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5화
235.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5)
쩌적-!
우르르!
지진으로 인해 지반이 푹 꺼졌다, 그러자 한계치에 아슬아슬한 수위를 유지하고 있던 냉각수 격납용기가 크게 흔들렸다.
아무것도 안에 없었다면 모를까 지반이 꺼지며 냉각수 격납용기의 내부가 진동하자 이중, 삼중 처리로 방사능이 새어 나가지 않도록 차폐시켜 놓은 격납용기의 내부가 냉각수의 질량에 의해 흔들리면서 찌그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쩌억-!
콰아아아아!!
격납용기의 외판이 뜯어져 나가며 그곳으로 냉각수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어마어마한 양의 냉각수가 그곳에 보관되어 있었다. 노심용융으로 인한 방사는 유출을 막기 위해 막대한 양의 냉각수를 쏟아부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게 그대로 흘러나가면 일본 국토는 끝이다.
그런데 지금 지진의 진동으로 인해 일본이 생각하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시작되고 있었다.
왜에에에엥-!!
후바타 군청 내 사고 대책반이 전쟁이 터진 것처럼 발칵 뒤집혔다. 방사능 유출을 의미하는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 즉시 인근의 모든 소방서와 경찰서에 긴급 대피 명령이 떨어진 것이다.
“바, 반장님!!”
대번에 사고 대책반에서 다나카를 찾았다. 다나카가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규모 6.6 수준의 강진이 원전을 때렸습니다.”
“뭐?”
일본의 지진 감지기의 성능은 세계 최고다. 지진과 함께 살아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일본은 역사적으로 많은 지진을 겪었기 때문에 세계에서 일본만큼 지진이란 재앙에 민감한 나라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 모든 지진은 전조 증상이 있다. 그 전조만 잘 파악해도 지진 피해의 90퍼센트 이상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무려 규모 6.6의 강진이 일어났음에도 전조가 없었다.
“여긴 조용했는데!”
“22시 03분경 지진파가 감지되었습니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감지됐고 그로 인해 격납용기에 충격이 가해졌습니다.”
“뭐?”
다나카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최악의 시나리오다. 격납용기라니. 곧이어 다나카가 결코 바라지 않던 최악의 상황이 현 상황을 보고하는 부하 직원의 입에서 나왔다.
“격납용기의 외판이 지진으로 인한 충격 때문에 부서졌습니다. 냉각수 격납용기가 손상되었습니다. 그 때문에 일대에 소개령이 내렸습니다. 그러니 어서!”
야타로 회장의 표정이 변했다.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으나 그렇기에 삶에 대한 집착이 더 심한 야타로 회장이다.
“아니! 그게 사실이오?”
“예, 곧 뉴스와 인터넷을 통해 속보로 소식이 전달될 예정입니다.”
상혁은 그 혼란을 입가에 미미한 미소를 띤 채 듣기만 했다. 물론 일본어이기 때문에 태반은 알아듣지 못하였으나 상혁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일호.’
[예, 마스터.]
‘시작해.’
[예.]
지진을 일으킨 건 상혁이다. 지진은 짧고 굵게 원전에 정확히 3초 동안 데미지를 입혔다. 상혁의 마나가 뭉텅이로 사라졌지만 상혁은 개의치 않았다.
미리 그곳에 보내 놓은 일호가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스로 바닥을 얼려. 땅에 흡수되지 않도록. 어차피 주변이 아스팔트이니 밖으로 흘러나올 냉각수는 거의 없을 거야.’
[시전하겠습니다.]
마나가 일렁이는 것이 상혁에게 느껴졌다. 마법사가 존재하지 않는 지구에서 일렁이는 마나는 이제 상혁을 제외하면 일호만이 가능했다.
상혁은 일렁이는 마나를 느끼며 일호에게 말했다.
‘공장 안에 모아 둘 수 있도록 한쪽으로 몰아. 땅이 적당히 깨졌으니 어렵지 않을 거다.’
[예, 마스터.]
상혁이 이 자리에 있어야 하니 현장의 냉각수가 자연으로 스며들지 않도록 조처하는 것은 일호의 몫이다.
지진으로 인해 격납용기 붕괴라는 위기감을 일본에게 주면서, 자연은 해치지 않기 위해 상혁이 고안해 낸 방법이었다.
[주변의 시멘트와 파손된 격납용기 일부를 이용하여 물길을 냈습니다.]
‘좋아. 이미지 투영해.’
일호의 눈이 빛났다. 패밀리어 마법이다. 일호는 서번트였기에 패밀리어 마법으로 그와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슥, 스윽.
상혁은 일호의 눈을 통해 파손된 격납용기와 그 안에서 콸콸 흘러나오고 있는 냉각수가 일호가 만들어 놓은 물길로 흘러가는 것을 응시했다. 그러고는 마나를 끌어올리며 중얼거렸다.
‘프레스’
콰드득!
상혁은 압력 마법으로 거대한 수조를 만들었다. 뚜껑이 없는 거대한 수조가 만들어졌다. 그러자 파손된 격납용기 내부에서 유출된 냉각수가 물길을 따라 수조로 향했다.
‘흐름.’
상혁의 마법은 수 km을 격하고 일호가 있는 곳에서 펼쳐졌다. 당연히 직접 현장에서 사용하는 것보다 마나가 열 배는 더 많이 소모됐다.
하지만 1억 올의 마나실로 이뤄진 상혁의 마나 고리는 원격 마법 사용이 가능하게끔 만들었다. 상혁의 손짓에 따라 공기 중으로 마나가 스며들며 미묘한 흐름을 만들어 냈다.
‘차단.’
그리고 그 흐름에 상혁은 하나의 마법을 더 새겨넣었다. 그러자 수조 안의 냉각수가 퍼뜨리는 방사능이 주변으로 퍼지지 않고 수조 주변에만 흐르기 시작했다.
‘됐군. 돌아와라.’
[예, 마스터.]
마치 미사일을 얻어맞아 쑥대밭이 된 것처럼 단 3초간의 지진은 가동 중지 상태이던 원전을 반파했다.
아마 조사대가 내부로 진입하여 이 광경을 본다면 아마 우연에 우연이 겹쳐 기적이 벌어졌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다나카와 야타로 회장이 어느새 상혁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상혁은 확신했다. 그들은 다시 상혁의 앞에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잠시 후 일호가 상혁 앞에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
“돌아가자. 한국으로.”
“공항으로 모시겠습니다.”
* * *
[긴급 : 후쿠시마 후바타군 6.6 강도 지진 발생]
후쿠시마에서 일어난 6.6 강도의 지진 속보가 일본 열도를 강타했다. 지진이라는 자연재해는 삽시간에 전 국민에게 퍼졌다.
그리고 일본 국민은 후바타군이라는 지명에서 한 가지 잊고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다.
[후바타군이면 동일본 대지진 때 원전 사고 난 곳 아닌가?]
[원전이라니. 무섭군.]
[원전은 무사하겠지?]
일본 정부는 불과 어제 후바타군의 원전에서 화재 사고가 일어났다는 것을 숨겼다. 하지만 지진 속보로 인해 사람들이 원전을 떠올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통제할 수 없는 뉴스에 언론사는 군침을 흘렸다. 특히 자민당이나 일본 정부의 영향을 받지 않는 외신들이 주로 그랬다.
그중에서도 특히 환경 관련 언론사들.
그곳 출신의 기자들이 몰래 후바타군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모든 소식이 실시간으로 긴급 소집에 눈을 비비면서 나온 헤이쇼 수상의 귀에 들어갔다.
“칙쇼!!”
헤이쇼 총리가 욕설을 내뱉었다. 기껏 언론사에 엠바고를 걸고 모든 루트를 통해 압력을 넣어 어제의 폭발 사건에 대한 보도를 막았던 것이 수포로 돌아갔다.
외신이 냄새를 맡은 이상 더 이상 소위 말하는 언론의 자유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사라진 것이다.
“백상혁은?”
“공항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 조센징 놈. 분수를 모르는군. 2천만 달러에 일본의 도게자?”
헤이쇼 총리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현장에 뛰어간 다나카를 통해 상혁의 조건을 들은 후였다. 나름 미국의 면을 봐서 많이 쳐 줬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에 만족할 줄 모르는 어리석은 놈이었다.
“한국은 재벌 권력이 대통령만큼이나 강하다고 하지.”
헤이쇼 총리는 그 조센징이 대단히 큰 착각에 빠져 있다고 생각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라 일본이다. 재벌 권력 따위는 일본회 앞에서 보름달 아래 반딧불에 불과하다.
그걸 모르고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놈이다.
“교육이 필요하겠군. 안 그런가? 미야모토 국장.”
헤이쇼 총리는 자신 앞에 각이 딱 잡힌 자세로 서 있는 선이 굵은 남자를 보며 재밌다는 듯 말했다. 그러자 미야모토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각하의 말씀이 옳으십니다. 무엇이든 명령을 내려 주십시오.”
“국가정보국의 공식적인 첫 임무인가?”
“예. 정보국의 모든 요원은 대일본을 위해 기꺼이 몸을 내던질 이들로만 구성되어 있으니, 카미카제 못지않은 충성심으로 무장하였습니다.”
헤이쇼 총리는 흡족하다는 듯 웃었다. 국가정보국은 헤이쇼 총리가 일본판 CIA를 표방하여 만든 정보국이다.
경찰과 자위대 출신의 최정예로 구성된 국가정보국은 창설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조직하여 활동해 온 지 5년이 넘었다.
이번 명령은 국가정보국의 첫 공식 임무가 될 것이다.
“냉각수가 유출되었으니 용왕의 필요성을 더욱 커졌지. 그리고 용왕의 개발자가 우리나라에 있고. 그러니 데려와야 하지 않겠나?”
헤이쇼 총리의 두 눈이 불길하게 빛났다.
“순순히 협력한다면 좋으련만, 말귀를 못 알아듣는 것 같으니 속국의 재벌에게 알려 줘야겠지. 일본과 한국의 차이를 말이야.”
“하이!”
* * *
상혁의 짐은 단출했다. 어차피 이곳에 오래 있을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상혁이 비행기 수속을 마친 다음 국제선을 타기 위해 보안검색대를 통과했을 때, 시끄러운 소리가 뒤에서 나더니 정장을 아래위로 갖춰 입은 남자들이 우르르 다가와 상혁을 포위했다.
“흐음.”
상혁은 마치 복사 붙여넣기로 만든 것 같은 남자들을 보며 턱을 쓰다듬었다. 일호가 앞으로 반 발자국 나와 상혁을 보호하는 자세를 취했을 때, 그 남자들 사이에서 가장 사납게 생긴 남자가 걸어 나왔다.
“국가정보국 국내 파트의 히로시 부장이라고 합니다. 한국의 백상혁 씨, 맞으십니까?”
“뭐, 알고 오신 것 같은데.”
“잠시 함께 가 주시죠.”
히로시 부장은 거친 기세를 숨기지 않았다. 달려들어 상혁에게 수갑을 채우진 않았지만, 상혁이 거부한다면 그러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고 표출했다.
그 기세가 제법 거셌다. 상혁은 국가정보국 요원들의 품이 모두 불룩한 것을 보고는 작게 웃었다.
“아니, 재벌 3세 하나 잡아가시려고 총까지 가지고 오셨어요?”
“대답할 의무가 없습니다.”
“뭐, 나랏일 하시느라 고생들은 많으신데.”
상혁이 쿡쿡하고 웃었다. 상혁의 오른 눈에서 희미하게 마나가 피어올랐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걸 볼 수 있는 국가정보국 요원은 없었다.
“기다리느라 목이 빠질 뻔했네. 혹시 이대로 한국으로 가게 내버려 두는 거 아닌가 걱정했는데. 역시 일본은 일본이네요.”
“순순히 따라오실 생각은 아니시군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히로시 부장은 상혁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가 눈짓하자 요원 둘이 걸어 나와 상혁의 팔을 붙잡았다.
철커덕.
그리고 그 둘이 상혁의 손에 수갑을 채웠다. 상혁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히로시 부장을 쳐다봤다.
“다짜고짜 수갑이라. 이건 또 새로운 경험이네요.”
“모시겠습니다.”
“하하하하. 이거 감당하실 수 있는 거죠?”
상혁이 눈짓을 했다. 보안검색대를 비추고 있는 CCTV에서 반짝이는 불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히로시 부장은 비릿하게 웃었다.
“일본 영토 내에서 원인 모를 실종 사고는 하루에만 최소 100건 이상 발생하고 있습니다. 국가정보국은 그렇게 만들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미국이나 한국도 찾아내지 못할 겁니다.”
“아, 그래요?”
상혁이 전혀 긴장감 없는 얼굴로 빙글거리며 히로시 부장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가져다 댔다.
“아이고, 큰일이네. 응? 큰일이에요. 막 무서워서 벌벌 떨리네.”
“현명하신 분이라고 들었는데, 그러지 못하시군요. 끌고 가.”
“하잇.”
요원이 상혁과 일호를 수갑 채운 채 끌고 갔다. 상혁이 끌려가면서 태연히 말했다.
“거, 천천히 좀 끌고 가요. 나보다 다리도 짧은 양반들이 걷는 속도만 빨라 가지고. 어, 어? 넘어진다니까?”
상혁이 그런 흰소리를 하며 사라졌다. 히로시 부장은 그런 상혁이 끌려가는 것을 확인한 뒤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히로시입니다. 백상혁. 체포 후 이송 중입니다. 한데 아무래도 국장님 말씀처럼 교육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현 상황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예. 예.”
히로시 부장이 전화를 끊었다. 그러고는 나머지 요원들에게 말했다.
“공장으로 모셔. 교육이 필요할 것 같으니 메디컬 팀도 대기시키고.”
“하잇!”
공항을 흉흉하게 만들었던 국가정보국 요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