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6화
236. 회장 백상혁(1)
국가정보국의 요원들은 상혁과 일호를 마치 짐짝을 구겨 넣듯 승합차의 뒷좌석에 밀어 넣었다.
상혁의 입에서 윽, 악 하는 소리가 나왔지만 그들의 손속은 거침없었고, 상혁의 옆으로 커다란 덩치를 가진 요원 둘이 딱 붙어 앉아 빈틈없이 상혁을 감시했다.
“남자와 살 부대끼는 취미는 없는데.”
그 와중에도 상혁의 입은 조잘거리며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국가정보국 요원들은 훈련을 받은 최정예이기에 상혁의 조잘거림에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부우웅-!!
“거기 히로시 부장님. 우리 어디 가는 겁니까?”
상혁이 조수석에 앉은 히로시에게 말했다. 상혁을 태운 차가 공항을 벗어났기 때문이다. 짙은 선팅이 되어 있었지만 안에서 밖의 윤곽을 어느 정도 볼 수 있었다.
“거친 친구들입니다. 저도 말릴 수 없으니 그 입을 다무시고 계시는 게 좋을 겁니다.”
“어쩐지. 건드려도 반응이 하나 없더니만. 로봇인가 봅니다? 왜 일본 그런 거 좋아하잖아요. 전대물, 건담, 막 그런 거.”
상혁은 굴하지 않고 이죽거렸다. 그러자 히로시가 눈짓했다.
퍼억-!
“끅!!”
“교육에 들어가시면 어차피 당하셔야 할 일인데, 왜 굳이 자처하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상혁의 복부에 주먹이 틀어박혔다. 상혁이 상체가 고통스러운 듯 직각으로 꺾였다. 히로시는 그런 상혁에게 혀를 찼다.
상혁이 고통을 참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교육?”
“그래요. 교육. 우리 반도에서 오신 대단한 재벌 조센징께서 대일본에 공손함을 가질 수 있도록 교육을 하라는 명령이 있었던지라.”
“크흐흐흐. 명령이라. 그 명령. 총리? 일본회? 어딥니까?”
상혁이 고통스러운 얼굴로도 히죽 웃었다. 그런 상혁의 입에서 일본회가 거론되자 히로시의 표정이 싸늘하게 굳었다.
“함부로 조센징 따위의 입에 오를 만한 분들이 아니십니다.”
“나를 이렇게 대하고도 무사할 거라 생각하는 겁니까?”
히로시가 차갑게 조소했다.
“아니 될 것은 또 무엇입니까. 어차피 아무도 모를 텐데.”
까딱.
히로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상혁의 양옆에 앉은 경호원들이 상혁을 구타하기 시작했다. 상혁의 두 손은 수갑이 채워져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반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몸을 새우처럼 구부리면서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질러야만 했다.
“끅, 끅, 끅.”
“이제 좀 조용해지니 좋군요. 이대로 가십시다.”
히로시가 만족한 표정으로 엉망이 된 상혁을 쳐다봤다. 자신을 보며 이죽이던 공항에서의 모습은 상혁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다.
산발이 된 머리에 부어오른 얼굴, 피를 흘리는 입.
그런 상혁을 힐끗 쳐다본 히로시가 고개를 돌렸다.
* * *
“켈룩, 켈룩.”
상혁이 기침을 토해 내며 먼지를 손부채로 쫓아 보냈다. 그런 상혁의 모습에 일호가 얼른 1서클의 바람 마법을 일으켜 먼지를 몰아냈다.
“아, 새끼들. 죄 없는 시트는 왜 저렇게 두드리는 거야. 먼지만 풀풀 나오는데.”
상혁이 히죽 웃었다. 상혁의 눈에 조금 전의 격한 움직임으로 들썩이는 국가정보국 요원의 어깨가 들어왔다. 상혁과 일호는 그들의 뒤에 앉아 있었는데 차에 탄 이들은 그 사실을 두 눈 뜨고도 모르는 듯했다.
“나 때린 거지?”
“예, 마스터.”
“아주 질이 나쁜 놈들이야.”
상혁이 비죽 웃었다. 저들은 상혁을 체포했다는 환상을 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체포당하지도, 구류 당하지도 않았다. 상혁이 앉아 있는 것 같은 환상을 현실이라 철석같이 믿고 있는 셈이다.
“역시 일본은 일본이야. 수틀리니까 싹 죽이고 입 닦으려고 데려가는 거 봐.”
“한국인의 반일 감정이 이해되지 않았는데, 이제 이해되는 것 같습니다.”
“오. 한국인 다 됐는데 일호?”
상혁이 키득거리며 웃었다. 상혁이 히로시를 비롯한 국가정보국 요원들에게 건 마법은 최면과 환상, 환각, 가짜 현실 등의 여러 가지 마법을 조합한 것이다.
불과 바람이 만나 열풍이 되듯,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마법을 섞어 쓰는 것을 조합이라고 하는데 정신 계열의 조합 마법은 조합 중에서도 가장 어렵고 까다롭다고 알려져 있었다.
사람의 정신을 조종하고 감각을 속이는 것이기에 조합을 짜기도 어려우며 그게 효과를 보기도 어렵지만, 제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대인(對人) 마법 중에는 능히 최상위를 다툴 수 있었다.
대마법사인 상혁의 손에 펼쳐진 마법을 히로시와 국가정보국 요원들이 저항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교육이라. 얘네들 하는 거 보니까 사이즈 딱 나오지?”
“예, 마스터. 아마 고문을 동반한 교육인 것 같습니다.”
“하. 21세기에 고문이라니. 그것도 기업인을 상대로 말이야.”
아무리 상혁의 용왕과 제석천이 탐이 난다고 해도 이렇게 쉽게 선을 넘을 줄이야. 문명사회라 믿었던 지구에 대한 환상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하긴. 언제부터 내가 환상 따위가 있었다고.”
정신의 나이는 일흔이 넘은 상혁이다. 부모님이 형제라 믿었던 백성철에게 살해당했다는 것을 안 순간 이미 모든 환상은 무너져 내렸다.
지구나 가나안이나. 사람이 살아가는 건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어쨌거나. 이걸 어떻게 써먹을까.”
“마스터. 아까 전부터 계속해서 전화가 걸려오고 있습니다.”
일호가 상혁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웅웅거리던 진동이 뚝 끊겼다. 그리고 액정에 떠오른 부재중 목록을 본 상혁이 피식 웃었다.
[헤르츨 로스차일드]
[리창위]
이 둘이 상혁에게 전화를 계속해서 걸었지만 상혁이 받지 않자 부재중으로 넘어간 것이다. 상혁은 하늘을 힐끗 쳐다봤다.
“저 위에서 다들 보고 있는 모양이야. 그치?”
“지구는 신기합니다. 가나안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었는데요.”
“우린 이걸 이용해 먹자고.”
“어떻게 말씀이십니까?”
미국과 중국.
한 명은 미국의 암중 세력의 최고 권위자고 나머지 하나는 중국의 살아 있는 권력이 상혁을 지켜보고 있었다.
G2.
거의 모든 분야에서 충돌하면서 으르렁거리는 둘이지만 상혁 앞에서는 하나로 입을 모을 것이다. 상혁이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일본 앞바다로 항공모함이나 끌고 오라고 하지 뭐.”
끽!
상혁을 태운 차가 멈춰 섰다. 그리고 가상의 상혁의 팔을 잡아서 드는 듯 두 건장한 요원이 상혁을 번쩍하고 들더니 차에서 내렸다.
* * *
미야모토는 신설된 국가정보국의 초대 국장이다. 오 년 전부터 비밀리에 설립되어 대외 활동을 펼쳐 왔고,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기에 드디어 그 공을 인정받아 국가정보국이 설립된 것이다.
JCIA.
미야모토는 그 첫 공식 임무를 실패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얼굴에 진 흉터를 미야모토가 손가락으로 매만졌다.
“여기까지 오는 데 참 많은 시간이 걸렸다.”
반세기도 더 전에 일어난 전쟁과, 그로 인한 패전으로 인해 일본은 주권국가로서의 중심축 하나를 잃었다.
국가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는 힘.
군대.
패전국인 일본은 2차 세계 대전 패망 이후 군대를 결성할 수 있는 권한을 빼앗겼다. 그 때문에 궁여지책으로 자위대란 웃기지도 않는 이름의 군대를 만들었다.
일본회의 목적은 군대를 결성하는 위업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국가정보국이 그 위업의 일환이었다.
해외에 공식적으로 파병한다거나, 다른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권리 자체가 없는 일본으로서는 해외 첩보를 입수하는 데도 미국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어차피 전쟁을 벌일 일이 없으니 자체적으로 정보국을 운영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을 통해 입수하는 정보는 늘 중요한 것이 하나씩 빠져 있었다.
그래서 창설한 것이 국가정보국이다.
작게는 국가 운영에 필요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기관이나 크게는 차후 전쟁 가능한 군대를 위한 정보를 수집하고 첩보를 운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 바로 국가정보국이기 때문이다.
미야모토의 눈에 히로시와 국가정보국 요원 둘이 축 늘어진 상혁을 질질 끌고 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왔나.”
“하이!”
“앉히도록.”
국가정보국 요원이 늘어진 상혁을 들고나와 의자에 앉혔다. 이미 오는 길에 한 번 손을 봐준 듯 상혁의 얼굴이 피투성이였지만 미야모토는 눈 한 번 깜빡하지 않았다.
“물.”
“예.”
촤아아악!!
기절한 상혁을 깨우기 위해 물을 퍼부었다. 그러자 상혁이 눈을 번쩍 뜨고는 콜록거리며 물을 뱉어 냈다. 상혁의 옷이 젖으며 젖은 머리를 따라 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백상혁.”
“뭐야. 대빵 나오셨나?”
“아직도 눈빛이 살아 있군.”
미야모토는 낯선 곳에 끌려와 묶인 상태임에도 눈빛이 살아 있는 상혁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짱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그 배짱은 지금 당장은 상혁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말하지. 1만 달러. 용왕과 제석천의 설계도. 그리고 기술 이전 협약에 대한 동의.”
“하. 그냥 다 벗겨 먹겠다는 소리군.”
“피부를 벗기는 것보다는 낫지 않나?”
미야모토의 코끝에 미약한 혈향이 스쳤다. 원래 이곳은 일본의 암 덩어리 같은 야쿠자가 사람을 담글 때 썼던 창고다.
야쿠자 조직 하나를 소탕하고 이곳을 그대로 썼다. 말 그대로 정보국이 필요할 때 쓰기 위해서다.
그리고 백상혁은 그곳의 첫 손님이다.
미야모토는 질린 표정의 상혁을 보면서 짧게 웃었다.
저 표정이었다.
자신을 보고 공포에 질리는, 아무리 대가 센 놈도 기가 질릴 수밖에 없는 바로 이 순간. 그럴 때 미야모토는 짜릿함을 느꼈다.
‘SG그룹이면 전자만 해도 시총이 30조 엔이라고 했나.’
자신 앞에서는 사회에서 얼마나 유명한지, 돈이 얼마나 많은지 그것들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이곳만 벗어나면 떵떵거리며 소리를 칠 수 있는 이들을 불러다 놓고 오줌을 싸게 만드는 게 미야모토는 즐거웠다.
그런 점에서 백상혁은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시작하지. 네 머릿속에 대일본에 대한 위대함이 박힐 때까지.”
촤르륵!
상혁의 몸에 쇠사슬이 둘둘 말리기 시작했다. 상혁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뭐 하는 거야!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알아? 나 백상혁이야!!”
“응. 그래. 너 백상혁이지.”
덜컹!
상혁이 앉은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그리고 바닥이 덜컥 열렸다. 그러자 쇠사슬에 묶인 상혁이 거꾸로 뒤집힌 채 공중으로 떠올랐다.
그리고 열린 바닥 안에는 수조가 있었다. 사람 하나가 푹 담겨도 흔적도 남지 않을 것 같은 수조였다.
“일단 가볍게 15분만 해 볼까.”
지이이잉!!
“으아, 으아!!”
부글부글부글
거꾸로 매달린 상혁의 몸이 그대로 수조 안에 담가졌다.
* * *
“크흘흘흘.”
상혁은 새어 나오는 실소를 참지 않았다. 아무것도 매달리지 않은 쇠사슬을 그냥 물에 담갔다 뺐다 하며 흡족하게 웃는 미야모토의 얼굴이 웃겼기 때문이다.
“이야. 이거 콩트나 다름없네.”
멀리서 보니 희극도 이런 희극이 없었다. 마치 거대한 악당이 된 것처럼 무거운 분위기를 잔뜩 풍기고 있었지만, 빈 쇠사슬을 물에 담그며 중얼거리는 모습이 퍽이나 웃겼기 때문이다.
“일호. 팝콘 없어?”
“챙겨 오지 못했습니다.”
“됐어.”
이제는 물에서 빼더니 무슨 전기선 같은 것을 가져다 댔다. 그리곤 스위치를 켜자 파바박 불똥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시간이 조금 흐르자 몽둥이를 들고 쇠사슬을 두들겨 패기 시작했다.
짤랑, 짤랑
그럴 때마다 쇠사슬이 부딪치면서 짤랑거리는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지만 이상함을 눈치채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눈에는 백상혁이 점점 초주검이 된 채 그곳에 매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에이. 보는 것도 이제 재미없다.”
웃긴 것도 20분 정도이지 그것 이상 시간이 지나자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상혁은 기지개를 쭉 켠 다음 목을 꺾었다.
“이 정도면 됐겠지.”
상혁이 피아니스트처럼 보이지 않는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듯 손가락을 부드럽게 움직였다.
“뒈지기 전에 잠시 즐거운 환상을 보여 주었으니까.”
스멀스멀.
상혁의 전신에서 올라온 마법이 국가정보국의 안가를 감쌌다. 그리고 스산한 미소를 지은 상혁의 머리 위에 저울이 짠하고 피어올랐다.
선악의 저울.
상혁이 손을 뻗어 그 저울을 쥐고는 무게를 재는 균형추를 건드렸다. 그 순간 사방에서 국가정보원에게 원한을 가진 원혼들이 땅을 가르고 솟아올랐다.
“먹어치워라. 그리고 성불하거라.”
마나석도 얻고, 국가정보국도 처리하고.
끄아아악!
으악!
아, 아아아악!
상혁의 귓가에 곡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곡소리가 BGM인 것 같았다. 상혁은 일호에게 말했다.
“야타로 회장과 다나카 부장관보. 만날 수 있게 연락해둬.”
“예, 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