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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먹는 대마법사-234화 (233/249)

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234화

234. 중요한 건 그게 아니라(4)

헤르츨 로스차일드가 미 국무부를 통해 주일 미국 대사에게 연락을 취한 뒤 한 말은 딱 한마디였다.

[백상혁과 함께 일본을 안달 나게 만들 것.]

그에 해리슨 대사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로스차일드에서 관심을 가지는 일이라면 차후 국무부에서 중임을 맡고 싶은 해리슨 대사가 적극 협조해야만 했다.

‘그런데 왜 백상혁이지?’

해리슨 대사는 쩔쩔매는 다나카 부장관보를 태연하게 쳐다보는 상혁을 관찰하며 머리를 굴렸다.

SG그룹, 뭐 대단한 대기업이기는 하다. 고작 인구 5천만의 한반도에서 탄생한 글로벌 기업이니 그 업적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게 과연 로스차일드의 가주가 관심을 가져야 할 정도일까?

‘그것도 회장이나 회장 직계도 아닌 잊혔던 핏줄을?’

거기에 무언가 있었다. 해리슨의 감이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정계에서 볼꼴 못 볼 꼴 다 본 해리슨이기에 로스차일드와 백상혁의 관계에 무언가 있다는 것을 확신했다.

‘로스차일드의 기세가 무섭다. 원탁이 무너졌고 프리메이슨의 독과점 체제가 되었으니까. 건국의 아버지가 맞서고 있다고는 하지만 로스차일드를 막는 건 무리.’

그러나 로스차일드는 균형의 조율자를 자처했던 가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원탁이 무너졌어도 조용히 그로 인한 이득을 취하기만 했을 뿐, 그것을 휘두르지 않았다.

아니. 딱 한 번 있기는 있었다.

‘더 위자드 코퍼레이션.’

로스차일드가 모든 것을 베일에 가린 투자회사. 무려 4,500억 달러의 자본금으로 세워진 더 위자드는 단박에 미국 시총 10순위에 들어 월가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에 대해 자세한 건 모두 가려져 있었다. 로스차일드가 손을 댔다는 것 정도. 더 위자드를 위해 로스차일드의 가주가 칩거를 깨고 직접 사안을 진두지휘하며 재빠르게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 정도만이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더 위자드가 한국에 투자를 감행했다지?’

그리고 한국에서 백상혁이 왔다. 그리고 그 백상혁을 위해 로스차일드가 국무부에 압력을 넣었다. 해리슨 대사의 머릿속에서 그림이 그려졌다.

‘설마?’

해리슨 대사의 얼굴이 슬쩍 굳었다. 더 위자드. 그리고 백상혁. 이 두 가지가 머릿속에서 어우러지면서 가설 하나가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가설이라고는 하나 가설이 아닌 정설에 가까운 확신이 해리슨 대사의 머릿속에서 무럭무럭 자라났다.

쿵쿵쿵.

그러자 해리슨 대사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어쩌면 자신이 큰 기회를 잡은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모락모락 피어났기 때문이다.

‘좋아. 난 로스차일드의 부탁을 들어주는 거야. 암, 그렇고말고. 절대로 백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야.’

해리슨 대사가 갈피를 확실하게 정했다. 그러고는 열심히 상혁에게 무언가를 호소하고 있는 다나카를 무시한 채 상혁에게 말했다.

“우리 미국은 세계환경위기에 적극 대응할 생각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SG환경재단의 그 혁명과도 같은 정화 도구들이 필요합니다. 용왕, 제석천. 한 기당 천만 달러. 어떻습니까?”

열 배.

돈지랄 하면 중동 석유 부자들만이 비빌 수 있는 것이 바로 미국이다. 한 해 국방비에만 1,000조를 쏟아부어 천조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니 할 수 있는 돈지랄이다.

백만 달러가 천만 달러가 되는 기적.

상혁이 의외라는 표정으로 해리슨 대사를 쳐다봤다.

‘잘 보십시오. 제가 백상혁 씨를 이렇게나 도와줬다는 걸 잊지 마십시오.’

해리슨 대사가 부리부리하게 눈을 빛내며 상혁에게 머릿속으로 말했다.

* * *

상혁은 눈을 빛내는 해리슨 대사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왜 오바야, 저 양반은?’

갑자기 용왕 한 기의 가격이 오백만 달러에서 천만 달러가 됐다. 용왕 100기가 1억 달러에서 10억 달러, 한화로 조 단위가 넘어선 것이다.

거기에 제석천까지 사겠다고 했다.

‘친구가 오바했나?’

상혁은 헤르츨이 그렇게 시킨 것이 아닌가 싶어 고개를 갸웃했다. 하지만 고작 대사 한 명에게 그렇게 상세하게 설명했을 리 없다. 그러니 이건 저 미국 대사의 단독 행동이다.

‘20억 달러?’

2조.

상혁이 가진 4,500억 달러에 비하면 껌값도 안 되는 돈이다. 하지만 본래 돈은 다다익선이다. 상혁이 다나카를 쳐다봤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 이사장님. 부디 이웃국가의 불행을 헤아려 주십시오. 제, 제가 어떻게든 수상 각하를 설득해 보겠습니다.”

“음.”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나카에게 일말의 시간을 주기로 했다. 미국의 급발진 때문에 다나카가 애가 단 것은 좋지만 정작 움직여야 하는 일본회와 자민당이 움직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 그럼 다시 12시간을 드리죠.”

상혁은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다나카의 안색이 밝아졌다.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려는 순간 상혁이 그에게 말했다.

“뭐, 천만 달러가 아니더라도 협상의 여지는 있습니다. 돈 대신 다른 걸로 받을 수도 있어요.”

“돈 대신 다른 것이라 하시면…….”

“이야기를 나눠 봐야겠지요?”

상혁이 어깨를 으쓱하자 다나카가 서둘러 고개를 꾸벅 숙였다. 다나카가 급히 사라지고 난 뒤 상혁은 자신을 향해 부담스러운 눈길을 보내는 해리슨 대사를 힐끗 쳐다봤다.

“왜 그리 저를 보시는지…….”

“아닙니다. 저도 이만 일어나야겠군요. 스케줄 시간이 되어서.”

상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시간을 내어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 그저 제가 미스터 백의 도움이 되었다는 것만 기억해 주시면 됩니다.”

“예?”

해리슨 대사가 씩 웃은 뒤 사라졌다. 상혁은 닫힌 문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해리슨 대사가 자신의 정체에 대해 짐작하고 있음을 눈치챈 것이다.

“눈치가 빠른 양반이네. 크게 되겠어.”

몇 가지 주어진 단서만으로 상혁이 더 위자드의 회장이란 것을 눈치챘다. 그의 급발진은 상혁을 위한 것이었으니, 눈치가 제법 빠르다고 할 수 있었다.

공직 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능력 중 하나가 눈치이니, 아마 해리슨 대사는 그냥 대사에서 그치지 않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자. 그럼 12시간 남았네.”

상혁이 다과로 준비된 쌀과자를 뜯어 오독하고 씹었다. 달큰한 맛이 입에 퍼지자 상혁이 빙긋 웃었다.

* * *

“천만 달러? 미국이?”

“예, 각하.”

“허!”

헤이쇼 수상의 얼굴에 불쾌함이 차올랐다. 백만 달러면 끝날 수 있었던 일이 미국의 참전으로 인해 열 배로 뛰었다.

“미국에서 나설 정도면 효과는 확실하다고 봐야겠군.”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미국이 나선 덕분에 헤이쇼 총리는 적어도 용왕이 거짓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나카는 그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여전히, 10억 달러는 너무하군.”

“돈 대신 다른 것으로 지불할 수 있다고 하니 협상의 여지가 있습니다.”

“협상이라.”

다나카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상혁은 SG그룹의 사람이다. 그런 상혁에게 돈 대신 다른 것으로 지불할 수 있는 건 아마 SG전자에 건 수출 규제 완화 정도일 것이다.

“백상혁이란 조센징. 설마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다른 꿍꿍이라 하시면.”

“예를 들어 조센징 놈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다케시마나 위안부 문제를 들고나오진 않겠지?”

“그…….”

다나카는 입을 다물었다. 상혁은 그에게 있어 불가해였다. 애초에 용왕과 제석천이라는 정화도구가 그의 손에서 탄생한 것 자체가 미스터리였기 때문이다.

“미츠비시 쪽에 연락해. 10억 달러. 융통할 수 있냐고.”

“미츠비시 말씀이십니까?”

“우리가 직접 백상혁에게서 용왕을 구입하는 순간 국가 차원에서 고작 개인과 거래한 셈이 되지. 그런 전례를 남겨줄 필요 없어.”

“예, 예.”

다나카는 이 중요한 문제를 자꾸만 다른 쪽으로 책임을 돌리려고 하는 헤이쇼 수상을 보면서 깊은 회의감을 느꼈다.

공직이라는 것이 원래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에너지의 절반을 쏟아붓는 것이라고 하지만 수상은 일본 권력의 정점이다.

책임을 져야 하는 자리인데 헤이쇼 수상은 그마저도 미츠비시에 책임을 넘기려 하고 있었다.

일본회와 자민당의 가장 큰 후원자인 미츠비시는 일본 최대의 대기업으로 그 역사가 무려 150년에 달하는 곳이고, 일본 제국주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회사다.

미츠비시는 거의 시장경제와 정부 주도 경제의 중간에 자리하여 그 모든 과실을 받아먹는 곳이기 때문에 10억 달러를 동원하는 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대신 미츠비시 출신의 임원이 정부의 각료로 들어오게 되겠지.’

가는 것이 있으면 오는 것이 있어야 한다. 헤이쇼 수상의 미츠비시에 대한 의존도 때문에 정부 각료가 점점 미츠비시 장학생들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래도 수상께서 한번 백상혁을 만나 협상을 해 보시는 것이…….”

“조센징 따위와 만나 낭비할 시간은 없다. 그러니 다나카, 자네는 쓸데없는 소리 말고 백상혁, 그놈이나 잘 감시해.”

“예, 각하.”

다나카는 고개를 푹 떨궜다.

그런 다나카의 어깨 위로 작은 날파리 한 마리가 날아올랐지만 그걸 알아챈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 *

그날 저녁. 상혁이 말한 12시간에서 딱 3시간 모자랄 때 미츠비시의 야타로 회장과 다나카가 상혁을 찾았다.

“미츠비시의 야타로라고 하오.”

“백상혁입니다.”

야타로 회장은 거의 백성철만큼이 나이가 많이 먹은 노인이었다. 그런 그가 손을 내밀었고 상혁은 그의 손을 맞잡았다.

“지난번 한국 대통령 방일 일정에 경제 사절단으로 백 회장님께서 오셨었지. 그때 만나 뵈었는데 잘 계시오?”

야타로 회장이 먼저 백성철 회장과의 친분을 들고나왔다. 상혁은 흐릿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염려해 주신 덕분에. 잘 계십니다.”

“다행이오. 둘째 아드님께서 그리되신 후 크게 상심하셨을 텐데, 유감이오.”

“감사합니다.”

백도현의 사망에 야타로 회장이 고개를 숙였다. 상혁은 다나카를 바라봤다.

“미츠비시의 회장님께서 계약을 체결하시는 겁니까?”

“예. 10억 달러를 바로 집행하기에는 여러모로 문제가 있어 미츠비시의 도움을 받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야타로 회장이 끼어들었다.

“용왕이란 것의 과학적 근거가 부족하고 효과에 대한 표본 역시 적은 것으로 알고 있소. 러시아의 해역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고는 하나 그런 표본이 하나뿐이니 가격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할 듯싶소.”

10억 달러가 비싸다는 소리다. 상혁이 피식 웃었다.

“아, 그렇습니까?”

“그렇소.”

야타로 회장은 상혁을 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그에게 상혁은 애송이에 불과했다. 고작 20대 애송이가 대단한 발명품을 들고 왔다고는 하나 그걸 제값에 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SG그룹 내 후계 구도가 비틀어졌지. 아마 자금이 필요해 이곳까지 왔을 테니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야타로 회장의 노림수는 따로 있었다.

“10억 불. 용왕 100기를 사겠소. 그리고 거기에 용왕의 설계도까지 함께 사겠소.”

“용왕의 설계도?”

“분명 SG환경재단을 설립하며 세계환경위기를 위해 용왕과 제석천을 개발하여 생산한다고 하셨지. 아니오?”

상혁이 피식 웃었다. 설계도라. 그게 있다고 하여 만들 수 있을까 의문이었지만 야타로 회장의 수작이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실소가 절로 새어 나왔다.

“맞습니다.”

“그러니 재단이나 대학 연구소 같은 곳에서 개발하고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미츠비시 같은 대규모 제조공장을 갖춘 환경에서 생산해야 더욱 빠르게 환경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 아니오.”

“SG그룹에서도 공장은 있습니다만.”

상혁의 반박에 야타로 회장이 웃었다.

“바다 건너에 있다고 하여 반도의 일을 모를 것이라 생각하지 마시오. 백상혁 이사장. SG그룹 내 그대의 기반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것까지 알고 계신다.”

“내가 드리는 10억 불. 그리고 우리 미츠비시의 도움으로 당신을 SG그룹의 회장으로 만들어 주겠소. 이 정도면 좋은 거래가 되지 않겠소?”

야타로 회장의 눈이 뱀처럼 빛났다. 그는 상혁에게 독이 든 술잔을 건네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눈앞에 재앙이 웃고 있다는 것을.

“중요한 건 일본의 냉각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상혁이 다나카를 보며 말했다.

“그게 아닌 모양이군요. 뭐, 됐습니다. 그럼 안녕히 가세요. 안 팝니다. 일본에.”

“예? 배, 백상혁 이사장님!”

상혁이 협상을 깨자 야타로 회장의 눈두덩이가 꿈틀했다.

“젊은 친구가 성격이 급하군. 무엇이 중요한지를 모르는 건가?”

야타로 회장을 보며 상혁이 픽 웃었다.

“무엇이 중요한지 모른다라.”

상혁이 말꼬리를 길게 늘이며 야타로 회장을 쳐다봤다.

“정작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모르는 건 그쪽인 것 같습니다만.”

“뭐?”

상혁은 야타로 회장을 무시했다. 그리고 다나카에게 말했다.

“가격이 올랐습니다. 용왕 한 기에 2,000만 달러. 그리고 일본의 철저한 굴복.”

따악.

상혁이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드드드드, 거리며 저 멀리서부터 진동이 번지기 시작했다.

“내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빌지 않는 이상 일본과 더 이상 협상은 없습니다.”

드드, 드드드득!

웨에에엥-!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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