뿔을 만들었다. 그리고 검지와 중지로 뿔난 대마왕이 오고 있다는 사인을 만들었다.

주환은 미간을 찌푸리며 나리의 손을 잡았다.

“괜찮습니다.”

내가 내 페어 가이딩해 주는데, 다른 에스퍼가 뭐라고 할 건가?

“이게 내 일이지 않습니까.”

이제껏 제대로 가이딩 못 하게 훼방을 놓고서, 제대로 가이딩을 안 했다는 말을 듣는 건 사양이다. 주환은 나리를 다시 침대 위로 쓰러트렸다.

“예? 하지만…….”

나리는 복도를 성큼성큼 가로지르며 다가오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불길하다. 무슨 꼬투리라도 잡아서 데굴데굴 굴릴 기세였다.

내가 뭘 잘못했지?

무엇을 잘못했는지 짐작이라도 해야 무슨 고문을 받을지 예상이라도 할 텐데.

불안하게 머리를 굴리는 나리를 내려다보던 주환은 그녀의 턱을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렸다.

“이 중사, 좀 전에 저와 매일매일 제대로 가이딩받기로 약속했었습니다.”

“예……. 그, 그랬지요.”

“그럼, 제대로 받으십시오.”

주환은 상의 단추를 툭툭 풀었다. 스르륵 스치는 옷자락 소리와 함께 나리의 몸 위로 무겁게 맞닿은 것은 그의 탄탄한 맨가슴이었다.

오 마이 갓!

나리는 기함하며 손을 들어 주환을 말리려고 했다. 주환은 나리의 뺨을 감싸 올려 입술을 겹쳤다. 감당하기 힘든 다디단 가이딩이 입 안으로, 아니 온몸으로 쏟아졌다.

“바, 박 소령님.”

“…….”

나리는 당황해 입을 오물거리며 주환을 불렀다. 주환은 뻣뻣하게 굳어 버린 나리를 녹여내려는 듯이 잇새를 핥았다.

그 순간 벌컥 문이 열렸다.

“……!”

무슨 어빌리티인지 모를 초인적인 힘이 솟구치며 나리는 주환을 밀어내고 벌떡 일어났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리기는 처음이었다.

“어쭈.”

강의 검은 그림자가 침대 맡까지 드리워지고, 위험하리만큼 날이 선 파장이 다디단 가이딩을 삼켜 버렸다.

강은 한쪽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전우치고는 가이딩이 상당히 과한데? 안 그런가?”

어깨나 손만 잡아도 될 가이딩을 굳이 입으로 하고 있었어? 그렇게 불러도 제게 대답할 수 없던 상황이 짐작은 갔지만, 두 눈으로 흐트러진 현장을 확인하니 어이가 없고 화가 치밀었다.

강은 이를 꽉 물고 주먹을 쥐었다.

“내가 언제 너네 썸 타라고 했어? 일부터 하라고 했지.”

강은 제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주환을 꿰뚫어 버릴 기세로 쏘아보았다. 군복 상의는 풀어 헤쳐져 있었고, 나리도 앞섶을 꽉 쥐고 경직된 채 오스스 돋은 소름을 훑어 내고 있었다.

“박주환 소령, 이나리 중사. 몬스터 소굴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충만한가 보군?”

“아, 아닙니……!”

주환은 화한 가이딩을 내쉬며 나리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면서 이를 갈며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강을 흘긋 쳐다보더니 덤덤하게 말했다.

“예. 보다시피 일하는 중입니다만.”

“뭐?”

“이 중사를 실전에 빨리 투입해야 한다고 명령한 것은 최 대령님이시지 않습니까.”

나지막이 울리는 주환의 목소리가 고집만 부리는 강을 꼬집었다. 나리는 흠칫거리며 주환의 팔을 잡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으득…….

다들 작정하고 기어오르기로 했나?

강은 혀끝으로 짓씹은 입 안을 쓱 쓸었다. 쓰디쓴 맛이 났다.

주환의 가이딩이 나리의 머리 위를 덮고 있었지만, 가이딩을 뚫고 들어오는 강의 파장에 나리는 양손을 바들바들 떨었다. 이가 갈리는 소리,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 살을 에는 파장까지 폭발 카운트다운이 급박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윽…….”

나리는 숨이 턱 막혔다. 도망갈 곳도, 숨을 곳도 없었다.

“이 중사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이번 작전 투입이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러니 문이나 닫고 가라는 뜻을 내비쳤다.

가이딩 중에는 대통령이 와도 건드리지 않는다는 것이 암암리에 도는 국룰이긴 한데.

“하!”

강은 팔짱을 끼고 조소했다.

“그럼 계속해.”

“…….”

계속…해?

“이 중사한테 볼일 있었는데, 바쁜 내가 기다려야겠네.”

덜더러덜덜…….

죽여 버리겠다는 말보다 더 무서운 반어법이었다.

“소령님, 최 대령님과 볼일 먼저 보겠습니다.”

주환이 길을 비켜 주자 나리는 침대 맡에 걸터앉아 풀어진 앞섶 단추를 잠갔다. 두어 개 잠그는 것뿐인데 바르르 떠는 손끝에서 단추가 자꾸 엇나가고 미끄러졌다.

후우.

강은 머리를 쓸어 넘기며 한숨을 내쉬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났는데 두 눈을 다친 채로 덜덜 떨고 있는 나리의 상태를 보니 온몸에서 힘이 빠졌다.

주환의 말이 거짓이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그를 데려온 것이 최강, 그 자신이었으니까.

강은 나리의 손을 잡아 아래로 내렸다.

“……!”

나리는 화들짝 놀라 강의 손을 뿌리쳤다. 다듬어지지 않은 파장과 파장이 닿으면서 따끔한 전류가 흘렀다. 나리의 소매 깃 위로 삐져나온 주환의 잇자국이 강의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

강은 입을 다물고 단추를 잠가 주었다. 가이딩이 필요한 녀석이니까 저런 잇자국 따윈…….

강은 결국 옷깃을 쥔 손을 놓지 못하고 한참 동안 자신을 추슬렀다. 이렇게 될 것을 알고 있었지만, 눈으로 보니 누가 제 심장을 할퀴는 듯 쓰라리고 눈가가 시큰해졌다.

강은 눈을 들어 나리의 뒤에 선 주환을 노려보았다.

주환은 나리가 강을 보지 못한다는 게 다행이라 생각했다. 맹렬하게 이글거리는 그의 회갈색 눈동자는 처절했다. 마치 어떻게든 자신의 것을 지키려고 발악하다가 성한 곳 없이 피를 흘리는 짐승같이.

주환은 마른 입 안을 짓씹으며 강의 시선을 맞받아쳤다.

나리한테 이 이상 손대지 마라.

강이 나리를 찾은 목적은 명확했다. 저 경고 외에 더 있을 리가 없었다. 저 노골적인 사실을 어떻게 나리는 모를 수가 있는 건지, 주환은 일한에게 들었어도 믿기지 않았다.

“됐어.”

강은 성의 없게 나리의 옷매무새를 툭툭 다듬고는 떨어졌다.

“감사합니다…….”

나리는 그제야 멈췄던 숨을 쉬며 자신의 목덜미에 난 잇자국을 쓸었다.

민망하게 왜 남의 목덜미를 뚫어져라 보는 건지, 나리는 강의 용건이 무엇일지 알 수 없어 슬금슬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나리는 엉거주춤 한 손으로 침대 난간을 잡고 다른 손을 뻗어 강에게 자신 좀 잡아 달라고 내밀었다. 그런데 강은 그 손을 잡지 않고 등을 돌리더니 주환이 벗은 상의를 집어 그에게 던졌다.

“됐으니까, 박 소령은 가이딩 끝내고 내 집무실로 와.”

그러고는 아주 심기 불편한 티를 내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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