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88화
188. 내놓을래 다 잃을래(3)
뚜르르.
뚝.
[지금은 고객님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파월 국장은 입술이 바짝 마르는 것을 느꼈다. 그의 전화기에서는 통화를 연결할 수 없다는 안내음만 계속해서 흘러나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통화 버튼을 다시 누르고 또다시 눌렀다.
“됐습니다.”
헤르츨이 그런 파월 국장에게 됐다고 하고 나서야 파월은 핸드폰에서 눈을 뗐다. 그러자 헤르츨이 파월에게 물었다.
“어디로 갔을 것 같습니까?”
파월이라고 상혁에 대해서 잘 알고 있을 리 없다. 하지만 한 번이라도 상혁을 직접 만나 봤다는 이유만으로 파월은 무려 로스차일드가의 가주인 헤르츨과 면전에서 독대할 수 있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그건 가시방석 위에 앉은 것 같은 행운이었다.
‘어디로 갔을까. 만약 내가 백상혁이라면, 내가 만약 그라면.’
헤르츨이 만족할 만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헤르츨은 상혁을 만나고 싶어 했으니 반드시 상혁을 찾아야만 한다.
하지만 아이언 포레스트에서 상혁은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다. 파월은 머리를 긁으려다가 앞에 헤르츨이 있다는 것을 상기하고는 손을 다시 내렸다.
‘내가 어떻게 알아!’
자신이 마법사인 것도 아니고, 상혁을 만난 것이라고는 딱 한 번뿐인데 무슨 수로 상혁이 간 곳을 예상한단 말인가.
하지만 파월은 어떠한 답이라도 일단 내놔야만 한다. 그래서 헤르츨에게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란 것을 느끼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때 파월의 눈이 커졌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이다.
“가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실 생각이십니까?”
상혁이 어디로 갔는지 특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로스차일드가라면, 프리메이슨이라면 굳이 어떤 한 지역을 특정할 필요는 없었다.
애초에 프리메이슨의 영향력은 미국의 한 주가 아니라 51개 주 전체, 더 나아가 세계 전역에 영향력을 끼치고 있었고 그럴 만한 깜냥도 차고 넘쳤다.
그러니 상혁이 갈 만한 곳에 사람을 쫙 뿌리면 그만이다.
“예. 그래야지요. 프리메이슨과 원탁이 지난 200년 동안 지루하게 이어 오던 싸움을 끝내 주실 귀인이신데요.”
헤르츨은 확고했다. 이미 헤르츨은 원탁을 압박하기 위해 그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중에는 원탁의 중심 가문 중 한 곳인 제피렐리가의 가주, 짐 제피렐리도 포함되어 있었다. FBI를 동원하여 그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했기 때문이다.
죄명은 간단했다.
국가내란죄.
짐 제피렐리가 상혁을 잡기 위해 핵무기를 쓴 정황이 명백했고 인권을 침해하는 SSP 프로그램을 발동한 정황이 분명했기 때문에 명분은 충분했다.
애초에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하던 프리메이슨과 원탁의 균형을 깨준 것이 바로 상혁이다. 헤르츨은 비단 그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이라 확신했다.
‘원탁의 비밀 기지 하나를 초토화시켰어. 조직이 아니라 그것도 개인이.’
유리 돔이 해체되고, 그 사이로 드러난 황폐화된 아이언 포레스트의 삭막한 모습을 지켜본 헤르츨이다.
그게 일개 개인이 만들어 낸 참상이란 걸 과연 누가 믿을 수 있을까.
‘핵무기보다 강력한 개인.’
마법사인지, 초인인지, 아니면 슈퍼히어로인지는 모르겠지만 상혁의 파워는 균형을 부수는 오버 파워, OP다.
프리메이슨이 원탁과 비등비등한 상황이란 것을 감안할 때, 상혁의 그 오버 파워는 프리메이슨에게도 위협적인 셈이다.
‘그렇다면 굳이 적으로 만날 필요는 없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헤르츨은 파월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미스터 백은 원탁과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고먼과 글레이저, 제피렐리의 주요 인사를 상잔하게 만든 것을 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가 아이언 포레스트를 쑥대밭으로 만드는 것을 본 파월과 헤르츨이다. 그러니 상혁이 스캇 고먼, 윌리엄 글레이저, 안드레아스 타이클레를 동반 자살하게 만든 것도 신빙성이 생겼다.
“그래서요?”
“제가 생각하기에 아직 미스터 백은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목표?”
“예. 제피렐리, 혹은 원탁의 파멸.”
파월의 말에 헤르츨의 눈이 커졌다. 만약 파월의 예상이 맞다면 적의 적은 친구다. 헤르츨은 입술을 혀로 살짝 축였다.
“그래서요?”
“미스터 백은 자신이 홀로 원탁을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는 걸 증명했습니다. 그러니 이제 그가 향할 곳은 나머지 원탁이 있는 곳일 겁니다.”
“그렇다면.”
“그렇습니다. 원탁이 있는 모든 곳에 사람을 대기시키신다면 그곳 중 어느 하나에는 반드시 그가 나타날 겁니다.”
헤르츨은 손바닥을 짝하고 쳤다. 명안이다. 상혁은 예상 범위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 그러니 상혁을 만나고 싶다면 모든 경우의 수를 따져 상혁이 향할 것 같은 모든 곳에 사람을 보내놓으면 된다.
“그에게 어떤 선물을 주면 좋아할 것 같습니까?”
상혁에게 줄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 놓는다면, 상혁에게 좋은 첫인상을 심어 줄 수 있을 것이다. 헤르츨이 그에게 묻자 파월은 턱을 짚고 고민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미스터 백이 자신을 드러냈다는 건 더 이상 숨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얼굴을 드러낸다는 건 그만큼 귀찮은 일이 더 생긴다는 뜻이죠. 그러니 더 이상 숨지 않을 그를 위해 프리메이슨에서 직접 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서 그의 귀찮은 일을 대신해 준다면.”
“좋은 인상을 심어 줄 수 있겠군요.”
“예, 가주님.”
헤르츨이 주먹을 꾹 쥐었다. 이제 결정이 끝났다. 그는 파월을 보며 말했다.
“미스터 백에 대한 의전을 파월 국장에게 전적으로 맡기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헤르츨이 백상혁에 대한 의전 전권을 파월에게 주었다는 건 그를 로스차일드로 받아들이겠다는 뜻이다.
파월이 그리 바라던 기회가 온 셈이다.
꿀꺽.
파월은 침을 꿀꺽 삼켰다. 로스차일드가 되기 위해서는 괴물, 아니 신위를 보인 상혁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해야 한다는 뜻이기도 했다.
파월은 주어진 기회를 거부하지 않기로 했다.
“감사합니다, 가주님.”
프리메이슨, 원탁을 벌벌 떨게 한 백상혁과 안면을 틀 수 있다는 건 파월에게 있어 또 다른 기회가 될 것이다.
‘잘하면 그의 대변인이 될 수도.’
그렇게만 되면 프리메이슨 앞에서도 허리를 굽히지 않아도 된다. 파월의 두 눈이 야망으로 이글이글 타올랐다.
* * *
블랙스컬.
블랙스컬은 세계 30개국에 지부를 두고 있었고 그곳에 소속된 용병만 이천 명이 넘었다. 또한 그곳의 회장인 제드 스코비치는 미 육군 소장 출신으로 그 인맥을 통해 미국이 진행하는 전쟁 사업에 뛰어들어 막대한 매출을 올렸다.
피와 죽음을 먹고 자라나는 사설용병기업.
PMC의 천국인 미국에서 블랙스컬은 업계 1위를 고수하고 있는 곳으로 그 본부는 라스베가스에 있었다.
피와 죽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것은 바로 돈과 유흥이다.
임무를 나간 용병들은 피와 죽음에서 오는 피로와 스트레스를 돈과 유흥으로 풀었고 제드 스코비치는 용병들에게 준 돈을 라스베가스에서 다시 회수하는 식으로 시스템을 짰다.
동시에 라스베가스는 손님들을 맞이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장소였다.
호텔과 카지노가 즐비한 곳, 잠들지 않는 도시 라스베가스.
그곳의 중심부, 호텔과 카지노가 집중적으로 모여 있는 곳에 바로 블랙스컬의 본사가 있었다. 블랙스컬의 손님 중에는 라스베가스에 있는 특급 호텔이나 카지노도 있었기 때문에 중무장을 한 블랙스컬의 용병들을 그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똑바로 걸어.”
그 본사의 로비를 상혁과 마틴이 가로질렀다. 마틴은 상혁이 옆구리를 쿡 찌르자 흠칫 놀라면서 불안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저,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겁니까?”
“지금까지 네게 인사한 놈이 하나라도 있었나?”
주변에 바쁘게 돌아다니는 용병과 클라이언트는 마치 상혁과 마틴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지나쳤다. 마틴이 이곳의 CEO였음에도 인사를 하는 용병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꿀꺽.
마틴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는 자신이 상혁에게 의문을 제기할 위치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 겪어 보는 이 마법이란 것에 당최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왜. 한번 시험해 보고 싶어? 진짜 보이나 안 보이나?”
상혁이 마법을 거둘 것처럼 말하자 마틴이 얼른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자신이 살길은 상혁에게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마틴과 블랙스컬의 임무 실패.
아이언 포레스트에서 마틴이 임무에 실패했다는 것이 지금쯤이면 회장의 귀에까지 들어가고도 남을 시간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갑자기 마틴이 본사에 나타난다?
‘눈치 빠른 회장이라면 중대 한 개를 대기시켜놓을 수도 있겠지.’
그렇게 된다면 상혁은 모르지만 자신은 100퍼센트 죽는다. 살기 위해 기꺼이 이쪽의 정보를 모두 팔았기 때문에 마틴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혁의 옆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어디로 가야 돼?”
“저쪽 엘리베이터를 타셔야 합니다.”
“엘리베이터?”
투명 마법과 사일런스 마법으로 모습과 기척을 숨긴 상혁은 마틴이 가리키는 곳을 향했다. 그러고는 엘리베이터를 보고는 마틴을 쳐다봤다.
“엘리베이터 말고. 계단은.”
“여기 건물이 52층입니다.”
“그래서?”
상혁이 묻는 말에 마틴은 결국 상혁을 계단으로 안내할 수밖에 없었다. 제드 회장은 52층에 있으니 꼼짝없이 52층까지 걸어 올라가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 마법 같은 거…….”
“올라가.”
마틴은 상혁을 쳐다보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상혁의 발이 이미 지상에서 20cm 정도 떠 있었다. 하지만 상혁은 마틴에게 부유 마법을 걸어 주진 않았다.
“멀쩡하게 두 다리가 달려 있는데 왜.”
바늘 하나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상혁의 냉정함에 마틴은 52층까지 걸어 올라가야만 했다. 몸이 멀쩡한 상황이라면 모를까 상혁 때문에 바짝 긴장한 마틴은 평소보다 더 빠르게 지쳤다.
“허억, 허억.”
“용병이라면서. 그 덩치가 아깝다.”
마틴이 순간적으로 울컥했다. 하지만 상혁 앞에서는 분노 조절 잘해가 될 수밖에 없었기에 마틴은 크게 심호흡을 했다.
“쇼크. 언락.”
파지지직!
파직!
[뭐야?]
[전기가 나갔어!]
[갑자기? 제어실 쪽에 연락해!]
상혁이 가장 먼저 한 일은 52층의 전기를 쇼크 마법으로 나가게 한 것이었다. 그러고는 잠긴 문을 언락으로 열었다.
그 모습을 마틴은 멍한 눈으로 쳐다봤다. 회장실 주위에 상비하고 있는 용병만 해도 한 개 소대인데 상혁이 간단하게 그들을 무력화시켰기 때문이다.
“끝났네.”
제드 회장이라고 해도 상혁 앞에서는 그냥 어린애와 다를 바 없었다. 500명이나 되는 용병들이 사막 위에서 상혁에 의해 어린아이처럼 다뤄졌는데 고작 한 개 소대가 저 괴물을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다.
지지지직!
끅!
께흑!
커헉!
털썩, 털썩, 털썩
그리고 상혁이 손을 뻗자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용병들이 전기구이 통닭이 된 것처럼 온몸이 뻣뻣해져서는 그대로 쓰러졌다. 강력한 테이저를 맞은 것처럼 모두 정신을 잃었다.
마틴은 머리카락이 타는 냄새를 맡으며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상혁은 쓰러진 용병들을 태연하게 넘어서는 회장실의 문을 열었다.
드르르륵!!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기관단총이 불을 뿜으며 상혁에게 총탄을 쏟아 냈다. 기관단총은 제드 회장의 손에 들려 있었다. 상혁은 의외라는 듯 휘파람을 휙 불었다.
“제법이야. 회장이라길래 경영인인 줄 알았더니 용병이었어?”
“맙소사. 총이 통하지 않다니.”
기관단총이 찰나의 순간에 쏟아 낸 백여 발의 탄환은 상혁의 몸에 닿지 못했다. 탄두가 그물에 걸린 물고기처럼 역장 마법을 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상혁은 큰 키에 까무잡잡한 피부, 짧고 하얀 수염을 기른 제드 회장을 보며 손을 슬쩍 들어 올리고는 손가락을 까딱했다.
푹
“커흑!”
그러자 제드 회장의 무릎이 휙하고 꺾이며 그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제드 회장은 거인이 자신을 위에서 짓누르고 있는 것 같은 압력을 느꼈다.
중력 마법이다.
제드 회장은 상혁의 뒤에 시커멓게 죽은 표정으로 서 있는 마틴을 보며 무슨 상황인지를 깨달았다.
“진 건가.”
“그래. 졌지. 그래서 승자로서 내가 받아야 할 게 있을 것 같아서.”
상혁이 히죽 웃으며 제드 회장이 주저앉은 곳의 테이블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다리를 척 꼬았다.
“선택지를 줄게. 전부 아니면 절반. 어떤 걸 고를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