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87화
187. 내놓을래 다 잃을래(2)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배, 백상혁은 국가 안보에 심대한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인물이니 정부를 움직이는 게 어떻겠습니까?]
[그게 말이 됩니까? 그랬다가는 아이언 포레스트에 무엇이 있는지를 우리 손으로 직접 밝혀야 합니다!]
아이언 포레스트 인근에 매복시켜 놓았던 용병 500명의 연락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끊겼다.
유리 돔이 사라지는 순간 적중한 저격을 보고 상혁을 해치웠다고 좋아했던 원탁의 가주들은, 500명이나 되는 용병들이 일제히 연락이 끊기자 다시금 시끄러워졌다.
백상혁.
전무후무한 존재가 원탁의 반대편에 섰다는 것이 확실해진 셈이기 때문이다.
처억
그 때문에 제피렐리 가문의 가주, 짐은 핵 가방을 열었다. 본래 미국 대통령이나 러시아 대통령이 늘 가지고 다니는 핵 가방이지만 지금 그 핵 가방은 짐의 손에 있었다.
원래라면 원탁의 가주가 모두 합의해야 발사할 수 있는 핵이다.
짐이 핵 가방을 열자 떠들던 가주들이 입을 다물었다. 그들은 눈으로 짐에게 정말 그 버튼을 누를 것이냐 묻고 있었다.
“처리해야 합니다.”
짐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확신으로 두 눈을 빛냈다. 그러나 그 확신은 다른 이가 보기에는 광기에 가까웠다.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인 문제에 가장 민감한 프랭크 글레이저가 우려를 드러냈다. 하지만 짐은 오히려 더욱 강하게 자신의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저자가 살아 있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상혁이 살아 있는 것에 비하면 핵을 사용함으로 인해 일어날 문제는 작디작은 문제다.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 방법도 없는 상혁을 핵으로 죽일 수 있다면 오히려 처리하지 못해 치러야 할 대가보다 훨씬 낫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모든 책임은 저와 제 가문이 집니다.”
그리고 이미 짐은 핵을 사용하겠다고 말하며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했다. 아이언 포레스트는 제피렐리 가문의 영역. 그러니 그 영역 안에서 일어날 일을 자신이 전부 책임지겠다고 한 것이다.
[허흠. 그, 그렇다면 난 찬성입니다.]
[저도 찬성입니다.]
가장 민감한 책임 소재를 짐이 지겠다고 하자 가주들이 하나둘씩 찬성표를 던졌다. 그들의 약은 행동에 짐은 절로 속에서 욕지기가 치밀어 올랐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았다.
‘이 도박수가 통한다면 원탁의 실질적인 수장은 우리 제피렐리가 된다.’
짐은 도박을 걸기로 했다.
“코드가 필요합니다.”
핵 가방의 발사 코드는 다섯 가문이 나눠 가졌다. 짐이 그것을 요청하자 가주들이 한 명씩 코드를 말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코드가 완성됐다.
꾹, 꾹, 꾹.
“아이언 포레스트 지하에 있는 핵을 터뜨릴 겁니다. 그 정도 핵이라면 제아무리 백상혁이 우리의 예상을 벗어나는 초인이라고 해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겁니다.”
어딘가에서 핵을 네바다주로 쏘겠다는 소리가 아니다. 아무리 급해도 미국 내에서 그 짓은 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는 즉시 원탁이고 뭐고 제피렐리 가문은 곧바로 공중분해 되어 갈가리 찢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프리메이슨 쪽에서 이쪽 동태를 감시하고 있습니다. 괜찮겠습니까? 이미 지난번 실험 때문에…….]
미 정계에 밝은 프랭크가 우려를 드러냈다. 원탁의 가장 큰 경쟁자인 프리메이슨이 몇 달 전 아이언 포레스트에서 진행된 핵 실험에 대해 단초를 찾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전 프리메이슨보다 백상혁. 그자가 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프리메이슨은 원탁의 오래된 숙적이다. 그 역사가 200년 가까이 되었으나 그래도 프리메이슨은 미리 준비하고 대비를 할 수 있었다.
원탁 못지않게 덩치가 큰 곳이 프리메이슨이었으니까.
그곳에서 움직이면 어떻게든 그 흔적이 남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충분히 원탁의 예상 범위 안에 들어오는 일이다.
그러나 백상혁은 다르다.
‘대처 방법이 있다면 그 어떤 무기도 두렵지 않다. 하지만 가장 두려운 건 대처 방법이 없는 신무기인 법이지.’
백상혁이 바로 그 신무기다. 그 누구도 제어할 수 없고, 그 누구의 예상도 벗어나는 특이점이 바로 그이다.
‘여기서 반드시 죽인다.’
짐의 예리한 본능이 경종을 계속해서 울리고 있었다. 만약 저곳에서 상혁을 잡지 못한다면 결코 원탁이라고 해도 그를 막을 수 없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핵을 맞고도 살아난다면 말이지.’
짐은 그도 인간인 이상 그럴 수 없다고 확신했다. 괜히 핵이 비대칭전력을 가진 무기로 취급받는 것이 아니다.
핵의 전율적인 파괴력은 저 잘난 원탁의 가주들마저 입을 꾹 다물고 긴장하게 만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발사합니다.”
[……!]
가주들의 얼굴에 긴장이 가득 차올랐다. 짐은 코드를 모두 입력한 뒤 버튼을 꾹 눌렀다.
또르륵 톡.
짐의 이마에 맺힌 땀이 콧잔등을 타고 흘러 똑하고 떨어졌다. 하지만 짐은 당황한 얼굴로 위성이 실시간으로 보내오고 있는 영상을 확인했다.
아이언 포레스트는 잠잠했다.
“이, 무슨…….”
핵무기는 핵 가방이 보내는 신호에 작동하지 않았다. 당연했다. 이미 그 핵무기는 상혁의 지진 마법으로 인해 잘게 갈려 상혁의 7서클을 이루는 마나를 제공하는 데 일조한 뒤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습니다.”
아이언 포레스트의 지하에는 핵탄두가 있었다. 그리고 그건 핵 가방에서 보내는 신호로 작동이 되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잠잠했다.
아니, 잠잠한 것을 넘어 고요했다. 그 기이한 고요는 마치 짐이 무슨 짓을 하든 그 모든 것을 부정하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된 겁니까?]
[작동을 안 해요?]
[대체 어떻게 관리를 했길래!]
핵이 터지지 않자 긴장하고 있던 가주들이 왁자지껄하게 떠들기 시작했다. 짐은 그들의 얼굴을 확인하고는 이를 뿌득 갈았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가주들은 핵이 터지지 않았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다. 짐이 강력하게 주장해 그의 말에 따르기로 했지만 핵 사용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던 것이다.
‘틀렸군.’
짐은 허탈해졌다. 팔다리에 힘이 쭉 빠지면서 전의를 잃었다. 최후의 보루라고 생각했던 핵마저 감감무소식이었다.
이제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초인. 아니, 마법사라고 해야 하나.’
초인이라고 하기에는 상혁이 부리는 힘이 마치 영화나 소설 속에 나오는 마법 같았다. 짐은 대처할 방법이 없는 마법사의 위협이 시시각각 닥쳐오는 것도 모른 채 핵탄두 관리를 소홀히 했다며 입을 모아 자신을 비난하는 그들을 보며 직감했다.
‘X됐네.’
* * *
“꺼윽.”
상혁은 말을 하다 말고 자신의 가슴을 퉁퉁 두드렸다. 갑자기 속에서 트림이 올라왔기 때문이다.
“으음. 배부르게 먹은 마나가 이제 소화되나?”
키득키득
배가 터지도록 마나를 먹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상혁은 자신이 먹은 것들을 머릿속으로 되뇌고는 어깨를 으쓱했다.
강력한 생화학 무기인 TC-01, 핵탄두 여러 개, 핵탄두를 만드는 데 쓰인 플루토늄과 수십 개의 생물 무기, 병균 무기, 화학 무기 등등.
하나라도 전쟁에 쓰이거나 사람들이 많이 사는 대도시에 터진다면 삽시간에 도시 하나를 죽음의 도시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상혁의 뱃속으로 들어갔다.
정확히는 심장의 고리로.
‘든든하네.’
상혁은 배를 문지르면서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그러자 상혁의 머리 위에서 우수수하고 검은 물체들이 쿵쿵거리면서 바닥에 추락했다.
“끄으으으…….”
“으으으. 죽여 줘.”
“그, 그만.”
499명의 용병. 그들은 살아생전 처음으로 비행기나 헬리콥터가 아닌 마법에 의해 공중 부유를 하다가 바닥에 떨어져서는 꿈틀대면서 먹었던 것들을 모조리 토해 냈다.
499명을 제외한 나머지 한 명의 용병, 용병회사 블랙스컬의 CEO인 마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내, 내가 저 꼴이 될 수도 있었다.’
상혁은 자신의 말을 지켰다. 가장 쓸모 있는 정보를 제공한 딱 한 명, 마틴을 제외한 나머지 499명을 공중으로 들어 올리더니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휘두르는 것처럼 끔찍한 공중 체험을 선사한 것이다.
그건 그 어떤 놀이기구보다, 낙하산보다, 전투기보다 빠르고 한시도 쉬지 않고 너울거렸기 때문에 100회가 넘는 공수 강하 경험이 있는 이들도 자신이 먹은 것들을 모조리 토해 내며 자신의 토사물 속에 머리를 처박고는 그만해 달라고 빌었다.
“갑자기 연락이 왔다?”
“예, 예. 그렇습니다.”
델타포스 출신으로 부대에서는 ‘사탄’이라 불렸던 마틴은 순한 양이 되어 상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사탄이라 불려도 눈앞에 사탄보다 더한 대악마가 버티고 있는 다음에야 마틴은 차라리 자신이라도 몸을 사리는 쪽으로 나가기로 결정한 것이다.
‘돈이 목숨을 살려 주진 않으니까.’
먹고 살기 위해 값비싼 돈에 무려 블랙스컬의 CEO로 스카웃이 된 그지만 돈보다는 목숨이 더 중요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아는 모든 것을 불었고, CEO답게 다른 이들이 모르는 비밀까지 알고 있었기에 상혁의 눈에 든 것이다.
“신원미상의 동양인을 저격하면 10억 달러. 생포하면 그 이상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럼 누가 연락을 했을까?”
상혁의 두 눈이 뱀처럼 빛났다. 마틴은 자신이 그 뱀에 꽁꽁 묶여 옴짝달싹할 수 없는 상태가 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기에 그는 아주 조금의 비밀도 숨기지 않았다. 상혁 같은 눈을 한 사람에게 섣부르게 거짓말을 했다가 걸리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받을 것이란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장로!! 장로회를 통해 연락이 내려왔습니다! 자, 장로는 블랙스컬의 회장인 데이비드 제피렐리와…….”
상혁은 고급 정보가 하나씩 새롭게 드러나는 것을 보며 히죽 웃었다. 역시 이번 미국행은 얻고 가는 것이 매우 많은 여행이 될 것이다.
“일어나.”
“예, 예?”
“난 길 몰라. 네가 안내해야지. 가이드, 잘 부탁한다?”
툭
상혁이 마틴의 어깨를 툭 쳤다. 마틴은 겁에 잔뜩 질려서는 일단 고개를 끄덕이고 봤다. 상혁이 그런 마틴의 어깨를 움켜쥐고는 마나를 끌어올렸다.
“블링크.”
번쩍!!
상혁과 마틴의 모습이 삭막한 흙먼지만을 남긴 채 그 자리에서 꺼지듯이 사라졌다.
* * *
파바바박!
상혁은 블링크를 수십 번을 펼쳐 눈 깜짝할 사이에 51구역을 벗어났다. 거의 눈을 깜박이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상혁은 블링크를 펼쳐 삭막한 사막을 가로질렀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라스베가스.
네바다주에서 가장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이자 무엇보다 핸드폰이 터지는 인근의 가장 큰 도시였다.
번쩍!
상혁과 마틴이 라스베가스에서 가장 높은 구조물 중 하나인 갤럭시 호텔의 옥상에 나타났다. 상혁은 속이 다 시원하다는 듯 히죽 웃었지만 마틴은 발에 땅이 닿는 순간 입을 틀어막고는 구석으로 뛰어갔다.
웨에에엑-!!
“쯧. 특수부대 훈련을 받았다는 사람이 너무 허약하네.”
뒤에서 상혁이 혀를 찼지만 블링크를 해 본 사람이 있다면 그런 상혁에게 욕을 퍼부을 것이다.
단거리 공간 이동 마법은 말 그대로 마나를 이용해 공간 자체를 뛰어넘어야 하는 마법이다. 공간 이동을 하는 순간 인체는 균형감과 방향감이 모두 흐트러지면서 그 감각을 다시 되찾으려고 에너지를 사용한다.
그런데 그 블링크 마법을 한 번이 아니라 수십 번을 펼쳤다면?
그것도 눈 몇 번 깜박할 사이에 열 번 이상의 블링크 마법을 펼쳤다면 몸의 흐름이 흐트러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애초에 그 정도로 빠르게 연산한 뒤 블링크 마법을 펼칠 수 있는 건 드래곤을 제외하면 상혁이 유일했기에 다른 마법사들은 이런 느낌을 받을 일이 없다.
그러니 마틴이 속에 있는 것을 게워 내는 건 당연한 이치인 셈이다.
스윽.
“끄, 끄으으으.”
“블랙스컬 본사가 이곳에 있다고 했지?”
“예, 예.”
그러나 상혁은 괴로워하는 마틴을 보고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의 목숨을 위협하려던 암살자를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
“안내해.”
상혁은 저들에게 대비할 시간을 주지 않을 셈이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가장 먼저 장로라 불리는 블랙스컬의 회장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 이유?
간단했다.
‘보상 때문이지.’
이때가 가장 즐거운 시간이다. 상혁은 손바닥을 비비며 히죽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