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89화
189. 내놓을래 다 잃을래(4)
블랙스컬, 레드혼, 아이언실드.
블랙스컬의 제드 회장을 함락시키자 레드혼과 아이언실드의 항복은 자연스레 뒤따라왔다.
사실상 이름만 다르지 세 곳의 용병 회사는 거의 한 몸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드 회장 역시도 눈이 있었다.
CEO인 마틴이 상혁에게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따르는 것을 보며 제드는 아이언 포레스트로 출동한 용병들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었음을 직감했다.
애초부터 그게 이상했다.
10억 달러라니.
제피렐리 가문이 아무리 돈이 많다고 해도 그들은 돈을 허투루 쓰는 졸부 가문이 아니다. 그런데 고작 개인의 목에 10억 달러란 현상금이 걸렸을 때부터 제드 회장은 유의 깊게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상혁이 나타났고, 제드 회장은 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살아야 했으니까.
상혁이 기관단총의 총알을 몸으로 받아 내는 것을 보며 제드 회장은 이미 모든 전의를 잃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갑자기 나타난 눈앞의 동양인이 10억 달러의 주인공이라는 것을 말이다.
‘미친놈들. 총알이 통하지 않는 상대를 고작 10억 달러에 잡겠다고?’
상혁을 직접 보고 나니 10억 달러가 작게 느껴졌다. 제드 회장은 이런 일로 죽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상혁의 제안에 응했다.
블랙스컬, 레드혼, 아이언실드의 절반.
각기 용병업계에서 1위, 4위, 5위를 차지하고 있는 업체이고 1년에 세 곳의 용병 회사가 올리는 수익이 무려 15억 달러를 넘어갔지만 제드 회장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어차피 원탁은 우리를 고기 방패로밖에 보질 않잖아.’
애초에 용병 회사는 로키드마틴의 값비싼 무기를 고정적으로 구입하는 돈 가방이자 그들의 신무기를 시험하기 위한 마루타들이었으며 유사시에 그들의 고기 방패가 되어 줄 이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다.
제드 회장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고 이 기회에 아예 체질 개선을 하기로 결정했다.
물론 그 모든 것에는 ‘살아야 한다’라는 강력한 생존 의지가 깔려 있었지만 그런 제드 회장의 행동이 상혁에게는 이득이었다.
“미스터 팩, 세 회사의 경영권을 가져오기 위해서는 제피렐리 가문에서 소유하고 있는 주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회사의 실질적인 경영권이 상혁에게 넘어간 것은 아니다. 세 용병 회사는 당연히 주식 시장에 상장한 회사가 아니다. 자본금 100퍼센트가 제피렐리 가문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에 제드 회장이 가지고 있는 지분은 고작 10퍼센트뿐이었다.
나머지 90퍼센트는 원탁의 수중에 있었다.
“원탁의 모든 드러난 재산은 원탁의 각 가문들이 나눠 가지고 있습니다. 아이언 포레스트 같은 특별 시설이야 제피렐리 가문이 100퍼센트 지분을 가지고 있었지만…….”
제드 회장이 그렇게 말하며 상혁을 힐끗 쳐다봤다.
상혁에 의해 아이언 포레스트가 깔끔하게 날아가 버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제피렐리 가문이 입은 피해는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아이언 포레스트가 있는 구역 일대를 영구 임대를 받아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어 조성한 것이 바로 아이언 포레스트였기 때문이다.
“아마 제피렐리 가문은 자금압박에 시달리게 될 겁니다.”
상혁은 그 말을 듣고는 빙긋 웃었다.
“그럼 더 잘된 일이네요. 남의 집 기둥뿌리를 터는 것만큼 재밌는 건 없거든요.”
상혁이 많이 해 봐서 잘 안다. 상혁을 제거하기 위해 거금을 들인 암살 시도가 실패하면 상혁은 막대한 계약금으로 인해 휘청거리는 귀족 가문의 기둥뿌리까지 뽑아서 먹어치운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이잉-!
그때 제드 회장의 핸드폰이 울렸다. 제드 회장이 핸드폰 발신자를 확인하고는 흠칫하고 놀랐다. 상혁이 그런 제드 회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제피렐리?”
“예.”
제드 회장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상혁에게 핸드폰을 내밀었다. 상혁은 그 핸드폰이 마치 자신의 것인 것처럼 통화 버튼을 꾹 눌렀다.
[제드 회장. 왜 내 전화를 받지 않는 겁니까? 지금 한시가 급하니…….]
“아이언 포레스트를 잃은 기분이 어때?”
[넌!]
얼굴이 보이지 않지만 수화기 건너편의 놀란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키득거리며 웃은 상혁이 제드 회장을 쳐다봤다.
“짐 제피렐리. 제피렐리 가문의 현 가주입니다.”
제드 회장이 마치 충실한 집사가 된 것처럼 상혁에게 전화를 건 상대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그러자 저쪽에서 억눌린 듯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제드 회장이 그곳에 있었나.]
“걱정 마. 대장로인가. 몽탁에서 양패구상한 그 대머리 양반처럼 죽이진 않았으니까.”
흠칫.
제드 회장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로키드마틴의 회장인 안드레아스 타이클레의 사망에 상혁이 연관되어 있다는 건 제드 회장도 처음 들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지는 알겠지?”
[……백상혁.]
“그래. 근데 나는 네 이름을 이제 처음 들었단 말이지. 불공평하지 않아?”
상혁이 삐뚜름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제드 회장과 마틴은 조마조마한 눈으로 상혁을 쳐다봤다.
[원하는 게 뭐지?]
짐은 가주답게 상혁이 한 말에 감정을 드러내는 대신 용건으로 화두를 돌렸다. 상혁은 손을 들어 올려 총에 맞았던 관자놀이 부분을 손으로 슬슬 매만졌다.
‘멍이 들었던데.’
눈에 시퍼런 멍이 들어 있었다. 자신의 눈에 멍 자국을 남기다니. 아니, 그 정도만이 아니라 AOS가 없었더라면 아마 그대로 관자놀이가 꿰뚫려 아차 하는 사이에 죽었을 것이다.
자신을 죽이기 위해 아이언 포레스트 주변에 중무장한 용병을 무려 500명이나 배치한 놈이다.
“네가 가진 것의 절반.”
상혁의 원칙은 변하지 않았다. 그나마 전부가 아닌 것에 저들은 감사해야 한다. 가나안에서 대마법사 일란은 자신의 적이라면 주춧돌 하나도 남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기 때문이다.
상대할 자 없는 인간계 최고, 최강의 대마법사인 일란이 그러겠다고 하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야 하는 것이 패배자의 운명이고 말로인 법이다.
그러나 이곳은 지구다.
그래서 전부가 아니라 절반만 받겠다고 하는 것이니 이 얼마나 관대한 처사란 말인가?
[절반? 지금 제정신인가?]
그러나 짐에게는 아닌 모양이었다. 상혁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점점 더 진해졌다. 애초에 저들에게 협상할 권리 따위는 없었다.
승리자이자 강자인 상혁의 일방적인 통보일 뿐인데 무언가 착각하는 모양이었다.
[제피렐리 가문의 절반이면 작은 나라 하나는 사고도 남을 정도의 가치인데. 정말 전쟁이라도 하자는 소리인가?]
작은 나라를 사고도 남을 정도의 가치.
그게 과연 대마법사인 상혁의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같은 무게를 지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네 목숨의 가치는 얼마지?”
[뭐?]
“내 목숨의 가치는 제피렐리 따위의 절반보다도 더 가치가 있지. 그래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절반만 내놓으라는 대단히 관대한 제안을 하는 건데. 그것도 못 받아들이겠다?”
상혁의 말에 짐의 말이 잠시 끊겼다. 그러다가 그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장난이 아니군.]
“난 내 목숨 가지고 장난하지 않아.”
[운 좋게 기습으로 아이언 포레스트를 함락시켰다고는 하나 아무리 네가 초능력을 쓴다고 해도 혼자일 텐데. 제피렐리 가문을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짐의 목소리에 노기가 실렸다. 상혁으로서는 황당할 따름이었다.
“운 좋게? 내가 한 걸 혹시 못 봤어?”
[…….]
상혁은 맨몸으로 핵탄두가 떨어진 지점을 뜻하는 그라운드 제로와 비슷한 방사선 수치를 가진 아이언 포레스트에 들어가 그곳을 홀로 날려 버렸다.
지진을 일으키고 폭풍을 일으켜 제피렐리의 흔적이 남은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그런데 그걸 보고도 운이 좋다는 소리가 나온다?
“그리고 착각하고 있는 게 있어. 내가 바라는 건 고작 제피렐리 따위의 절반이 아니야.”
[그렇다면?]
“원탁의 절반.”
상혁이 히죽 웃었다.
“원탁의 절반을 내놔. 아니면 전쟁을 해서 모든 것을 잃든가.”
절반 아니면 전쟁.
인류 최강의 대마법사가 원탁의 맹주인 제피렐리 가문에 최후통첩을 날렸다.
* * *
김태양은 혀를 내둘렀다.
“사장님, 우리 진짜 이래도 되는 거예요?”
그와 함께 미국 출장이라고 좋다고 따라온 흑태양파, 전 국정원 요원인 부하가 조심스럽게 간을 부여잡고는 그에게 물었다.
“나, 나도 몰라 인마.”
“여기 PMC잖아요. 그것도 블랙스컬이랑 레드혼, 아이언실드요.”
국정원 출신인 그들이 미국을 대신하여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대리전쟁을 수행한 PMC의 굵직한 기업들을 모를 리 없다.
각국의 특수부대 전투 요원들로 전투부대를 꾸린 세 회사의 실질적인 전투 수행 능력은 본사가 보유하고 있는 막대한 자금으로 인해 델타포스에 밀리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지금 그들이 와있었다.
“그, 이사장님이 말씀하신 대로 해도 되는 거죠 우리?”
“그렇겠지. 그분이 하신 말씀이시니까.”
“그런데 살 떨려 죽겠어요.”
제아무리 국정원 출신이라고 해도 인간병기로 다듬어진 특수부대 출신에는 견줄 수 없는 법이다. 그런 특수부대 출신 용병들이 중무장을 한 채 자신들을 감시하고 있으니 뒷골이 쭈뼛거리고 배에 나방이 든 것처럼 간질거렸다.
“얼른 일이나 하고 나가자.”
김태양을 제외한 그가 동행한 두 명은 전문가다. 그들의 주요 분야는 전산과 IT. 그들 앞에 놓인 커다란 서버실에서 서버들이 열기를 뿜어내며 돌아가고 있었다.
“하나도 빠짐없이 다 챙겨. 여기서 못 열어 본 건 나중에 돌아가서 열 수 있으니까 잘 분류하고.”
수없이 많은 전쟁을 수행한 블랙스컬, 레드혼, 아이언실드의 모든 정보가 이 서버실에 저장되어 있었다.
틀림없이 이 안에는 누군가의 약점도, 엄청난 돈이 될 수도, 세계 최정상의 몇 명만 알고 있는 그런 특급 기밀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것이 상혁의 손에 들어온 셈이다.
“빨리빨리 하자고!”
짝짝!
부하들을 재촉하는 김태양의 박수 소리가 경쾌하게 울려 퍼졌다.
* * *
[해 볼 테면 해 봐라. 모든 것을 걸겠다.]
전쟁.
짐이 선택한 것은 전쟁이다. 상혁은 재밌다는 듯 피식 웃었다.
“역시. 사람은 관을 보기 전까지는 무서운 걸 모르는 법이지.”
결과가 상혁의 눈에는 뻔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짐과 제피렐리 가문은 그것을 모른다. 상혁은 짐이 보낸 전문을 읽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할까요.”
제드 회장이 조심스럽게 상혁의 기분을 살폈다. 그는 입속의 혀처럼 굴었는데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제드 회장이 수십 년간 상혁을 보좌한 줄 착각할 정도로 극진하기 그지없었다.
“하고 싶다면 하게 해 줘야지.”
“그럼 준비시킬까요?”
제드 회장이 용병들을 움직이겠다며 상혁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상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전쟁은 나 혼자 한다.”
“호, 혼자? 제피렐리 가문이 상대라는 걸 알고 계십니까?”
상혁이 마법사고, 초인적인 능력을 발휘하는 건 맞다. 하지만 그는 혼자다. 블랙스컬까지면 모를까 제피렐리는 사실상 한 개의 국가나 다름없는 거대한 세력이다.
국가와 개인이 싸워 이긴 전례는 역사 속에 없다.
“왜. 그러다 내가 죽으면 너한테는 좋은 일 아니야?”
“어찌 그런 말씀을.”
제드 회장이 펄쩍 뛰는 체를 했지만 상혁은 피식 웃었다. 그러고는 그에게 말했다.
“상관하지 말고. 대신 불어.”
“예? 무엇을…….”
“제피렐리. 그 빌어먹을 가문 휘하에 있는 모든 사업장들. 싹 다 불어. 놈이 전쟁을 원했으니 전쟁을 해 줘야지. 하루면 되겠네.”
“하, 하루.”
제드 회장은 제피렐리 가문의 저력을 알고 있었다. 블랙스컬과 레드혼, 아이언실드가 이탈했다고는 하나 그들이 동원할 수 있는 자금력과 인력은 그것의 몇 배 이상이다.
“그리고.”
상혁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그리고 통화기록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거의 백 통 넘게 걸려 왔지만 받지 않은 전화번호가 떡하니 찍혀 있었다.
국무부의 파월 국장.
애타게 자신을 찾고 있는 그를 만날 때가 무르익었다.
“나, 백상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