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7화
147.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제맛(2)
‘전기집진식을 거대화해서 설치하고, 오염물질까지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면.’
6서클로 올라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 상혁에게 필요한 것은 절대적인 마나량이지 깨달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급한 대로 구기동 저택의 지붕 위에 전기집진식 거대 필터를 설치하고 환각 마법을 걸어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다고는 하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자칫하면 큰 사고를 일으킬 수도 있고.’
설마 필터를 작동하기 위해 새겨넣은 대규모 바람 마법이 기류에 영향을 미쳐 상공에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을 미처 상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어난 실수였다.
상혁 입장에서야 그걸 단순 ‘실수’로 말할 수 있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아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안전한 곳이 필요했는데 이곳 용산 기지가 딱이었다.
‘군사기지였기 때문에 항로가 이쪽으로는 지나가지 않으니까.’
아직도 용산에는 국방부도 있었고 바로 위쪽으로는 시청과 청와대가 있었기 때문에 비행 금지 구역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그러니 이곳에 전기집진식 필터를 설치한다고 해도 이전과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어디부터 보시겠습니까?”
백도현은 상혁에게 용산 기지를 한국대에서 낙찰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고 했다. SG그룹이란 거시적인 시선에서 봐도 용산의 미군 부지의 인수는 그룹 전체에 도움이 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명분도 있고, 상혁에게 보답을 한다는 의미도 있었다.
특히 백이현이 백도현이 알려지길 원치 않는 약점을 쥐고 있다는 것이 확실해진 시점에서 상혁까지 적으로 돌리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다.
상혁은 대답 대신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빼꼼.
그러자 머리카락 속에 숨어 있던 초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초아는 어차피 다른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개중에 오승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떠한 것에 민감한 이들에게는 희끗희끗한 형태로 보이겠지만, 그럼에도 초아는 매번 사람의 눈길을 피하는 것처럼 상혁의 머리카락 속에 숨곤 했다.
‘찾아봐.’
도리도리.
상혁이 초아에게 의념으로 자신의 뜻을 전달했지만 초아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밀었다.
‘풀의 정령이 이렇게 난색을 표할 정도로 여기가 꺼려진다는 뜻인가?’
이 세계의 의지란 것이 상혁에게 초아를 붙여 준 이유는 초아가 오염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가장 깨끗한 자연 상태의 정령이기에 자연을 해치는 인공적인 오염물질에 유독 민감했기 때문이다.
일종의 오염 탐지기라고 할 수 있었는데, 그런 초아는 아예 이곳에 들어오는 것 자체를 거부했다.
그만큼 이 용산 기지가 끔찍할 정도로 오염이 되어 있다는 뜻이다.
‘간신히 설득해서 어떻게 들어오긴 했는데.’
초아가 상혁의 주변을 떠나는 것을 아예 거부하고 있었다. 마나를 지닌 상혁의 주변이 유일하게 이 주변에서 초아가 마음 놓고 머물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그렇게 심하냐?’
뽀르르!!
초아가 심술 났다는 듯 상혁의 머리카락을 붙잡고는 잡아당겼다. 그래 봤자 하나도 아프지 않지만 초아가 폭력적이라는 것 자체가 이곳을 정말 싫어한다는 것의 반증이었다.
정령이 폭력적이다?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다.
‘그럼 돌아다니다가 어디가 가장 심하지만 알려다오.’
상혁의 말에 초아는 상혁의 머리카락 속으로 쓱 숨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쓰게 웃은 상혁은 마이클에게 말했다.
“뭐 하나 물어도 됩니까?”
“예.”
“용산 기지에서 대한민국 정부에도 알리지 않은 수많은 실험이 자행됐다는 거, 그게 사실입니까?”
“음.”
마이클은 상혁을 빤히 바라봤다. 상혁이 대체 무슨 이유로 그것을 묻는지 알아내겠다는 눈빛이었다. 하지만 노회하다면 상혁만큼 노회한 이가 없었기에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
“국방 기밀이라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이 적습니다.”
말이 적다는 것이지 사실상 없다는 뜻이다.
“인수 조건 중에 특이한 게 있더군요. 비밀 유지 각서를 써야 하며, 부지 인수 비용에 더불어 환경 기금을 조성해야 한다고요.”
“그건…….”
미국이 이곳을 인수할 이의 입을 막기 위해서일 것이다. 환경 기금은 자기네들이 싼 똥을 이곳을 인수할 기업이나 컨소시엄에서 치워야 한다는 뜻이고 말이다.
“마이클. 솔직하게 말해 주세요.”
상혁은 은근히 마이클을 압박했다. 마이클은 상혁에게 빚이 있었다. 상혁이 아니었다면 모리조와 글레이저를 싸움 붙일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다.
그러니 어떻게 보자면 마이클과 상혁은 서로 아군이라고 말할 수 있었다.
“어디 발설해서 미국을 곤란하게 만들기 위함이 아니라는 거 알지 않습니까. 이 용산 기지를 놓고 한국의 시민 단체들이 매일 같이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환경 단체들은 미국에, 미군에 용산 기지에서 벌인 여러 실험으로 인해 훼손된 대한민국 산천에 대한 그들의 입장을 요구하며 매일 같이 시위를 벌이고 있었다.
미군에서 인정하지 않더라도 미군에서 흘러나온 오·폐수 등을 조사해 보면 정황상 무슨 일이 그 안에서 벌어졌다는 것은 세 살짜리 아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당연한 일이다.
“셋째 형님께서 이곳을 인수할 수 있게 힘을 실어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저도 알아야 할 건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환경 기금이란 것도 어느 정도 규모인지 알려진 바가 없으니까요.”
이 용산 기지를 인수하는 조건 중에는 특이한 조건이 달려 있었다.
따로 인수가를 적어서 내는 것 외에도 따로 환경 기금을 얼마나 조성하는지가 조건으로 달려 있었던 것이다.
부지 자체의 인수가와 더불어 환경 기금의 규모를 따져서 평가하겠다고 했기에 상혁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
“크흠.”
마이클은 불편하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상혁은 절대로 그냥 놔주지 않겠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마이클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세계 최강국이라 불리는 미국의 전력은 그냥 나오지 않습니다. 때론 도전적이고 실험적일 때도 있구요. 거기까지가 제가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의 전부입니다.”
사실이라는 소리다.
사실이라는 소리는 길게 돌려 말한 마이클에게 상혁은 고개를 까닥 숙였다.
“대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닙니다.”
“그럼 한번 둘러보죠.”
상혁이 마이클에게 그런 질문을 하면서 시간을 끈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차피 마이클의 대답이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다.
꾹꾹.
머리 위의 초아가 상혁의 머리카락을 쥐고는 어딘가로 당기고 있었다.
‘캔슬.’
휘오오오
상혁의 고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마나가 줄어들었다. 상혁은 마이클에게 말을 하는 척을 하며 마법을 시전하고 있었다.
감지 마법인 디텍트 마법.
그 마법을 활용해 초아로 하여금 자연의 정령인 초아가 느끼기에 가장 악취가 나는 곳을 알려 달라고 했고, 초아가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다.
“그럼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마이클은 상혁에게 내부 지도를 내밀었다. 용산 기지를 표기한 간략한 지도였다. 당연히 외부 반출은 안 되는 기밀이기도 했다.
상혁은 망설임 없이 한 곳을 짚었다.
“이쪽으로 가 보죠.”
C-31.
용산 기지는 크게 구역을 나누는 알파벳과 그 구역 내를 나누는 숫자로 표기가 되어 있었다. 상혁이 단숨에 C-31을 고르자 마이클이 상혁을 쳐다봤다.
“C-31. 맞으십니까?”
“네.”
상혁이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이자 마이클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습니다만. 모셔다드리겠습니다.”
“탄약고가 있는 곳인데, 아무것도 없다구요?”
“사실상 병사와 간부들이 지내던 막사를 제외한 모든 시설은 철거한 상태입니다.”
철저하기 그지없는 미국다웠다. 혈맹국이라고는 하나 조금의 가능성도 남겨 놓지 않기 위해서 모든 것을 밀어 버리고 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은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뭐, 그건 다른 곳도 마찬가지겠네요. 왜 고르라고 한 겁니까?”
“선택지를 드렸을 뿐입니다.”
마이클은 씩 웃으며 차에 올라탔다. 그리고 잠시 후 상혁과 마이클은 C-31 섹터에 도착했다. 그곳은 허허벌판이었다.
마이클의 말대로 탄약고가 있던 곳에는 이곳에 건물이 있었다는 증거만 남아 있을 뿐 시멘트 바닥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대학교 부지를 생각하고 계신다구요?”
“네. 그렇습니다.”
사실은 전기집진식 필터를 설치할 부지를 찾는 것이었다. 한국대 분원이야 한국대 쪽에 던져 주면 아마 알아서 지지고 볶고 하면서 느릿하게 추진할 것이다.
“전쟁의 상징이었던 이곳에 학문의 요람인 대학교를 세운다면 그것이야말로 의미가 있는 일이 아니겠…….”
“잠깐만요.”
그런데 그때 상혁이 한 손을 벌리며 마이클의 입을 막았다. 머리 위의 초아가 난리를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기?’
초아가 가리키는 곳은 평평한 시멘트 바닥만 덩그러니 남은 탄약고 위였다. 상혁은 초아가 이끄는 대로 그곳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없는 곳입니다. 어딜…….”
상혁은 마이클의 자꾸만 옆에서 시시콜콜 말을 거는 것에 손가락을 하나 딱하고 튕겼다. 그 순간 마이클의 눈이 풀리면서 그가 땅에 풀썩 쓰러졌다.
“시끄럽다고 했잖아.”
수면 마법이었다. 상혁은 조잘대던 마이클을 그렇게 재운 뒤 시멘트 바닥에 손을 짚었다.
“이 밑에 뭐가 있다고?”
뽀르르!
초아가 끔찍한 것을 본 것처럼 상혁의 머리카락 속으로 얼굴을 파묻었다. 상혁은 손바닥에 마나를 끌어 올린 뒤 그대로 분사했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마나를 뿜어낸 것이다.
“밑에 공간이 있구나.”
밑에 공간이 없다면 분사한 마나는 다시 튕겨서 돌아와야 한다. 일종의 초음파 같은 개념인데 마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그렇다는 건 이 밑에 공간이 있다는 소리.
“윈드.”
상혁의 고리가 펌프질하며 마나를 뿜어냈다. 상혁이 시전한 바람 마법은 시멘트 바닥 밑의 빈 공간에서 시전됐다.
쉬이이이-!
그러자 아래서 바람이 빠져나오는 소리가 들리며 희뿌연 먼지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틈을 바람 마법으로 찾아낸 것이다.
상혁은 일어나 뒤쪽으로 물러났다.
“이 바닥 전체가 문이었어?”
탄약고였다는 이곳의 시설. 상혁은 탄약고 자체가 사실은 발밑의 비밀 공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희뿌연 먼지가 시멘트 바닥 바깥으로 쉭쉭 거리면서 뿜어져 나왔기 때문이다.
즉 탄약고는 위장이었다는 뜻이다.
상혁이 두 손을 앞으로 마나를 끌어 올렸다. 그러자 마나가 맹렬하게 돌아가면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5서클.
지금 상혁이 낼 수 있는 전력이자 최고 마법이다.
“중력.”
으지직!
상혁의 손이 오므려지자 으직 하는 소리와 함께 시멘트 바닥이 으직 소리를 내면서 부서지기 시작했다.
중력.
원소 마법과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공간 자체의 힘을 이해해야 다룰 수 있는 마법이다. 과학의 발달이 더딘 가나안에서는 이런 공간 마법을 다루는 마법사가 대단히 희귀했다.
마법이 설명하는 세계에서는 중력이나 공간에 대한 개념을 마법사가 이해하고 상상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에서 온 상혁은 아니었다.
그곳에서 이미 과학으로 정립이 된 중력 등의 개념은 상혁에게 있어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혁의 손에서 시전된 중력 마법은 순두부처럼 시멘트를 으깼다.
중력을 가하는 것만으로도 시멘트는 그 중력을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환.”
으직 거리며 부서진 시멘트가 공중으로 떠올랐다. 누르던 힘을 약하게 만들어 시멘트 바닥 자체를 들어 낸 것이다. 그리고 상혁이 손을 조물조물하자 시멘트가 커다란 공이 되어 옆에 쿵 떨어졌다.
탁탁.
“자, 끝.”
시멘트를 구겨 옆에 잘 내려놓았다. 이따가 나갈 때 다시 원상복구를 할 것까지 고려한 것이다.
상혁은 시커멓게 입을 쩍 벌린 비밀 공간으로의 입구를 바라보며 손바닥을 비볐다.
“벌써부터 독하다 독해.”
공기가 독했다. 상혁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러고는 크게 심호흡을 한 다음 입 밖으로 검은 침을 탁하고 뱉었다.
“퉤.”
검은 침이다.
공기 중으로 비밀 공간에서 독기를 띈 공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혁은 공기를 호흡하는 것만으로 마나로 정제한 다음 순수한 독기만 뱉어 낸 것이다.
“이 정도면 장비 없이는 일반인은 못 들어가겠는데?”
괜히 초아가 치를 떤 것이 아니다. 초아는 아예 상혁의 머리카락에서 나올 생각을 하질 않았다. 하지만 상혁은 눈앞에 먹음직스러운 진수성찬이 차려진 듯한 눈으로 망설임 없이 그 속으로 발걸음을 내디뎠다.
“오히려 좋아. 흐흐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