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7화
237. 회장 백상혁(2)
“흠, 흠흠.”
일본의 다이묘, 혹은 그에 준하는 귀족들은 장원을 짓고 그 안에서 생활했다. 장원이라고 불리지만 실상 작은 성이나 다름없는 장원은 다이묘가 암살자로부터 자신의 목숨을 지키기 위한 방편 중 하나였다.
그러나 실용적인 것만 추구하는 것은 권력자답지 않은 일이다.
그 때문에 삭막한 장원의 풍경에 질린 다이묘와 귀족들은 장원에 정원을 꾸미기 시작했다. 그 정원은 높은 담벼락 너머로 쉽사리 볼 수 없는 자연을 그대로 축소하여 담아 놓은 것 같았고 그로 인해 일본은 정원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다.
심미적인 감각과 기능적인 효용성을 동시에 충족하는 장원의 정원 문화는 일본의 고유문화로 자리 잡았다.
헤이쇼 총리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매화나무의 가지를 자르며 퇴근 후의 여유를 즐겼다.
‘요새 너무 바빴지.’
매화나무의 가지를 탁 자르며 헤이쇼 총리는 생각했다. 평온한 정원을 보고 있자 머릿속의 미몽이 씻겨져 나가고 밝은 정신이 깃드는 것 같았다.
그간 너무 나랏일이 많아 이런 여유를 가질 겨를이 없었다. 간만의 평화였기 때문에 헤이쇼 총리는 이 평화를 조금 더 길게 누리고 싶었다.
띠리리리-!!
하지만 그건 팔자 좋은 사람일 경우에만 가능한 일이다. 일본, 세계에서 손꼽히는 국가의 총리인 헤이쇼는 그럴 여유가 주어지지 않았다.
“누구지?”
웬만한 연락은 비서실을 통해 오기 마련이다. 하지만 지금 울린 건 헤이쇼 총리의 직통 전화다. 대개 그곳으로 전화를 거는 건 가족이거나, 일본회뿐이다.
“어르신들께서 이 시간에 나를 찾으실 리는 없고.”
두 아들과 딸은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그리고 아내는 안쪽에 있으니 자신에게 전화를 걸 사람이 딱히 없었다.
“모르는 번호?”
핸드폰 액정을 확인한 헤이쇼 총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헤이쇼 총리의 개인 번호는 특급 기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헤이쇼 총리의 전화로는 사소한 광고 문자나 광고 전화도 걸려 오지 않는다.
문부과학성에서 직접 헤이쇼 총리의 직통 전화를 관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전화로 모르는 번호가 걸려 왔다?
달칵.
“누구십니까.”
헤이쇼 총리의 직통 전화는 설사 누군가 번호를 잘못 눌러 걸었다고 해도 울리지 않는다. 과학성에서 알아서 걸러 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걸 피해 전화를 걸었다는 건 과학성의 망을 뚫었다는 뜻이다.
즉, 상대가 헤이쇼 총리라는 것을 정확히 안다는 뜻인 셈이다.
[헤이쇼 총리님 되십니까?]
“예. 맞습니다.”
[여긴 미국입니다.]
헤이쇼 총리의 눈이 커졌다. 미국이라니. 헤이쇼 총리의 직통 전화로 걸어올 수 있는 미국이라면 미국 대통령밖에 없었다.
국가 정상들끼리 급히 소식을 주고받거나 공식적인 절차를 밟으면 너무 시간이 오래 걸리는 사안에 한 해 이런 식으로 직통 전화를 통해 연락이 오는 경우가 가끔 있었다.
그런데 그게 오늘이었다.
“베어햄 대통령 각하?”
[이런 식으로 전화 드려서 죄송합니다, 헤이쇼 총리.]
미국의 대통령, 베어햄이었다.
헤이쇼 총리의 숨이 잠시 가빠졌다. 미국이라니. 일본의 최대 우방이자 일본회에서도 눈치를 보는 미국 권력의 최정점이 그에게 연락해 온 것이다.
헤이쇼 총리가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번 만난 적이 없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어쩐 일이십니까?”
[오해하지 말고 잘 들으십시오. 미국의 우방이기에 말씀드리는 겁니다.]
“예?”
베어햄 대통령은 대단히 온화하고 여유로운 성격이었다. 그 때문에 정상회담을 할 때도 적당한 유머와 배려심이 깊었기에 상대방을 편안하게 만들어 주는 성격이었다.
그런데 그런 그가 낮은 목소리로 헤이쇼 총리에게 경고하고 있었다. 헤이쇼 총리의 뒷목이 긴장으로 뻐근해졌다.
[후쿠시마 공항에서 사고가 일어났다고요?]
“예?”
헤이쇼 총리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후쿠시마 공항 하면 하나밖에 없었다.
‘국가정보국. 그리고 조센징.’
국가정보국의 국장인 미야모토에게 백상혁을 은밀히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 불과 몇 시간 전이다.
그런데 그걸 미국에서 알고 있었다.
‘대체 어떻게?’
[우리 미국의 눈은 어디나 있습니다, 헤이쇼 총리.]
헤이쇼 총리의 어깨가 움찔했다. 베어햄 대통령이 마치 헤이쇼 총리의 마음을 읽는 것처럼 시기적절하게 말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해 백악관에서는 아주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게…… 왜. 그러니까. 음.”
백악관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건 곧 베어햄 대통령이 그 일을 언짢게 생각하고 있다는 뜻이다. 외교적인 수사에서 ‘유감’의 뜻은 꽤 직설적이었기 때문에 헤이쇼 총리는 그 저의를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엄청나게 굴려야만 했다.
하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백상혁, 미스터 백은 우리 미국의 큰 우군입니다.]
“예?? 그게 지금!!”
헤이쇼 총리의 눈이 커졌다. 베어햄 대통령이 백상혁을 딱 꼬집어서 말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용왕을 놓고 주일 미국 대사가 직접 상혁을 찾아 용왕의 가격을 대폭 올렸다는 것이 떠올랐다.
미국의 관심을 받는 개인이라니.
일본 내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베어햄 대통령이 직접 전화해 유감이라느니 하는 건 명백한 내정 간섭이다. 그리고 그에 대해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는 건 일본 총리의 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헤이쇼 총리의 머릿속은 하얗게 변했다. 그에게 있어 미국이란 받들어야 할 상전이었고 그런 미국의 질책에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굳어 버린 것이다.
강약약강을 사람으로 표현하면 그게 바로 헤이쇼 총리였다.
[이번 일에 백악관에서는 실망을 금치 못했습니다. 이에 미스터 백의 신병을 직접 확보하기로 결정하였고, 오키나와 미군과 태평양 함대를 움직일 의향이 있습니다.]
“그, 그건!”
전쟁이다.
그 말을 헤이쇼 총리는 꿀꺽 삼켰다. 일개 개인을 위해 미국이 군대를 움직인다? 그것도 일본을 향해?
그러자 헤이쇼 총리의 머릿속에 1945년 일본에 떨어진 두 발의 핵폭탄이 떠올랐다. 그건 일본인에게 있어트라우마 같은 일이었다.
그리고 그걸 행한 것이 바로 미국이고.
그러자 든든한 우방이자 큰 형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에 대한 두려움이 왈칵 솟아올랐다. 그런 헤이쇼 총리에게 베어햄 대통령의 건조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우리 미국은 우방을 버리지 않습니다. 미스터 백, 그는 미국의 틀림없는 우방입니다. 그러니 오랜 기간 관계를 이어 온 일본이 미국의 입장을 헤아려 주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
“대체, 대체 미국에서 왜 고작 한국인을…….”
재벌
SG그룹의 핏줄인 한국인 백상혁을 미국이 왜 비호하는지 그는 도통 이해할 수 없었다. 베어햄 대통령이 끊을세라 재빨리 말한 헤이쇼 총리에게 베어햄 대통령이 말했다.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그 회사는 월가를 뜨겁게 만든 회사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총리님도 들어 보셨을 겁니다. 시끄러웠으니까요.]
그랬다.
태평양을 건너 대륙을 가로질러야 하는 월가에서부터 흘러나온 소식은 헤이쇼 총리의 귀에도 제법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그런데 그 이름이 베어햄 대통령의 입에서 나왔다.
헤이쇼 총리, 그가 설마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맞습니다. 그곳의 회장이 바로 미스터 백입니다.]
“나니?”
헤이쇼 총리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게 일본어가 튀어나왔다.
* * *
야타로 회장과 다나카 부장관보.
갑작스러운 후쿠시마의 지진으로 인해 대피했던 그 둘은 12시를 지나서 날이 바뀐 그즈음에 상혁을 다시 마주했다.
그러나 그 이전과는 달리 둘의 표정에 긴장감이 팽배하게 흘렀다.
“다시 뵙게 되니 반갑습니다, 두 분.”
“…….”
“저, 이사장님. 이게 무슨 일인지…….”
빙긋 웃은 상혁의 뒤로 인사불성이 된 국가정보국 요원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상혁은 국장인 미야모토를 발끝으로 툭하고 찼다.
“아. 제게 교육을 시키겠다며 출국하려는 저를 이곳으로 연행하신 분이십니다. 국가정보국의 국장이라고 하시던데.”
“네에?”
다나카의 눈이 커졌다. 국가정보국이라니. 그게 창설됐다는 소리만 알음알음 들었지 그들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야타로 회장의 얼굴은 더욱 굳어 있었다.
“저기 계신 회장님은 아셨던 모양이네. 그렇죠?”
미츠비시의 야타로 회장은 미야모토를 아는 눈치였다. 일본의 대기업이니 정권과 이어진 끈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총리 대신 협상 자리에 나온 것을 보면 사실상 일본회와 반쯤 한 몸인 곳이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대체 누구십니까.”
“뭐가요, 나요?”
“예.”
야타로 회장이 상혁이 누군지 모를 리 없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 이 정도로 굳은 건 백상혁이 SG그룹의 오너 일가이기 때문이 아니었다.
“마법삽니다.”
“위자드!”
“그렇게도 부르더군요.”
상혁이 한 말에 야타로 회장의 눈이 커졌다. 혹시나 하던 것이 역시나가 됐다. 그가 허탈하게 웃었다.
“하. 대체 언제 미츠비시의 경영권에 손을 뻗으신 겁니까?”
상혁의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그리고 그곳에서 운영하는 수십 개의 유령 회사가 미츠비시의 경영권을 잘게 쪼개 매입했다.
일본회에서 미츠비시를 단단히 지키고 있다고는 하나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모든 것을 지킬 수는 없었다.
“난 돈이 많습니다.”
상혁은 손가락을 비볐다. 경박한 제스처였지만 그걸 지적할 사람은 없었다. 당장 다나카마저도 위자드란 말을 듣고는 크게 경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580조로 시작한 회사가 지금은 어느 정도의 자금을 굴리는지도 알 수 없죠.”
더 위자드는 점점 더 천문학적인 이익을 올리며 금융계의 괴물이 되어 가고 있었다. 애초에 한 나라의 경제 시스템을 흔들 수 있을 580조의 현금을 들고 있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돈이 돈을 불러오는 자본주의 시대에 580조란 돈은 수소폭탄급의 무기였다. 그 무기를 바탕으로 상혁의 일호를 필두로 자금운용팀은 막대한 수익을 올렸다.
돈을 그대로 돈으로만 두는 건 의미가 없었다. 일호는 통장의 잔고가 불어나는 것보다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돈이라는 것을 파악하고 행동에 나섰다.
주식거래소란 것이 존재하는 지구상의 모든 국가.
그 모든 국가에 580조를 기반으로 눈덩이처럼 불어난 자금을 쪼개서 분산투자를 한 뒤 그 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의 주식을 야금야금 매수했다.
상혁에게 도움이 될 만한 곳 위주로, 세상을 지배하는 돈을 앞세워 그 나라의 가장 큰 기업을 지배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놓은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의 미츠비시다.
국가정보국이 상혁을 공격한 순간 일호는 한국의 서번트를 동원해 명령을 내렸고 미츠비시를 곧바로 압박했다.
그러니 야타로 회장이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이 자리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야타로 회장이 굳은 표정으로 상혁에게 말했다. 일본회도 야타로 회장을 도울 수 없었다. 상혁이 비죽 웃는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미츠비시. 대표적인 일본의 군수 기업이더군요. 더군다나 대한민국과는 지독한 악연으로 얽혀 있고.”
한국을 경제적으로 침공한 것이 미츠비시다. 미츠비시는 군수 기업으로 일본의 군국주의와 함께 성장했다. 미츠비시의 가장 대표적인 악행이 위안부와 인체 실험이었으니, 그들과의 악연을 이것 이상으로 설명할 필요가 있을까.
“그, 그래서요.”
“일본은 미우나 고우나 가장 가까운 이웃국가. 자연재해로 인해 일어난 원전 사고로 인한 피해를 어쩔 수 없다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상혁이 말을 돌렸다. 그의 눈이 번뜩였다.
“왜 그 피해를 당신네들이 처리하지 않고 무단으로 방류해 우리나라에까지 피해를 주려는 겁니까? 그리고 심지어 그걸 도와주겠다고 온 나를 박해 하고 심지어 납치, 고문까지 하려고 했는데.”
상혁이 비릿하게 웃었다. 야타로 회장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상혁에게 힘이 없었다면 모를까 힘을 가진 상혁의 말은 한마디 한마디가 묵직했기 때문이다.
“내가 네놈들의 그런 행태를 그냥 보고만 있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민폐국가.
일본은 지난 천 년 간의 역사 내내 대한민국을 괴롭힌 적밖에 없는 민폐국가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일으키질 않나, 36년간의 기나긴 식민지 통치를 하질 않나.
그러고는 지금까지도 빳빳하게 잘못한 것 없다고, 자기네들이 피해자라며 전 세계를 상대로 역사를 왜곡하려는 움직임까지.
“그러니 정해라.”
상혁이 완연하게 바뀐 말투를 한 채 야타로 회장을 보며 말했다.
“패망한 군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는 노망난 일본회의 손을 계속해서 붙잡은 채 과거를 외면하고 살다가 내 손에 죽거나.”
상혁이 손을 펴 보였다.
“아니면 과거를 씻고 그릇된 행태를 바로잡아 제대로 된 주권국가로 거듭나거나.”
야타로 회장의 눈이 흔들렸다. 상혁은 마치 일본회를 지우려면 언제든 지울 수 있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SG그룹의 백상혁이었다면 일언반구 들을 가치고 없었겠지만, 이제 상대는 더 위자드의 회장인 백상혁이다.
돈과 권력, 두 가지를 모두 쥔 무지막지한 거물.
또르륵.
그의 이마에 맺힌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흘러 턱을 따라 툭 하고 떨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