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먹는 대마법사 146화
146. 복수는 차갑게 먹어야 제맛(1)
“빌어먹을 냄새 나는 놈이. 감히 나를 협박하다니.”
백도현은 주먹으로 벽을 세게 후려쳤다. 하지만 자신의 주먹만 아플 뿐 벽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백도현은 윌리엄 글레이저와의 대화를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행크 모리조. 감히 방계 주제에 직계인 나를 공격하고 있는 정신 나간 놈이죠. 듣자 하니 당신과 접촉했다고 하던데. 그 손 놓고 제 손을 잡으세요. 방계보다는 직계인 내가 더 나을 테니까.]
윌리엄은 줄곧 오만방자했다. 그는 마치 자신이 백도현의 상사가 된 것처럼 손을 내밀면서도 거만하게 굴었다.
[어차피 모리조 놈이 날뛰어 봤자 직계가 아닌 이상 크게 힘을 실어 주진 않을 겁니다. 더군다나 당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게 알려지면 내게로 쏟아지는 손가락질도 줄어들 것이고.]
그러나 백도현은 그런 윌리엄과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미 구렁이 같은 그놈에게 단단히 묶인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손을 잡지 않으면, 모리조가 꺼낸 칼날이 내게까지 몰아닥칠 것이라…….”
백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러고는 신경질적으로 자신의 비서실장인 박정철을 불렀다. 야심한 시각이었지만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박정철이 뛰어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사장…….”
뻐억-!
우당탕!!
“박정철 실장.”
박정철은 두 눈에 번갯불이 번쩍하고 튀더니 자신의 몸이 쓰러져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지불식간에 날아온 주먹에 맞은 것이다. 그리고 그 주먹을 날린 장본인은 바로 백도현이었다.
백도현의 표정과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다. 이럴 때 꼭 피를 본다는 것을 알고 있던 박정철은 번개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볼이 날아간 것처럼 욱신거렸지만 지금은 아파할 겨를이 없었다.
“행크 모리조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그러셨습니다.”
“그런데 행크 모리조가 윌리엄 글레이저와 나를 날려 버릴 수 있는 자료를 어딘가에서 얻은 걸 왜 몰랐습니까.”
박정철의 눈이 커졌다. 백도현의 지시대로 박정철은 행크 모리조의 24시간 내내를 감시하고 있었다. 드론과 감시 카메라, 그리고 인력을 동원해 삼중으로 감시하고 있던 박정철이었기에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윌리엄 글레이저가 내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엘릭서 프로젝트의 증거를 행크 모리조가 가지고 있다고 하더군. 자신에게 접근해 협박했다고. 그 때문에 윌리엄 그 새끼가 나한테도 협박 중이지. 제 손을 잡으라고.”
백도현은 이가 절로 갈렸다.
“윌리엄은 이 일을 미국까지 끌고 갈 생각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나보고 처리하라고 하고 있는 거라고. 이 백도현에게! 청소부 역할이나 하라고 그놈이 협박을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까?”
털썩.
박정철은 재빨리 무릎을 꿇었다. 어디서 구멍이 뚫린 지는 모르지만 박정철의 감시망에 구멍이 뚫렸다.
이런 중차대한 일은 윌리엄이 아니라 박정철의 입을 통해서 들었어야 했다. 그것에 백도현은 분노하고 있었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다시 검토하겠습니다.”
“행크 모리조의 감시는 멈춥니다. 내가 살아남으려면 두 가지 방법밖에 없습니다.”
백도현의 두 눈에서 살기가 폭사했다. 박정철의 모골이 송연해질 정도의 살벌한 기세였다.
“모리조를 죽이거나, 글레이저를 죽이거나.”
백도현에게는 두 가지 길밖에 없었다. 백도현은 본능적으로 그걸 느꼈다. 자신이 엘릭서 프로젝트에 연루되었다는 것이 아버지나 형님의 귀에 들어간다면 자신은 끝장이다.
생체 실험을 SG그룹의 오너 일가인 자신이 했다는 것.
‘그 사실이 알려지느니 어쩌면 아버지가 날 죽이실지도 모르는 일이지.’
그러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백도현은 SG그룹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자신의 아버지인 백성철이 무슨 짓이든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일을 어떻게든 자신의 선에서 끊어야 한다.
약점을 쥐었다는 행크 모리조를 죽이든, 아니면 자신을 협박하는 윌리엄을 죽이든. 그것도 아니라면.
‘둘 다 죽이거나.’
그런데 그때 밖에서 다른 비서가 들어와 조심스럽게 백도현에게 보고했다.
“사장님. 백상혁 이사장이 찾아왔습니다. 잠시 드릴 말씀이 있으시다고.”
“상혁이?”
백도현은 시계를 힐끗 쳐다봤다. 자정이 넘어가는 야심한 시각이다. 이런 시간에 백상혁이 찾아올 일이라.
“들어오라고 해.”
상혁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다. 그 순간 백도현의 눈이 뱅그르르 돌아갔다.
‘사만다 허드. 그렇다면 윌리엄의 일이 상혁이를 써먹을 수도 있겠군.’
윌리엄 글레이저는 사만다 허드의 전 애인이다. 둘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윌리엄은 사만다를 1호 실험체로 내다 팔았다.
그걸 알고 있는 백도현이다.
그런 사만다가 실험에서 살아남아 상혁과 염문설을 뿌렸다.
‘윌리엄 그자가 한국에 들어온 이유가 뭐지?’
윌리엄은 갑자기 한국에 입국했다. 겉으로는 한미 방위비 협상 때문이라고 했지만 사만다와 상혁의 열애설이 터지고 난 다음에 하필이면 한국에 들어왔다는 것이 백도현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오만한 놈이라면 제 것을 빼앗겼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지. 만약 그렇다면…….’
윌리엄은 상혁을 만나기 위해 들어온 것이다. 여자 하나를 놓고 윌리엄과 상혁이 치정 관계로 얽힌 것이다.
백도현이 입가에 비열한 미소가 맺혔다.
그러나 잠시 후 상혁이 들어오자 백도현의 입가에 맺힌 그 미소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상혁이 백도현에게 꾸벅 인사했다.
“늦은 시간에 갑자기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형님.”
“가족 간에 죄송은 무슨.”
백도현은 위선의 가면을 쓴 채 상혁에게 살갑게 말했다. 그러나 그의 속이 누구보다도 썩어들어 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상혁은 속으로 웃음을 참느라 꽤 애를 쓰고 있었다.
“다름 아니라 한 가지 말씀드려야 될 것 같아서요.”
“무엇을?”
“무명에 계시지 않았습니까?”
상혁의 말에 백도현의 표정이 굳었다. 상혁이 무명을 알고 있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그곳에서 자신을 봤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자신이 무명에 있었던 때라면 윌리엄을 만나고 있을 때였다.
“네가 그걸 어떻게?”
“큰형님이 좋은 곳을 알려 주신다고 하셔서 갔었습니다.”
백이현.
백도현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만약 상혁이 없었더라면 종잇장처럼 구겨졌을 것이다. 초인적인 평정심으로 가까스로 표정 변화를 참아 낸 백도현이 상혁에게 말했다.
“그래? 그러면 아는 척이라도 하지.”
백도현은 상혁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과연 상혁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것인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상혁은 그런 백도현을 보면서 짐짓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저는 사실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큰형님께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라구요.”
“형님이?”
“예. 얼핏 보니까 웬 외국인이랑 대화를 나눈 뒤에 급히 일어나시던데…….”
상혁의 말은 전부 다 거짓이다. 하지만 이건 들통이 날 리가 없는 거짓이다. 백이현과 백도현이 사이좋게 삼자대면을 해서 팩트를 알아내자고 달려들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상혁은 백이현과 백도현을 양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채 조종했다.
“그러고는 갑자기 나가 버리셨습니다.”
“큰형님이…….”
백도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그와 동시에 그의 본능에 경종이 울리기 시작했다. 백이현이라면 윌리엄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윌리엄과 자신이 만나는 것을 목격했다?
“외국인이 형님과 만났다고?”
“예. 제가 오니까 일어나서 나가던데, 큰형님이 표정이 심각하셨습니다. 그게 형님과 관련 있는 일이 아닌가 싶어서…….”
상혁의 말에 백도현은 깨달았다. 백이현이 무언가를 알고 있었다. 그 외국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히 자신과 윌리엄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백이현이 향할 곳은?
‘아버지.’
백성철 회장에게 달려갔을 것이다. 후계자가 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쓰는 자신이 형이라면 충분히 가능한 소리다.
상혁이 그런 백도현을 상념에서 일깨웠다.
“형님. 괜찮으세요? 제가 괜한 말을 한 건 아닐지…….”
“응? 아니다. 아주 필요한 이야기를 해 주었어. 고맙다. 오늘 이 일은 내 결코 잊지 않으마.”
상혁 덕분에 중요한 것을 알아낸 백도현이다. 뒤늦게나마 상혁이 오지 않았더라면 백도현은 아무것도 모른 채 아마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을 것이다.
이제라도 대응 방법을 찾으면 된다. 그렇게 되니 상혁이 퍽 고마워진 백도현이었다.
“그렇다면 형님. 한 가지 부탁드릴 게 있습니다.”
“부탁? 무엇이든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너를 위해 내 그것 하나 못 해 주겠느냐.”
누가 보면 살갑디살가운 관계라고 착각할 것이다. 백도현의 나긋나긋함에 상혁은 팔에 닭살이 돋는 것을 느꼈으나 꾹 참았다.
“용산 미군 기지 있지 않습니까.”
“미군 기지? 미군들이 철수하고 빈 공지로 남은 그곳 말이냐?”
“예, 형님.”
상혁이 맛있는 먹잇감을 발견한 것처럼 입술을 한 번 핥은 뒤 그에게 말했다.
“한국대 확장 캠퍼스를 짓고 싶습니다. 그 부지를 인수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 * *
마이클 무어의 조치는 빨랐다.
CIA의 지부장인 그의 한마디에 상혁은 사람의 눈을 피해 용산 미군기지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대체 무엇을 하시려고…….”
“기밀입니다.”
진실을 말할 수 없으니 기밀이라고 대충 둘러대는 수밖에. 하지만 마이클은 알아서 상혁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역시 SG에서도 용산 부지에 관심이 있는 것이로군요.”
상혁은 그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조금 더 캐낼 요량으로 물었다.
“우리 말고도 더 있다는 겁니까?”
“미군정이 세워진 후 반세기 넘게 출입 금지 구역이었지요. 지리적인 요건은 이곳만큼 좋은 것이 없으니까요.”
용산 미군 기지는 말 그대로 서울의 한복판에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다. 시청과 청와대에서 채 15분이 걸리지 않고 부촌인 한남동과 강남도 30분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지리적 요건을 갖춘 곳이 미군이 평택으로 이전하면서 매물로 나온 것이다.
그 가치는 당연히 대기업이 아니면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
“그럼 제가 이렇게 쉽게 들어올 수 있었던 것도.”
상혁이 뭔가를 알아채고는 그렇게 말했다. 마이클이 상혁을 이렇게 쉽게 데리고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선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예. 다른 사람들도 데리고 들어온 적이 있습니다.”
“그렇군요.”
상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실제로 SG그룹에서도 이곳에 흥미가 있는지 없는지는 몰랐다. 상혁이 그저 이곳에 들어와서 확인해 보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 구역의 오염도였다.
이 대한민국 땅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곳.
그곳에 대해 김태양이 너무나도 간단한 문제라면서 내놓은 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미군 용산 기지.
한국인의 손에서 벗어나 미국의 관할 하에 반세기가 넘게 들어가 있던 땅. 그 땅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미국이 아니면 절대로 모를 정도로 수많은 비밀이 있는 곳이다.
그것도 서울 한복판에.
‘국정원에서 파악한 실험만 해도 200여 가지. 생화학 실험과 소형 핵융합로 실험을 했다고 했지. 그리고 미국 본토에서는 진행하지 못할 수많은 화학 실험들이 이곳에서 이뤄졌고.’
반세기 동안 미국은 이 용산 기지를 다양한 용도로 사용했다. 한국을 대신하여 전쟁 억제력을 제공한다는 명목이 있었기에 용산 기지 안에서 미국은 한국의 눈치를 보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
‘실제로는 수천 건이 넘겠지.’
문제는 그들이 한 실험의 후폭풍이었다. 미군은 자신들이 벌인 수많은 일들의 뒤처리를 어차피 자신네의 조국도 아닌 땅에서 큰돈을 들여 처리하고 싶지 않았다.
애초에 미국 본토에서는 여러 가지 문제로 진행할 수 없는 실험을 자행한 것인데 그 뒤처리에 신경을 쓸 리가 애초부터 없었던 것이다.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고 한국 정부가 나서서 뒤처리하고 덮은 것만 해도 열 건이 넘는다.
그래서 김태양은 용산 미군 기지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염이 심한 곳으로 꼽았다.
그간 더럽히기만 했지 미군이 차지하고 있어 그 누구도 제대로 청소한 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오염도에 숫자를 1부터 100까지 부여할 수 있다면 용산 미군 기지의 오염도는 측정 불가.
‘즉.’
상혁은 휑하니 모든 시설이 빠지고 건물만 흉물처럼 남은 미군 기지의 전경을 보며 입가에 미소를 띠었다.
‘나에게는 진수성찬이란 말이지.’